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삼협(長江三峽) 뱃놀이와 돌 조각
진수 '대족석각(大足石刻)' 둘러보기" (넷)
(2007, 6, 18 ~ 6, 23)
450리 뱃길‘풍도’에 첫 기착
남쪽으로 난 ‘오강(烏江)’이 ‘장강’에 또 물 보탠다.
연안엔 부릉(涪陵)시가 자리했다.
도시의 1/4 가량이 수몰됐다.
백만의 인구를 가진 도시다.
(장강엔 이렇게 많은 선단이 떠있다.)
(강 양쪽 산에선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수몰민이 무려 7만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
산 위엔 이주민 새 아파트 군이 가득 들어찼다.
‘오강’을 가로지른 긴 다리가 인상 깊다.
그 다리를 배경으로 승선 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부릉 신시가지 모습.)
(오강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 참 멋있다.)
(......)
풍도(豊都)현으로 내려간다.
배가 출발한 지 여섯 시간 가까워 풍도 현에 닿는다.
4백 50리(174km) 뱃길타고 내려왔다.
첫 기착지다.
풍도 현 소재지는 모두 수몰지역이다.
소재지는 너른 빈터만 남기고 새 도시는 강 건너 산위로 옮겼다.
강가 계곡에선 수 백 톤짜리 배를 건조하기도 했다.
(풍도현 모습이 눈에 잡힌다.)
(풍도현 신시가지. 겉보기엔 멋진 건축물이지만...)
이곳은 고대 파(巴)의 도읍지다.
진(秦)과 초(楚)가 이 땅 두고 다퉜던 요충지다.
나지막한 ‘명산(名山)’이란 산에 ‘귀성(鬼城)’이 자리했다.
북송(北宋)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 : 1036 ~ 1101)가 풍도 유람에서 ‘평도천하고명산(平都天下古名山)’이라는 글귀를 남겨 이 산을 ‘명산(名山)’이라고 부른단다.
‘장강지성’호에서 하선해 여러 척 조그마한 배 위에 걸친 부교를 통해 뭍으로 오른다.
수몰 지역을 거쳐 ‘귀성’까지 오르막길을 낡은 버스로 이동한다.
이동 시간은 고작 5분여.
‘귀성’ 정문에 이르는 100여 m의 길 양편엔 점포와 난전이 이어진다.
(4백 50리 뱃길 타고 처음 내린 풍도의 귀성 앞 거리.)
(귀성의 정문. 서양 사람들이 많다.)
난전은 음료수와 과일 장사가 판친다.
호객 행위가 심하다.
死者 영혼 모여든 鬼城 찾아
삼문처럼 세운 정문엔 ‘중국신곡지향(中國神曲之鄕)’이라 새긴 현판이 걸렸다.
그 옆엔 ‘풍도귀성명산경구유람시의도(豊都鬼城名山景區遊覽示意圖)’란 엄청 큰 입간판을 달아놓았다.
즉 ‘귀성’의 조감도인 셈이다.
(귀성의 조감도.)
이 ‘귀성’은 고대 주(周)의 후대 왕조 '동주(東周 : BC 770 ~ BC 256)'시대 때부터 있어온 고성(古城)이다.
중국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당(唐) 이백(李白 : 701 ~ 762)이 남긴‘하소세상토, 침혼북풍도(下笑世上土, 沈魂北豊都)’라는 시로 더욱 유명해졌다고 전한다.
리프트 타고 귀성으로 오른다.
(귀성으로 리프트 타고 오른다.)
(약왕전. 도교문화에 이렇게 불교색을 섞었다.)
(귀성으로 통하는 문.)
다른 유람선에서 온 관광객과 합쳐져 성안은 무척 붐빈다.
이곳 전설에 따르면 사자(死者)의 영혼은 모두 여기에 모인다는 것이다.
영혼들이 이 ‘귀성’으로 모여 ‘내하교’를 지나 ‘성선로’· ‘귀문관’· ‘황천로’ 등을 건너서 꼭대기에 자리한 ‘천자전(天子殿)’에 이르러 염라대왕(閻羅大王)의 최종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귀성 안 여러 문과 다리, 그리고 누각을 거쳐 천자전에 이른다.)
(한자 네자를 합성한 글자. 무슨 무슨자를 합성했을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마찬가지. 현지 가이드가 합성한 한자를 풀이해주고 있다.)
‘귀문관(鬼門關)’앞에는 18지옥을 관장하는 열여덟 명의 귀신이 양편으로 도열해 있다.
물욕· 식욕· 성욕...... 등을 다루는 18명 귀신은 열여덟 가지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들에게 지옥의 마지막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준다.
볼거리 보담 할 거리 많은 귀성
특히 ‘주욕(酒慾)귀신’이 눈알 부라리며 술의 노예가 된 사람의 목을 한발로 힘껏 밟고 있는 형상이 눈길 사로잡는다.
술 멀리하는 동기들은 이 주신 앞에 일부러 서서 술 좋아하는 몇몇에게 “이것 봤제!”, “앞으론 술 조심해!”라고 경고장 날린다.
그 경고장 받은 이 중엔 내가 포함된 건 말할 것도 없고.
절로 허한 웃음이 배어나온다.
“좋은 술 마시고도 저승에서 저렇게 고통을 받아야한다니~ ~ ~”, 정말 어처구니없어 나온 허탈한 웃음 말이다.
(귀성 뒤쪽에 올라 찍었다.)
(귀문관. 현지 가이드 정의 씨가 귀문관을 설명하고 있다.)
(귀성의 꼭대기에 자리한 '천자전'.)
‘천자전’ 안엔 염라대왕의 심판 받고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여러 지옥에서 갖가지 고통 겪는 장면을 묘사해둔 곳도 있다.
날씨마저 흐린데, 여긴 일부러 전깃불 끄고 어둠침침하게 만들어 으스스한 느낌 나도록 해뒀다.
‘천자전’ 앞엔 ‘오운루(五雲樓)’라는 멋진 5층 누각이 버틴다.
층간 비례 또한 멋지게 조절해 높은 누각임에도 시각적으로 아주 날씬하게 보인다.
이 누각 배경으로 사진 찍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층간 비례를 잘 살려 날씬하게 보이는 '오운루'. 비디오 촬영하는 박종옥 사장.)
(전면에 부처님 얼굴을 조각한 거대한 건물. 놀이시설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놀리고 있단다.)
(천자전 안. 이렇게 실내가 어둡도록 해뒀다.)
‘귀성’엔 볼거리만큼 할 거리도 많다.
즉 천국으로 들려면 세 곳 관문을 통과해야하는 의례가 그것이다.
“길이 4m 다리 세 걸음 만에 건너기”·“숨 안 쉬고 한꺼번에 33개 계단 오르기”·“한발로 뾰족한 돌 위에 3초간 서있기”등등이다.
또 왼쪽 편으로 들어서면 여자로, 오른쪽으로 들어섰을 땐 남자로 환생한다는 문(門)도 있고, 제자리에서 눈을 감고 여러 바퀴를 돈 후 손을 짚어 자기 삶을 점칠 수 있는 벽(壁)도 있다.
이래저래 중국인들은 재미난 얘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다시 느끼면서 ‘회생문(回生門)’ 빠져나온다.
酒神 앞 곤욕 잊고 또 마셔
이곳엔 도교에 불교문화도 섞여졌다.
‘약왕전’등 두서너 개 불전엔 부처님과 보살님을 모셔두기도 했으니깐.
‘귀성’에 있는 여러 조각품은 돌과 시멘트로 조잡하게 만든 작품이라 아쉬움 더했다.
옛 것은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이 죄다 부셔버렸단다.
리프트 타고 ‘귀성’ 내려와 유람선으로 발걸음 옮긴다.
음식점 앞을 지날 무렵 정원덕 사장이 붙잡는다.
“저 가재 좀 보이소! 황산에서 먹었던 바로 그 술안줍니다. 한잔 하고 가입시다.”며 늘어진다. ‘허, 허, 허 ~~~’, 조금 전 주신에게 곤욕 당하는 꼴 보고 내려왔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먹고 죽은 귀신, 화색도 좋다.”고 했는데.
홍 단장을 비롯한 여섯 명의 친구와 정 사장이 주점으로 발길 들여놓는다.
가재 요리와 몇 가지 안주 시키곤 맥주부터 찾는다.
유리컵이 없어 사발에다 부어 죽죽 들이킨다.
가재 요리가 처음이라고 입 모은다.
초련 요기치곤 짭짤했다.
물론 술 마시지 않은 친구들 바깥에서 기다리면서 주는 눈총 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계산은 정 사장이 치렀다.
귀선 마친 시간은 오후 7시 15분.
식당으로 직행해 저녁 먹는다.
(회생문. 이 문 빠져나오면 바로 이승이다.)
(장강지성호에 오르기 전 부교 위에서 한 컷 찰깍.)
대구에서 시내버스 회사와 주유소를 경영하는 전세영 사장이 중국 백주 사 돌린다.
맥주잔과 눈곱만한 백주 잔이 번갈아 돈다.
초련 요기로 알딸딸하던 차에 잘도 넘어간다.
첫댓글 장강삼협 좋다! 전세영사장도 합류했던가? 모처럼 맥주 좀 했겠네.
매번 감사허이!
와암,잘 읽고 갑니다.
헤엄이나 한번 치지 그까지 가가지고 그냥 왔나 ? 와암 수고 많이 했수다 그려 그려!!!!!!!!!!!!!!!!!!!!
첫댓글 장강삼협 좋다! 전세영사장도 합류했던가? 모처럼 맥주 좀 했겠네.
매번 감사허이!
와암,잘 읽고 갑니다.
헤엄이나 한번 치지 그까지 가가지고 그냥 왔나 ? 와암 수고 많이 했수다 그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