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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니엘 5장 22절에서 23절 말씀입니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새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아멘. 이제 김동욱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겠습니다.
오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십시오"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하나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다루게 될 다니엘서의 배경은 유대인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약 586년경에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기는 유대인들에게는 극심한 고난의 시대로서 본래 자신의 땅에서 끌려 나와 타국에서 힘겹게 신앙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은 끝까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반대로 바벨론 제국의 두 왕 느부갓네살 왕과 그 아들 벨사살 왕은 하나님 앞에 교만히 행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나눌 이야기는 벨사살 왕의 이야기인데요. 이 벨사살 왕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꼭 얻기를 원합니다. 어느 날 바벨론 제국의 벨사살 왕은 천 명의 귀족들을 불러다가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금그릇과 은그릇을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 천 명에 모인 귀족들에게 또 왕후들과 후궁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였던 금그릇과 은그릇으로 술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죠. 그리고 금과 은과 구리와 새와 나무와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했습니다. 바로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촉대 맞은편에 석회벽이 있었는데, 그 석회벽에 사람 같은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쓰는 것이에요. 이 광경을 벨사살 왕이 보게 됩니다. 이 손가락들이 나타나고 글씨를 쓰는 것을 본 벨사살 왕은 완전히 안색이 바뀌고 생각이 번민해지고, 성경에 보면 넓적다리 마디가 마치 녹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너무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바벨론에 있는 술사와 점쟁이들과 지혜자들을 다 소집했지만, 아무도 석회벽에 쓰여진 글자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왕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소개받고 이 글을 해석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 글을 해석하기 전에 벨사살 왕의 죄를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조목조목 나열해 줍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지적해 준 범죄의 내용인데요. 이 범죄 때문에 벨사살 왕은 석회벽에 쓰여진 그 예언의 글대로 그날 밤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역사적인 사건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런 중요한 교훈을 저와 여러분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벨사살 왕은 가장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잠언 16장 5절입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잠언 6장 16절에서 17절 말씀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하나님은 이처럼 모든 죄를 미워하십니다. 근데 그중에서도 교만을 특히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교만한 죄를 지은 사람은 회개치 않고 계속 교만한 죄를 짓는 사람은 멸망하는데 선봉이 된다고 말하고 있어요.
잠언 11장 18장 12절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종기의 길잡이니라.
남자분들은 선봉이란 말이 굉장히 익숙합니다. 무리 중에 군대 중에 맨 앞에 선 사람들을 선봉대라고도 하죠. 그런데 멸망의 선봉이다. 멸망받는 사람 중에 맨 앞에서 제일 먼저 멸망받을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교만하면 죄를 짓는 사람이 그래서 많은 죄가 있지만 그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되고 멸망에 이르게 되지만 특별히 교만죄는 멸망하는 중에서도 제일 먼저 멸망하게 되는 그런 치명적인 죄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생각할 때는 살인죄나 간음죄가 멸망의 선봉이 될 것 같지만 성경에서는 교만죄가 멸망의 선봉이 된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만큼 교만죄는 무서운 죄입니다. 천사장인 루시퍼가 원래 루시엘이었죠.
사탄이 된 것도 결국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려 했던 이 교만한 마음 때문에 결국은 천사가 천사장이었다가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타락해버렸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벨사살 왕도 스스로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 22절에서 23절을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어요.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이처럼 하늘의 주재이신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인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의 마음에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졌고 모든 것을 가지니까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는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에요.
벨사살 왕은 마음이 교만해져서 예루살렘 성전,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였던 거룩한 그릇을 가져다가 귀족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그뿐만이 아니라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그들과 함께 찬양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벨사살 왕이 왜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룩한 그릇, 금그릇을 가져오게 했을까요? 그리고 왜 그것으로 천 명의 귀족들을 먹게 했을까요? 그것은 사람이 마음이 교만해지면 징후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징후가 바로 자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자꾸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으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요?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런 자랑을 허탄한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4장 16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니라.
이런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에요. 근데 이 교만이 마음에 쌓이게 되면 결국 이렇게 자랑, 허탄한 자랑을 하게 되는 것이에요. 성경에 보게 되면 교만과 자랑이 나란히 짝을 이루어 항상 언급이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2절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짝을 이루면서 설명이 되죠. 또 고린도전서 13장 4절을 보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처럼 교만과 자랑이 짝을 이루어서 설명되어지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교만해지면 자꾸 자기 자랑을, 자기를 높이고 자기 자랑하는 일들이 빈번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보통 교만한 사람들은 그래서 벨사살 왕처럼 허탄한 자랑을 일삼습니다. 말만 하면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을 절대 저와 여러분이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생의 자랑은 세상에 속한 것이고 악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을 보니까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이요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만났다 하면 돈 자랑하고 재산 자랑하고 학벌 자랑하고 자식 자랑하고 온갖 자랑을 하며 우쭐거리며 자신을 뽐내고 자신을 높이는 그래서 자기 영광을 취하는 것이 불신자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벨사살 왕의 부친인 느부갓네살 왕도 여러분 성경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교만해져서 자기를 자랑하는 말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7년 동안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우리 거듭난 신자는 자기를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자랑하는 증거하는 간증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도 주님을 위해서 어마어마한 일들을 많이 했어요. 선교 여행도 많이 떠났죠. 또 성경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몰라요. 신약에서 가장 많이 성경을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그럽니까?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이런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행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실로 은혜로만 주의를 드려도 잘 감당할 수 있어요. 목회도 마찬가지고 여러분의 신앙생활도 은혜가 없이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이기는 것도 은혜가 필요하고요. 하나님 말씀 따라 사는 것도 은혜가 필요하고 여러분이 가족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도 은혜가 필요한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근데 그 은혜는 누구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세요?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겸손한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느냐?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여러분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 하나님 반드시 저를 도와주세요 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그 사람이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가 온 땅을 두루 살피사 하나님께서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들을 찾으셔 가지고 그에게 능력을 베푸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정말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시고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자연 세계에서도요 물이 아래로 흐르지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미국에도 똑같아요. 아프리카에도 똑같아요. 물은 항상 아래로 흐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은혜의 물줄기도 낮은 마음에 흐릅니다.
높은 마음에 흐르지 않아요. 여러분 마음이 낮아 있고 겸손해 있고 가난한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에게 은혜가 퍼집니다. 그러나 교회를 매주 빠지지 않고 나와도 마음이 도도해, 마음이 거만해, 마음이 교만해 그러면 그 높은 마음에 은혜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이 항상 낮은 마음이 되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가 여러분 마음 가운데로 흘러가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겸손은 그 사람의 그릇이에요.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에요. 여러분이 겸손의 깊이가 있을 만큼 깊이가 있으면 있을 만큼 은혜를 깊이 받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겸손의 그릇을 크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벨사살의 죄는 느부갓네살의 죄보다 더 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벨사살의 죄가 부친 느부갓네살 왕의 죄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엘서 5장 22절에서 23절 본문 말씀이죠.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왜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이런 일을 행했습니까? 왜 마음을 낮추지 않았습니까? 이런 말을 해요.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이것을 다 안다는 게 무슨 말을 의미하는 건가? 그 앞절에 나와 있어요. 18절과 21절에 그 18절과 21절의 내용은 무엇이냐면 벨사살 왕의 부친인 느부갓네살 왕에게 하나님이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그 부친인 느부갓네살 왕의 마음이 교만해지고 높아져서 스스로를 자랑하며 교만히 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왕위를 빼앗기게 되고 그 영광을 빼앗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7년 동안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들나귀와 함께 살고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정신병에 걸려 가지고 7년 동안 고생했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걸 봤어요. 절대 바벨론 제국이잖아요. 그러니까 제국의 왕이 왕 중에 왕이죠. 이러니까 권력 세상에도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절대 권력을 가지면 절대 부패한다고. 절대 권력을 가지니까 교만해지고 하나님 앞에 패역한 말들을 행하게 되면서 하나님이 7년 동안 정신병에 걸려서 짐승처럼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이 교만한 죄로 말미암아 혹독한 고통을 겪었어요.
그런데 벨사살 왕은 아버지의 일을 통해서 그 이 교만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큰 어려움을 당했는지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니엘이 말하거나 왜 벨사살 왕이여 왜 마음을 낮추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일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면서도 왜 아버지의 그 일을 답습하고 있습니까? 반복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런 면에서 모르고 지은 죄보다 알고도 고의적으로 지은 죄가 훨씬 더 심판이 큽니다. 알고도 범한 죄이기 때문에 심판이 더 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도 알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더 큰 심판이 있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0절에서 22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 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여러분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가게 되면 이 고라신이라는 마을이 있게 되는데 문자 그대로 폐허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주님은 갈릴리 근처에 고라신과 벳세다 등지에서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셨어요. 그런데 그들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말씀하시고 더 많은 기적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적을 보고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고집했습니다.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바른 진리를 듣고도 알고도 회개치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이 뭐라 그러세요? 심판이 더 크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연역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이렇게 진리의 말씀을 듣고 교만죄를 회개하고 갖가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이 있어요. 물론 연약해서 돌이켰다가 또 어느 순간에 유혹을 받아서 넘어질 수도 있겠죠. 그럼 다시 회개하고 일어나면 돼요.
근데 여러분 중에 그런 사람이 없기를 바라지만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교만죄가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벨사살 왕을 통해, 아버지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서라도 벨사살 왕이 배웠어야 되는데 못 배운 것처럼 똑같이 교만을 답습했던 것처럼 여러분이 이런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교만해져서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고집스럽게 여러분이 하나님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그 영역을 고집해 버리면 여러분 그거는 여러분이 이런 진리를 듣기 전에 심판을 받겠죠. 계속 그 죄 가운데 살아가면 회개하지 않으면 근데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하고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죄를 짓는 사람하곤 심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는 지식을 얻으려고만 들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아는 거 따라 심판하는 게 아니라 행한 거 따라 심판받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그 들은 걸 갖고 행하는 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7절에서 48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 말씀처럼 주님의 뜻을 알고도 고의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자는 더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사람은 적게 맞으리라. 성경에는 많이 선생 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 목회자 되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목회자는 더 큰 심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을 알고 가르치잖아요. 하나님 말씀을 알고 가르치는 걸로 상급 있는 게 아니에요. 목회자도 그 말씀 따라 살아야 됩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성도들에게만 이렇게 사십시오 이렇게 사십시오 이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말한다고 목회자가 천국 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목회자도 죄에서 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목회자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목회자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교만을 회개해야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목회자도 자기도 그렇게 살고 가르치고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선생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셀장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여주시는 하나님.
여러분 구약의 역사서를 보게 되면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요 반대로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을 비교, 의도적으로 비교 대조하여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제 말을 듣고 한번 그걸 읽어보면 일부러 그렇게 악인과 의인,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경외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과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무례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이렇게 대조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대표적으로는 사무엘상에 나오는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호프니와 비느하스입니다. 여러분 성경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일부러 의도적으로 저자가 이 사무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무엘, 한나의 아들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호프니와 비느하스를 계속 대조해 나갑니다. 여러분 그걸 보다 보면 절대로 호프니와 비느하스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여러분 사무엘과 같은 아들을 낳고 싶을 것이고 한나 같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또 좀 지나면 다윗과 사울을 다윗과 사울을 계속 비교 대조합니다.
그래서 사울 왕과 다윗의 왕은 완전히 인생의 목적도 다르고 신앙의 자세가 달라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비교 대조하면서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근데 오늘 말씀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다니엘서에서도 의도적으로 교만한 벨사살 왕과 겸손한 다니엘을 계속 비교 대조하면서 말씀하시는 것이 있는데 여러분 실제로 같은 날에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높여주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신다고 그랬잖아요. 같은 날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은 셋째 통치자로 높여주시고 벨사살 왕은 죽임을 당하게 하십니다. 다니엘서 5장 29절에서 30절이 나와 있는데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그의 목에 금사슬을 걸어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벨사살은요 다니엘이 그걸 해석해 줬거든요. 그 글 손가락이 나와서 쓴 글을 해석해 주니까 약속을 했어요. 이걸 해석한 사람에게 자주색 옷을 주겠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줄 것이고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아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다니엘이 정확하게 그것을 해석하니까 그거를 다 주고 나서 본인은 그날 밤에 죽었어요. 이 예언한 글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실제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그래서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되고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진화론 거짓말입니다. 원숭이가 사람 되지 않습니다.
아메바가 우리 조상 아닙니다. 그건 정말 이 무신론자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이론이에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동물의 연장이 아니라 사람은 동물과 다릅니다. 사람은 영이 있어서 종교 활동을 합니다. 예술 활동을 합니다. 본능적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능히 낮추실 수 있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바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고 겸손하게 행하는 자를 능히 높으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바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잠언 29장 23절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여기서 겸손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유기적인 겸손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고개만 까딱이고 허리 숙이고 90도 인사하면 겸손한 게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겸손한 자세이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겉모습의 겸손이 다가 아니라 마음이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이 내가 부족한 자인 것을 알고 내가 연약한 자인 것을 알고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 온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그 주님을 온 마음으로 의지하는 마음, 나를 의지하지 않고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내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저희 청년부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청년이 많지만 만날 청년이 많지 않다. 왜 그러느냐? 아니 잘생긴 형제도 많고 예쁜 자매도 많은데 왜 만날 형제가 없고 자매가 없느냐 그랬더니 하는 말이 목사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잘생긴 형제들은 마음 도도해요. 예쁜 자매는 공주병에 다 걸려 있어요.
여러분 세상에서 다 언제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까? 외모가 뛰어나면 힘이 들어갑니다. 또 공부 잘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또 뭔가 자기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권세나 지위가 높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그랬어요. 왜 그래요? 부자를 하나님이 싫어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부자들이 교만합니다. 그러지 않습니까? 여러분 부를 많이 소유한 사람이 교만합니다. 그래서 부자와 나사로에게 행한 것 보세요. 악하게 행하지 않습니까? 물론 부자도 겸손한 사람이 간혹 있어요. 하나님 앞에서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고 선한 청지기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 가죠. 그러나 많은 사람이 부자인 사람이 마음이 가난하지를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기가 쉽구요.
가난한 사람이 심령이 가난하기가 실제 쉬워요. 재산도 없는 사람이 마음까지 가난해지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어쨌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성경이 그래서 어떤 사람 특징이 뭐예요? 교회에 오는 사람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성경에 써 있는 것들을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없는 것들, 비천한 것들, 약한 것들, 저요 약한 것들 이런 사람들을 이런 이것 때문에 겸손한 마음을 갖고 주님 앞에 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능력을 베푸신 것이 교회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자기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자기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자기 지혜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약한 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서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느부갓네살 왕이 7년 동안 고통의 시간을 겪으면서 뭘 깨달았어요?
겸손과 교만이 너무 중요하구나. 하나님이 이거를 저울에 달아보시구나. 그래서 겸손한 자는 높여주시고 교만한 자는 능히 낮추시는구나. 이거를 깊이 깨닫게 된 거예요. 그래서 자기 교만을 회개하게 된 거예요. 그게 다니엘서 4장 37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여러분 느부갓네살 왕이 이런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정말 뼈아픈 고통을 겪은 거예요. 7년 동안 여러분 이 7년 동안 이런 고통을 겪고 배우고 싶으세요? 그냥 배우고 싶으세요? 그냥 배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이 상황 속에서 고난 속에서 억지로 겸손해지지 않고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 앞에서 이 말씀을 진리로 깨닫고 아 정말 교만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구나. 내가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이 존귀한 자로 하나님 나를 높여주시는구나라는 걸 깨닫고 오늘 교만을 다 회개하시고 겸손의 마음을 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벨사살 왕은 안타깝게도 부친의 일을 알고도 이런 깨달음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벽에 기록된 글귀 그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벽에 기록된 글은 어떤 글이었어요? 메네 메네 데겔 우파르신. 이런 글귀가 벽에 손가락이 나와서 쓰여진 거예요. 그래서 그 뜻을 다니엘이 해석합니다.
다니엘 5:26-28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여러분 이 내용을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벨사살 왕이여 왕의 나라는 이제 끝이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까 왕은 당신은 안 되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에서 크게 미달된 죄입니다. 크게 부족한 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나라를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바사는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바사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예언의 글이 그대로 그날 밤에 메대와 바사 제국이 침투해 들어와서 이 벨사살 왕이 그날 밤에 죽습니다.
여러분 벨사살 왕이 무엇이 부족했다고, 무엇이 미달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앞뒤 문맥에 의하면 바로 겸손이 부족한 자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이는 그 성전 그릇, 은그릇을 가지고 술을 마실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신성모독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조심하지 않는 것입니까? 웃사도 여러분 언약궤를 쉽게 만졌다가 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여러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벨사살 왕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시는 것처럼 그래서 겸손한지 교만한 자인지를 판단하시는 것처럼 여러분 이 벨사살 왕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도 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도 저울에 달아보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람은 모르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겸손한지를 하나님이 저울질하십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판단되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시고 높여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하다 판단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은혜를 주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알고 다니엘과 같은 겸손한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다니엘은 벨사살 왕과 비교 대조되면서 벨사살 왕은 하나님 앞에 교만히 행했지만 다니엘은 늘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던 자였습니다. 여러분 겸손한 사람은요 기도하게 되어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은혜의 수단이 기도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자꾸 읽는 거 아닙니까? 영적으로 겸손할수록 자꾸 기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게 되어 있고 청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겸손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외했구요 공경하던 자였어요. 그래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향한 그 경외심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많은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나님을 표현할 때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이 다니엘이 하나님을 얼마나 존중하고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게 여기는지를 우리는 이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요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그 다니엘서를 보게 되면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끌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겸손히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또한 벨사살 왕이 다니엘에게 벽의 글자를 해석하면 세 번째 통치자로 삼아주고 자주색 옷을 입혀주고 황금 목걸이까지 걸어주겠다고 약속을 했죠. 그러나 다니엘은 황금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리고 권력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다니엘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뜻이 성취되는 것, 그것이 다니엘의 온전한 관심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어요. 겸손한 다윗과 다니엘과 함께해 주셔서 왕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다니엘은 계속 총리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왕은 바뀌어도 왕은 단명하고 왕은 빨리빨리 바뀌어도 다니엘은 끝까지 죽는 날까지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작동합니다. 여러분 중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받지 않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중력의 법칙을 안 받는 사람 중에 아무도 없어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중력의 영향을 다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 지금 떠 있어야 돼요. 붕붕 떠가지고 저도 떠서 계속 설교해야 돼요. 그러나 중력이 끌어당기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들 다 중력이 끌어당기기 때문에 뜨지 않는 것이죠. 우주에 가면 중력이 없으니까 뜨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여러분 다 받고 있습니다. 안 그런 것 같은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저울에 달아보고 계세요.
여러분이 교만한지 여러분 마음이 겸손한지를 달아보시고 여러분이 기도하더라도 겸손한 만큼 은혜가 부어질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목사님 저는 기도를 많이 해도 한 번도 은혜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런 분은 어쩌면 그 마음이 높기 때문에 높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해도 은혜를 못 받는다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도할 줄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초신자는 그럴 수 있어요. 근데 교회를 10년 이상 20년 이상 다녔는데도 기도할 때 은혜를 못 받는다? 문제 있는 것입니다. 뭔가 마음이 높은 것입니다. 뭔가 삶 속에서 죄가 있는 것입니다. 뭔가 용서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돌아봐야 돼요. 하나님께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합당한 그릇만 되면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에만 이것이 적용되는 게 아니에요. 신약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것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신약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면 영적인 승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높여 주십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추셔서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겸손이 무엇인지 순종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제대로 보여주신 롤 모델이십니다. 여러분 빌립보서 2장 6절을 공동번역으로 보게 되면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그 뒤에 안 나와 있지만 자기를 낮추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향의 가사가 이런 가사가 있어요.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낮추시어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 위에 성육신 하셔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신 것이에요. 이렇게 죽기까지 겸손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빌립보서 2장 6절 그 뒤에 보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주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냥 자기 아들이라서가 아니에요. 보좌 앞에 서 있잖아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추셨다, 겸손히 행하셨다 그리고 복종하셨다. 이 겸손과 순종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주신 거예요. 예외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마귀처럼 스스로 높여서 피조물 주제에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동등되려고 하고 하나님과 비기려고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다가 결국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멸망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예수님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면 하나님이 약속하고 있어요. 하나님 앞에 겸손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 한번 따라 해보겠습니다. 겸손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 여러분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삶을 사셨고 예수님이 그렇게 겸손하고 순종의 삶을 사셨고 경외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서 그런 모든 존귀와 영광을 다 받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떠나고 순종한 삶을 살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날의 때가 되면 여러분을 높여줄 것이고 여러분 머리에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워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귀의 교만을 담지 마시고 예수님의 겸손을 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이란 삶의 중심에 나를 놓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놓느냐 끊임없는 싸움입니다.
이 세상도 여러분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해 보셨을 수 있지만 문화나 이 세상에 전개되는 것이 이 신앙의 관점으로 볼 때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끊임없는 전쟁입니다. 지금 인본주의가 너무 득세하고 있어요. 인본주의가 바른 게 아닙니다. 여러분 인간이 중심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려 할 때 오히려 고갈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이 중심이 되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으세요. 여러분 인생 가운데서도 내가 주인 되어 살아온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할 때 제도 회개하는 것이지만 내가 주인 되어 살아온 그 삶을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려야 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내가 주인이면서 도움을 필요할 때만 기도하는 거, 그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으로, 예수님을 내 삶의 왕으로,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리는 것이고 그 예수님 앞에 철두철미하게 순종하며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살펴 주십니다. 하나님의 양을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먹여 주십니다. 여러분 요즘 개를 많이 키우더라고요. 여러분 개도요 저희 여동생도 개를 키우는데 여행을 못 가더라고요. 개 때문에. 물론 이제 지금은 또 뭐 많은 게 발달돼서 개를 데리고도 여행도 다니지만 그때는 초창기여가지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아 개가 뭔데 개가 뭔데 여행까지 못 가느냐. 저는 개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여러분 개를 개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정도 있더라고요. 개 중심으로 살아가. 여러분 사람과 개는 차이가 납니다. 개가 다른 동물들보다 충성심이 있어서 감동을 줘요. 개는 참 제가 아는 목사님이 굉장히 힘든 일 때문에 40일 금식을 하는데 그래서 20일째인가 30일째부터 기력이 없어서 누워 계신데 기르던 개가요 옆에 와서 같이 안 떠납니다. 그리고 먹지를 않더랍니다. 주인이 밥을 안 먹으니까 개도 옆에 누워 가지고 같이 밥을 안 먹더랍니다. 거기에서 자기가 목사님께서 감동을 받아 가지고 하물며 개도 이렇게 충성을 다하는데 하나님 앞에 불충한 것을 회개합니다 하고 회개하셨다더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개는요 개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게 있어요. 개미를 통해서 배울 것은 부지런함이요 개를 통해서 배울 것은 충성스러움입니다.
주인에 대해서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주인으로 여깁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인을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거가 다가 아니에요.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돼요. 예수님을 그냥 나를 필요할 때 알라딘의 램프를 해 가지고 필요할 때만 램프 비벼 가지고 나 필요한 거 도와주세요 이거 하면 안 돼요. 이거는 교만인 거예요. 이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거 아니에요. 주님을 나의 삶에 왕으로 모셔드리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리기 바랍니다. 정권 교체가 여러분 삶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더 이상 여러분이 왕이 되지 마십시오. 가정에서도 여러분이 왕이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 삶에 예수님이 왕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 가정에서도 예수님이 왕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심령에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배웠듯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높으신 그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과 함께하시는지 아세요? 낮고 낮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겸손한 사람과 함께하신다고 약속하고 계세요. 이사야 57장 15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케 하시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로다. 하나님은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높고 거룩한 곳에 계세요. 근데요 그 거룩하신 분이 우리가 통회할 때 회개할 때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만나길 원하세요? 회개하셔야 돼요.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려면 회개부터 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회개는 축복이에요.
누가 목사님이 회개하라면 여러분 아멘. 회개야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구약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동일한 메시지를 했는데 회개하라 말씀하셨어요.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이것이 모든 선지자들의 주된 메시지였어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 오더라도 여러분에게 제일 먼저 해주실 말씀이 뭔지 아십니까? 회개하라입니다. 죄에서 떠나라. 죄를 버려라. 죄가 너를 사망에 이끈다. 죄가 너의 영혼을 멸망케 한다.
죄가 너의 삶 가운데 저주를 가져온다. 죄에서 떠나거라. 죄가 마귀의 출입구다. 출입구를 막아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시다. 너의 영혼을 구원하실 분, 너의 삶을 구원할 분, 너를 도우실 분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을 받아들여라 믿어라. 그것이 모든 선지자들의 주된 메시지였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회개하면 거룩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높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마음이 낮아지면 만날 수 있습니다. 높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높은 곳에 계시지만 그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낮고 낮은 마음을 가지면 높고 높은 곳에 계신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은혜의 물줄기가 여러분에게 흘러갑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장 낮은 마음으로 한번 기도해 보세요. 거지와 같은 마음으로 한번 기도해 보세요.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반드시 임하십니다. 반드시 여러분 마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예수님 믿는 연예인들 많아요. 근데 그분들 간증을 보면 그분들이 승승장구할 때 주님 만난 사람 아무도 없어요. 승승장구할 때 돈 많이 벌었을 때 은혜를 경험한 사람 아무도 없어요. 뭐 승승장구하다가 갑자기 사업을 벌였는데 망해 가지고 뭐 이혼을 해 가지고 뭐 가정이 깨지고 뭐 실수를 해서 뭐 병이 걸려서 그래서 마음이 낮아졌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높은 마음을 가졌을 때는 주님을 못 만나는 거예요. 그러나 누구든지 여러분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회복하시고 그 사람의 영혼을, 영을 새롭게 하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역대하 7장 14절에 나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사랑하는 여러분 높고 거룩하신 분이 오셔서 우리를 치료해 주시고 회복해 주시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악한 길에서 떠나야 된다고요. 회개해야 된다고요. 그리고 둘째로 뭐예요? 스스로 낮춰야 된다고요. 마음을 겸손케 해야 된다고요. 그리고 기도하면 하늘에서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반전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먼저 회개하고 교만으로 하나님 앞에 행했던 것을 회개하고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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