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토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진이를 방울처럼 달고도 순적하게 일정을 소화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모든 일정 위에도 함께 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본문 주해)
1~4절 :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 세례를 주는 수가 요한보다 많다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것을 예수님께서 아신다.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주목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의 변론을 피하여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신다. 그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단강 길로 돌아가면 멀어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 마을에 반드시 가셔야 하고, 또 사마리아 우물가에 반드시 가셔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여인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5~6절 : 예수님와 제자들은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한 동네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야곱이 요셉에서 준 땅이 가깝고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그곳은 야곱이 세겜 추장 하몰에게 은 일백 개를 주고 산 땅이며, 이 땅을 야곱이 요셉에게 주었으니 그 땅이 ‘세겜’이다(창48:22). 수가는 세겜 근처에 있고, 이곳은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갈릴리로 가는 길목이었다.
야곱의 우물은 신약시대 실재하였고 현재에도 있다고 한다.
예수께서 길 가시기에 피곤하여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6시로서 태양력으로 낮 12시였다.
7~14절 :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거신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려고 그 동네에 들어가고 예수님 혼자 계셨다.
사마리아 여자가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인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에 의구심을 갖는다.
그것은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후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고 앗수르 사람들을 사마리아에 살게 함으로 혼합종교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이방 민족과 혼합되어 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대인들은 이방인보다 더 싫어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수에 대해 계속 말씀하시며, 자신이 바로 그 영생수이심을 말씀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 여인은 생존을 위해 마시는 물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의 우물 이상의 물이 있는지도 모르고 또 원하지도 않는 것이다.
‘야곱의 우물’은 여인의 시대까지 2000년 동안 많은 사람의 목마름을 해갈하였다. 야곱이 먹고 그의 아들들도 먹었다는 것은 ‘성분’이 좋다는 뜻이다. 이는 믿음의 조상 야곱조차도 더 좋은 물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의 가축들도 그 물을 마셨다는 것은 물이 ‘풍부’했음을 나타낸다. 2000년 동안 사람들이 이 물을 마셨기 때문에 그 풍부함은 헤아릴 수 없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큰 분이냐고 묻는 여자의 질문은 예수님이 특별한 분임을 짐작은 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은 아무리 마셔도 다시 목마르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신다.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생명수라고 한다.
(나의 묵상)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가셨고, 의도적으로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만나주시려는 여인은 야곱의 우물만을 알았고, 또 거기에 만족하며 살았다.
야곱의 우물만을 알았던 이 여인이 바로 나였다.
나는 신앙의 전통대로, 습관적인 교회 생활을 했다.
교회에서 늘 강조하는 주일 성수, 십일조, 새벽기도....그리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은혜받기 위해 여기저기 기도원을 찾아다녔고, 이런저런 수련회에 참여함으로 내 믿음을 성장시키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들- ‘나는 적어도 이러저러한 신앙훈련을 받았다’-이 자기의가 되었고, 그것을 마치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것이다.
물론 때로는 경건한 어느 권사님처럼 금식 기도니 작정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전통이나 사고방식을 따르는 것이 유익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영적 기쁨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영적 기쁨을 몰랐다.
일정한 신앙 훈련이나 교육에 참가하고 난 뒤 내 마음을 채우는 만족감을 은혜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만족감이 있으면 있을수록 신앙인으로서의 내 모습은 점점 더 팍팍해지는 것이었다. 내 자랑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입으로는 발설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판단거리가 무수한 것이다.
그러니 그 내면이 어떠하였을까?
분명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도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점점 멀어지는 내 모습인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매일 야곱의 우물에 물 길으러 나오는 나-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종교생활을 하는 나-를 만나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날 먼저 우물가에 앉아 계셨다.
주님이 영생수라고, 매일 그 생수를 마시라고 하는 말씀을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그동안 내가 마신 야곱의 우물 자랑이나 하고, ‘두레박도 없는 양반이 무슨 생수을 준다고....’ 투덜대면서 엉뚱한 소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야곱의 우물에 열심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말씀의 자리에 앉았다. ‘큐티라면 나도 알 만큼은 알고 할 만큼 했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니 ‘아, 이것이 너무도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갑갑한 마음으로 매일의 숙제처럼 해 왔던 큐티와는 달리, 말씀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내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이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노라면 자동으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받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니, 굳이 첫째, 둘째...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적용의 항목을 늘어놓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항목을 전해 놓고 결심하고 결단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아가는 그 기쁨이 바로 영생의 기쁨이란 것을 알게 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야곱의 우물로 나아간 것은 신앙생활의 주체가 ‘나’였으니 때로는 고달프고 때로는 지루하기짝이 없었다.
하지만 영생수로 나아감은 신앙생활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니 언제나 가볍고 쉽고 평안하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30)
이제 야곱의 우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수 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니고데모를 만나 거듭남을 말씀하여 주시더니,
오늘은 수가성 여인을 만나 영생의 물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나 주신 영혼들 가운데 제가 있음에 감격합니다.
야곱의 우물만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생명의 물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 영생수를 마시며 매일 기쁨의 춤을 춥니다.
이 춤사위가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