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기 에스파냐의 인문주의자. 삼위일체설을 부정하여 화형을 당했다.
출생-사망 1511. 9. 29 ~ 1553.10.27
별칭 Miguel Serveto, Michel Servet
국적 에스파냐
활동분야 종교, 의학
출생지 나발왕국 투델라(현 에스파냐 나바라주)
주요저서 《기독교의 재건(Cristianismi Restitutio)》(1553)
본문
프랑스에 인접해 있는 에스파냐의 나바라(Navarra) 지방 출신이다. 'Michael Servetus(미카엘 세르베투스)'는 라틴어 표기이며, 에스파냐어로는 'Miguel Serveto(미구엘 세르베토)', 프랑스어로는 'Michel Servet(미셸 세르베)'라고 한다.
프랑스의 툴루즈(Toulouse)에서 법률을 배웠고, 파리에서 의학을 배웠다. 이탈리아와 독일 등을 여행하며 종교개혁 사상을 접하여 가톨릭의 교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과 그리스 의학에 관한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의학에서도 혈액순환설(血液循環説)을 선구적으로 주장하는 등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과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에 대한 종교적 박해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르베투스는 동일한 종교적 전통에서 출발한 기독교와 유태교, 이슬람교가 갈라지는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설(三位一體說)이 성서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의 교회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생각을 《삼위일체설의 오류(De Trinitatis Erroribus)》(1531), 《삼위일체설에 관한 대화(Dialogorum de Trinitaty)》(1532) 등의 저술로 남겼다.
1553년 프랑스 비엔(Vienne)에서 종교에 관한 저술들을 모아 《기독교의 재건(Cristianismi Restitutio)》을 출간하였다. 그의 삼위일체설 비판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모두에게 이단으로 비판되었다. 특히 프랑스의 종교개혁가인 장 칼뱅(Jean Calvin)은 처음에는 세르베투스와 편지로 생각을 나누며 친교를 맺기도 했으나, 세르베투스가 자신의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를 비판하자 그에게 강한 적개심을 나타냈다.
《기독교의 재건》은 익명으로 발표되었지만, 곧 세르베투스가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그는 1553년 4월에 가톨릭의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비엔의 감옥에 갇혔으나, 6월에 감옥에서 탈출했다. 그는 이탈리아로 도망을 치던 도중에 제네바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칼뱅의 수하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단으로 고발된 세르베투스는 칼뱅이 주도한 제네바 시 정부에 의해 1553년 10월 27일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