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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2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아담 안에서 눈을 떴으나 아들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말씀 앞으로 나아가오니 이 종의 영을 붙잡아 주소서.
나의 생각과 행동하는 모든 삶이 주님 안에 붙들려 있기 원합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세포 하나 핏방울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들을 떼어내고 쏟아버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무덤 그리고 부활에 연합되어 새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은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며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여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주님과 동행하는 한 날 되게 하소서.
내가 있는 곳이 아버지 집이요 주님의 품이오니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4:15-26
제목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 나의 묵상
예수께서는 신적 의지를 가지고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시려고 하셨다.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 야곱의 우물이 있는데 장시간 여행으로 피곤하여 그 우물 곁에 잠시 앉아서 쉬셨다.
그 때 시간이 낮 12시, 곧 정오였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을 때 한 여인이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다.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다.
여인은 의아해 하면서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나 같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처럼 취급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대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와 말을 섞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너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한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아마 너는 그에게 생수를 구하였을 것이고 그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이 묻는다.
당신은 물을 길어 올릴 두레박도 없는데다, 이 우물은 깊은데 도대체 어디서 그 생수를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우리에게 주었고, 또한 야곱 자신도 먹고 그의 아들들과 짐승들까지 먹었는데 그럼 당신이 야곱보다 크다는 말입니까?
여인은 야곱과 야곱이 준 우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신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는 물은 항상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이 당장 예수께 그 물을 달라고 한다.
물론 예수님과 여인이 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여인은 분명 예수께서 물 길을 그릇도 없는 것을 아는데 자기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니까 당장 그 물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제는 더 이상 목이 마르지 않고 이 지긋지긋한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오는 수고도 그치게 해달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초지일관 당신이 물을 줄 것이며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솟아나는 샘물을 줄 것이라는 말에 사마리아 여인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덥석 받았다.
그가 얼마나 남의 눈을 의식하며 날마다 땡볕에서 물을 긷는 것이 고달팠으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며 긍지를 가지고 있던 야곱의 우물도 던져버리려고 했을까?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제안을 덥석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예수께서는 갑자기 생뚱맞은 요구, 곧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여자의 대답 또한 의아하다.
자기는 남편이 없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신다.
(요 2:24-25)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사람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그 여자의 말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도 한 사람이 있지만 그도 역시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
예수께서는 지금 이 여인의 모든 삶을 꿰뚫고 계신다.
이전에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도 하나가 있다.
이 말은 사실(the fact)이다.
사실은 남편이 6명이 있었다.
그런데 진리 안에서(in the truth) 보면 그녀의 남편은 0, 곧 없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네가 진리를 말했다고 하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어쩌면 부끄러워서 주님께 자기는 남편이 없다고 숨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실과 진리로 정확하게 그녀의 현 상황을 말씀하신다.
그녀는 더 이상 감출 수도 발뺌을 할 수도 없다.
자기에게 생수를 준다고 했던 이 분이 정확히 누구인 줄은 알지 못하지만 자기 생각에는 선지자쯤으로 보였나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약의 선지자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모세오경만 믿었는데 이를 사마리아 오경으로 이름을 바꿔서 그것만 믿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네요.”라는 고백이 나온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 대부분이 구약성경의 선지자를 믿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선지자를 믿었던 것이다.
이 말은 오늘 본문 25절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여인은 예수를 향하여 이렇게 고백을 한다.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여인이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존재로써의 복음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약속하신 것이다.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러면서 여인은 대화의 주제를 바꾼다.
생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움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항상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영적 지각이 뛰어난 선지자와 같은 예수님께 물어보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녀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은 이곳 그리심산에서 예배하고 당신 곧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한다고 하면서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예수님께 말한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예배의 장소를 초월한 진짜 예배,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그녀에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먼저 그 여인에게 내 말을 믿으라고 하신다.
그러고 나서 예배는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며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는데 그것은 곧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참된 예배를 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그 때는 곧 지금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예배의 장소 곧 여기냐 저기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는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영과 진리로 나아가야 함을 말씀하신다.
예배는 어떤 이벤트나 엔터테인먼트 곧 화려한 쇼가 아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나아가는 방법은 오직 영과 진리이다.
영과 진리란 성령과 진리의 말씀을 의미한다.
진리의 말씀 곧 생명의 말씀은 다름 아닌 태초부터 계신 예수 그리스도요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다.
따라서 말씀과 성령, 성령과 말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어떤 이들은 말씀 없이 성령의 능력만 받으면 된다고 하면서 오직 성령만 외치는데 그런 경우 자칫 잘못하면 성령이 아니라 악령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예배를 이벤트나 화려한 쇼처럼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성령 안에서 진리 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이 선포될 때 그것이 진짜 예배요 참된 예배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자 사마리아 여인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 한다.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내가 그다.”
너에게 말하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야요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신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거듭나게 되었고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어졌다.
사마리아 여인은 세상적으로는 비천한 자였다.
유대인들에게는 무시를 당하였고 사회적으로는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였다.
그래서 남들이 나오는 좀 선선한 시간에 물을 길으러 나오지 못하고 땡볕이 비치는 정오에 매일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처럼 무시당하고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인하여 야곱의 우물이나 여러 남편이라는 무화과옷을 입고 그 부끄러움을 좀 가려보려는 이 여인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일부러 의도적으로 이 여인을 만나러 야곱의 우물로 친히 오신 것이다.
나는 이 여인과 같이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젊었을 때는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았다.
대학은 전기에 떨어져 후기에 갔고, 대학을 마치고 군대를 가야하는데 당장 군대 가는 것이 두려워서 대학원에 입학하였는데 대학원 재학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1년간 휴학을 하게 되었다.
휴학을 하고 있는 사이에 영장이 나와서 사병으로는 가기 싫어서 학사장교 시험을 쳤는데 체력이 받쳐주질 않아서 떨어졌고 결국 그 해 25살 11월에 사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제대를 하고 남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흥국생명에 입사를 하였지만 보험회사의 생리가 그렇듯이 새벽 같이 출근해서 무슨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구호와 함성을 오전 내내 지른다.
그러고 오후에 필드로 나가서 구걸하듯이 보험을 따내야 하고 퇴근 후에는 모든 팀원들이 함께 술집으로 가서 술을 진탕 마시는 그 일상을 적응할 수가 없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경기도에 있는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여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부산으로 내려와서 아내와 함께 학원사업을 하였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실패와 좌절을 많이 겪었지만 아내와 결혼을 하고 나서는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학원사업을 하다가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성악을 하고 싶어서 학원은 아내에게 맡기고 성악을 공부하였다.
그러다가 목회에 대한 소명을 받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되어 교회를 개척하고 멋진 교회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풍운의 꿈을 안고 목회를 시작하였다.
나의 꿈이란 비록 개척교회지만 성도들을 많이 모아서 예배당도 번듯하게 짓고 목회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부교역자 시절에 하는 사역마다 승승장구했기 때문에 무슨 사역이나 자신이 있었다.
개척 후에 개척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교회는 날로 성장해 갔다.
그러다가 급성 폐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쉬는 기간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워낙 폐암이 초기라서 수술이 잘 되었고 회복도 잘 되었다.
회복 후에는 다시 목회성공을 위하여 매진하였다.
나에게 그 목회성공을 위한 사역이 야곱의 우물이요 또한 나의 남편이었다.
이를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사역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 나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왔고 목회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 나에게 복음이 찾아왔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되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복음을 듣고 나의 목회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그 때부터 성도들에게 설교 때마다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적 복음과 가죽옷으로 대변되는 메시야로서의 행위적 복음 곧 십자가복음 장사복음 부활복음 현현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복음을 듣는 성도들은 너무나 힘들어 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그 복음에 꽂혀서 더 집중해서 듣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이유는 결코 복음의 내용이 어려워서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강조한 것은 바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서 깊이 있게 주님과 교제를 하는 묵상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오직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을 믿는 것은 곧 그분의 구속사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날마다 새 언약의 백성으로서 오늘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바로 지금 주님과 만나서 교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생임을 증거하였다.
그런데 성도들은 바로 이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귀로 듣는 복음의 내용은 좋은데 몸으로 실천해야 하는 묵상이 너무 힘들고 그것도 매일 해야 된다는 것에 처음 한두 번은 시도를 해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수를 꼭 그렇게 믿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 일로 인하여 교회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결국 내분이 생겼다.
그로 인하여 나는 갑상선염이라는 병을 얻고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을 하였다.
완전히 나는 숨 쉬는 시체와 같았다.
육체도 마음도 영혼도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목회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목회를 그만둘 마음을 먹고 교회를 사임하였다.
그후에 필리핀에 가서 선교훈련을 받고 몽골에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지금은 베트남 하이퐁에 와서 한인목회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일은 사실(the fact)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사실에 그치지 않고 나를 더 깊은 진리 안으로 이끄시기를 원하셨다.
그 진리란 나의 선교사역은 야곱의 우물이나 돌려가면서 즐기는 그런 남편이 아니라 온전한 남편 되신 그리스도 한 분만을 모시고 나를 정결한 신부로 세우기 원하시는 우리 주님의 섭리이다.
나는 비록 약하고 비천하나 천사들도 흠모할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이 나에게 있다.
이 복음으로 오늘 이 시간 주님과 함께 교제와 사귐을 갖는 나는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복된 천상적 존재로 잠시 지상적 삶을 사는 자임을 믿는다.
오늘 나를 전율케 하는 한 마디, ‘내가 그라’는 말씀은 곧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는 말씀이며 내가 바로 네가 믿는 그 하나님이심을 내 심령에 꽂으시는 증거다.
‘내가 그’라는 주님의 말씀이 곧 진리이다.
(요 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 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이 말씀 곧 ‘내가 그’라는 말씀이 진리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내가 그’라는 말씀은 구약성경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이름과 같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구약의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이름의 정확한 뜻은 ‘나는 나다, 혹은 나는 ~이다’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름이 정해지면 그 존재는 그 이름에 귀속되고 또한 그 이름에 한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나는 나다’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라고 하신 것은 곧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신 그 이름과 같은 의미이다.
내가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말씀이다.
그 진리이신 주님의 이름에 자유가 있다.
오늘 나는 나의 소망이요 진리 되시는 예수님을 나의 주(큐리오스), 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로 믿는다.
그 안에 참 자유의 빛이 임한다.
지금 동쪽 하늘에 해가 붉게 떠오른다.
그 떠오르는 태양 빛이 주님의 자유의 빛이 되어 내 마음속에 가득 채워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을 몰랐던 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육신적인 생수를 찾아 헤매었으며 그 생수를 저장하는 웅덩이를 만든다고 하였으나 터진 웅덩이만 만들었나이다.
게다가 나는 예배를 잘 알지 못한 패역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감동 받고 좋아하는 이벤트성 예배를 인도하는 아주 악한 죄인 중에 괴수였나이다.
설교는 하나님이 전하기 원하시는 복음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세상의 이야기, 감동적인 예화로 채웠었습니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이런 나를 주님은 심판하셨나이다.
그러나 그 심판 중에도 긍휼이 임함은 나를 무덤 가운데 두셔서 주님의 정결한 신부로 세우시기 위한 주님의 계획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주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