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 ~ 100) - 목록과 시
01편 서정주 - 푸르른 날 02편 조 은 - 어느 새벽 처음으로 03편 김남조 - 옛애인들 04편 에릴리 디킨슨 - 새들은 05편 김종삼 - 묵화(墨畵) 06편 상희구 - 대구사과 07편 황지우 - 거룩한 식사 08편 문정희 - 얼어붙은 발 09편 레미 드 구르몽 - 낙엽 10편 이상희 눈물 소리 11편 나해철 - 실없이 가을을 12편 김기택 - 수화 13편 이정주 - 방을 보여주다 14편 김영태 - 라벨과 나 15편 송승환 - 네온사인 16편 우영창 - 해피 17편 김형영 - 노모 18편 전동균 - 모기 19편 전동균 - 여행자 20편 에르난데스 - 그대가 없다면 21편 이진명 - 모래밭에서 22편 최영미 - 월동준비 23편 김병호 - 세상 끝의 봄 24편 김태형 - 기러기 25편 포루그 파로흐자드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26편 박경희 - 통박꽃 27편 장석남 - 무쇠솥 28편 김정환 - 지울 수 없는 노래 29편 나희덕 - 소만(小滿) 30편 이용임 - 여름의 수반 31편 신동옥 - 도감에 없는 벌레 32편 유 하 - 겨우 존재하는 것들 33편 성미정 - 매우 드라이한 출산기 34편 이태주 - 풍경(風磬) 35편 이창기 -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36편 신용목 - 일어나지 않는 일 때문에 서해에 갔다 37편 박상우 - 버티는 삶 38편 이성복 - 귀에는 세상 것들이 39편 성기완 -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아요 40편 이인철 - 순창고추장 41편 박시하 - 옥수역 42편 김희정 -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 43편 존 던 -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44편 오규원 - 새와 나무 45편 맹문재 - 나는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46편 김종철 - 재봉 47편 정희성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48편 김승희 -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49편 최승자 - 시간이 사각사각 50편 박재삼 - 사람이 사는 길 밑에 51편 복효근 - 한 수 위 52편 보들레르 - 어떤 희롱꾼 53편 이근배 - 절필(絶筆) 54편 홍일표 - 그림자 미술관 55편 정세훈 - 차가운 사랑 56편 노향림 - 해수찜 57편 김민정 -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58편 권혁웅 - 도봉근린공원
59편 이수명 - 이빨들의 춤 60편 진효임 - 치매걸린 어머니 61편 정현종 - 견딜 수 없네 62편 김경미 - 이러고 있는 63편 김승일 - 멋진 사람 64편 방민호 - 행복 65편 박 준 - 눈썹 ―1987년 66편 김소월 - 님의 노래 67편 강영환 - 써레봉을 넘어서 68편 권대웅 - 장독대가 있던 집 69편 마종기 - 익숙지 않다 70편 오세영 - 다랭이 논 71편 김연희 - 러시앤캐시 72편 송상욱 - 와온(臥溫) 73편 한석호 - 수취인이 없다 74편 유희경 - 심었다던 작약 75편 최승호 - 봄밤 76편 황동규 - 물소리 77편 함민복 - 농약상회에서 78편 메리 올리버 -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79편 황병승 - 앙상블 80편 양선희 - 하염없이 81편 윤후명 - 철새 82편 이시영 - 지상의 방 한 칸 83편 이학성 - 매의 눈 84편 빈센트 밀레이 - 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85편 김창완 - 대본 읽기 86편 박연준 - 뱀이 된 아버지 87편 공광규 - 모과꽃잎 화문석 88편 최문자 - 발의 고향 89편 이 상 - 아침 90편 김경후 - 지우개 91편 김요아킴 - 나의 연봉 92편 장대송 - 낡은 유모차와 할머니 93편 김박은경 - 리미티드 에디션 94편 신현림 - 나의 싸움 95편 윤성근 - 꺼진 불 96편 고트프리트 벤 - 한마디의 말 97편 이원 - 사랑 또는 두 발 98편 문동만 - 어떤 음계에서 99편 남진우 - 폐선에 기대어 100편 김현승 - 사랑의 동전(銅錢) 한 푼 ============================================= 1 푸르른 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동아일보. 2012년 9월 12일)
--------------------
―시집『푸르른 날』(미래사. 2001)
------------------------- 2 어느 새벽 처음으로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동아일보 2012년 9월 14) --------------------- 3 옛 연인들
------------------------- 4 새들은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4』(동아일보 2012년 9월 19일) ------------------------- 5 묵화(墨畵)
물 먹는 소 목덜미에
묵화((墨畵)
김종삼
ㅡ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5』(동아일보 2012년 9월 21일) ―일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1』(동아일봉, 2015년 08월 07 금요일) ㅡ일간『현대시 100년 -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8』(조선일보 연재, 2008) ㅡ시집『십이음계』. 삼애사. 1969 :『김종삼 시전집』. 청하. 1988)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6 대구사과
인도라는 사과는
------------------------- 7 거룩한 식사 ―황지우(1952∼ )
거룩한 식사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이가서, 2011)
------------------------- 8 얼어붙은 발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8』(동아일보. 2012년 9월 28일)
---------------------------------- 9 낙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9』(동아일보. 2012년 10월 03일)
낙엽
-김희보 편저『世界의 名詩』(종로서적, 1987)
-------------------------- 10 눈물 소리
----------------------- 11 실없이 가을을
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 12 수화
두 청년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2』(동아일보. 2012년 10월 10일) --------------------- 13 방을 보여주다
낮잠 속으로 영감이 들어왔다. 영감은 아래턱으로 허술한 틀니를 자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3』(동아일보. 2012년 10월 12일) ---------------------- 14 라벨과 나
----------------------------- 15 네온사인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5』(동아일보. 2012년 10월 17일) -------------------------- 16 해피
해피가 짖는다
------------------------- 17 노모(老母)
스타킹은 문갑 위에 있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7』(동아일보. 2012년 10월 22일) ------------------ 18 모기
모기들은 날면서 소리를 친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8』(동아일보. 2012년 10월 24일)
모기
김형영
모기들은 날면서 소리를 친다
19 여행자
일찍이 그는 게으른 거지였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19』(동아일보. 2012년 10월 26일) ------------------- 20 그대가 없다면
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0』(동아일보. 2012년 10월 29일) ------------------ 21 모래밭에서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 22 월동준비
-------------------- 23 세상 끝의 봄
수도원 뒤뜰에서
----------------------- 24 기러기
이제 막 도착한 듯 한시름 놓아 날고 있는 기러기떼를 올려다봅니다
25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26 통박꽃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6』(동아일보. 2012년 11월 12일) -------------------- 27 무쇠 솥
양평 길 주방기구종합백화점
---------------------------------- 28 지울 수 없는 노래
지울 수 없는 노래
김정환
불현듯, 미친 듯이
(『지울 수 없는 노래』. 창작과비평사. 1982)
------------------------ 29 소만(小滿)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9』(동아일보. 2012년 11월 19일) ------------------- 30 여름의 수반
서성이는 육체
바람을 가둔 육체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30』(동아일보. 2012년 11월 21일) ----------------------- 31 도감에 없는 벌레
--------------------------- 32 겨우 존재하는 것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32』(동아일보. 2012년 11월 26일) ------------------- 33 매우 드라이한 출산기
--------------- 34 풍경(風磬)
-------------------------------- 35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한 사나흘 깊은 몸살을 앓다
------------------------------- 36 일어나지 않는 일 때문에 서해에 갔다
저녁이 하늘을 기울여, 거품 바다
돌아와 한 주전자 수돗물을 받았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36』(동아일보. 2012년 12월 05일) ----------------------- 37 버티는 삶
------------------------ 39 귀에는 세상 것들이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38』(동아일보. 2012년 12월 10일) ------------------------------- 39
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아요
--------------------------- 40 순창고추장
----------------------- 41 옥수(玉水)역
----------------------- 42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42』(동아일보. 2012년 12월 19일) ------------------------- 43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세상 어느 누구도 외따로운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43』(동아일보. 2012년 12월 21일) ------------------------------------ 44 새와 나무
어제 내린 눈이 어제에 있지 않고
---------------------------- 45 나는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투르게네프의 [노동자와 흰 손의 사나이]에 나오는 사나이는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45』(동아일보. 2012년 12월 26일) ---------------------- 46 재봉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46』(동아일보. 2012년 12월 28일) ---------------------- 47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31』(동아일보. 2012년 12월 31일) ---------------- 48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김승희 시산문집『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마음산책, 2007)
---------------- 49 시간이 사각사각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 50 사람이 사는 길 밑에
---------------------------- 51 한 수 위
먼 소리다요 요 웃도리가 작년에 유행하던 기진디 우리
*기지: 옷감, 천
---------------------------- 52 어떤 희롱꾼 ―보들레르 (1821∼1867)
------------------------ 53 절필(絶筆)
아직 밖은 매운 바람일 때
------------------------ 54 그림자 미술관
--------------------- 55 차가운 사랑
차가운 사랑이
------------------------------ 56 해수찜
이따금 바다 갈매기들이 하얗게 똥을 떨어뜨린다. 그 똥이 훤히 올려다보이는 유리 천장 아래 상체를 내놓은 반라(半裸)의 여자들이 모여 찜질을 한다. 유황 성분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든 해수탕 질기고 비루한 일상을 벗어버리겠다고 바닥에 오체투지 하듯이 납작 엎드려 부항을 뜨거나 약쑥 냄새 자욱한 평상에 무릎관절 꺾고 앉아 있다. 만삭처럼 부른 배들을 스스럼없이 내놓고 뜨거운 열기 속에 얼굴들이 복숭앗빛으로 불콰하다. 더운 수증기에도 잘 젖지 않는 젖가슴들 한때 아기들에게 젖을 물렸을 자루처럼 늘어진 가슴 끝에 시든 꽃꼭지 같은 유두를 매달고 있다. 유난히 하복부가 나온 젊은 아낙이 통성명을 한다. 아따, 언니는 임신 팔 개월째여? 배만 징허게 나와부렀소. 삼십 대로 보이는 아낙이 저승꽃 핀 얼굴의 팔십이 넘어 보이는 늙은 아낙에게 말을 건다. 폐경기를 다 넘긴 여자들이 다시 회임했다고 깔깔댄다. 싸 온 도시락들을 나눠 먹으며 아따, 언니는 벌써 두 양푼째네. 요렇코럼 만수위 된 뱃속에 뭘 또 심고 싶소, 소나무 장작불 땐 해수탕에 와서 배 따땃하면 됐제. 그녀들은 유황 성분이 온몸에 녹아들었는지 불이 이는 홍조를 띠며 자매들처럼 앉아 있다.
----------------------------- 57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57』(동아일보. 2013년 01월 23일) -------------------------- 58 도봉근린공원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58』(동아일보. 2013년 01월 25일)
---------------------- 59 이빨들의 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59』(동아일보. 2013년 01월 28일) ---------------------------- 60 치매 걸린 시어머니
눈도 못 맞추게 하시던 무서운 시어머니가
------------------------- 61 견딜 수 없네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61』(동아일보. 2013년 02월 01일) ------------------------- 62 이러고 있는
-------------------------- 63 멋진 사람
초인종이 울려서 문을 열었어. 짱깨가 철가방에서 너를 꺼냈지. 너는 그렇게 태어난 거야. 고모가 자주 하는 얘기. 나는 그 얘기를 너무 좋아 해서 듣고 듣고 또 들었다. 나만 그렇게 태어났지? 이것은 오래된 바람.
내가 배달된 해에, 할아버지가 둘 다 죽었다. 집안에 큰 인물이 태어나 면 초상이 난다지. 이것 역시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 나는 얼 마나 유명해질까? 기대가 된다. 그러나
손금이 평범해서 나는 울었지. 그래도 손금이 평범하다고 우는 애는 나 밖에 없을 거야. 있으면 어떡해? 조금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 실컷 울 었더니 손금이 변했어.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었다. 나는 평범함보다는 평평함이 좋아. 모르는 사람들이 나한테 화를 냈다. 괜찮아요. 열차가 오려면 십 분 남았어. 나 는 이목을 끄는 사람. 나중에 유명해질 때까지 기다리기 싫었어요. 어 쨌든
할아버지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혹독한 현실. 하지만 사명감은 갖지 않을래. 사명감이 없는 애는 나밖에 없을 테니까. 있으면 어떡해? 있으면 좋지. 짱깨가 내 앞을 지나갔다. 폭주족처럼. 이목을 끌며 멋있게.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63』(동아일보. 2013년 02월 06일) --------------------------- 64 행복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64』(동아일보. 2013년 02월 08일)
----------------------- 65 눈썹 ―1987년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飯店)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65』(동아일보. 2013년 02월 13일) --------------------------- 66 님의 노래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66』(동아일보. 2013년 02월 15일) ----------------------- 67 써레봉을 넘어서
그대 흥미 없는 생에 무너지고 싶다면 흔적도 없이 무너져 훨훨 날아가고 싶다면 남도 지리산 동녘 써레봉으로 가서 세상을 가르는 칼등을 걸어 보라 눈이 상봉을 향하여 갈증을 풀 때 산등은 눈부신 쪽으로 몸을 끌어가려 하느니 왼쪽은 가물가물 햇살 벼랑이고 오른쪽은 푸르고 깊은 수해 빛이다 그곳에는 영원에 쉽게 닿는 길이 숨어 있다 한번 무너지면 돌아올 수 없는 길 위에서 몸은 스스로 균형을 잡고 가지만 눈에 넣고 가는 상봉이 앞서서 지친 영혼을 손잡고 길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몸 스스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렇게 그때 써레봉 가듯 이승을 걸어라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67』(동아일보. 2013년 02월 18일) ----------------------- 68 장독대가 있던 집
햇빛이 강아지처럼 뒹굴다 가곤 했다 구름이 항아리 속을 기웃거리다 가곤 했다 죽어서도 할머니를 사랑했던 할아버지 지붕 위에 쑥부쟁이로 피어 피어 적막한 정오의 마당을 내려다보곤 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떠나가던 집 빨랫줄에 걸려 있던 구름들이 저의 옷들을 걷어 입고 떠나가고 오후 세 시를 지나 저녁 여섯 시의 골목을 지나 태양이 담벼락에 걸려 있던 햇빛들마저 모두 거두어 가버린 어스름 저녁 그 집은 어디로 갔을까 지붕은, 굴뚝은, 다락방에 모여 쑥덕거리던 별들과 어머니의 슬픔이 묻은 부엌은 흘러 어느 하늘을 어루만지고 있을까 뒷짐을 지고 할머니가 걸어간 달 속에도 장독대가 있었다 달빛에 그리움들이 발효되어 내려올 때마다 장맛 모두 퍼가고 남은 빈 장독처럼 웅웅 내 몸의 적막이 울었다
------------------------ 69 익숙지 않다
------------------------------ 70 다랭이 논
깊은 바다나 옅은 강이나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0』(동아일보. 2013년 02월 25일) ----------------- 71 러시앤캐시
시로 쓰기에 적합한 소재가 아닐지 모른다 시가 안 될지도 모른다 시를 써야 하는데 시가 아닌 글을 쓰게 되더라도 이건 꼭 써야겠다 싶어서 러시앤캐시는 나쁘다 신용등급 9, 10등급도 대출을 해준다고 전화번호 끝번호를 ‘친구친구’로 해놓고 지하철 안에 지면 광고를 하고 있다 너무 나쁘다 왜 그 사람들이 돈을 빌릴까 집에 누가 많이 아픈가 사업을 너무 크게 벌였나 누구한테 사기를 당했나 캐시로 러시하게 된 사람들 캐시로 러시하게 된 사람들 캐시로 러시하게 된 사람들 러시 러시 러시 러시 캐시 캐시 캐시 캐시 러시 러시 러시 러시 캐시 캐시 캐시 캐시.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1』(동아일보. 2013년 02월 27일) ---------------------------- 72 와온(臥溫)
마을 뒷산이 누워 계신 와불(臥佛)같다 품 안의 젖내음 나는 짐승들 누운 산이 따스하다 빈 속 쓸어내는 저녁답, 이맘때면 으레 그러듯 동네 삽살개 한 마리가 나룻배 닿는 갯가로 내려가 저만치서 뻘밭을 나오는 아낙들을 마중한다 바다 건너 화포 마을 포구에는 닻을 내린 어부들이 막사발 부딪는 소리, 뱃전에 끼륵이는 갈매기들 소리 귓전에 아련히 들려오다 파도에 쓸린다 해 저물어 누울 바다의 잠 자리 와온(臥溫) 속옷 갈아입는 듯 맨살 드러낸 뻘밭에 바닷물이 든다 갯펄에서 조개를 잡던 아낙들이 갯가로 나온 갯바구니 속, 바지랭이들이 뻘물 짜뜰름에 숨결 보챈다 밤이 되면 포구에 든 바다는 밤새 깊은 고뇌에 찬 듯 쏴아 쏴아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아침이면 고기잽이 배들 제 등에 둥둥 싣고 떠난다
---------------------- 73 수취인이 없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3』(동아일보. 2013년 03월 04일) ------------------------- 74 심었다던 작약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나, 그게 언제 피는 꽃인지도 모르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4』(동아일보. 2013년 03월 06일)
---------------------------------- 75 봄밤
창호지로 엷은 꽃향기 스며들고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5』(동아일보. 2013년 03월 08일) -------------------------- 76 물소리 / 황동규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6)
버스 타고 가다 방파제만 바다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조그만 어촌에서 슬쩍 내렸다. 바다로 나가는 길은 대개 싱겁게 시작되지만 추억이 어수선했던가, 길머리를 찾기 위해 잠시 두리번댔다. 삼십 년쯤 됐을까, 무작정 바닷가를 거닐다 만난 술집 튕겨진 문 틈서리에 새들이 둥지를 튼 낡은 해신당 아래 있었다. 저쯤이었나? 나무판자에 유리도 없이 뚫어논 사각(四角) 창에 섬 하나 떠 있고 섬 뒤로 짧고 분명했던 수평선과 식힌 소주 생선 맨살과 주모의 낮은 말소리 그리고 아 물소리가 좋았다. 바다의 감각이 몸부림치며 바위에 몸을 던져 몸부림을 터는, 터는 듯 다시 몸을 던지는 소리. 다른 아무것도 안에 들이지 않고 저물던 바다의 실루엣, 원근 따로 없이 모두 한가지로 저물었다. 바로 이쯤이었지? 술집 사라지고 해신당 걷히고 나무 쪼가리 하나 보이지 않는 바위 사이로 물소리만 철썩이고 있었다. 머뭇거리자 부근 어디에 사는 물샌가 보이지는 않지만 꽤 똑똑한 소리로 끼룩댔다. 더는 없어. ‘더 물소리’는 없어.
------------------------- 77 농약상회에서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7』(동아일보. 2013년 03월 13일) --------------------------- 78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 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가을쯤 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다시 불려간다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과 책상으로, 거기 앉아서 추억한다 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8』(동아일보. 2013년 03월 15일) ------------------------ 79 앙상블
골방의 늙은이들은 우물쭈물하지 죽음이 마치 올가미라도 되는 양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가들 인생이 마치 가시밭길이라도 되는 양 알약을 나눠먹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소녀들 환각이 마치 지도라도 되는 양 편지를 받아든 군인들은 소총을 갈겨대지 이별이 마치 영원이라도 되는 양 술에 취해 뒹굴며 자해하는 노숙자들 육체가 마치 실패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각별하고 깊은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침묵이 마치 그 해답이라도 되는 양 놀람 속에서 바라보는 시인들 순간이 마치 보석이라도 되는 양
앙상블
골방의 늙은이들은 우물쭈물하지 죽음이 마치 올가미라도 되는 양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가들 인생이 마치 가시밭길이라도 되는 양 환각이 마치 지도라도 되는 양 이별이 마치 영원이라도 되는 양
술에 취해 뒹굴며 자해하는 노숙자들 육체가 마치 실패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침묵이 마치 그 해답이라도 되는 양 순간이 마치 보석이라도 되는 양
------------------------------------------------------------------------------------------- 산뜻하고 명쾌하게 읽힌다. 과연 황병승은 재기 넘치는 시인! 각 연이 두 행씩인데, 늙은이와 죽음, 아가와 가시밭길, 배회하는 소녀들과 환각, 노숙자와 실패, 깊은 감정과 침묵 등등으로 위 행과 아래 행이 앙상블을 이룬다. 위 행 시구들은 실제 삶의 면모들이고 아래 행 시구들은 시인의 혜안으로 꿰뚫어 본 그 이면이다. 참, 이러고들 산다. 실상 그렇지 않아? 아닌가? 죽음 앞에서 벌벌 떨고 이별 앞에서 상욕을 하고, 좀체 감정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사연 넘치는 인생이여! 시인은 울적한 풍경들을 ‘쇼트컷’으로 전개하는데, 그 시각과 필치가 예리한 만큼이나 어딘지 조롱기가 느껴진다. (시인, 당신은 이렇게 인생을 잘 아는군요. 그래서 ‘쿨하게’ 사시나요?) 그 조롱기는 문장을 둥글게 매듭지으며 후렴구처럼 되풀이돼 음악성을 높이는 ‘되는 양’이란 시어에서도 오는 것 같다. ‘놀람 속에서 바라보는 시인들/순간이 마치 보석이라도 되는 양’, 이 구절을 얻고 시인은 보석이라도 되는 양 미소 지었으리.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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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황인숙 두 시인에게
두 사람의 황 시인들이 잘못 보고 지나친 맞춤법 하나 정정. 사실 이 말은 둘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들이 잘못을 범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발표할 때의 잘못인데, 2연 1행에 '내딛으며'라는 정서법의 오류를 '내디디며'로 바로잡습니다. (옮겨 적는 이가 바르게 정정하면 좋았을 걸) 기본형이 '내디디다'입니다. 줄임말 '내딛다'를 쓴다면 '내딛고', '내딛지' 같은 경우에 한합니다. '내딛며'는 쓸 수 없지요. 또한 어미 '~며'가 연결될 때에는 '내딛으며'라는 이상한 줄임말을 쓸 수 없습니다. 줄지 않은 그대로 '내디디며'로 써야 합니다. 그건 마치 '가지고'의 준말 '갖고'가 허용되는 것을 이용하여, '가지고'라고 써야 할 것을 엉뚱하게 '갖이고'라 쓰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줄임말은 말(발음)의 경제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음절 수가 똑같은 줄임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_강인한
<다음 카페 푸른시의 방> http://cafe.daum.net/poemory/H5qF/1762
---------------------------- 80 하염없이
누가 반쯤 가린 세상을 보려고 나는 창을 닦기도 하고 일간지와 주간지와 월간지와 계간지를 정기구독해서 숙독하기도 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뉴스를 경청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소주를 나눠 마시며 역사와 광기를 얘기하기도 하고 담배연기로 혀끝에 감기는 하루를 곁눈질해 보기도 하고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곳으로 총알택시를 타고 휙, 휙, 휙, 휘익 풍경들을 스쳐 보내고 가보기도 하고 처진 걸음으로 돌아와 다시 내 몫의 죄를 끌고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다가 짓무른 다리에 약을 바르며 나는 누가 어디론가 보내 버린 이곳의 절반 이상이 내용증명으로 배달되어 오길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80』(동아일보. 2013년 03월 20일) ---------------------- 81 철새
철새들 乙乙乙 날아간다 乙乙乙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러나 乙乙乙 고개를 들라고 날개를 친다 모름이 곧 앎이니 날아갈 뿐이니 삶이 곧 낢이니 날개를 친다 너는 어느 땅에 붙박혀 있는가 묻는 상형문자 乙乙乙 음역하여 내 삶에 숨을 불어넣는다 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의 소리글자 날개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81』(동아일보. 2013년 03월 22) ------------------ 82 지상의 방 한 칸
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 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똥들이 향기롭게 떠가는 것을 보며 수제비를 먹었지. 찌는 듯한 더위에 못 이겨 야산에 오르면 시골처럼 캄캄하던 동네. 개천 건너 그 동물병원 같은 보건소는 잘 있는지 몰라. 눈이 커다란 간호원에게 매일 아침 붉은 엉덩이를 내리고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대씩 맞고 다녔지. 학교가 너무 멀어 오전 수업을 늘 빼먹어야 했던 집. 아니 결핵을 앓던 나를 따스히 보살펴 주던 집. 겨울이면 루핑이 심하게 울어 조카의 어린 몸을 난로처럼 안고 자던 방. 아니 봄을 기다리던 누님과 나의 지상의 좁은 방 한 칸.
----------------------- 83 매의 눈
언제부턴가 내 눈에 매가 들어와 있다 그것은 내 눈동자 속에서 사납게 이글거린다 하는 수 없이 난 매의 눈으로 세상을 쏘아본다 그러니 다들 내 눈을 피한다 그럴수록 내 눈은 세상 구석구석을 매섭게 찌른다 차갑고 날카로운 매의 눈, 난 그런 눈 따위 바란 적 없다 눈곱만큼도 누구에게 해 끼치고 싶지 않았다 매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들어왔다 누군가는 그 사나운 매를 꺼내 어서 날려 보내라고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걸 꺼내 날려 보낼 수 있었다면 매가 눈으로 들어오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겠는가 매는 무엇 때문에 내게 들어왔는가 난 언제까지 매의 눈으로 세상을 떠돌아야 하는가 매의 눈으로 세상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언젠가 매는 허공으로 고요히 물러나겠지 난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84 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활짝 편 손에 담긴 사랑, 그것밖에 없습니다.
보석 장식도 없고, 숨기지도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사랑.
누군가 모자 가득 앵초 꽃을 담아 당신에게
불쑥 내밀듯이,
아니면 치마 가득 사과를 담아 주듯이
나는 당신에게 그런 사랑을 드립니다.
아이처럼 외치면서
“내가 무얼 갖고 있나 좀 보세요!
이게 다 당신 거예요!”
------------------------- 85 대본 읽기
햇살 뿌연 회의실에 둘러앉아 대본을 읽는다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임금을 읽고 빨간 추리닝을 입고 대감을 읽는다 백정은 운동화를 신었고 며느리는 슬리퍼를 달랑거리고 있다 대사가 없는 노복은 문자를 보내고 있고 조연출은 읽는 사람들을 눈동자로 좇아다닌다 공주는 계속 연필만 돌리고 있고 성질 급한 감독님은 지문을 읽다 배우들 대사도 따라 읽는다 더 큰 소리로 중전이 읽으면 대궐이 된다 할아범이 읽으면 초가집이 되고 의원이 읽으면 약방이 되고 포졸이 고함치면 포도청이 된다 바람이 불고 비 오고 눈 오고 세월 흐르고 말이 달리고 화살이 날아가고 영감이 죽고 아기가 나온다 그러나 바로 거기도 바로 그때도 바로 그 사람도 아니다 그저 한낮의 풍경이다
---------------------------- 86 뱀이 된 아버지
아버지를 병원에 걸어놓고 나왔다 얼굴이 간지럽다 아버지는 빨간 핏방울을 입술에 묻히고 바닥에 스민 듯 잠을 자다 개처럼 질질 끌려 이송되었다 반항도 안 하고 아버지는 나를 잠깐 보더니 처제,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연지를 바르고 시집가는 계집애처럼 곱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의 팥죽색 얼굴 위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다 미소처럼, 아주 조금 찡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지나가는 뱀을 구경했다 기운이 없고 축축한-하품을 하는 저 뱀 나는 원래 느리단다 나처럼 길고, 아름답고, 축축한 건 원래가 느린 법이란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어둠이 고개를 다 넘어갈 때까지 눈을 감으렴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 87 모과꽃잎 화문석
깨끗한 마당에 바람이 연분홍 모과꽃잎 화문석을 짜고 있다 가는귀먹은 친구 홀어머니가 쑥차를 내오는데 손톱에 다정이 쑥물 들어 마음도 화문석이다 당산나무 가지를 두드려대는 딱따구리 소리와 꾀꼬리 휘파람 소리가 화문석 위에서 놀고 있다
---------------- 88
발의 고향
내가 나라는 때가 있었죠 이렇게 무거운 발도 그때는 맨발이었죠 오그린 발톱이 없었죠 그때는 이파리 다 따 버리고 맨발로 걸었죠 그때는 죽은 돌을 보고 짖어 대는 헐벗은 개 한 마리가 아니었죠 누구 대신 불쑥 죽어 보면서 정말 살아 있었죠 그때는 그때는 세우는 곳에 서지 않고 맨발로 내가 나를 세웠죠 그때는 내 이야기가 자라서 정말 내가 되었죠 불온했던 꽃 한철 그때는 맨발에도 별이 떴죠 그 별을 무쇠처럼 사랑했죠 날이 갈수록 내가 나를 들 수 없는 무거운 발 가슴에서 떨어져 나간 별똥별이죠 발도 고향에 가고 싶죠
------------------------ 89 아침
----------------------- 90 지우개
1 자정의 책상엔
2 지우개, 외딴 성당의 고해소
3 핏자국을 핥는 혓바닥, 지우개
--------------------------------- 91 나의 연봉
세상의 모든 가치는 몸이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91』(동아일보. 2013년 04월 15일) ------------------------ 92 낡은 유모차와 할머니
이 골목의 아침은 자기 말만 늘어놓고 슬그머니 사라진 흔적들이 나뒹굽니다. 고되고 고된 것들이 뱉어낸 구겨진 말들, 조합해보려고도 했지요. 구겨진 담뱃갑, 카드 영수증, 무가지 뭉치, 대리운전 광고물, 정말이지 지나가고 싶지 않은, 사라지기도 뭐한 좁음과 넓음, 허허벌판, 어디 감당이나 하겠는지요.
--------------------- 93 리미티드 에디션
―김박은경(1965∼ )
통화 중인 명품 실리콘이다 출렁거리는 마놀로 블라닉이다 빛나는 샤넬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임계까지 보톡스다 거꾸로 달려가는 여우다 춤추는 노란 머리 레게 스타일이다 피어싱한 입술의 코카콜라다 속성 발효 중인 근육 속으로 팡팡 터지는 힘줄들이다 권총과 해골의 타투다 금발의 늑대 본좌다 동물적 본능의 타이밍이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야릇하게 흔들리는 길고 흰 꼬리, 손가락을 들어 프리덤을 우주로 날려주는 웨스트사이드 힙합 센스다 하나 둘 하나 잽싸게 구르는 지구다 변종의 히어로, 발톱과 발성의 발정이다 무국적의 혼종이다 오, 마이 허니 러버 그렇고 그렇지 백미처럼 흰 토끼새끼다 토끼똥처럼 발사하는 붉은 눈알들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신상 해골들이다 얽히고설킨 꼬리들이다 놀라 떨어뜨리는 신형 폰이다 나뒹굴어 쪼개지는 세계적인 사과 반쪽이다 베어 물기도 전에 닳고 닳은 에디션, 여우와 늑대가 만나 토끼를 낳다니 평화로운 비둘기 가족이라니 다 함께 붉은 발을 들어 중얼중얼, 구구(求求)다
---------------------- 94 나의 싸움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 95 꺼진 불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95』(동아일보. 2013년 04월 24일) --------------------- 96 한마디의 말
한마디의 말, 한 편의 글―. 부호로부터 올라오는
--------------------------- 97 사랑 또는 두 발
내 발 속에 당신의 두 발이 감추어져 있다
---------------------- 98 어떤 음계에서
자주 자는 집은 컨테이너이거나 달세를 주는 여관방,
-------------------------- 99 폐선에 기대어
이른 아침 눈뜨면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99』(동아일보. 2013년 05월 03일)
--------------------- 100 사랑의 동전(銅錢) 한 푼
사랑의 동전 한 푼
사랑의 동전 한 푼
-------------------------------------------------------------------------------------------- 한국 현대시 100주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100 (목록과 시) http://cafe.daum.net/sihanull/DRy/36052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 ~ 50) - 목록과 시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6512
현대시 100년 한국인의 애송童詩 (1 ~ 50) - 목록과 시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7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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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금은 시를 읽어야 할 시간 원문보기 글쓴이: 흐르는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