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학의 한국산사 목조각 걸작] 10. 왕실후원으로 장인들이 만든 명작 불상
10.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정암산 법천사에서 조성
영주 흑석사 아미타여래좌상은 1458년에 제작된 높이 72cm 목조불상이다. 1949년 흑석사 인근 순흥 초암사에서 한국전쟁 즈음 소백산 소개령에 의해 상호 스님이 불상을 등에 업고 와서 흑석사를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1992년 흑석사에 도둑이 들어 불상을 훔쳐가는 우여곡절 속에 불상 몸속에 봉안한 복장유물을 발견하게 됐다. 불상 조성기와 함께 경전 전적류, 직물류, 오곡, 오향, 오약, 칠보류, 사리가 든 사리용기 등이 쏟아져 나왔다. 불상과 복장유물은 1993년 국보로 일괄 지정됐다. 복장유물들은 안전을 위해 인근 이산면 파출소 무기고 신세를 지기도 하고, 온양민속박물관이 위탁관리하고 지금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불상에 얽힌 곡절이 대하서사다. 그때 나온 불상 조성 동참을 권하는 〈보권문〉과 불상 조성 〈복장기〉에는 뜻밖의 놀라운 기록이 담겨있다. 불상은 원래 1458년(천순 2년)에 정암산 법천사에서 조성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삼존상으로 밝혀졌다.
원래 불상을 봉안한 정암산 법천사는 어디에 있을까? 대체로 강원도 원주 법천사지로 추정한다. 궁금증이 일어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암산(井巖山)’을 검색했다. 〈세종실록〉 122권 세종 30년 12월 10일자 기사에 등장한다. 세종 30년은 1448년이다. 불상을 조성한 1458년 그 무렵이라 동일한 산일 가능성이 크다. 〈세종실록〉의 148권 지리지를 살펴보니 정암산은 양주도호부의 적성현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적성현은 지금의 어디일까? 서울 도봉구에 해당한다. 위 세종 30년 기사에서도 정암산과 도봉산을 나란히 붙여 기록하고 있다. ‘정암산 법천사’는 한양도성 내에 있었을 공산이 크다.
불상에서 나온 〈보권문〉의 원 명칭은 〈정암산 법천사 당주 미타삼존 원성제연 보권문〉이다. 초록 표지에는 ‘대공덕소’라는 표제를 묵서로 적었다. 보권문은 6첩 절첩으로 속지는 총 12쪽이다. 한 쪽의 크기는 31.7×15.9cm에 이른다. 그와 함께 아미타여래삼존상 조성 〈복장기〉도 나왔다. 〈복장기〉는 특이하게 청색 명주와 한지를 이어 붙여 만들었다. 불상 조성 발원 내용과 시주자 명단을 187행에 걸쳐 길게 기록했다. 그 펼친 길이가 3.8m에 이른다. 중요한 시주자 명단은 쪽빛으로 염색한 명주 천에 적고, 나머지 시주자 명단은 한지에 적었다. 시주자 명단에는 총 275명이 등장한다. 시주자 명단에는 태종의 후궁 의빈 권씨와 명빈 김씨,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 세종의 사위 안맹담 등 왕실 사람들을 비롯하여 구슬이, 막동, 개부처, 조생이, 금돌 등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갖추지 못한 하층민들까지 다양한 계층을 망라하고 있다. 발원문의 바람이 지극하다. “왕과 왕비, 세자 삼전께서 만세를 누리게 하소서. 여러 왕실 종친들도 저마다 평안하기를 빕니다. 전쟁은 영원히 종식되고, 나라는 태평하며, 부처님의 빛은 더욱 비추이고, 진리의 법이 이 땅에 구르기를 발원합니다.” 대시주자는 지용천 부부와 이호 부부이고, 불상조성을 총괄기획한 대화주(大化主)는 성철 스님이었다.
효령대군 등 왕실 적극 후원
조선시대 전반적인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조선전기 사찰불사 후원 중심엔 역설적이게도 왕실과 그 종친들이 있었다. 때론 왕 자신이 사찰 불사를 후원하기도 했다. 세조의 평창 상원사 중창불사 후원이 그런 경우다. 조선전기 사찰불사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왕실 인물을 뽑는다면 효령대군과 문정왕후가 대표적이다. 효령대군은 금강산 유점사, 회암사, 무위사 등 사찰 중수와 창건을 후원하였고, 세조 10년(1464년) 국가 차원으로 세운 원각사 창건에선 불사를 친히 감독하였다. 효령대군은 또 조선전기 대표 불화로 손꼽는 1465년 도화서 화원 이맹근이 그린 ‘관경십육관변상도’ 제작을 주도하기도 했다. 세종 30년(1448년)에 간행한 〈묘법연화경〉 간행에도 시주 발원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복장기〉에 나오는 또 한 사람 명빈 김씨도 주목된다. 명빈 김씨는 1411년에 태종의 후궁이 되었다. 명빈 김씨는 흑석사 복장유물로도 봉안한 1432년 간행 목판본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절첩에 이름을 올렸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 나온 금동불감과 금동석가여래 삼존상에도 발원 공덕주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숭유억불의 시기에도 부처님께 향하는 향도의 발길과 헌향의 향기는 끊이지 않았다.
〈복장기〉에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불상 제작 장인 명단을 부문별로 기록해둔 사실이다. 부문별 제작 참여자를 보면 다음과 같다. △화원: 사직 이중선, 이흥손 △부금(付金): 한신 △금박: 이송산 △칠: 김우롱, 막동 △각수(刻手): 황소봉 △마조(磨造): 김혈동 △소목(小木): 양일봉 등으로 세세하게 기록했다. 명단을 눈여겨보면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승장’이라 부르는 스님 장인의 명단은 보이지 않는다. 스님들은 화주로만 등장한다. 불상 제작은 정5품에 해당하는 사직의 직위를 가진 도화서 화원 이중선의 지휘 아래 관아의 장인 9명이 서로 분업적으로 협업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은 불상제작에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알려주기도 한다. 화원은 조각의 밑그림을, 소목과 각수는 틀을 만들고 조형을 새긴다. 그 후 마조 담당 장인이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그 위에 옻칠을 입힌다. 마지막 공정으로 부금과 금박 장인이 부처님의 금빛 몸을 조성했을 것이다. 마조와 칠과 부금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사포질로 표면을 매끄럽게 한 후에 옻칠을 여러 번 입힌다. 옻칠 위에 금칠이나 금박을 올려 옻칠개금으로 불상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된 분업체계는 〈경국대전〉과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도 두루 확인된다.
전적·직물류, 오곡, 오향 등 복장물
부처님 목조각은 형상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선 내부에 장기를 갖춰야 한다고 보았다. 복장유물은 한국불교의 독특한 문화다. 복장물은 부처님 몸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상징 그 자체다. 부처님의 몸 안에 봉안하는 복장유물은 크게 네 종류다. 첫째, 불사 조성기록. 둘째, 경전을 비롯한 불교 전적류. 셋째, 옷이나 직물류. 넷째, 오곡, 오향, 오약 등을 담은 오보병 등이다. 복장 물목과 의례는 불교의례집인 〈조상경〉에 잘 정리돼 있다.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에는 무엇을 봉안하였을까? 먼저 경전류에는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2·3·4·5, 낱장의 묘법연화경 변상도, 〈불조삼경(佛祖三經)〉,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진언집에 나오는 부적 목판본 6장 등이다. 〈불조삼경〉은 중국 최초의 한역 경전인 〈불설사십이장경〉과 부처님 최후의 가르침으로 알려지는 〈불유교경〉, 당나라 위산 영우조사의 어록인 〈위산경책〉 등 세 책을 묶어 펴낸 합본이다.
흑석사 불복장에선 다양하면서도 섬세한 문양을 가진 48종의 직물도 나왔다. 직물들은 대개가 작은 천 조각 종류다. 그런데 문양과 색채가 대단히 아름답다. 쪽빛, 주홍, 하엽, 흰색, 황색, 흑에 가까운 감청색 등 다양한 색상이 보인다. 그것은 오방색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천 조각의 오방색은 천의 형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원, 사각형, 삼각형, 깃발 종류인 번 모양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그럼으로써 오방불의 부처님 세계를 구현한다. 숭고한 상징을 가지는 까닭에 직물에 성스러운 문양을 올린다. 칠보문, 여의구름문, ‘卍’자문, 넝쿨보상화문 등으로 아름답게 짰다. 복장의 직물류 중에서 특히 경전 사경 윗면을 덮어 보관하는 데 사용하는 사경 첩 모양의 덮개 보자기가 눈길을 끈다. 사경 첩 덮개 직물들은 겉감과 안감을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들인 명주를 덧대서 두터운 느낌을 준다. 보리수 잎을 형상화한 다섯 개의 천 조각도 인상적이다. 〈조상경〉에서 ‘오보리수엽(五菩提樹葉)’으로 표현한 복장직물이다. 오보리수엽은 오보병 안에 넣는 다섯 가지 보리수 잎을 말한다. 보리수잎은 곧 진리를 상징한다. 오방위에 안치함으로써 광명변조의 빛으로 우주만유에 확산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같은 다양한 직물들은 불교의식의 상징기물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직조기법과 직물류를 소상히 알려줌으로써 생활문화, 의류학, 직물사 등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오방위에 안치하는 복장물은 직물류 외에도 오향, 오약, 오곡, 오황 등도 두루 갖춘다. 오향은 정향(丁香), 침향(沈香), 목향(木香), 유향(乳香), 곽향(藿香) 등의 다섯 가지 청정한 향기다. 흰색 종이에 감싼다. 오약은 계피, 감초, 인삼, 부자 등이다. 이 같은 갖춤에는 청정과 치료, 소원성취, 성불, 상주불멸 등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다. 그것은 불성, 혹은 여래장의 씨앗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든 복장의 중심엔 사리기와 부처님의 정골 사리가 자리한다. 진리의 몸을 갖춘다.
아미타여래좌상은 단정하고 부드러우며 고요하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어깨선과 허리선이 늘씬하고 우아한 기품을 풍긴다. 풍만함보다는 균형 갖춘 이상적인 비례미가 느껴진다. 두 손과 발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두 손의 모양은 대단히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두 손은 아미타구품인 중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양 볼은 탄력이 넘치는 가운데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법의의 의습 처리나 표현, 상호, 자태 등에서 어디 하나 부족한 데가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하고 단정하다. 그러면서도 모든 법식을 구족하고 있다. 불상에 인자함, 부드러움, 유려함, 당당함, 고요함, 우아함, 기품 있는 고귀함 등이 두루 흐른다.
예술로 이룬 고귀한 절대적인 미, 불교조각으로 이룬 예술적 성취가 깊은 감동을 준다. 그 불상의 몸 안에 한 시대의 삶의 편린과 무궁한 생명력의 상징물들을 규범 갖춘 의례와 법식으로 내밀하게 복장했다. 왕실 사람에서 하층민까지 만인의 염원과 바람을 담아 관아의 장인들이 협업하여 진리와 자비의 법신을 완성했다. 한국산사 목조불상의 불후의 명작으로 빛난다.
▶ 한줄 요약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왕실 사람에서 하층민까지, 만인의 염원과 바람을 담아 관아의 장인들이 협업하여 조성한 한국산사 목조불상 중 명작이다.
흑석사 목조아미타삼존 '보권문' 왕실 후원인 부분
흑석사 목조아미타삼존 '조성기' 협업 부분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 불복장. 묘법연화경 권2,3,4,5 ⓒ국립대구박물관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 불복장. 사경첩 덮개 ⓒ국립대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