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에서 최선을 이루시다
민수기 23:27~24:9
찬송가 362장
구찬송 481장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4:5-7절 발람은 이스라엘 거처의 아름다움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의 거처는 물 없는 모압 광야에 있지만, 발람은 물이 풍성한 골짜기와 강가, 물가의 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그 땅이 얼마나 척박한 땅인지 보이기를 원했지만, 눈을 뜬 발람은 끊음없이 풍성한 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24:7-9절 발람은 이스라엘이 당대의 어떤 나라보다 더 흥왕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이스라엘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그것을 막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가 하나님의 복에 동참하게 됩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주목하는 안목을 키우는 일이고 더 나아가 그 역사에서 내 배역과 역할을 찾는 일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7-30절 발락은 세번이나 장소를 옮겨가며 저주를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신탁을 받는 장소를 바꾸면 '혹시' 신의 마음도 바뀔지 모른다고 기대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더욱 분명하게 전해집니다. 완고하기 이를 데 없는 무모한 아집입니다. 나귀의 발길질에도 탐욕의 길을 포기하지 않던 발람이나 열 번의 재앙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던 바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소신으로 위장된 고집의 탈을 벗는 것이 진정한 참회의 시작이 아닐까요?
24:1,2절 발람은 저주(27절)가 아닌 축복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점술을 쓰지 않고 눈을 들어 이스라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도 그런 발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내려주십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만 대언하는 선지자가 되도록, 하나님의 영을 통해 자신의 탐욕스런 과거와 결별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24:3,4절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발람은 자신의 예언이 '눈이 열린 자의 신탁'이라고 밝힙니다. 전능자의 이상을 보고 그 말씀을 들은 자의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소극적이던 그가 이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중을 전합니다. 성령에 순복할 때만 주께서 쓰시기에 요긴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