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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에 태어 났고 한국전쟁을 치룬 우리 세대는 세계를 대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중학생 때 그림엽서로 본 월드 디즈니의 성을 처음 대하고 환상에 잡힌 기억
그리고 영화 아이반호,원탁의 기사,풍운의 젠다성등에서 본 유롭 중세기의 성들에 대한 동경.
70세가 넘어서 그 어린 시절 느꼈던 동경의 세계를 찾아 독일 남부 지역를 찾았다.
독일 16개 주에서 제일 큰 Bavaria 주는 400년 전통의 Bavarian 왕국이 있던 곳이라 지금도 그 지방 사람들의
자존심은 강하다. 독일 사람이라 하지 않고 Bavaria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고.
남부로 향하는 도로변의 목초지대. 유롭연합이 생기기 전엔 소들이 많았는데 낙농업을 영국으로 넘겼단다.
자동차 회사 BMW는 Bavarian Motor Works 은 약자이다.
Munich에 본사가 있다.
Fussen 의 번화가.
하루 관광객이 6,000명이 다녀 가는 곳인데 고층 건물 호텔은 보이 질 않고 4-5층 옛 건물 뿐이다.
낙농업을 못하게 된 농민들에게 민박을 할 수 있게 허가를 하여 주위에 깨끗한 민박집이 많다고.
Ludwig 2세가 자란 Hohenschwangau 성.
아버지 Maximillian 2세가 1832년에 고성인 것을 구입하여 4년간 수리하여 여름 별장으로 사용 했다.
이곳에서 도보,뻐스,마차를 타고 내가 가고저 하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갈 수 있다.
올라 갈 땐 뻐스를 내려 올 땐 마차를 이용했다.
계곡 다리에서 바라 보는 성의 아름다움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Ludwig 2세의 어머니 Maria가 어린 왕자가 이곳 아름다운 폭포를 좋아 하기에 목조로 지워 준 다리를
철재로 다시 지었으나 어머니 이름 따서 Mariebrucke(Maria Bridge)라 부른다.
산에 흰 백조가 ㄷ다소곤히 앉은 모습일까?
왕이 죽을 때까지 미완성이었고 죽은지 6년 후에 완성 시켰으나 왕이 계획한
Watch Tower, chaple건물은 아직까지 세워지지 않았다.
독일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 제1호라 생각 된다.
모든 관광책자 첫 페지를 장식하고 여름엔 매일 6,000명이 다녀 간다.
일년에 평균 백삼십만명, 2008년까지 통계 6천만명이 다녀 갔단다.
왕은 유언으로 자기가 죽은 후 이 성이 타인의 구경거리가 되지 않게 헐어 버릴것을 원했으나
죽은지 달포만인 1886년 8월 1일 일반에게 공개가 된다.
현재 Bavaria 州는 독일 16개 주 중에서 관광 수입으로 제일 부자 주가 되었다.
다리에서 92M 아래를 내려다 보니 멋진 폭포가...
반대편에서 내려다 보이 긴 폭포가 아름다움을 더 한다.
금강산의 상팔담을 연상케 한다.
성에서 다리와 이 폭포가 보인다
바로 이렇게... 멋진 장관으로 자연 속으로 인도 한다.
성문을 들어서니...
실내에서 사진 찰영이 금지 되였기에 인터넷에서 아래 사진을 가지고 왔다.
음악실.(Concert room)
왕의 침실(Bed room)
혼자 지내기엔 너무 쓸쓸해 보이고 화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사랑이 없는 죽은 방이다.
식탁이 있는 방.(Dining room)
백조 장식품이 많다. 문 손잡이도 백조 모양이 많다.
드로잉 방(Drawing room)
설경
그럼 과연 이 아름다운 성을 누가 지었을까?
궁금증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바로 Ludwig 2세다.
미남 왕에 대해서 알아 보니 더욱 흥미를 가지고 파고 들게 만든다.
그는 1845년 8월 25일 Ludwig 1세 손자로, Maximillian 2세 장남으로
태어 났다.
모든 예능에서 천재성을 발휘하고 수영,스키등 스포츠에도 능했다.
피아노 치는 와그너 와 그이 절대적인 후원자인 루드비히 2세.
게르만 민족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청소년 왕자는 15살 때 호안슈방가우 성에서 아버지 초대한
Wager의 게르만민족 찬양을 묘사한 Lohengrin을 듣고 매료된다
자신이 마치 음악 속에 등장 하는 정의의 백조의 기사된 모습을 상상 했다고 할까?
아버지 Maximillian 2세가 3일간 병을 앍고는 급사하는 바람에 18살 나이에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왕에 오른다.
그는 같은 또래의 황족인 Paul 왕자와 항상 와그너의 음악을 듣고 시도 낭송하고 운동도 하며
깊은 우정을 키우다 22살 때인 1866년 Paul 왕자가 결혼 하며 외똘이가 되고 짝사랑(?)하던
사촌 누나 Elisabeth( 후에 오스트리아 황후)의 권유로 그녀의 막내동생 역시 4촌인 Sophie과
1867년 1월에 약혼을 발표하고 결혼 날짜를 밀고 미루다가 사랑이 없다며 10월에 파혼을
선언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낸다. 누이인 Elisabeth를 Dove라 부르고 그녀는 왕자를 Eagle이라
불러주며 자연스럽게 영적인 사랑을 이어 간다.
1813년까지 독일에선 동성연애가 죄악시 되지가 않았다.
외로운 젊은 왕 Ludwig 2세는 무대배우,감독과 동성연애를 한 것 같은 내용의 편지가 발견 된다.
왕의 일기장이 있었는데 세계일차대전 때 소실 되었다고 한다.
1871년 강력한 독일국가가 성립 되면서 동성연애는 금지 된다.
얼마 전에 보수색채가 짙은 영국 Elizabeth여왕이 동성결혼을 인정했다고 한다.
허나 아직도 독일은 내각 중 각료가 동성연애자가 있음에도 꼼작 하지 않고 있다.
세계는 변했다. 왕이었다 하드라도 동성연애자인것이 사실적으로 밝혀지면 인정을 해야 한다.
화려한 궁전을 3개씩이나 세우며 국고와 개인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빚이 40만 마르크에 달했다.
Prussia 황제인 Uncle Wilhelm 1세는 철의 재상 Otto Von Bismarck를 앞세워 1870년
강력한 독일 국가를 형성하고 Bavarian Kingdom은 German Empire의 일개 State로 전락된다
Ludwig 2세는 더욱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성 건축에만 온 정성을 기울리며 돈을 물 쓰듯 써대니
정부와의 마찰은 심화되고 전문의료진 4명으로 하여금 정신 상태를 점검 시켜 보고서를 받고
정신질환자로 몰아 붙인다.
왕은 항변 한다. "날 11년 동안 진료를 한번도 안한 의사가 어떻게 보고서를 작성 할 수 있느냐?"
결국 삼촌인 Luitpold가 섭정하고 Ludwig 2세는 Starnberg 호수 Berg성에 유배가 된다.
다음 날 저녁 6시 4명의 의사 중 자기와 가까웠던 Dr.Gudden 에게 호수가 산책 하자며
성을 나선다.
그들은 밤 11시가 넘어서 호수가에서 익사체로 발견 되여 자살한 것으로 발표가 된다.
죽음은 아직도 의문시 되고 있다.
왕의 시계는 저녁 6시 45분에 멈춰 있고 물에 빠저 죽었다는 곳은 190cm인 왕의 가슴팍 깊이이고
함께 자살 했다는 의사는 머리,목,어깨에 의심스런 상처가 발견 되었고 왕은 수영을 잘 하고
시체를 부검한 결과 익사한 왕의 폐(Lung)에서 물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 호수의 물 온도가 12' C라 자연사인 Heart attack 혹은 Stroke이란 주장도 있다.
왕의 전속 뱃사공 Jakob Lidl의 말을 빌리면,
"왕이 붕어한지 3년 후 난 맹세를 했다. 생전에 왕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치 않기로,.
말 하면 나도 언재 죽을 줄 모른다. 이 비밀은 마누라,신부에게도 말 할 수 없고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것이다." 그는 결국 아무 말 없이 죽었으나 몇십년 후 그감 남진 쪽지엔
"왕을 탈출 시키기 위하여 어느 왕족이 보낸 보트를 숲속에 숨기고 있다가 신호를 받고
왕과 의사가 있는 곳에 갔다. 왕은 한발은 보트에 올리는 순간 둑에서 총성이 나고 왕은
쓰러젔다."
정부측이 발표한 그날 밤 호수가엔 아무 인기척,소리도 없었다는 발표와는 정반대.
백작부인 조세핀은 왕이 입고 있었다는 코드를 손님들에게 보이며 뒷면에 총구멍으로
구멍을 보여 준 예등으로 보아 암살 당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국고를 낭비해가며 방비용도 아닌 초호화 성을 짓고 국정 운영을 못한다고 폐위 시키고
죽게 만든 미친광이 왕이 백년이 지난 지금은 엉청난 관광 수입을 올려 주고 있다.
30대 후반 부터 살이 찌어서 사진,초상화 그리기를 기피 했다고...
여기까지가 인터넷에서 발췌한 사진들.
성에서 바라 본 왕이 자란 호앤슈방가우 성,
알프스호수 그리고 작게 보이는 것이 백조호수.
백조의 호수가엔 Richard Wager 오페라를 매년 연주 하는 특별 음악당이 있다.
16년간 성을 지었으나 왕이 이 곳에서 산 시일은 고작 172일 뿐이다.
Richard Wagner에게 이 성을 헌정 하였으나 그는 성이 완성 되기 전인 1883년에 죽었다.
Neuschwanstein은 새로운 백조의 성이란 뜻이고 왕이 죽은 후에 이렇게 불렷다.
유롭 각지역의 성을 관찰하고 자기 취향에 맞게 연극무대 감독 Christian Jank 함께 지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고치고 하여 돈과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성에서 내려다 본 마을 전경,.
멀리 Ludwig 2세가 자살 (암살)하여 익사체로 발견 된 Starnberg Lake가 보인다.
그의 영원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 아니 영원히 아름다운 성에서 안식을 누리리라.
말이 힘들어 한다고 하루 세번만 왕복을 시키고 교대를 한다.
걷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저 타 보고 싶어서 마차를 타고 내려 왔다.
멀리 장난감 처럼 城이 보인다.
박물관
성 입구에 위치한 Elbsee (알프스 호수) 백조가 놀고 오스트리아에 속한 알프스산들이
병풍 처럼 감싼 호수.
왕은 Munich에 있는 Residence 宮 Royal Chapel에 누워 있다.
그가 사랑한 사촌누나 Elisabeth가 그를 위해 꺽은 흰 자스민 꽃을 오른 손에 꼭 쥐고서...
꿈 많은 소녀들의 꿈 속에 나타나는 백마 탄 왕자가 심장 없이 슬피 누워 있다.
Bavarian 왕가의 예법에 따라 그이 심장은 은상자에 넣어서 할아버지,아버지 심장과 함께
특별한 곳에 안장 되어 있다.
날 더욱 애초럽게 만든다.
오~ 비운의 왕이여...
知人이 찍은 사진을 토대로 유화로 그려 보았다.
사이즈 : 20" X 24"
와그너 -탄호이저 서곡-
첫댓글 경삼아!
사진이 안보여 손 좀 봐
사진 사이즈 때문이었다.
800pixels을 600Pixels로...
홍화백, 모르던 사실과 사진 그림 고마워.
좋은 친구들 둔 덕분에 세계 일주를 손 쉽게 하는구나. 특히 최근에는 신옥, 초미, 영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