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3)
아침에 말씀을 보면서 물과 성령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바리새인인 니고데모라는 유대인의 관원이 예수님을 밤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라고 반문합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갈급한 심령으로 밤중에 찾아 왔습니다. 그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다시태어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구원을 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물은 생명과 죽음을 상징하며 심판과 구원을 나타냅니다. 노아시대에 사람들은 죄에 대해 물심판을 받았고 출애굽시에 이집트군대가 홍해에서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물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정결케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때에 물로 정결의식을 행함으로 영혼까지 깨끗케 하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물에 우리몸이 잠김으로 우리가 죽는 의식을 거쳐야 비로소 다시 살 수 있습니다.
깨끗함을 입기 위해서는 정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거듭남은 정결해지는 과정입니다.
구약시대에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죄없는 양에게 뒤집어 씌어서 자기 죄를 면제 받는 희생제물을 드립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더러운 인간을 용납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피로 죄에 대해 정결해지는 의식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물로 들어가는 행위는 곧 죄에 대해서 죽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는 전제는 살기위한 필연조건입니다. 죽지 않은 자는 결단코 다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냥 옛사람의 모습대로 살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우리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었다가 이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과정이 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더러움을 영원토록 씻겨내고 거룩함을 덧입는 성스러운 과정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것은 죄에 대해 물로 씻김받은자가 새로운 영으로 다시태어나는 것입니다.
물세례없이 성령세례도 없습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예수님 위에 머무릅니다. 그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세례를 방언이나 예언이나 병고침으로 해석하는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성령세례받지 못한자는 구원받은자가 아닙니다. 물세례를 받지 못한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물세례를 받은자에게는 성령세례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물세례는 교회에서 행하는 침례 또는 세례의식과는 다릅니다. 참된 물세례는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자는 받을 수 없습니다. 더러운자만 씻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씻김이 필요한 자만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합니다. 의식으로써의 세례는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보혈로 거듭남을 고백하는 교회에서는 선포적 행위일 뿐입니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세례는 마음에 하는 것 입니다.
또한 성령세례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은 구원받은자에게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임함으로 영에 속한 새사람으로 거듭날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육으로 나지 아니하고 성령으로난자 입니다.
성령으로 난사람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것처럼 임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자는 예수와 함께 다시 살게되고 이때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그 증거가 되십니다.
여기서 잠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죄인됨을 고백하는 세리에게는 물세례가 필요하지만 자기의를 내세우는 바리새인에게는 물세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함도 같은 맥락입니다. 목욕탕이 몸이 더러운 사람에게 필요하듯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만이 죄씻음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죄사함받고자 합니다. 죄에 대해 한없이 괴로와하여 죄용서 받고자 하며 자기를 낮추는 자에게 구원이 임하여 높임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것은 우리에게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진리를 좇는 빛의 자녀가 되는것입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그 무엇도 끊을 수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새사람을 입은것입니다.
자신이 더러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은자는 예수님의 보혈을 찾지 않습니다.
물세례를 통해 그리스도보혈의 대속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성령세례가 임함으로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이 깨달음이 없는자는 불쌍한자요 밖에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구원은 한번에 이뤄집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바라보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도 또 죄를 지을때마다 자백하지 못한게 있다면 지옥간다고 하는자들은 단번에 죽으신 예수님을 자신이 죄를 지을때마다 속죄제물 어린양처럼 죽이고 또 죽이는 악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와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흘림을 경멸하는 자들 입니다.
구원받은자는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성령을 좇아 행합니다.
영을 좇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구하는 자입니다. 영을 좇아 살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눈이 반대로 보니 성경구절 또한 반대요 뒤죽박죽입니다,
바리세인을 잘 살펴 보십시오.
그들이 바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도 그런 노력한 부분을 인정한 구절이 있습니다.
네 의가 바리세인 보다 낮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못들어 오리라
이세상에서 바리세인의 의가 최고 입니다.
그러나 그 의로는 천국 문턱 부근에도 오지 못합니다.
그것은 뒤에 나오는 구절로 보면 압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들은 말씀을 지키려고 진정으로 노력하고 행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행함이 그리스도의 의를 왜 방해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사람의 시각으로 행함은 선하니까 주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 선함을 보는 주님의 시각은 선악과 때 사단이 주장한 바로 그 선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실 바리세인도 겉으로 지키려 했을 뿐 마음은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마음을 지켜보라는 말슴은 너희는 지키지 못한 다는 선포요 선악과에서 사단이 선을 안다는 그 자체가 잘못이다는 뜻입니다.
세리는 주님께 들림을 받았습니다.
세리가 말씀을 잘 지켜 들림 받았습니까?
주께서 원하시면 그 사람은 자신이 행한 것은 죄뿐이라는 찬송을 부르며 죄인으로
나옵니다.
주께서 그죄를 용서하시면 끝입니다.
그는 죄인이지만 천국 가는 겁니다 강도가 바로 그사람입니다.
이제 말씀 들을 만큼 들었을 것입니다.
하여 심판대 앞에서 못들었다 핑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음이요, 구원얻은자는 구원얻은자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는것이
성경의 말씀이며, 예향카페의 많은 지체들이 선사님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주장하는 바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세가지 세례를 받아야 천국 들어 갑니다.
물세례 성령세례 불세례입니다.
저는 받았는데 님께서는 받았는지요?
영으로 나지 않으면 영을 깨달을 수 가 없습니다.
무릉선사님이 받았다는 물세례 성령세례 불세례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님께서 말씀을 지킨다고하셨습니다.
세례 받아라는 말씀도 당연히 지켜야지요,
왜 세가지를 어떻게 받았는지 말씀하시지 않으시지요... 궁금하네요!!
댓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온갖 사이비 이단 어중이떠중이가 설치는데 그 중의 한 명이 집요하게 기독 카페 투어하면서 분탕질만 일으키네, 목적이 뭔지 눈에 확실히 보이긴하는데 사이비 이단말에 혹하는 사람도 있으니 안타깝다 하겠다..
무릉선사는 거짓말과 미혹하는 말을 고마하고 속히 자기가 온 세계로 돌아갔으면 한다.. 물론 이떄까지 해 온 걸로 봐서 돌아갈 일도 없지만 해괴망측한 논리로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고만 드러냈으면 한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그 무지가 온 카페를 시끄럽게 한다 하겠다. 절대 속지말자. 깨어 무릉선사의 현혹하는 말에 주의하자..
만로역정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이곳 저곳 옮겨다니면서,무었을 얻으려 할까요..플레비언에서도 휘젓고 다니다.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자,요즘 안들어오드군요..예향에서 는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심령이 연약한분들이 몇 보이더군요..
무릉선사와 같이 주장하시는 분들 몇몇 기억납니다만...제발 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본인들만 그렇게 믿었으면 합니다..분탕질 하지 말고...쫌..
성경에 보면 '거치는 돌' 이 나옵니다.
말씀은 죄인들로 하여금 감동받거나 평안함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말씀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말씀은 불이요 방망입니다. 이 말씀에 부닥치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가루가 됩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무릉선사님의 글이 거칠어서 걸림이 된다는게 은혜입니다^^
칭찬과 격려와 좋은 말은 세상에 널렷지요
무릉선사님의 수고때문에 숨겨진 것들이 마구 튀어 나옵니다.
선사님의 역할이 귀한 것이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