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이씨(陜川 李氏)는 합천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신라 말 고려 초 합천호장(陜川戶長)을 지낸 이개(李開)이다.
시조 이개(李開)는 이알평의 39세손으로 고려가 건국되자 태조 왕건의
제안을 받아들여 합천호장을 지냈으며, 강양군(江陽君)에 봉군됐다.
합천이씨 시조 이개의 묘소 전경
문충공 이개(李開)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문인으로
유학(儒學)의 진흥에 힘써 그 공으로 강양군(江陽君)에 봉해졌으며
박경엽(朴敬燁)의 난을 토평하고, 다시 문학(文學)을 진흥시켜
중국에 버금가게 하였다고 하였다고 "문충공사적기"에 전한다.
강양군(江陽君) 이개(李開)는 합천(=강양)호장을 지냈으며, 그곳에서 죽은 것을
연유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합천을 관향으로 삼아 계대(繼代)하고 있다.
합천(陜川)은 경상남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으로 본래 신라의 대량주인데,
경덕왕이 강양으로 고치고, 고려 태조 왕건의 제13왕비 후대량원부인
(後大良院夫人)의 고향이라 하여 합주군(陜州郡)으로 승격되었으며,
조선 태종 때 합천으로 개칭되어 본관을 합천으로 하였다.
합천이씨 시조 이개의 묘
시조 이개(李開)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과 왕건의 딸 낙랑공주
사이에 태어난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烈)의 장녀 경주김씨와
혼인하여 후대에 자손을 전하였는데, 합천이씨는 신라건국의 주역인
이알평의 핏줄에 경순왕, 왕건의 핏줄까지 연결되는 유래가 깊은 가문이다.
신라 강양군 이선생의 묘(新羅 江陽君 李先生之墓)
묘소 옆의 신도비
문인석과 망주석
합천 이씨는 고려시대에 문과 2명과 고려 태조 대령원부인,
후대량원부인을,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2명, 무과 59명,역과 8명,
음양과 7명, 의과 3명 등을 배출하였으며, 인구는 총 11만 5천여 명이다.
묘소 측면
주요 역사 인물로는 고려시대에 이인영(삼중대광), 이문저
(상서우복야 태자소보), 이순목(좌복야), 이신손(좌서윤),
이덕손(찬성사), 이승로(정당문학, 강상백), 이운목(전라판서),
옆면
조선시대에는 이복로(초계군수), 이윤검(경상좌도병마절도사),
이희민(이조정랑),이희종(수찬),이희안(고령현감),이윤서(증형조판서),
이태경, 이중필(원종공신 1등,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뒤에서 안산쪽으로
근.현대는 불교계의 거장 성철스님(이승주), 이만섭(국회의장),
이희성(교통부장관), 이상희(내무,건설부장관), 이도선(교보문고 사장),
이중경(삼양제지공업 대표),이영근(청화건설대표),이대봉(동아항공화물 대표)
이대엽(영화배우), 이병주(작가), 이만기(씨름선수, 교수) 등이 있다.
사각형의 묘소 둘레석
묘역 둘레의 송림
합천이씨 시조 묘소 바로 아래의 부인 경주김씨의 묘
묘소 전면 둘레석의 토끼문양
상.하 묘소 둘레석에 똑 같은 토끼 문양을 해 놓았다.
중앙 위에는 달, 아래에는 산, 양 옆으로는 토끼를 새겨 놓아
다른 어느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문양이다.
묘소 옆의 합천이씨 2~9세 제단비 등
합천이씨 2~9세 제단비
선대(2~9대) 위패석
위패석
위패석 뒷면의 2~9세 약보
헌성비 ~ 2015년에 제단비를 비롯한 각종 석물 설치 등 단장을 한듯
제단비 뒤에서
산신 제단
묘역 입구 ~ 아직 벌초를 하지 않은 상태
묘소 입구의 석판으로 아마도 진설준비 등 진사청 역할을 하는듯
묘소가 위치한곳은 월평리 망월산의 거의 정상부 인데다 마을에서
산길로 2.5km이상 떨어져 있어 전기시설도 없는것 같고 수조도 보이지
않았는데, 수도꼭지를 털어보니 신기하게도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재실 ~ 망월재(望月齋) 전경
시조 묘소가 있는 곳이 망월산이고, 마을에서 너무 높고 멀어
재실이 있는 이곳에서 망배를 하는 후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묘소 둘레석의 토끼문양도 망월산 지명에 연유하는듯 하다.
망월재(望月齋)
재실 정문인 서광문(瑞光門)
서광문 입구의 망월산소 참배기 표석
첫댓글 안천님 합천군 용주면 산 중턱 합천이씨 시조 묘와 합천읍내 망월재까지
달려가 현장을 샅샅이 사진으로 옮겨주어 그 고마움 한량 없습니다.
해마다 음력 10월 1일이면 향사를 갖습니다.
33세손 이상희 님은 그 당시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님 종친회장 뒤를 이어
3대에 걸쳐 12년 동안 종친회장직을 수행했고
회장직으로 있으면서 수년 동안 많은 회원들이 회비를 거출하여 서울 중구 오피스텔 2실을 매입,
1실은 임대, 1실은 사무실로 하여 현재까지 잘 운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당시 30만원 회비를 내었습니다.
1970년경에는 부친 따라 합천에서 1박하며 중시조 묘소 참배,
90년 중반에 큰집격인 경주이씨 향사에 형님이 초헌관을,
그리고 용주면 시조묘에서 참배, 합천읍내 대종회 망월재에서도 참배를 했습니다.
또한 저는 대구경북종친회(재실 : 달서구) 30년 동안 이사로서 재직하였습니다.
안천 님이 다녀오신 그 시조묘의 현장도 역사의 한페이지로 남믈 것입니다.
다음에 몸이 말을 듣게 되고,
경주, 합천 등 많은 행사를 회원들께서 이해하여 주신다면
감히 올려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안천 님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건강 기원합니다.
많은 역사적 추억들이 쌓여 있는 장소이군요.
감사합니다.
2008년 10. 29 합천이씨 시조묘 향사 사진
2016년 4. 25 경주이씨 시조 제사 때 이상희 님 초헌관 당시 모습
표암은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인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으로 전해지는 장소로, 서기전(BC) 69년에 6촌장이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건국을 의결했던 곳이며, 그 12년 후인 서기전(BC) 57년에
신라가 건국된 곧 신라 건국의 산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