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NASA’ 성공하려면 국가 최고 리더십 발휘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모델로 한 우주항공청을 설립하겠다”고 한 뒤 어수선한 분위기다. 일단 경남 사천에 만들겠다고 국정과제에서 밝혔던 ‘항공우주청’이 우주항공청으로 명칭의 순서가 바뀌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다음 달 우주산업클러스터 사업지로 전남(발사체)과 경남(인공위성)을 최종 확정하려던 차에 대통령이 “대전 전남 경남의 3각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하니 해당 지역들은 술렁인다. 그런데 과학기술계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NASA를 모델로 하겠다고? NASA의 무엇을?”
NASA는 유관기관들이 미 전역에 흩어져 있다. 미국의 유인 우주계획을 총괄하는 존슨 우주센터는 텍사스, 로켓을 발사하는 케네디 센터는 플로리다에 있다. 미 동부를 대표하는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는 메릴랜드, 서부를 대표하는 제트추진연구소는 캘리포니아에 있다. 아마도 NASA의 이런 지역 분산 입지를 택하겠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신설 우주항공청은 과기부 산하 외청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정말로 NASA를 모델로 하겠다면 이 틀부터 바꿔야 한다. NASA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워싱턴에 본부가 있다. 정규직 1만7000여 명은 주로 전문직 공무원. NASA의 수장(首長)인 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급이고 예산은 백악관이 수립한다. 한국에도 국가우주위원회가 있지만 우주개발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비상설 회의체라 정책과 예산 결정 권한이 없다. “우주개발은 국력의 한 축이다. 과학, 산업, 국방, 외교가 섞여 정치적 결정이 필요하다. 우주항공청이 대통령 직속이 돼야 하는 이유다.”(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 발사(1992년) 때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에게 우주항공청에 대한 의견을 구해 봤다. 그도 최고 통치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은 하고 싶은 과학기술을 다 시도할 수 있는 나라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은 재원이나 인력 측면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다. 그게 국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최고 통치자가 가장 먼저 우주개발의 비전을 밝히고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기술 자체가 목표여선 안 된다. 그 기술로 국익과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식량과 에너지 자급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우주개발을 통해 생명자원의 주권을 회복하자고 할 수도 있다.”
워싱턴에 있는 NASA 본부의 이름은 ‘메리 W 잭슨 본부’다.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공학자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우리도 우주항공청 건물에 한국 과학기술인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과학자 공무원들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어 미 정부기관 중 가장 직업 만족도가 높은 NASA처럼 될 수 있을까.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가려내 밀어줄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 국내 전문가들은 의아해한다. “미래 대계를 짜는 ‘국가대표’ 우주항공청을 만들겠다면서 정부 측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요. 누구 의견을 듣는지 모르겠어요.”
김선미 산업1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