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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를 내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무조건 다 이단인가? (교정판)

작성자:종말심판작성시간:2020.01.06 조회수:59
댓글1
펑크를 내는 시한부 종말론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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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예언 *
.
1. 이 시대 [베드로의 시대]
.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24:34
이 말씀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24:3 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다.
예수님의 답변을 요약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그 날과 그 때에 대해서는,
일단
이 시대 [배드로의 시대]
라고
말씀해 주셨다.
절대로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다. 분명히 이 시대, 즉 제자들의 시대라고 못 박아서 말씀해 주셨다. 특히 2,000년 후에 잃어날 일은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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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자들의 시대에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셨는가,
물론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깊은 영적인 뜻을 함유하고 있어서, 모든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마8:22
.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4:35
* 당시 밀은 2cm~3cm밖에 안 자랐음.
이런 말씀들은 절대로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섭리와 심오한 영적인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제자들의 질문의 내용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24:3
‘주의 임하심’이라는
주님의 재림의 날짜를 포함하고 있다.
“Tell us, they said, when will this happen, and what be the sign of your coming and of the end of the age?” Mt 24:3
_ International Version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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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 us when all this will be, they asked, and what will happen to show that it is the time for your coming and the end of the age.” Mt24:3 _Today's English Version_
분명히 of your coming and of the end of the age, 또는 the time for your coming and the end of the age. ‘주님께서 오시는 날과 세상 끝’ 이라고 못을 박아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답변 속에 아무리 심오한 영적인 뜻이 담겨있다고 할지라도,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이 시대,
즉 제자들의 시대에 주님께서 재림하신다고 믿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
그렇지만
이 말씀대로
제자들의 시대에 주님의 재림은 이루어졌는가,
.
결론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말씀도, 문자적으로,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시한부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펑크를 냈다고 해서,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펑크를 낸 예언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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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에 서있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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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 들도 있느니라." 마16:28
‘볼 자들도’
라는 말씀 속에는, 대개는 늙어죽고, 몇 사람만 본다는 뜻도 내포 되어있다. 지금 40세~ 70세까지는 다 늙어죽고, 대략 20세~ 30세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당시의 인간의 수명을 약 70세로 볼 때,
20대 사람들이 약 50세~ 60세정도가 될, 앞으로 약 30년~ 40사이에 일어날 일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된다.
즉
앞으로 약 30년 후에,
그리고
40년 안에
즉 ‘30년~ 40년 사이에’ 라고 정확하게 말씀해 주신 것이 된다.
그러므로
2,000년 후에 될 일은 절대로 아니다.
.
그런데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 들도 있느니라." 마16:28 라는 말씀대로
여기 서있는 사람[제자들의 시대 사람들]중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본 사람들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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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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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10:28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기 전이므로, 내일이나 모래 잃어날 일은 절대 아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동네를 다 돌아다니는데, 2,000년이나 걸리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땅이 우리나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크기라고 볼 때, 경상남북도에는 마을이 몇 개나 될까,
1개의 면에 약 10개의 마을, 1개의 군에 약 10개의 면, 1개의 군에 약 100개의 마을이 다고 가정할 때,
1개의 도에 약 10개의 군, 1개도에는 약 1,000개의 마을. 경상남북도를 합친다면 약 2,000개의 마을.
이
2.000개의 마을이라면, 12제자가 2씩 6개 팀으로 나누어서 2,000개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대략
하루에 한 마을씩만 돌아다닌다고 해도, 360x6= 2,160 마을, 즉 1년이면 다 돌아다니고도 남는다. 그중에 조금 큰 도시가 몇 개 있다고 해도, 늦어도 2년~3년이면 다 돌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12제자가 둘씩 6개 팀으로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는데, 2,000년씩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2,000년 후에 될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
제자들이 이스라엘 동리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주님께서 오셔야 됨으로, 아무리 늦어도 최소한 40년~50년 안에는 오셔야만 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시기는,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돌아다니고 있을 무렵인 10여년 안에, 늦어도 제자들이 살아있을 동안인 50년 안에는 오셔야만 된다.
.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10:28 라는 말씀대로,
제자들이 이스라엘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살아있을 때, ‘인자가 오리라.’라는 말씀은 이루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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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 너희에게 [베드로의 시대]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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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23:35
분명히
다 너희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베드로의 시대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즉 하나님의 종말심판[예루살렘멸망]이 베드로의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100년 후 또는 2,000년 후 시대에 될 일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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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로
제자들의 시대에, 하나님의 종말심판이 이루어 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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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A.D70년에 로마의 티투스에게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이루어졌지만, 제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 말씀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만 받아들였겠는가, 이 세상의 종말심판으로 받아들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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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자가 하늘구름을 타고오는 것을 너희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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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마26:63~64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라는 말씀은, 대제사장이 살아있을 때 그의 눈으로 본다는 말씀이다.
대제사장은 30세~50세까지이므로,
대 제사장이 늙어죽을 70세가 되기 전, 즉 앞으로 40년~ 20년 안에, 주님께서 하늘구름을 타고 재림 하신다는 뜻이 된다.
오순절의 성령강림,
또는 앞으로 37년 후인, AD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염두에 두고 하신 이 말씀은, 반드시 현재 살아있는 대 제사장과 그 주변에 있던 유대인들이 살아있을 동안인
앞으로 40년~ 20년 안에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재림을 하신다고 말씀을 해 주신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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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로
당시의 대제사장이
‘인자가 하늘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았는가,
.
결론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말씀도, 문자적으로,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시한부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펑크를 냈다고 해서,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비록 펑크를 낸 예언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심오한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비록
펑크를 내는 예언이기는 하지만, 이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고자하시는 크신 섭리와, 작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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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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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모든 말씀들을 굳게 믿은 베드로는,
당시의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으니,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를 하자’고 강력하게 설교를 했다.
그리고
그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은 당시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실제로 집과 땅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를 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지만, 그해 겨울이 다가오도록 예수님께서는 오시지를 않았다. 겨울은 다가오고 있는데 집과 땅이 없는 사람들은, 가족을 거느리고 그해 겨울을 어떻게 지날지, 보통으로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늙어죽을 때까지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몇 년을 참다못한 성도들이, 베드로에게 질문하기를, 왜 예수님의 재림이 이렇게 늦어지고 있습니까, 라고 하자,
베드로의 어설픈 대답,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8
자,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베드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지 않은가!,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면
오늘도 어린 생명들은 태어나고, 내일도 어린 생명들은 태어나고, 모래도 그 다음날도 어린생명들은 계속 태어난다. 그 생명들을 하나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하신다면,
아직도 예수님께서 오시려면 1년, 10년, 100년을 더 기다려야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바라신다면, 그 많은 생명들을 다 구원하시려면,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몃 십년이 아니라, 몇 몇 백 몇 천 년이 지나야 오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과 땅은 왜 팔아서 구제하라고 했는가!,
또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면, 그렇지 않은가!,
하루가 천년 같다면,
이제까지 몇 년을 기다려도 오시지 않은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몇 년 후, 즉 몇 천 년이 지나야 오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과 땅은 왜 팔아서 구제를 하라고 했는가!,
정말이지
베드로는, 답변을 하면 답변을 할수록 더욱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이때 베드로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구차한 변명을 하며 당시의 성도들을 달래고 있었겠는가!,
.
왜일까!,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의 시대에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고는, 왜 그대로 이루시지를 않으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왜 씨 뿌리는 비유처럼, 베드로에게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지 않으셨을까,
주님께서 재림하시지를 않았으니, 그 당시 집과 땅을 다 팔아서 구제해버린 성도들은, 밤마다 교회에 가서, 철야, 금식, 울부짖는 기도를 하며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도 하늘을 바라보며, 철저히 이 땅과는 구별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
자,
그 후 2.000년이 지난 오늘, 오늘에 와서 그들의 총 생애를 다시 한 번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자.
그 당시 베드로의 예언을 믿지 않고, 집과 땅을 팔지 않은 사람들은, 일생동안 좋은 주택과 많은 전답을 가지고 부요한 생활을 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세월은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다들 고인들이 되어 하늘에 올라가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아브라함의 품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세상 적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매일매일 하늘만 바라보며 살던 성도들 중, 누가 하늘나라에서 더 많은 상급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을까,
지금
2,000년이 지난 지금
하늘에서
누가 하늘나라의 영광의 자리에 더 높이 올라가 있을까, 누가 하나님보좌 앞으로 가까이 낳아가 있을까,
이제
그들의 생애는 다 끝이 났다. 지금은 그들이 둘 다 하늘의 상급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
누구일까, 하나남의 보좌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간 성도들이!?
일생동안 위를 바라보며 산 사람들일까, 아니면 부요하게 세상 적으로 산 사람들일까!,
말할 것도 없다.
당시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일생을 위만 바라보며 산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상급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을 것은 뻔 한일이다.
당시에는
베드로에게 속은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지금 그들은 오히려 당시에 베드로에게 속은 것을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당시에
베드로가 그렇게 강력하게 주님의 재림에 관한 설교하지 않았더라면, 자기들이 그렇게 까지 일생동안 하늘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
그들은 절대로 손해를 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오늘이라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지 모르니까,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구제하자’는 베드로의 강력한 설교에 대해서 감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
오늘날도 그렇다.
매 시대마다,
이 베드로가 있어야만 한다. 베드로처럼 당시의 신자들을 일깨워줄, 강력한 파워를 가진 시한부 종말론 예언자가 있어야 한다.
그 예언이
맞든 맞지 않던 상관이 없다. 매 시대마다 세례요한과 같은, 또는 베드로와 같은 강력한 시한부 종말론 자가 나타나서, 당시의 성도들을 일깨워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의 예언이 멎든 안 맞든 상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종말론 예언자의 예언이 맞지 않으면,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붙이고 만다. 그렇지만 아니다. 정말로 시대마다 강력한 시한부 종말론 자가 있어야한다.
이 세상은 허영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허영의 도시일 뿐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해서,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오늘날의 그 많은 사악한 이단들까지, 무조건 다 옹호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정말이지 이 시대에는 사악한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독한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다 제거해야 한다. 다 잡아내야 한다. 샅샅이 살펴서 다 잡아내야 한다. 하나라도 이 땅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예리한 눈빛으로,
그들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냉철하게 구별해내야 한다.
다만
이 사악한 이단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낼 때, 그 중 베드로나 사도들 같은, 몇몇 충성된 종들까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몰아내지는 말자는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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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적으로
베드로의 예언도 맞지 않았다.
사도요한, 바울, 그 외의 모든 사도들의 예언도 맞지를 않았다. 다들 펑크가 났다. 그 시대에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진다고 그렇게 강력하게 외친 사도들의 예언이, 다시 말해서 시한부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모두 크게 펑크를 내고 말았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미가, 요나,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치고, 당시에 그 예언이 이루어진 선지자가 누구인가!,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예언이 당장에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계시를 강력하게 전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시한부 종말론 자들의 예언을 무턱대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함부로 이단 취급해서도 안 된다.
무턱대고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뜻이 변치 않으심, 약속이 변치 않으심]” 히6:18 만 외쳐서는 안 된다.
베드로, 요한, 바울이
이단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베드로의 설교를 100% 받아들이고, 일생동안 위를 바라보며 산 사람들이 그의 생애를 성공한 사람들이 아닌가!
깨자!, 알자!, 이 세상은 존 번연이 천로역경에서 말 한 대로 허영의 도시이다. 다 불탄다. 다 탄다. 다 불타버릴 허영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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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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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고전 7:37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롬13:11
사도바울은,
전 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처녀들은 시집가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권했다.
전 아시아뿐만 아니다.
심지어
구라파에까지 건너가서 처녀들은 시집가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권했다. 조금 기다렷다가 신부단장을 하고 예수님을 맞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말씀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초대교회 신자들은 시집을 가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마친 사람들이 많다.
그중
대표자가 바로 빌립의 딸 넷이다. 그들은 시집도가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그 처녀들이 늙어죽을 때까지,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를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크게 펑크를 내고 만 것이다.
적어도
30~40년 후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면, 구라파와 아시아의 처녀들을 시집보내지 말라고 권했겠는가,
다시 말해서 바울은 헛 예언을 한 것이다. 크게 펑크를 낸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30~40년 후, 또는 2,000년 후라면, 누가 처녀 딸을 시집보내지 말라고 권했겠는가!
그렇다면
바울은 거짓 예언을 한 것인가!, 아니면 사탄에게 속아서 잘못 예언을 한 것인가!,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예언을 한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 감동을 받아서 예언을 한 것인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시집보내지 않는 것이 더 잘 하는 것” 이라고 권했으니 말이다.
.
이 대목이
바로,
하나님께서는 흙탕물로도 농사를 지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한 예이다. 당시의 성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으면서 오로지 일생을 하늘만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0년이 지난 오늘날 뒤돌아볼 때,
그들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땅에서 신앙생활 한 것만큼 상급을 받아 누리고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집도 가지 않고, 땅을 팔고 집을 팔아서 가난한자들을 구제하며, 일생동안 금식, 철야, 고행의 길을 걸은 것만큼, 어마어마한 하늘의 상급을 받아 누리고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그렇다면
그 들이
지금 하늘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상급을 받아 누리면서, 당시의 바울에게 무슨 인사를 하고 있을까, 크게 펑크를 낸 그 예언에 대해서 원망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감사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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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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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요2:18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난 것을 보니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지금이 마지막 때인
증거까지 제시하면서,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강력하게 외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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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계1:7, 요19:34, 행2:36,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22:10
‘찌른 자’가 보기위해서는, 찌른 자가 70세가 되어서 죽기 전인,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날부터 계산해서 최소한 40~ 50년 안에는 주님께서 오셔야만 된다.
그러나
그를 찌른 자들이 70세가 되어서 다 늙어죽도록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도 요한은 크게 펑크를 내는 예언을 하고 만 것이다. 당시의 성도들은 사도요한에게 속았거나, 아니면 이단한테 속아 넘어간 것이다.
왜 일까?
사도요한이 과연 이단일까!
!
이 대목이
바로
하나님께서는 흙탕물 계시를 통해서도 성도들을 양육하신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당시의 성도들은, 정말로 예수님이 곧 오실 줄 알고,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고, 집도 사지 않으면서, 오로지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다가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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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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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아브라함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은 돌밭, 자갈밭, 사막, 황무지뿐이었다. 거기에다 기근이 들어서 종들이고, 양떼고 할 것 없이 전멸을 할 위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밤이고 낮이고 원주민들의 습격이 보통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밤에는 원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쳐들어올 위험이 너무나 다분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일생동안 이 황무지에서 고생만 하다가 갔다. 고향 갈대아 우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땅에서, 생고생을 하며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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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아브라함의 성화를 위해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갈대아 우르보다는, 사막이 더 낳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구절이
아브라함의 인격의 성화를 위해서는, 탁한 흙탕물도 가끔 사용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한 대목이 된다.
.
.
* 이스라엘 백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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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애굽에서 이끌어낸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막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들이 과연 사막에서 죽을 줄 알았다면 그 땅에서 출애굽을 했었겠는가!,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들이 원망하며 불평할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을 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들을 광야로 끌어내신 이유는, 그들에게 손해를 주기 위함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손해가 아니라, 반드시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심이었다.
성도의 성화를 위해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보다는, 사막이 더 낳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야생활 40년을 지나면서 인격의 성화를 이루어서, 하늘의 상급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쌓아가지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당시에 광야에 쓰러진 60만 성도들이, 지금 하늘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상급을 받아 누리면서, 당시에 광야 40년의 고행을 원망하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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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이
하나님께서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탁한 물도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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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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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사 6:11~13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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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가 죽던해: B.C 739년
예루살렘 멸망 : B.C 586 = 153년 후에 일어날 일,
분명히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외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이사야는 죽을 때까지 유다의 멸망을 외쳤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라고 하셨으니까, 그가 외치는 동안, 다시 말해서 그의 생애에 이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이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사야는 크게 펑크를 내고 만 것이다.
만약 우리같이 순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예언을 믿고,
이사야의 예언하던 그 첫해(B.C739년)에
당장
집과 전토를 정리하고 요단강 건너편 모압, 압몬, 에돔으로 피난을 갔다면, 그들은 죽을 때까지 수 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원망을 이사야에게 퍼 부으면 생을 살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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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찐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 도다.” 사5:18
이사야의 예언은,
당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그 일들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 도다.” 라고 이사야에게 야유를 퍼부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예언이 당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사야가 거짓 선지자 인가, 이단인가!, 분명히 이사야는 그 일이 당대에 이루어질 줄을 믿고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언제까지 외칠까요.” 라고 질문했을 때,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외쳐라.” 라고 명령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사야는 일생동안 헛 예언을 했던 것이다. 일생동안 펑크를 내기만하고 생을 마친 것이다.
이사야의 말을 듣고,
집을 살 사람들은 집을 사지 않고 도리어 집을 팔고, 재산을 정리한 후에, 모든 준비를 했던 사람들은 쫄딱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사야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쫄딱 망하게 만들어 놓은, 거짓 선지자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었다.
또
자기가 죽을 때 까지도 이루어지지 않는 예언을 외쳤다면, 그 펑크를 내던 예언 때문에 이사야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겠는가?
또 그가 153년이나 살기는 했는가?
죽을 때까지 그는 펑크만 내는 미친 선지자, 거짓 선지자로 낙인을 찍히며 산 것이 아닌가,
당시 이사야의 예언을 굳게 믿는 순진한 성도들은,
시집, 장가도 못가고,
공부도 못하고,
집도. 재산도 다 팔아서 구제하고,
땅도 사지 않고,
사업도 다 정리하고,
아기도 낳지 않고,
신앙생활만 전심전력을 기울이며 생을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믿음 지킨 사람들은, 몽땅 다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사야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에 그렇게 일생을 하늘만 바라보며 살다가 하늘에 올라간 성도들이, 지금은 이사야에게 어떤 인사를 하고 있을까, 당시에 크게 펑크를 낸 이사야를 원망하고 있을까, 이사야 때문에 오늘의 이 많은 영광의 상급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을까,
이 대목이
바로 흙탕물 계시로도,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성도들을 양육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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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B.C.627~ 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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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렘 21:7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렘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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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선지자들은 바람이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렘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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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렘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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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B.C. 627)~ 예루살렘 함락(586)년까지 약 41년 동안이나, 예루살렘의 멸망을 외쳤다.
만약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던 첫해에, 땅과 집을 팔고 모압, 압몬, 에돔, 또은 산골짜기로 피난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41년 동안이나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며 생을 보냈겠는가,
이 사람들이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며, 예레미야에게 비난을 퍼 부었었겠는가!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렘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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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겔(B.C. 593~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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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겔12:22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 도다 하나니,” 겔 12:26
에스겔의 예언은, 당시에 도무지 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다. 이 말씀은 참다못한 당시의 사람들이, 에스겔에게 퍼부은 야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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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가 *
B.C.728~697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미 3:12
* - B. C. 728~697년의 히스기야 시대 중 대략 700년경의 예언. - *
시온이 밭같이 갊을 당한다고 예언했지만, 예루살렘은 돌 하나도 옮기워지지 않았다. 성 모퉁이 하나도 무너지지 않았다. 미가는 일생동안 헛 예언을 한 것이다. 허궁을 치는 예언을 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선지자가 있다면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겠는가, 반드시 그는 이단으로 낙인이 굳게 찍히고 말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을 돌로 쳐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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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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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760년경에 기록.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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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욘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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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 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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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하도 여러 차례 펑크를 내는 계시를 전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혀 믿지를 않고, 앞으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절대로 전하기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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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시한부 종말론을 외치는 선지자들은, 정말로 외로운 길을 걸었다.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계시를 전했지만, 그 예언은 번번이 빗나가고 말았다.
왜일까!
당시의 성도들을 일깨워서 양육하기 위해서는, 그 예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예언이 맞든 맞지 않았든, 그 예언대로 산 사람들은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예언자에게 속은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하늘에 올라가서 보면 “과연 내가 그때 그 예언자에게 속아서, 믿음을 지킨 것이 얼마나 다행한일인가” 라고 미소를 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당시 그런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당시의 성도들이 얼마나 나태하며, 게으른 신앙생활을 했겠는가!,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시한부 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의 예언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알아본 후, 그의 예언이 하나님의 참 예언이 맞다면, 우리는 그 예언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한 후,
하늘에 올라가서 보면, 과연 내가 그 시한부 종말의 예언을 믿고, 일생동안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예언을 해준 예언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이, 앞으로 2,000년이 남았지만, 내일 오신다고 믿고 하루하루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자.” 라고 한다면, 그의 말을 듣고 집과 땅을 팔아서 구제하며 열심을 낸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우리는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거짓 예언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연약한 우리 육체에 맞추어서 우리를 양육하고 계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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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오늘날의 그 많은 사악한 이단들까지, 무조건 다 옹호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정말이지 이 시대에는 사악한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독한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다 제거해야 한다. 다 잡아내야 한다. 샅샅이 살펴서 다 잡아내야 한다. 하나라도 이 땅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예리한 눈빛으로,
그들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냉철하게 구별해내야 한다. 날카로운 칼날로 그들을 예리하게 추적해내야 한다. 낱낱이 살펴서 모조리 잡아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도
베드로, 요한, 바울, 이사야, 예레미야처럼,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도,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예정 속에서 펑크를 내는 예언자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
오늘날도
아무 사심 없이,
베드로, 요한, 이사야, 예레미야처럼
물질이나 음란에 치우치지 않고,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펑크를 내는 시한부 종말론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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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앙고백(信仰告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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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minster Confession 웨스트민스터 신조 신봉,
John Calvinist 존 칼빈주의 신봉
Dordrecht Confession of Faith 도르트레히트 신조 신봉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루이스 벌 코프 조직신학 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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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특정일 종말 예언자는 100% 이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