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십대발원문」이 아니라 「왕생정토십원문」이다
천수경은 우리나라 불교의 기본 경전이다. 많은 불교의식에서 독송되고 있어서, 많은 불자들이 읽고, 외우고 있다.
나는 1991년에 법보신문에 천수경 해설을 연재했고, 1992년에 천수경이야기(민족사)로 출판하였다. 이 책은 2005년에 개정증보하면서, 천수경의 비밀로 제목을 바꾸었다. 현재까지도 품절되지는 않았다.
천수경(=독송용 천수경)의 마지막 즈음에 「여래십대발원문」이 나온다. 천수경의 비밀에 부록(附錄)한 우리말 옮김을 인용한다.
원아영리삼악도(願我永離三惡途), 삼악도를 영원토록 떠나게하고
원아속단탐진치(願我速斷貪瞋痴), 삼독심을 어서빨리 끊어지이다.
원아상문불법승(願我常聞佛法僧), 불법승을 언제나 친근히하며
원아근수계정혜(願我勤修戒定慧), 계정혜를 부지런히 닦고닦아서
원아항수제불학(願我恒隨諸佛學), 부처님을 수행하며 법문배우고
원아불퇴보리심(願我不退菩提心), 보리심을 잃지않기 원하옵니다
원아결정생안양(願我決定生安養), 안양국에 태어나기 틀림없으며
원아속견아미타(願我速見阿彌陀), 아미타불 속히뵙기 원하옵니다
원아분신변진찰(願我分身遍塵刹), 온누리에 몸을나퉈 두루다니며
원아광도제중생(願我廣度諸衆生), 모든중생 널리제도 원하옵니다.
이 열 가지 서원을 ‘여래십대발원문’이라고 하였으니, 우리는 누구나 부처님께서 세우신 서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특정한 부처님의 서원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저 ‘여래’의 십대발원문이라 했으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공통적으로 갖고 계셨던 서원으로 이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입니다.
그런데 말이다.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 「여래십대발원문」은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서원이 아니라, 한 범부 중생이 세운 서원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근래, 낙방문류(樂邦文類) 제2권을 읽다가 「왕생정토십원문(往生淨土十願文)」을 만나게 되었는데, 내용은 「여래십대발원문」과 똑같지 않은가. 더욱이 충격적인 것은 이 글에 작자(=발원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동강법사(桐江法師) 택영(擇瑛).
낙방문류는 남송(南宋)의 종효(宗曉, 1151-1214)가 편찬한, 정토에 관한 글 모음집이다. 모두 5권인데, 제2권에 이 글이 있다(대정장 47, p.179b).
불광대사전에 따르면, 동강택영은 북송의 스님으로 1045년에서 1099년까지 생존하였다. 천태종과 정토불교를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평소 정토의 교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이러한 열 가지 서원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동강택영이라는 한 개인의 발원문인 「왕생정토십원문」이 어찌하여, 우리의 천수경에 편집되면서 「여래십대발원문」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발원문의 필자 이름까지 밝힐 수 없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의례의식문의 경우에는 그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천수경에서 「여래십대발원문」에 이어서, 「발사홍서원」이 나오는 중 “자성중생서원도, 자성번뇌서원단, 자성법분서원학, 자성불도서원성” 역시 원래는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내용인 것이다. 그렇지만, 육조혜능이라는 작자를 굳이 밝히지 않고, 또 밝힐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 발원문의 제목만은 바꾸어서 싣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래십대발원문」이 아니라 「왕생정토십원문」으로 밝혀주는 것이 맞는 일이다. 부처님의 발원문을 우리의 발원문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역으로 애당초 한 범부중생의 발원문을 부처님의 발원문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한 중생의 발원문이라 밝혀줄 때, 그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정토에 왕생하여 성불하고 다시 중생을 제도하고자 원했는가 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천수경을 읽는 신자들은, 그러한 동강택영스님의 마음을 스스로의 마음으로 삼을 수 있을 터이다.
「여래십대발원문」이 아니라 「왕생정토십원문」이라고 하게 될 때, 천수경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필자는 천수경의 비밀에서 ‘여래십대발원문과 발사홍서원’을 합하여 총원(總願), 즉 총체적인 서원이라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럼으로써 천수경의 앞 부분에 나오는 별원(別願), 즉 개별적인 서원(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왕생정토십원문」의 저자가 동강택영 스님이라는 점이 밝혀짐으로써, 「왕생정토십원문」은 총원이 아니라 별원이 되는 것이다. 「발사홍서원」 하나만이 총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천수경의 비밀을 읽으시는(혹은 읽으셨던) 독자분들께서는, 이 부분을 좀 수정하면서 읽으실 필요가 있겠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이는 필자로서도 불가항력(不可抗力)의 일이었음을 헤아려주시길 앙망한다.
하나 더, 필자는 「여래십대발원문」이 정토신앙과 관련된다는 점은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정토불교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지 못했기에 이 「왕생정토십원문」에 나타난 정토사상을 깊이 분석해서 독자들께 들려드리지는 못했다. 아쉽고도, 송구스런 일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는 상세히 다룰 수 없으니,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린다. 이 점은 제목의 변경과는 무관하게, 필자가 정토신앙에 침참하게 되고 무량수경을 깊이 이해하게 됨으로써 발생한 변화라는 점에서, 애당초 그렇게 하지 못한 형편에 글을 쓰고 책을 쓴 필자의 책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천수경이야기로부터 보면, 벌써 34, 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빈다.
2026년 7월 19일
천수경의 비밀 저자 김호성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