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한다. 즉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여 인간의 생체리듬도 변화해 간다는 것인데, 자연의 흐름 중 가장 주기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계절의 변화와 낮과 밤의 순환이다. 음양오행 이론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옛날에는 계절과 주야의 변화에 인간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기에, 자연 변화에 순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문명화된 오늘날, 우리는 그렇지 아니하다. 난방과 냉방으로 온도를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전통적 계절 변화에 대한 순응은 그 의미가 퇴색하였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는 온도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척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의 변화 속에 인간은 반드시 영향을 받고,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현대적 계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4계절
한의학의 최고 고전인 『황제내경』에서부터 『동의보감』에 이르기까지, 의서들은 계절의 변화에 순응해서 살 것을 도입부에서 기술하고 있다. 봄은 만물이 위로 솟아 자라나는 따뜻한 계절이고, 여름은 꽃을 피워 영화를 누리는 뜨거운 계절이며, 가을은 결실을 맺고 식물의 진액이 뿌리로 내려가 모이는 계절이고, 겨울은 뿌리에 응집되어 봄날을 기약하는 추운 계절이다. 이같이 각 계절은 그 특징이 있으며, 이에 맞춰 생활하는 것이 한의학 양생의 기본 이론이다.
봄의 양생
봄은 영어로 ‘spring'이라고 하고, 한의학에서는 ‘발진(發陳)’이라고 한다. 발진이란 묵은 것을 떨치고 솟아난다는 의미로, spring과 상통한다. 봄의 양생은 솟아오르는 봄기운에 맞추어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이 기본 목표이다. 봄이 되면 외부 기온이 상승하면서 체내의 신진대사도 빨라지는데, 겨울에 체력 소모 과다로 기운이 부족하여 대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피곤하고 졸리면서 입맛이 없어지고 허열이 나면서 봄을 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춘곤증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을 다 펴지 못하고 나른해지며 일어나기 싫고, 일어나도 졸리는 것이다. 이에 대한 치료는 신체 내부 환경을 외부 자연 환경에 맞추어주는 것이다. 즉 기운을 보태어 체내 신진대사 속도를 따라가게 하고, 허열을 없애면서 입맛을 돋우는 것이다.
1. 생활 : 태양의 출몰과 자연에 맞추어 생활하라
좀 늦게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좀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 낮에는 자리를 박차고 야외에 나가서 햇볕을 많이 쏘이며, 산보, 소풍,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싹이 움트는 기운을 내 몸 안에서도 느끼도록 움직이라는 것이다. 냉, 온욕을 하는 것도 이를 돕는 것이다.
별을 관찰하다 보면 봄하늘이 가장 혼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진(發陳)’이라는 말대로 온 천지가 묵은 것을 떨쳐냈기 때문이다. 하늘은 황사와 꽃가루로, 땅은 많은 곤충과 찌꺼기들로 넘친다. 따라서 유행병, 피부병, 눈병이 많이 생긴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봄바람에 상한다.’고 하는데, 평소 출, 퇴근시 손발을 잘 씻는 등 위생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2. 음식 : 봄나물을 많이 먹어라
나물 캐는 분들은 대부분의 식물의 어린 싹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것은 여려서 씹기 편하고 소화가 잘 되며 독성이 적다는 말이다. 싹이란 겨울 동안 뿌리에 모였던 진액의 정수가 지상 위로 뚫고 나온 것으로 상승하는 기운이 무척 강한데, 봄나물의 상승하는 기운은 사람의 체내 기운을 도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 동시에 대부분의 어린 싹은 약한 쓴맛을 지니는데, 약한 쓴맛은 한의학에서 사화(瀉火), 조습(燥濕), 개위(開胃) 작용이 있다. 사화란 허열을 내리는 것을 말하고, 조습은 나른해지면서 몸이 무거운 것을 치료하며, 개위는 입맛을 돋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봄나물은 춘곤증에 아주 적합하다 할 수 있다. 자연의 조화로 그 계절에 생긴 병은 그 계절에 나는 식물로 치료하는 것이다. 아래 든 것은 봄을 대표하는 나물들이다.
◆ 취나물 (목, 관절통, 타박상) 봄나물 중 가장 알려진 것이 아마 취나물일 것이다. 참취, 곰취, 큰수리취, 박쥐취, 개미취 등등 그 종류 또한 무척 많은데, 대체로 고산지대의 청정지역에서 자란다. 취나물은 만성기관지염, 인후염 등이 있는 사람이 장복하면 효과적인데,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말을 많이 해 목이 아플 때도 좋다. 성질이 따뜻해서 혈액순환을 촉진하므로, 순환이 안 되어 생긴 근육통, 요통, 두통 등에 효과가 있다. 타박상에는 즙을 짜서 바르면 효과적이다.
◆ 냉이(춘곤증, 간, 눈)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는 냉이를 들 수 있다.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자라는 친근한 냉이. 냉이란 이름만 떠올려도 냉이를 듬뿍 넣은 된장국 냄새가 난다. 냉이는 채소 가운데 단백질 함량이 아주 많은 것으로 칼슘과 인 철분이 듬뿍 든 우수한 알칼리성 식품이다. 그 독특한 향기로 입맛을 돋구어 주고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냉이는 끓는 물에 데쳐 나물이나 국으로 먹어도 좋은데, 냉이국에는 무기질이 많이 녹아 있으므로 국물째 먹는 것이 좋다. 또 조리시에는 열을 너무 오래 가하지 않는 것이 비타민B1, C를 파괴하지 않는 방법이다.
① 춘곤증 : 냉이는 봄이 되면서 자꾸 나른해지고 졸음이 오는 춘곤증을 없애주고 입맛을 돋우어주며 소화기관을 강하게 하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② 간에 좋다 : 또 몸이 허약해서 나타나는 생리불순, 코피, 산후출혈, 무기력증에 좋으며 밥맛이 없고 간 기능이 떨어져서 피로가 심한 사람이나 노인에게도 좋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작용을 하기에 숙취 해소에도 좋다.
③ 눈에 좋아 눈을 밝게 한다.
※ 그러나 몸이 찬 사람이나 결석이 있는 사람은 많이 먹으면 안 된다.
◆ 씀바귀 (소염, 사마귀, 더위) - 신체 내부의 열을 끈다. 씀바귀는 이름만큼 쓴맛이 강하다. 물에 담가 쓴맛을 빼낸 뒤 먹어보면 쓴맛이 입맛을 돋군다는 말의 뜻을 알 수 있다.
① 몸 속의 열을 식힌다. : 속의 열을 없애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잠을 적게 자게 한다. 각종 염증에도 좋다.
② 사마귀 : 줄기에서 나는 흰 즙을 사마귀에 바르면 사마귀가 저절로 떨어진다. 온갖 종기에 발라도 좋다.
③ 더위 : 봄철에 씀바귀를 많이 먹으면 여름 더위에 강해진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식욕증진에 좋은 산채다.
◆ 쑥 (위장, 간, 자궁, 지혈) 시간적으로는 단군신화부터, 공간적으로는 땅에는 어디나 있는 것이 쑥이다. 그만큼 우리와 친밀하게 지내온 봄나물이다. 그 효과 또한 광범위하고 좋다.
① 위장 : 속이 차서 생기는 만성 위장병에 좋다.
② 간에 좋다 : 피를 맑게 하고, 간 기능을 좋게 한다.
③ 자궁에 좋다 : 기혈과 경맥을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에 자궁과 하복부가 차가워서 생기는 자궁출혈이나 임신 중 출혈, 온갖 부인병을 치료한다. ④ 지혈 : 토혈, 코피, 각혈, 상처 입어 피나는 경우에 사용하면 지혈작용을 하는데, 먹어도 되고, 짓찧어 붙여도 된다.
※ 오래 묵은 것이 약효가 더 좋은데, 생것은 차갑고, 묵은 것은 따뜻하기 때문이다.
◆ 두릅의 어린 순 (성인병) 두릅은 시골 마을 어귀 등 햇볕이 잘 비치는 곳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시골서 자란 분이라면 두릅 순 나오기만 기다렸다가 한 발 먼저 가 두릅 순을 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두릅은 삶아서 나물로 무치거나 절여서 먹는다. 한방에서는 목두채(木頭菜)라 하여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고 활력이 없는 사람에게 좋다. 젊어서 체력이 좋았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고혈압, 통풍, 당뇨 등 성인병이 나타날 때 좋다.
◆ 부추 (아랫배 찬 사람, 정력 강화, 지혈) 부추는 지방마다 명칭이 달라 전라도 지방에서는 '솔', 충청도 지방에서는' 졸',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고 한다. 파전을 해서 먹거나 김치를 담가 먹으면 좋다. 그리고 매운 맛이 강한 만큼 그 약효 또한 강력하다.
① 비위와 아랫배를 덥힌다. : 허리 무릎을 따뜻하게 하므로 비위의 기능이 약하거나 몸이 찬 사람, 특히 여성들이 늘 먹으면 더욱 좋다. 몸이 허약하여 밤에 오줌을 싸는 어린이도 몸이 차기 때문에 생기는 수가 많으므로 부추를 자주 먹이면 좋다.
② 정력 강화 :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을 비롯하여 비뇨생식기 계통 전반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여 정상적인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③ 지혈작용 : 독을 해소해 주고 출혈을 멈추게 하는 효능도 있다. 그래서 옛날에 채찍을 맞아 피멍이 든 죄인들에게 생 부추를 먹였다고 한다. 피멍이 들었거나 피를 토할 때, 코피가 자주 나는 경우에 부추를 갈아 즙을 내어 마시면 효과적이다.
◆ 달래 (춘곤증, 소화) '작은 마늘'이라 불리는 달래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해 요즘 같은 환절기에 저항력을 길러주는데 효과적이다. 춘곤증의 증상은 워낙 다양해서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럴 때 달래를 먹으면 뭉친 기운을 밑으로 흩어지게 해서 답답함을 풀어준다. 특히 맛이 맵고 성질이 따뜻한 달래는 비장과 신장의 기능을 돕기 때문에 양기를 보강해 남성들의 피로해소를 위해 적극 권장할 만하다.
최철한 (천지인한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