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67]가을 산길도로 산책 한마당
마을 뒷길은 오수에서 임실로 가는, 예전의 일반국도 17번 도로, 즉 신작로였습니다. 길이가 대충 10km쯤 되는 산길은 구불구불, S자 코스가 47개라 하여 마(말)칠재라 했다지만, 그건 얘기를 지어내는 사람들 말이고, 원래는 ‘두치斗峙’의 말치재를 이른 듯합니다. 아무튼 제법 ‘역사’가 있는 길입니다. 오수에서 임실을 잇는 길이니, 당연히 남원과 전주의 통행로였습니다. 한국전쟁 때에는 회문산에 본부를 둔 남부군이 그 길을 걸어 성수산을 거쳐 덕유산으로 갔다고 이태의 <남부군>에 쓰여있더군요. 그 앞의 전라선은 빨치산들이 달리는 열차를 습격하여 불이 난 채 오수역에 정차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지금도 포장이 안돼 소방도로 역할을 하는데, 전국적으로 포장이 안된 산자락 도로는 거의 없는지 영화촬영을 하는 길이기도 하답니다.
제 고향마을 뒷도로인 이 길을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임실은 비교적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라, 그 길에 눈이 쌓이면 보통 발목을 넘고, 어느 해에는 거의 무릎까지 쌓이기도 합니다. 첫눈을 ‘숫눈’이라고 한다지요. 아무도 밟지 않는 그 길을 신새벽 저 혼자 걷는 맛과 멋이란 상상 이상의 재미가 있습니다. 빨리 그 겨울이 오고, 눈이 펑펑펑 밤새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목이 터져라 음치 주제에 노래를 부릅니다. 나훈아의 <테스형>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조각> <고향역> 등을 비롯하여 범능스님의 <푸른 학> <인생> <꽃등> <무소의 뿔> 그리고 정태춘의 <황토강> <아가야 가자> 송창식의 <고래사냥> 등을 미친 놈처럼 불러제키며 희뿌연히 밝아오는 여명, 그 시간을 즐깁니다. 아아-, 그 신새벽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그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인근 35사단 군인들이 행진을 한다더군요. 중간쯤 가면 엄청나게 큰 30m도 더 되는 서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있습니다. 누군가 그곳에 초등학교 시절 걸상을 하나 갖다놓았더군요. 쉬었다가라는 의미겠지요. 두 팔로도 부족한 나무 밑둥에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라는 시를 아크릴에 새겨 끈으로 묶어놓은 것은 저였습니다. 2만원을 투자하여 어쩌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한번쯤 멈춰 시를 음미하게 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적 적선’일 것입니다. 감성이 메마른 군바리들이 그 시를 감상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지요. 오늘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한 막역한 친구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친구는 어느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는 데 집필장소로 우리집 내 서재를 점찍은 것이지요. 아크릴 시판 옆에 리본이 달려있었는데, 최양업(1821-1861) 카톨릭 신부의 순례길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검색을 하여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 신부에 이어 조선의 두 번째 사제司祭인데, 사제품을 받고 귀국하여 한 해 7000리(2800km)를 도보로 걸으며 11년 반 동안 충청, 전라, 경상도의 공소公所 127곳을 찾아다니며 전도활동을 하다 과로로 숨졌다고 합니다. 동학 최해월 교주의 ‘보따리 전도’가 떠오르더군요. 천주교에선 어떤 근거가 있으니까 이 길을 최양업신부 순례길로 정했겠지요. 나는 나대로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걸을 작정입니다. 그 길의 이름을 '칸트의 길'처럼 '우천愚泉의 (사색)길'이라고 작명을 해도 좋겠지요.
친구는 이 길을 걸으며 계속 놀라더군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서 가을기분은 나지 않았지만, 무성한 밤나무들은 제 열매들을 사정없이 지상으로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재래종이어서 밤은 작지만, 빤딱빤딱한 밤색 열매를 줍기에 바빴습니다. 친구도 촌놈(부여산)인지라 눈에 띄는 밤을 안줍는 것은 조물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줍느라 정신없으면서도 “좋다”를 연발하고 노래도 흥얼거리며 1시간여 도로산책을 했습니다. 단지, 뼈 속 깊이 아픈 광경이 펼쳐져 못내 안타깝고 속상했습니다. 산길 도로에서 바라보는 봉천들판은 멸구(멜구, 메루)들에게 폭탄을 맞아 황금들판이 완전히 ‘삘건허게’ 쑥대밭이 된 것입니다. 제 논도 물론 거의 수확을 못할 정도가 됐지만, 대규모 농사를 짓는 다른 농부들의 타들어가는 농심을 어느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오죽하면 내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으로 임실 봉천들판을 꽂아 현장답사온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 피해만 없었다면, 오늘 처음으로 친구가 걸은 그 길이 좋은 추억이 되었으련만, 들판만 바라보면 마음이 허허로와 아예 그쪽을 외면하고 걸었습니다. 참 딱한 일입니다.
어쨌든, 논문을 쓰려고 왔든, 머리를 식히려 왔든, 마음이 통하고 말의 소통(같은 인문계열 출신이자 대학동문)이 되는 친구가 함께 이 가을 산길 유서깊은 도로를 걷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동심으로 돌아가 산속을 헤매며 밤을 줍고 저수지에서 민물새우를 잡고, 오늘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가을은 깊어갈 것입니다. 이제 어지간히 날씨도 누그러졌으니, 함께 나이가 익어가는 옆지기와 가을산길 산책을 하지 않으실래요?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 시 전문은 이렇습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감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窓)아 열린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