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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답사를 마치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마을 한 바퀴를 도는 데도 뜨거운 열기에 몸이 축 늘어지는 걸 느끼며 내일부터 어떻게 행진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막 주문을 하려는 데 휴대폰이 울렸다. 대전에서 함순례 시인이 도착해서 의례회관에 짐을 풀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반갑게 만나서 저녁과 막걸리 한잔을 함께 나누고 전야제 참석을 위해 강정포구로 내려갔다.
포구는 작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포구에서 바라본 구럼비 쪽은 역시 삼발이들이 무지막지하게 늘어서 있어 가슴에 삼발이만큼이나 묵직한 체증이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얼마 후 이동차량을 무대 삼아 전야제 행사가 시작됐고, 가수들의 노래에 이어 김선우 시인이 후배 소설가인 전석순, 이은선, 미디어 아티스트 나미나와 함께 만든 동화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 발표회가 이어졌다. 두 달 동안 공동작업해서 만든 책을 소개하고, 이어서 극단 <종이로 만든 배> 단원들이 낭독 공연을 펼쳤다.
전야제 행사가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서영인 평론가와 양은숙 시인이 배낭을 메고 도착했다.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과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밴드 ‘신짜꽃밴’의 공연을 뒤로 하고 숙소를 찾아 나섰다. 참가자들을 위해 텐트를 친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텐트는 보이지 않고, 여성 회원들은 민박집이라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방이 없거나 너무 비쌌다. 짐을 풀어둔 의례회관으로 오니, 그곳에서 여성 참가자들이 자고 남성 회원들은 강정천 옆에 텐트를 쳐 놓았다는 말을 듣고, 최기종 시인과 나는 배낭을 메고 강정천 쪽으로 향했다. 강정천 위쪽 주차장 옆에 마련해 둔 대형 텐트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서둘러 씻은 다음 피곤한 몸을 뉘었다. 내일 있을 대행진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30일, 햇살은 뜨거웠고, 육신은 허약했다
여섯 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서 서두는 사람들 덕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새벽녘에 잠시 한기가 들기는 했지만 잠자리는 생각보다 편안했다. 대충 씻고 나니 아침밥은 각자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마을 쪽으로 와서 여성 회원들을 만나 빵과 우유로 간단히 요기를 하며 평화 센터에 들어가 활동가 한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번 평화대행진은 여행 성격이기 때문에 참가비 받는 계좌를 임의로 개설할 수 없다는 경찰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여행사와 연계하여 계좌를 다시 만들었으며, 일반 후원계좌도 경찰이 언제 어떻게 열어보거나 압수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이번 행사에 약 5천만 원 정도의 적자를 예상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외부에서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참가비를 받을 수 있냐며 한 푼도 받지 말자고 하는 걸, 간신히 설득해서 그나마 2만 원씩 받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티셔츠에다 세 끼 밥, 그리고 생수와 간식, 의료품만 따져도 1인당 2만 원은 행사를 치르기에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면서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 절로 미안함과 존경심이 들었다.
9시에 강정천에서 출정식이 열렸다. 뜨거운 햇살은 이미 아침나절부터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고, 늘 그렇듯이 출정식은 생각보다 길어져서 출발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졌다. 그럼에도 ‘강정을 지키자! 지키자 평화를! 다함께 출발!’이라는 강동균 마을회장님의 선창을 시작으로 힘차게 행진을 시작했다.
작가들은 모두 동진 팀에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에 서진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대장정의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이때만 해도 마음과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숨은 가빠졌고, 아스팔트 열기가 몸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폭염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결코 헛말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했다. 첫 번째 휴식시간에 찾아든 그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잠시 쉬는 동안 찐 감자가 간식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의례회관에서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감자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끝없이 씻고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걷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게 뒤에서 지원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고생을 하고 있었다.
힘겨운 오전 걷기를 마치고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옆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주먹밥에 오이미역냉국이었다. 정말로 소박한 식단이지만, 꿀맛이 따로 없었다. 무엇보다 얼린 삼다수 물통만큼 반가운 게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서로 그늘을 찾아 잠시 낮잠을 취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쉬고 나니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하지만 역시 조금 걷기 시작하자 허약한 육신이 정확한 신호를 보내왔다. 더구나 오후 코스는 언덕길로 이어져 있어 더욱 힘들었다. 결국 나는 주최 측에서 나눠준 노란 깃발 하나도 힘에 부쳐 지원 차량에다 꽂아버렸다. 처음에는 참가자들끼리 대화도 하며 걸었으나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웃음이 사라지고 다들 묵묵히 걷기에만 열중했다.
나는 지금 왜 이 길에 섰는가? 스스로 던져보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어제 전야제에서 누군가가 이번 평화대행진에 참가하는 것은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참가자 스스로를 위한 길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이번 걷기가 자기 치유의 과정이 될 거라는 말에 백분 공감했다.
첫날 행진이 끝나갈 무렵 자실위원장 문동만 시인과 홍명진 소설가, 최명진 시인, 윤이주 소설가가 강정마을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공천포 축구전지훈련장에 마련한 텐트에 짐을 풀고 카레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뒤이어 강정마을을 둘러본 네 명의 후발대가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강정마을에서 사 들고 온 시원한 캔맥주가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맥주와 소주, 막걸리를 앞에 놓고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중에도 식판 이야기가 먼저 도마에 올랐다. 준비모임을 할 때, 각자 개인 식판을 준비하라고 해서 다들 그게 고민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식판을 사러 돌아다닌 이야기와 함께 들고 온 식판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그릇과 수저까지 주최 측에서 다 제공하는 바람에 헛수고가 되고 만 탓이다. 그밖에도 깃발과 함께 펼침막 같은 걸 준비하면 어떻겠느냐는 말도 있었는데, 펼침막을 준비 안 하길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즐거운 대화를 마치고 텐트로 들어갔는데, 지열이 식지 않아 몇몇 사람은 다시 돗자리를 구해 밖으로 나왔다.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러나 평소에 벌이던 거방진 술판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이시영 이사장님이 참가자들에 대한 격려와 함께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다는 문동만 시인의 전언도 있었지만, 걷기에 대한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매일 술을 마시긴 했으나, 12시 이전에는 항상 곱게 잠자리에 들었음을 밝혀 둔다.
31일, 한국작가회의 깃발과 함께 걷다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에 지네에게 물렸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그런데 서영인 평론가가 자기도 지네에게 물렸다고 하는 게 아닌가! 잠결에 손이 저리고 이상했는데, 걷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자고 말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발밑으로 지네가 기어가더란다. 준비 모임 때 제주 출신의 홍기돈 평론가가 제주에 모기가 많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서영인 평론가가 자신은 모기가 가장 무섭다며 걱정을 했는데, 모기보다 더 무서운 지네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더구나 셋째 날 걷기를 마치고 식당에 들어갔을 때 식탁 옆에 지네 한 마리가 기어가는 걸 봤으니, 아마 서영인 평론가는 앞으로 평생 지네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강동균 마을회장님의 구호를 시작으로 둘째 날 걷기가 시작됐다. 이날부터 다음과 같은 구호로 바뀌었다.
“우리는 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낸다. 질긴 놈이 이긴다. 독한 놈이 이긴다. 세계평화는 강정에서부터! 해군기지 결사반대! 지화자, 좋다!”
전날 나는 평소 걷기에 자신이 있다고 여긴 탓에 맨발에 샌들을 신고 걸었다. 참으로 건방진 생각이었다. 하루 만에 발등이 새까맣게 탄 것은 물론 발바닥도 마찰로 인해 물집이 생길 조짐이 보였다. 그래서 얌전히 양말과 함께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이날부터 문동만 자실위원장이 가져온 작가회의 깃발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깃발은 제일 맏형인 최기종 시인이 자청해서 들었다. 첫날은 적응이 안 돼서 힘들었지만 둘째 날은 그런 대로 걸을 만했다. 양은숙 시인은 꿋꿋이 맨발에 샌들 차림이었고, 마라톤 완주 경험이 있다는 서영인 평론가는 몸피만큼이나 가볍게 발걸음을 놀렸다. 함순례 시인은 운동 삼아 산책하듯 앞뒤로 팔을 크게 흔들며 걸었고, 홍명진 소설가는 수시로 가게에 들어가 먹을 걸 사 먹어가며 걸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깃발을 든 최기종 시인은 어깨가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최명진 시인의 종아리는 아주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한 입 깨물어 보고 싶을 만큼 예뻐(?)졌다.
한 시간에 물통 하나씩을 비워가며 점심 휴식을 위해 도착한 곳에서는 수도와 연결한 호스에 머리를 들이밀거나 미리 받아둔 물통에서 바가지로 물을 떠서 머리에 끼얹느라 바빴다. 점심 메뉴는 역시 주먹밥에 오이냉국이었고,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이 날의 절정은 오후 마지막 코스였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에 잔뜩 기대감을 갖고 마지막 힘을 내고 있는데, 아무리 걸어도 다 왔다는 말을 안했다. 그렇게 기진맥진 끝에 도착한 곳이 표선해수욕장이었다. 한 시간 넘게 걸어도 그늘 하나 없는 곳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모를 만큼 내 두 발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전날은 늦게 출발한 탓에 17Km를 걸었으나 이 날은 8시에 출발해서 27Km를 걸었다.
차로 싣고 온 배낭들을 찾아서 텐트에 풀어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반찬으로 돼지고기볶음이 나온 게 아닌가! 기쁜 마음으로 막 밥과 반찬까지 받아서 챙겼는데, 제주작가 회원들이 저녁을 사주러 왔다며 밥을 반납하란다. 밥그릇을 뒷사람에게 넘기고 가보니 김수열 시인과 이종형 시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수열 시인은 낮에 전화를 해서 방과후학교 수업 때문에 함께 참여하지 못해 미안하고 내일이나 방문한다고 하더니, 바로 달려오셨다. 두 사람의 안내에 따라 표선에서 가장 맛있게 한다는 곳을 찾아가 한치물회를 시켰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제주의 김경훈 시인이 보이지 않았다. 이쯤에서 김경훈 시인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해야겠다. 김경훈 시인은 첫날부터 내가 떠나올 때까지 줄곧 행진 대열에 함께했다. 하지만 혼자 조용히 깃발을 들고 다닐 뿐이어서 말도 몇 마디 주고받지 못했다. 이날도 차를 가지러 가야 한다면 어딘가로 갔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을 뿐 끝내 술 한잔 함께 나눌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조동례 시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마라도 기원정사 창작실에 머무르고 있던 조동례 시인은 정확한 상황을 몰라서 혼자 서진 팀으로 갔다가 다시 동진 팀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한치물회와 함께 소주를 마시는 기분은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좋았다. 김수열, 이종형 두 분 시인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즐거운 자리를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텐트 옆에서 2차를 시작했다. 그 사이 홍명진과 윤이주 두 소설가는 벌써 바다에 몸을 담그고 왔다. 막내인 최명진 시인이 심부름을 다녀온 탓에 소박하게나마 잔디밭에서 뒤풀이 자리를 시작하게 됐다. 조용하게 시작한 분위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졌던가 보다. 서로 초면인 사람이 많아 나이 이야기가 나왔나 본데,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내가 당신들 나이를 왜 알아야 하죠?” 하는 게 아닌가! 시끄러우니까 그냥 조용히 해 달라고 하면 될 것을 불퉁스럽게 따지고 들어 당황했으나, 우리가 잘못을 한 만큼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가서 남은 술을 마시고, 이날도 조용히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1일, 강정마을 주민들의 위대함을 생각하다
아침에 최기종 시인과 조동례 시인이 먼저 돌아가야 한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태풍 담레이가 몰려온다는 소식에 배가 뜨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서둘러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남은 사람들이 셋째 날 행진을 준비했다. 전날 이미 물집이 잡힌 서영인 평론가가 의료팀에 가서 치료를 받고 어려운 길을 다시 떠나게 되었다.
폭염은 여전했고, 몸은 여전히 힘들었다. 그래도 가야 하는 길이기에 씩씩하게 발걸음을 떼놓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차량에서는 틈틈이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주로 신짜꽃밴이 부른 노래들인데 쉽고 중독성이 강해서 마음에 팍팍 꽂혔다. 신짜꽃밴은 ‘신나고 짜릿한 꽃밴드’를 줄인 말인데, 셋째 날까지도 ‘꽃밴’을 ‘꽃뱀’으로 잘못 알아듣는 회원이 있었다. 행진 중간에 마을에 들어서면 선무방송을 하기도 했다. 여성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고 강정 문제를 호소하는 걸 들으며 광주의새벽 차량방송을 떠올렸다고 하는 회원들이 많았다. 사이사이에 남성이 선무방송을 하기도 했는데, 이 남성은 제주 사투리로 절절하게 도움과 동참을 호소하는 발언을 했다. “성산 삼춘들, 우리는 강정에서 왔수다. 삼춘들 지금까지 짓밟혀 온 우리 강정을 도와줍서” 하는 말이 마이크에서 울려나올 때마다 가슴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 치밀곤 했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최명진 회원이 들고 있던 작가회의 깃발을 차량에 실어 보냈다. 깃발 하나도 들기 힘들 만큼 지쳐갔다. 오후 휴식 중에 목포의 유종 시인과 대전의 김희정 시인이 합류했다. 그런데 아침에 떠났던 조동례 시인이 그들과 함께 나타났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태풍으로 배가 막 끊겼다고 한다. 어, 이상한데? 순간 다들 조동례 시인을 보고 놀랐다. 아침만 해도 길었던 머리를 박박 밀고 나타난 때문이다. 조동례 시인의 재등장에는 또 재미난 사연이 있다. 배를 타고 제주항에 도착한 유종 시인과 김희정 시인이 막 택시를 타고 출발하는데, 택시 기사가 앞에 가는 스님을 태우고 가자고 했단다. 그러자고 해서 태우고 봤더니, 조동례 시인이더라는 얘기다. 복장은 회색빛 생활한복에다 머리는 밀었지, 누가 봐도 비구니스님이어서 벌어진, 우연치고는 참 희한한 만남이었던 셈이다. 혹시 배를 놓쳐서 홧김에 머리를 깎은 게 아니냐는 우리들의 물음에 조동례 시인은 조용한 웃음과 함께 ‘그냥 더워서……’라는 말로 대신했다. 모든 행동과 말이 천상 스님의 품성을 닮은 분이었다.
그렇게 후속 대원을 만난 우리는 용기 백배 해서 마지막 오후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고 성산국민체육센터에 도착했다. 새롭게 합류할 사람들 100명 정도가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리다 박수로 맞아주었다. 날이 가면서 참가자가 점점 늘면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반면 태풍 영향권에 들어 바람이 심상찮게 불어대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문화공연을 시작했다. 행사 중에 문동만 자실위원장이 앞에 나가 연대사를 했다. 일흔이 다 된 강정마을 주민들이 낡은 신을 신고 우리와 함께 걷는 모습을 보며, 그분들이 지난 수 년 간 힘든 싸움을 이어온 걸 생각하며, 우리가 잠시 이 길에 동참한 것에 대해 어찌 감히 유세를 부리거나 그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느냐는 말에 다들 공감했다. 그랬다. 그분들에게서는 힘든 기색을 찾아보지 못했다. 휴식 시간에도 서로 모여 앉아 제주 사투리로 웃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 것인지, 외지에서 온, 그리고 여전히 방외자인 우리들의 눈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문화공연을 마치고 숙소 앞에 유일하게 자리한 돼지갈비 집에서 우리끼리 또 뒤풀이를 했다. 오늘 합류한 회원들을 환영하고 내일이면 떠날 사람을 환송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제주흑돼지 오겹살 9인분을 시켰는데, 양이 무척 많았다. 주인이 이르기를, 좋은 일 하는데 힘내라고 일부러 12인분 양을 주었다고 한다. 행진을 하면서 마주친 제주 도민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손을 흔들어주고, 때로는 음료나 물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강정마을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데 외지에서 사람들이 선동을 하고 있으며, 강동균 마을회장도 토박이가 아니라는 식의 악선전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현지 분위기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에 대부분 매우 호의적이었다.
본래 여자들은 체육센터 안에서 자고, 남자들은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로 했는데, 태풍이 심해지면서 남자들도 안에서 자기로 했다. 바람은 점점 거세게 불기 시작하고, 우리들은 조용히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2일, 떠나는 길, 다시 가야 할 길
아침을 먹고 배낭을 차에 싣는 동안 돌아갈 사람들은 어깨에 배낭을 둘러맸다. 나와 문동만 시인, 최명진 시인, 함순례 시인, 이렇게 넷은 간간이 뿌리는 빗줄기 속으로 멀어져 가는 행렬을 바라보며 잠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발에 반창고를 붙이고 걷는 서영인 평론가, 여전히 샌들을 고집하는 용감한 양은숙 시인, 첫날 잠시 차에 지친 몸을 의탁해야 했던, 그럼에도 꿋꿋이 다시 길을 떠나는 윤이주 소설가, 제주에 본적을 둔 홍명진 소설가, 그리고 아직은 쌩쌩하지만 곧 힘겨운 싸움에 직면하게 될 유종, 김희정, 조동례 시인과 그리고 어느 틈에 다시 나타나 깃발을 들고 있는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한 김경훈 시인을 보내고 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제 곧 제주시로 가는 버스가 올 것이다. 우리가 걸었던, 그리고 다시 걸어갈 길은 아무도 걷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다. 길은 거기 있어서 길이 아니라, 누군가 걸어가면서 의미를 만들어 갈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로 태어난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길들마다 평화가 깃들기를! 그리하여 강정마을에 세우고자 하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 언어인지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기를! 아울러 그러한 거짓 언어와 싸우는 작가들의 발걸음이 더욱 힘차게 이어지기를! 이제 저기 버스가 온다.
첫댓글 엥?
여기다 풀어놓으셨네요! ^^ 전 그 후에 합류해 이틀을 잠시 걸었었죠.
함덕바닷가의 아름다움에 푸욱 빠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