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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K리그는 나를 버렸지만 나는 K리그로 돌아옵니다” |
토탈사커 2006-03-05 15:50:09 |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주장이었던 신태용. 그가 해외 클럽의 코치로 한국을 찾았다. 지난 2005년 초 아쉬움을 가득 안고 성남을 나온 뒤 호주 무대로 진출했던 신태용은 그 해 출범한 호주 현대A리그의 퀸즐랜드 로어의 선수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9월 입은 발목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생활을 잇지 못했고 1개월 뒤 팀의 기술 코치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겨울 바다 바람이 아직 매서운 통영. 통영컵 4개국 국제대회에 퀸즐랜드 로어 선수들을 이끌고 참가한 신태용 코치를 만날 수 있었다. 아직 팀으로부터 코치보다는 미스터 신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그는 팀 스탭과 선수들로부터 대단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K리그의 레전드였음에도 불구하고 명예스럽게 은퇴하지 못했던 그가 호주 땅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모습에 왜 아쉬움이 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은퇴를 했다"던 그의 말에서는 마주 대하고 있는 기자가 미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레전드를 레전드로 대우하지 못하고 자신을 내친 K리그에 여전히 애정을 갖고 좋은 지도자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인천에 입국하자 마자 밤새 통영으로 달려오는 바람에 한국을 제대로 보지 못한 퀸즐랜드 로어 선수들에게 사비를 털어서라도 서울을 구경시켜줄 것이다며 특유의 호탕함을 보여준 신태용 코치. 그가 얘기하는 해외 생활과 호주 축구의 가능성, 그리고 K리그에 대한 아쉬움을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 오랜만입니다. 신 코치님을 여전히 아끼는 팬들에게 인사를 남겨주시면요? 타국 땅에 가 있지만 제 마음 속엔 항상 대한민국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어딜 가든 한국 팬들이 보내주셨던 성원이 생각납니다. 언젠가는 지도자 신태용으로 한국에 복귀해야 하니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면서 고생을 잊을 수 있습니다. - 코치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게 이상합니다. 아직도 선수 같으신데요?(웃음) 제가 코치로 발령 받은 게 10월 1일이었어요. 그 전에는 팀원들이 주로 '미스터 신'이라고 불렀죠. 아직도 감독이나 선수들이 그렇게 부르길 원하고 있어요. 코치로 불린 건 한국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저도 낯설어요. 항상 신선수 혹은 신주장으로 불렸는데… - 호주 축구와 A리그에 대해 생소한 팬들이 많은데 소개를 좀 부탁 드립니다. 올해가 정식 프로로 전환한 지 1년을 맞는 리그입니다. 현대자동차에서 5년 간 메인 스폰서 계약을 해서 현대 A리그로 출범했습니다. 대한민국 기업이다 보니 제 입장에서도 뿌듯한 일이지요. 세미 프로 리그 시절부터 유럽의 선진 시스템을 도입해 온 탓에 K리그에 비해서도 결코 수준이 떨어지진 않습니다. 단지 팀 수가 8개로 적은 것이 안타깝죠. 일단 프로 리그 내에서는 좋은 감독들이 와 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유럽에서 뛰던 노장 선수들도 들어 와 있습니다. 당장은 네임밸류가 떨어진다고 보시겠지만 향후 몇 년 뒤에는 상당한 발전을 보일 것입니다. 호주 국가대표팀의 실력을 봐도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선수들 많은 걸 아실 겁니다. 축구 불모지가 아님을 인식해야죠. 시설 면에서도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를 치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전용 구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의 클럽의 홈 구장인 썬콥 스타디움은 5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럭비, 축구 전용 구장입니다. 시설도 최고입니다. 라커룸 시설은 상암보다 더 좋은 것 같고 경기 후 선수들이 피로를 풀 수 있는 스파 시설도 완비되어 있습니다. 부상을 대비해 경기장 내에서 치료가 가능한 의료시설도 들어와 있습니다. 클럽 하우스도 K리그 최고 수준에 견줄 수 있습니다. 전용 잔디구장이 3면인데 언제든지 마음껏 훈련할 수 있게끔 준비해뒀습니다. 제반적인 시설은 K리그보다 잘 되어 있는 셈이죠. 선수들도 럭비를 좋아해서인지 신체적인 조건이 좋습니다. - 퀸즐랜드 로어 클럽과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은요? 성남을 나오면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일단은 지도자를 할 지, 행정가를 할 지, 아니면 축구 사업을 할 지 내가 그릴 인생의 진로를 고민했고 유학지를 결정하려 했죠. 그 찰나에 이미 호주에서 터전을 잡고 계시던 김판근 선배님(호주에서 축구 아카데미 운영 중)과 연결이 됐습니다. 선배님께서 A리그가 창단하는데 가능성이 많은 곳이니까 한번 와보라고 하시더군요.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도 있어서 경력서를 보냈는데 입단은 통과가 됐는데 도저히 제가 원하는 연봉 액수를 맞추지 못했어요. 그래서 직접 테스트를 받고 제가 원하는 액수로 계약을 했죠. 사실 호주는 남자가 살기엔 따분한 곳입니다. 너무 여유로워서 희망도 없는 것 같고요. 하지만 항상 가족과 같이 생활하니까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오랫 동안 한국에서 프로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호주에서는 가족의 소중함도 알게 됐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은 알지만 도전하는 기분도 있었고요. 지금도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듭니다. 오랫동안 공부랑 담을 쌓고 지내서 그런지 남들은 반년 걸릴 일이 저는 일년이 걸려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해보자고 버티고 있죠. 가끔은 제가 가르치는 선수들한테 제가 뭘 얘기하고 싶은지 표현을 못하니까 답답해요. 여기 문화 때문인지 선수들이 감독에게 직접 욕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한테도 욕을 하는 것 같고… - 코치 연수 과정은 어떻게 밟고 계십니까? 발목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는데 구단에서 코치 제의를 했어요. 10월 1일자로 기술 코치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11월 달에 유스팀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라이센스를 땄고 이후 시니어팀 라이센스까지 수료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 2월에 1급 지도자 연수를 받았어야 했는데 이번엔 연수 참가 정원이 안 채워졌어요.(웃음) 그것만 받으면 호주에서 프로팀도 지도할 수 있죠. - 아내와 두 아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요? 다들 호주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데 아주 만족스러워 합니다. 특히 두 아이는 한국과는 달리 넓고 여유가 넘치는 호주가 너무 좋은가 봐요. 각각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입학했는데 호주는 레크레이션에 기초한 교육 방식이니까 굉장히 즐거워해요. 호주는 모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수영을 배워야 해서 집도 수영장이 달린 집을 구했습니다. 아내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삶을 즐기고 있죠. 최근 아이들이 아빠처럼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유스 팀에 보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 미론 블라이스버그 감독이 한국 축구에 애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네, 우리 감독님이 한국 선수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본인이 힘 있고 끈끈한 축구를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이나 경기에 대한 자세를 높이 사죠. 저희 팀이 세미 프로 시절에 퀸즐랜드 라이온스라는 이름이었는데 당시 건국대가 3년 동아 건너 와서 같이 훈련을 했어요. 그때 본 선수들이 좋은 이미지로 남았나봐요. - 서혁수 선수를 호주로 데리고 가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혁수가 저랑 비슷한 시기에 성남을 나왔어요. 안타까웠죠. 분명 기량도 아직은 더 뛸 수 있을 정도고 팀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두터웠거든요. 선배들한테도 참 잘하는 착한 선수였고. 그래서 호주로 갈 때 혁수보고 "형이 모든 걸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네가 여기 있는 것보다는 호주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너는 책임 질 가족도 있지 않냐?"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래서 둘이 같이 와서 팀에 들어왔는데 혁수가 지금 굉장히 잘하고 있죠. 현재 우리 팀 최고의 선수예요. - 최근 호주 대표팀의 얘기가 국제 축구계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에 진출 시키며 더 촉발된 것 같은데요? 월드컵 진출하면서 호주 내의 축구 붐이 굉장합니다. 2002년 당시의 한국을 보는 것 같아요. 1년 사이에 시장성이 굉장히 커졌어요. 가끔 현지 기사를 보거나 주변 선수들의 얘기를 통해 들으면 히딩크 감독은 호주에서도 카리스마가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저희 팀에도 두 명의 어린 선수가 대표팀에서 뛰는데 그에 대해서 좋게 얘기합니다. 혹자는 히딩크 감독이 언론에서 냉정하게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서 너무 한다고 하는데 호주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착하고 순해서 휘어잡을 수 있는 지도자가 맞는 것 같아요. 팬들 입장에서도 일단은 성적이 받침이 되어야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거죠. -성남을 떠나게 된 데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은데요? 성남 뿐만이 아니라 K리그 전체의 레전드였잖습니까? 솔직히 성남에 섭섭하죠. 제 자신에게도 미련이 남고요. 개인적으로 통산 100골과 70골-70도움은 꼭 채우고 싶었었거든요. 두 기록을 세우면 미련 없이 팀에서 은퇴하고 더 좋은 모습으로 지도자 생활 하고 싶었는데 인생이 마음대로 안되더라고요. 여기까지가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지 더 생각하면 할수록 화만 나니까요. 부상으로 호주에서 은퇴를 한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고요. - 당시에도 1-2년 정도는 더 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거든요. 실제로 대구를 비롯한 몇몇 팀에서 오퍼가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저도 기록에 대한 집착이 있었고, 어떤 팀은 45분만 뛰어도 충분하니까 오라고 했어요. 제 고향 팀이자 박종환 감독님이 계신 대구를 위해 봉사를 할까 생각도 해봤고요. 하지만 제가 성남을 나간다고 했을 때 나를 위해 시위를 해 준 팬들을 보고는 그런 마음을 접었습니다. 나랑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회사에 월차까지 내가며 추운 날씨에 나를 위해 시위하는 걸 보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 팬들을 보니까 도저히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성남 골문을 노릴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지난 시즌에 김태영 선수도 은퇴 후 팀에 잔류해 지도자 수업을 받길 원했지만 결국은 연고도 없는 곳에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레전드급 선수에 대한 대우가 섭섭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그런 게 당사자에게는 은퇴 후에도 팀에 충성 할 수 있고 팬들을 더 모을 수 있는, 축구 전체에게 하나의 긍정적 동기유발로 작용할 수 있는데 K리그는 그러지 못하니 아쉽죠. 10년 넘게 그 팀을 위해 뛰어왔는데 그렇게 나가는 게 선수 입장에서는 얼마나 한이 되겠어요. 생각하면 괴롭고 열 받을 일이죠. 그 선수가 한 팀을 위해 희생했다면 구단뿐만 아니라 팬들까지도 그 선수를 오랜 시간 영웅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어요.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선수, 구단, 팬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선수는 힘들 때 상징적 인물로서 든든한 구심점이 될 수 있거든요. 성적만 낸다고 명문입니까? 평생 희생한 선수 챙겨주고 안고 가고, 그 선수를 잘 활용할 줄 아는 것도 명문 구단이 갖춰야 할 하나의 요건이거든요. 우리 프로 축구는 너무 냉정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모습까지. 때론 써도 미래를 위해 참을 줄 알아야죠. 그 미래를 내다보는 눈들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 절친한 동료이자 후배였던 김도훈 선수도 은퇴를 하고 올 시즌 코치로 데뷔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같은 길을 걷는 것 같은데 충고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도 이제 겨우 5개월 된 풋내기 코치인데 무슨 해 줄 얘기가 있겠습니까?(웃음) 지난 12월에 잠깐 들어와서 도훈이를 만났는데 다리를 다친 뒤 빨리 재활을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지 코치를 하겠다는 얘기는 없었어요. 하지만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갑자기 결정을 내렸는가 봐요. 일단 그 결정은 존중을 해줘야죠. 호주와 한국은 가르치는 스타일이나 코치 생활에 차이가 많아요. 저는 직함이 기술 코치이기 때문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선수들에게 패스나 크로스, 슈팅과 같은 부분들을 가르치면 끝입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제가 뭘 하든 자유예요. 하지만 한국에서 코치라 함은 모든 싸이클이 감독님에게 맞춰져 있죠. 감독님보다 일찍 자서도 안되고 늦게 일어 나서도 안되고, 항상 감독님 옆에 서 있어야죠. 도훈이는 선수 시절에 그렇게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축구를 대했으니 지도자로도 잘 할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훈이는 명예롭게 은퇴해서 팀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는 거잖아요. 저는 한국이 아닌 호주 땅에서 은퇴한 거구요. -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확하게 차라는 겁니다. 그래야 공을 받은 동료가 자신이나 다른 동료에게 정확하고 편하게 줄 수 있거든요. 축구의 시작은 거기에서부터죠. 제가 요즘 주목해서 보는 게 첼시의 축구입니다. 수비에서 미드필드로, 미드필드에서 공격으로 정확하고 빠른 원터치 패스로 플레이를 전개하잖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축구는 그런 정확하고 빠른 축구에 선수 시절 제가 해왔던 기술 위주의 아기자기한 축구를 접목시키는 겁니다. - 많은 팬들은 빠른 시일 내에 신태용 코치가 국내에서 자신의 축구를 보여주길 바랄 겁니다. 언제쯤을 복귀 시기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짧으면 4년 길면 5년 정도 이 곳에서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 이상은 절대 안 걸릴 겁니다. 저는 선수 시절에도 항상 팬들에게 최고의 축구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도자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들을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최고의 축구를 보여드려서 지도자로도 최고라고 인정 받고 싶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한국 팬들께서 저를 응원해주시고 많은 격려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위대한 선수 못지 않은 위대한 지도자 신태용의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토탈사커 서호정 기자 |
첫댓글 기억하시는 분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옛날 02가? 03시즌가? 그쯤에 성남대 대전의 경기에서 코너킥상황에서 바로 바나나킥을 성공시킨 장면을 잊을수가 없네여~~ 거의 해외토픽감이었조~~
정말 좋아했는데,,, 완전 버린거 같은 기분만 드는데 후,,, 기대해봅니다 또 멋지게 일어서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