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일자리 희망 연계고용
이진희_(주)베어베터 대표, 사랑협회 정책위원
"첫 월급 타면 부모님 속옷 선물 해야죠.”
처음으로 직업을 가진 청년은 누구나 이런 말을 합니다.
베어베터에서 일하는 자폐인 김경채씨(가명,21세,3급)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첫 월급 타던 무렵이 작년 추석이었는데, 할아버지 집에 술도 한 병 사다드렸다고 합니다.
“돈 벌어서 저금해서 점심 사먹을 거예요. 버스카드 충전하고 옷도 사고 화장품도 사요.”(김민희, 자폐2급, 베어베터 사번 1번)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자기 힘으로 일하고 돈을 벌어서, 가족들과 작은 기쁨을 나누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일한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입니다.
하지만 자폐인, 지적장애인 등 발달장애인들이 이런 인간의 조건을 충족할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용해주는 기업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증장애인의 경우는 둘 중 한 사람은 어딘가에 취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들은 100명중 단 한 두 명 만이 기업에서 일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복지관이나 보호작업장에 갑니다. 그것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호작업장이나 복지관은 2~3년으로 “이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어베터의 직원들로부터 “저 여기 언제까지 다닐 수 있어요?”라는 걱정스러운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복지관 몇 년 다니다가 다른 이용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또다시 갈 곳을 찾아야 했던 경험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원하면 정년까지 다닐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주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정말이냐고 재차 확인합니다.
이들이 안심하고 오래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는 왜 찾기 힘든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50인 이상 기업은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고, 100인이상 기업이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하면 상당한 고용부담금을 내야합니다. 그런 정책의 결과 기업들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장애인고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경증장애의 고용에는 이런 정책이 상당히 먹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증장애 고용률이 45%가 넘었으니까요.(2011년말) 그래도 의무고용을 못 채우고 부담금을 내는 기업들이 상당합니다. 기업 규모에 따라 수십억의 부담금을 내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증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은 힘들어합니다. 현실적으로 발달장애인은 의사소통이 힘들고, 업무 능력에 제한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적절한 직무를 부여하면서 조직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베어베터가 발견한 것은 연계고용입니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은 중증장애인을 최저임금으로 고용하고 일하도록 합니다. 장애인고용의무가 있으나 직접 발달장애인을 고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표준사업장에 주문을 하고 거래를 합니다. 이로써 기업은 간접적으로 고용의무를 이행하고, 중증장애인은 직업을 갖게 됩니다. 표준사업장은 복지시설이나 직업재활시설은 아닙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하는 기업입니다. 중증장애인 고용비율을 지키고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인증을 해주는 것입니다. 일반기업에서는 고용이 어려운 중증장애인 고용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베어베터는 장애인표준사업장 인증을 받고 기업과 부지런히 계약을 맺었습니다. 기업의 교육자료를 인쇄하고 제본하고, 명함을 만들고 배달합니다. 사원복지용으로 제공되는 커피를 주문받아서 로스팅해서 배달하고, 커피전문점에 쿠키를 납품합니다. 계약이 늘어나는 대로, 매출이 늘어나는 대로 발달장애인을 계속 고용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창업 1년반만에 85명의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베어베터와 발달장애인 고용을 함께 해준 기업들 덕분에 85명의 발달장애인이 매일 출근할 곳을 찾았습니다.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에게 베어베터와 같은 연계고용 모델은 거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발달장애인 뿐 아니라 의무사업체에서 직무부여나 관리가 어려운 다른 중증장애에도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조금만 더 확산된다면 중증장애인의 고용문제는 획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계고용 제도에 제한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관련 고시가 개정되는 것을 보면 현장에서 본 희망은 그저 희망사항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큽니다.
현재의 장애인 고용 정책은 의무사업주가 직접 고용하는 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의무사업주가 고용부담금을 내는 대신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이는 분명히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정책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장애의 정도와 특성에 대한 고려가 빠진다면 원론적으로는 훌륭한 정책이 어떤 장애에는 차별을 낳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의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장애특성 때문입니다. 의무사업주의 의무불이행 의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 직접 고용만을 중시하는 정책이 계속된다면 발달장애인에게 고용기회가 늘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연계고용제도와 표준사업장 인증 기준을 중증장애 중심으로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연계고용으로 인해 직접고용 중심 정책이 위협받을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직접고용 정책이 중증장애 고용에는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니까 말입니다.
연계고용 방식으로 기능이 좋은 발달장애인이 더 많이 일자리를 갖게 된다면, 좀더 중한 발달장애인의 기회도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기능이 좋은 발달장애인도 갈 곳이 없어서 보호작업장 등 보호고용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조건의 표준사업장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보호작업장 등 직업재활시설과 복지관 등은 보다 중한 발달장애인들의 보다 안정적인 출근처가 되고, 직업생활 준비를 할 수 있는 장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연계고용과 표준사업장 제도는 형편이 좀 나은 발달장애인 뿐 아니라 더 중한 발달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애인 고용에 있어서 중증장애, 특히 발달장애가 지속적으로 소외되지 않아야 겠습니다. 장애의 다양한 특성과 정도를 고려한 정책으로 변화하게 되기를 희망하며 담당 정책기관에 응원을 보냅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직업이라는 인간의 조건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