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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악령이 활개를 치는 순간!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다가왔습니다.
그는 무덤가에서 홀로 살고 있었는데, 당시 유다 문학 안에서 무덤은 ‘악령의 집’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수많은 악령들이 수시로 활개를 치니 한 인간으로의 기본적인 삶은 끝났다고 보면 정답입니다.
충혈된 눈, 온 몸의 상처, 기괴한 몰골, 엄청난 파괴력, 음산한 분위기...사람들은 다들 그를 보면 무서워서 줄행랑을 치곤했습니다. 왕따도 그런 왕따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그의 거처는 인간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무덤 속 토굴이었습니다.
악령의 괴롭힘으로 고통 받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예수님께서 악령에게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주 특별한 대답이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제 이름은 군대(軍隊)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마르 5,9)
악령의 이름은 독특하게도 ‘군대’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로마 군대는 6100명의 사병과 726명의 기병, 합해서 총 6826명의 군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군대라는 표현은 그 사람 안에 수많은 악령이 활개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가 아니라 수많은 악령들의 무리가 그 사람에게 들어가 있었습니다. 악령들은 수가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똘똘 뭉쳐 그 사람 안에 들어가 괴롭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악령들을 쫓아내시어 근처에 있는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천 마리나 되는 악령 들린 돼지 떼들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려 달려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악령들의 무리, 군대라는 표현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악령들을 바라봅니다.
악령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비약적인 경제성장 그 이면에 깃들어진 죽음의 문화가 곧 악령들입니다. 극단적 이원화, 부익부빈익빈의 현실, 집단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경제지상주의, 학벌주의, 외모지상주의, 왕따 현상, 마약, 자살에의 유혹...
이 모든 악령들이 우리 주님의 권능과 자비에 힘입어 하루 빨리 사라지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선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바랍니다.
군대라는 악령 집단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인간의 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한 인간의 끝에서 당신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우리도 악의 세력에 휘둘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악령이 활개를 치면서 한 인간을 극단으로 몰고 갈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내 인생에서 하느님이 부재(不在)하실 때입니다. 내 삶에서 성령께서 부재하시는 순간이 곧 악령이 활동하는 순간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비하신 하느님 현존 체험 안에 머물러야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 그분과 나 사이의 가느다란 끈을 끊지 말아야겠습니다.
때로 하느님께서 아니 계신 듯 여겨지는 부재 체험 가운데서도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께서 내 곁에 현존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때로 여기가 끝인가 보다 느껴질 때도 하느님께서 개입하실 순간이 멀지 않았음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성령을 받아들이는 법: 시험에 들어보라!
찬미 예수님. 오늘은 마르코복음 5장에 나오는 게라사 지방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이에게서 악령을 쫓아내시자, 수천 마리에 달하는 돼지 떼가 호수에 빠져 몰살당했는데, 그 광경을 본 주민들은 놀라고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자기네 고장에서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왜 그들은 ‘하느님의 권능을 직접 목격하고서도’ 예수님을 배척해야만 했을까요? 바로 손에 잡히는 재산(돼지 떼)을 잃는다는 두려움이, 구원과 은총을 놓고 저울질했을 때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자주 반복됩니다. 세속·육신·마귀가 제공하는 그럴싸한 유혹이 너무 익숙하고 실체감 있어 보이기에, 영원한 가치를 제시하는 성령을 뒤로 미루거나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느님께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가, 욕망에 빠져 이를 스스로 내려놓고 만 인물들의 예가 많이 나옵니다. 먼저 사울을 살펴보면,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으로서 기름부음을 받고 출발했지만(1사무 10장 참조), 점차 자신의 권력에 도취 되어 교만해집니다.
1사무 13장과 15장에 보면, 그가 사제로서의 권한도 아닌데 마음대로 제사를 집전하고, 주님의 명령을 어겨 전리품을 챙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내가 왕이니 이 정도쯤이야” 하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무엘이 “주님께서 당신을 버리셨습니다.”(1사무 15,26)라고 선언할 정도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과 사명을 사울이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사울의 교만한 행보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몰락과도 닮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유럽을 호령하며 황제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점차 자신의 절대 권력에 빠져 무리한 원정(특히 러시아 침공)을 감행함으로써 결국은 파멸로 치달았습니다.
겸손히 한계를 인정하기보다 자신을 절대화하면, 하느님이 부어 주시는 은총의 그릇이 거꾸로 뒤집혀 버리는 것이지요. 그는 교회에 의해 씌워지던 황제의 왕관을 자신이 직접 쓴 최초의 황제가 됨으로써 교회에서 오는 은총을 스스로 단절해 버렸습니다.
다음으로 다윗을 떠올려 봅시다. “당신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1사무 13,14 참조)이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하느님께 사랑받던 임금이었지만, 2사무 11장에서 밧세바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간음죄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야까지 제거해 버렸습니다. 한순간의 육체적 욕망이, 하느님께 받은 뛰어난 은총과 왕으로서의 위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는 회개를 통해 다시금 하느님께 돌아가지만, 가정사에서부터 정치적 분열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는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도 흡사합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결혼 문제(육체적 욕망과 후계 문제 등)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교황청과 불화를 일으키고, 결국 영국 국교회를 분리시키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든 인물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교황에게 있지만, 성공회를 교황과 단절되게 함으로써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교황한테서 오는 성령의 은총을 단절시켰습니다.
솔로몬 역시 지혜의 왕으로 불릴 만큼 은총을 받았으나, 재물과 쾌락에 집착하다가 영적 중심을 잃어버립니다(1열왕 11장).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치와 이방 아내들이 늘어가면서, 하느님을 버리고 이방 신까지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것이 훗날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몰락은 영화 「월 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잘 드러납니다. 1980년대 뉴욕 증권가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젊은 주식중개인 버드 폭스(Bud Fox)는 부와 성공을 좇다가, ‘탐욕은 선(Greed is good)’을 외치는 대부 격인 고든 게코(Gordon Gekko)의 꾐에 빠져 불법과 비리를 저지릅니다.
처음에는 급격히 성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모든 진실이 폭로되면서 재산과 명예를 잃고, 스스로도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돈이 곧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얼마나 영혼의 평화와 정직을 포기하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교만, 육체적 욕망, 재물에 대한 집착이 크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은총보다 눈앞의 돼지 떼가 훨씬 더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체험해 보니, 이 벽은 ‘한 번도 내려놓아 보지 않았을 때’ 더욱 견고하게 느껴질 뿐, 막상 용기를 내어 내려놓으면 정말 큰 자유와 기쁨이 찾아옴을 알게 됩니다.
저 자신도 세속을 이기기 위해 처음 십일조를 결심할 때 “이러다 생활이 힘들어지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처럼 “나를 시험해 보아라.”(말라 3,10)를 실제로 해 보니, 오히려 돈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생기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채워 주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또 사제로서 여자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지만, 그 길 위에서 오히려 더 폭넓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게 되었음을 체감했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하거나 사랑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오히려 감옥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술 역시 “피부병 때문에 안 마셔야 한다.”라고 결심하고 한 달을 안 마시고 살아 보니, 몸도 좋아졌을 뿐 아니라 “왜 그동안 술의 즐거움에 애써 의존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가뿐해졌습니다. 결국에는 ‘해 보기 전에는 두렵고, 한번 내려놓아 보면 예상치 못한 은총이 열린다.’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게라사인들이 돼지 떼를 지키려 예수님을 내쫓은 사건은, 결국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시험해 보아라.”(말라 3,10)라고 하신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며칠만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다면 분명 더 성령의 열매, 곧 기쁨과 평화가 샘솟아 행복해짐을 느끼지 못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서두르고 시험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교만해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분명 세.육.마.를 이기는 만큼 내 안에 들어와 나에게 은총의 성물을 주십니다. 그런데 세.육.마.를 이기는 방법은 한 번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행복해지는지 느껴보는 것입니다. 해 보고 안 되면 돌아오면 됩니다. 그러나 해보지도 않고 물리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십일조부터 1년 동안 시험해 봅시다. 돈도 넉넉해지고 성령도 자신 안에 넉넉해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르 5,1-20: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께서는 게라사로 가셨다. 이 지방의 본이름은 게르게사인데 성경을 필사하면서 잘못 옮긴 이름이다. 게르게사는 쫓아낸 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나신다. 악령 들린 사람은 무덤에 거처하면서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여 있으면서 밤이나 낮이나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짓찧곤 했다는 것은 그가 더는 비참해질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마귀들은 그분이 하느님이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본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7절). 예수께서는 악령 들린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펴주신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8절). 마귀들은 그에게서 나와 돼지 떼들에게 들어갔고 돼지들은 물에 빠져 죽었다.
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사람은 성한 몸으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한다. 마귀들의 군대가 자기에게서 쫓겨난 것을 알았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주님의 발치에서 마냥 쉬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의 뜻과는 달리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19절).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지금까지의 나의 생활에서 어떠한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 변화는 나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못 알아들을 때, 우리도 그 주민들처럼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나 자신의 희생이 따를 때, 그 희생을 꺼려 예수님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는 마음의 자세가 아니고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고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성공의 과정에는 모멘텀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외부의 방해를 차단하고 내면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목표를 향한 동기는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굳게 마음을 먹고 행하지만, 외부의 방해 때문에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을 빼고 싶다면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2주 동안은 몸무게를 재지 말라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명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망감을 안겨주고 자포자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도 나는 아무런 변화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2주가 지나고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순간부터는 자신감이 붙습니다. ‘확실히 효과가 있구나. 할 수 있어.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고 이때 누군가가 “혹시 살 빠졌어?”라고 묻기라도 하면 성공으로 향하는 모멘텀은 더 커지게 됩니다.
모든 것은 믿음에 따라 모멘텀이 커지고 성공으로 나아갑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로 그렇습니다. 외부의 방해로 우리는 그 관계를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모멘텀을 키우기 위해 더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갔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마주하게 되지요. 사람들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말씀 한마디로 마귀 들린 사람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군대라는 마귀들은 이천 마리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고,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 호수에 빠져 죽고 말지요. 돈벌이가 되는 돼지 떼들의 죽음으로 마을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지요. 그리고 다음에도 그런 일이 생겨 손해를 볼지 두려워서 예수님께 자기네 고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합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외부의 방해가 작동했습니다. 바로 재산의 손해였습니다. 그리고 이 방해에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길을 포기하고 맙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없애는 외부의 방해를 따를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 결과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부의 방해에 대해 “당장 내게서 나가라.”라고 명령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 모르게 된다(에디 캔터).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히브11,38)
세상에
가치를 두고 살면
세상의 무덤 속에서
세상의 쇠사슬에 묶여
스스로를 괴롭히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살게 된다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여
너무 많은 자아의 무게에 시달리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달려가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돼지들의 뱃속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무덤은 죽음의 세력이 깃든 곳입니다.
죽음은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룰 수 없는 단절된 삶을 의미합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왔다는 표현은
그동안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여
단절과 폐쇄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고,
세상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됨을 의미합니다.
죽음과 단절에서 벗어나
정화를 거쳐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을 떠난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닙니다.
지금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 내가 주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32-40
형제 여러분,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타, 다윗과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에 대하여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정의를 실천하였으며,
약속된 것을 얻었고 사자들의 입을 막았으며,
34 맹렬한 불을 껐고 칼날을 벗어났으며,
약하였지만 강해졌고 전쟁 때에 용맹한 전사가 되었으며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어떤 여인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식구들을 다시 맞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은 부활을 누리려고,
석방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고문을 받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투옥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37 또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다녔습니다.
38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39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