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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진은 1985년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 ‘감자골 4인방’으로 화려하게 떠올랐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라면
젊음과 새로움으로 무장한 그들의 인기와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쉽게 공감할 것이다. 그런 그도 세월은 피할 수 없다. 방송국에
들어서면 100번도 넘게 인사해야 했던 그가 이젠 반대로 100번도 넘게 인사를 받는 원로가 됐다. 김국진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도 그의 평탄치 않던 인생사보다 코미디언으로서의 그의 위치와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였다.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는
지천명에 이른 그에겐 이젠 화려한 인기보다 코미디에 대한 생각이 더 무겁게 다가오지 않을까. 아무리 ‘핫한’ 시대일지라도 누군가는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에게 코미디에 대해 물었다.
트렌드를 거스른 김국진 스타일
벌써 내일이면 오십이다. 주름이 조금 늘긴 했어도 혀 짧은 발음, 순진무구한 표정, 주위를 배려하는 따스한 진행 스타일에는 변함이 없다. 이게 그가 말하는 ‘순한 맛’ 라면이다.
최근에 한 여성단체(한국여성민우회)에서 상을 받았던데요. 따뜻한 말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해준다고요. 김국진 씨의 진행 스타일이 지금 트렌드하고는 많이 다르죠.
달라도 많이 다르죠. 지금 트렌드는 튀는 말. 어떻게 보면 전체가 그런 분위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으로 따지면 순한 맛이 있고 매운맛이 있잖아요. 라면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그냥 순한 맛이죠.(웃음)
<라디오스타>에서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그런 설정을 의도한 건가요, 아니면 반응이 좋아서 그런 쪽으로 가게 된 건가요?
자 기 성향에 맞는 걸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독설이 잘 안 맞아요. 제가 독설을 하면 좀 이상하죠. 시청자분들도 제가 나와서 독설하는 걸 보면 어색해하실 거예요. 독설하는 사람이 있으면 따뜻하게 맞아줘야 하는 사람도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성향과 맞게끔, 오는 분들(게스트)은 잘 왔다고 따뜻하게 맞는 편이죠.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본인도 좀 바뀌고 있나요?
제 가 변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저희(방송인들)가 사용하는 언어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보통 그전에는 얘기하지 않았던 것들, 그러니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확장된 것 같아요. 방송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꾸기는 어렵거든요. 가장 힘든 게 사람이 변하는 거니까요. 산은 깎아서 없앤 뒤 건물을 올릴 수 있지만, 사람의 성향은 일생일대의 충격을 받지 않는 이상 거의 바뀌지 않아요. 제 방송 스타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대신 예전에 썼던 말투는 복귀하면서 잘 안 써요.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김국진’은 그대로라는 거죠?
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서 얘기를 하는 거지, 연기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이 변하는 건 힘들어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뀔 수는 있겠죠.
팬은 아무래도 아줌마 팬이 (남성 팬보다) 더 많죠?
예전에 한창 활동할 때는 팬이다 뭐다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전에도 그랬지만 저에게 관심 있는 분들은 순한 분들이 많아서 지나가다 마주쳐도 수줍게 ‘안녕… 하세요’ 하고 쓱 지나가요.
한 해가 곧 마무리되는데요. 개인적으로 올해 성적은 어떤가요?
상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고요. 객관적으로 봐도 저에게 특별히 상을 줘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제가 상에 대한 욕심이 없었어요. 상을 주면 참석 안 하겠다고 한 적도 많고요. 원래 상을 받고 싶어 한 적이 없어요.
올해 활동만 두고 보면 본인 스스로 만족합니까?
연 기는 역할, 그 캐릭터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제가 하는 일은 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는 얘기할 수 없거든요. 저 사람에 대한 내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일이에요. 말이라는 게 내가 저 사람을 보면 어떤 얘기를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머리에 들어오고, 그게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잖아요. 저는 말 그대로 순한 맛으로 하고 있어요. 방송에는 여러 가지 맛이 있어야 되니까요. 물론 요즘은 순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요. 매체가 많아진 만큼 그 안에서 자기 모습을 보이려면 매운맛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내년에 특별히 준비하거나 도전하려고 계획하는 건 있나요?
제 경우는 예능 프로도 했지만 <테마게임>같이 연기도 반씩 했거든요. 드라마도 했고 시트콤도 했고요. 저와 맞는 캐릭터가 있으면 (다시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은 하고 있어요. 하자는 데가 있었는데 올해는 안 했죠. 왠지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요.
오십을 앞두고 있어요. 느낌이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오 십이라…. 제 모습은 조금씩 바뀌겠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흔이 됐을 때도 그렇고 오십이 되어도 마음까지 오십이 된 적은 없죠. 마음은 그렇다는 거예요.(웃음) 어렸을 적에는 그 나이를 생각하면 와~ 이랬는데 근데 막상 되어보니까.(웃음) ‘오’자의 느낌이 남다르긴 하죠.
요즘은 방송계에서도 중년이 대세이기 때문에 나이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 나이 들어도 승승장구하는 배우나 MC도 많잖아요.
제 가 일에 매달렸던 사람 같으면 방송을 5년씩이나 안 쉬었겠죠. 분명 하려고 했을 거예요. 근데 사람마다 흐름이 있듯이, 일도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안 할 때가 있고, 쉴 때도 있고 바쁠 때도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활동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로운 편이에요.
다른 사업을 할 생각은요?
전혀 생각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형과 스포츠 의류 브랜드(위프와프)를 한 지는 꽤 됐어요. 제 성격상 주변에 안 알려서 그렇지, 그럭저럭 괜찮아요. 큰 브랜드는 아니지만 작은 브랜드 중에선 그런대로 잘하고 있어요.
인생을 놓고 봤을 때 큰 목표는 뭔가요? 예를 들면 조혜련 씨처럼 미국에 가서 개그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든가 하는….
혜 련이는 미국 갈까 중국 갈까 고민하다가 중국을 택했어요. 중국어를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말 걸기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해요. 5급도 따고 책도 냈잖아요. 처음에는 저랑 혜련이 둘 다 중국어로 인사를 나눌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지금은 그 친구가 훨씬 잘해요. 전 지금도 인사만 나눠요.(좌중 웃음) (인생의 목표는) 나름대로 생각은 있어요. 구체적인 건 아니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겠다 하는 막연한 생각이오. 그 생각은 나중에 실행으로 옮기게 되면 말씀드릴게요.(웃음)
평탄한 길보단 비포장도로 도전이 좋다
그는 여전히 부동의 1위를 보장하는 삶보다 좌충우돌 인생에 더 끌린다고 말한다. 정상의 자리에서 불현듯 유학을 결심한 것도, 갑자기 골프 프로 선수에 도전한 것도 한곳에 안주하기보다 도전을 선호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김국진의 의외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처음에 개그를 하려고 했던 이유가 있었겠죠?
고 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그 당시는 TV도 그리 많지 않을 때였어요. 간혹 가다 전자 대리점 바깥에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게끔 TV를 틀어주고 그랬어요. 그때는 허참 선배님, 임성훈 선배님 같은 분들이 <가요톱텐> 같은 프로를 진행하고 계셨죠. 가게 앞을 지나다니며 그분들이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문득 ‘언젠가는 나도 저 자리에서 진행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개그맨이 되어야겠다, 생각한 목표는 달성했나요?
지 금과 달리 예전에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 MC는 대단했어요. 우리나라 예능 1, 2위를 다투는 MC가 아니면 하질 못했거든요. 토요일 주말 퀴즈 프로그램, 무슨 프로그램 하면서 결국 <일밤> MC을 하게 됐고, 방송 관두기 전까지 진행했어요. 그때는 제가 “이거 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요일, 몇 시에 하고 싶어요” 하면 방송국에서 아예 그 시간대를 비워놨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으니까요. 나름대로 학교 다닐 때 생각했던 것들을 이룬 셈이었죠. 한데 그렇게 방송을 많이 하다보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어요. 드라마, 영화, 예능 모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섭외가 왔으니까요. <모래시계>를 찍었던 김종학 감독님이 저를 찾아오시고, 기라성 같은 분들이 전부 다 저를 찾아왔었죠.
근데 그 절정의 순간에 방송계를 떠났어요.
개 그나 프로그램 진행을 원 없이 한 다음에는 <테마게임>을 통해 연기를 했어요. 때마침 미니시리즈도 했고요. 그렇게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면서도 한편으로는….(또 다른 걸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의외로 도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KBS 신인상을 받고 얼마 안 돼서 방송 관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요. 꿈같이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고 인정도 받았는데 전부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근데 저, 많이 놓았어요. 놔야지만 미국에 갈 수 있겠더라고요. 안 가면 새로운 경험을 못하니까, 이걸 계속 잡고 있으면 경험을 못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내놨었죠. 제가 도전을 좋아해서요.
몸이 많이 지친 탓도 있었겠죠?
몸 이 많이 축났죠. 5년 동안 거의 2~3시간 자면서 일했어요. 단 하루도 쉴 틈 없이 스케줄이 잡혀 있었으니까요. 1월 1일이 되면 결코 행복한 게 아니에요. 잠깐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일을 해야 되는데….(그러질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요. 일이 너무 없어도 행복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일이 적당한 사람은 행복하냐? 그것도 아니에요.(웃음)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세상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예외 없이 누구나 다 그렇죠. 어떤 자리에 있든, 어떤 상황에 있든 갈등과 불안이 있어요.
새로운 도전을 찾다가 시작한 게 골프인가요?
문 득 ‘프로 선수가 연예계로 들어온 경우는 있는데, 연예계에서 프로 선수로 간 경우는 있나?’ 궁금해지더라고요. (연예인 중에 아무도 프로 선수를) 안 해봤어? 그럼 내가 한다.(웃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맨 처음에 하든지 맨 마지막에 하든지요. 안 가본 길을 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실패할 확률을 안고 가는 거죠.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잠깐 쉬는 동안 ‘프로 선수는 어느 정도일지, 비록 내가 덩치는 작지만 한번 해보자’ 싶어 도전했어요. 결론은 프로가 안 됐습니다만, 6번째 도전했을 때는 몇 백 명 중에서 2등으로 올라갔어요. 거길 통과하면 9부 능선을 넘은 거예요. 20일 정도만 지나면 프로 선수가 코앞에 있었죠. 근데 본선을 남겨두고 미니시리즈 제안이 들어왔어요. 드라마를 포기하고 연습에 매진하면 프로 선수가 될 수 있고, 드라마를 하면 20일 동안 밤을 새야 했죠. 정말 열심히 하면 세상에 안 될 것도 없다고 믿고 드라마를 선택했어요.
결국 20일 남겨두고 (프로 선수가 되는 길을 선택) 안 하신 거네요.
안 한 건 아니고 드라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죠)
드라마를 포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단 순히 프로 선수가 꿈이었으면 계속 달려들었을 텐데, 저는 제가 하는 일(방송)을 하면서 저기(골프)의 문은 어느 정도인지 경험해보자는 생각이었지 좋은 작품까지 마다하면서 프로 선수가 되려는 게 꿈은 아니었거든요. 도전해보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드라마를 택했죠.
그 프로그램이 뭐였죠?
<반달곰 내 사랑>이라고, 송윤아 씨 상대역으로 출연했었죠.
앞으로의 인생에서 또 다른 도전이나 목표가 있나요? 아예 방송국을 차릴 수도 있고요.(웃음)
한 때 케이블 방송국을 하기도 했죠. 아주 작은 미니 방송국이었지만, 운영을 해보니까 역시 저는 방송하는 사람이지 운영 쪽은 아니더라고요.(웃음) 근데 그것도 저한테는 또 다른 경험이었어요. 제가 도전해볼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도전해보는 거죠. 돌아보면 제 삶이 참 버라이어티해요. 지금까지만 점검하라면 재미는 있었죠. 물론 ‘저 사람은 너무 잘되기만 했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잘되는 길만 택할 수도 있는 상황은 됐었으니까요. 근데 저쪽 가서 넘어지고, 깨지고, 부딪혀본 게 더 잘한 일 같아요.
그게 더 행복하다는 거죠?
행복이라기보다 부딪히는 맛도 의외로 재미있어요. 아스팔트 길과 비포장도로, 이 두 가지 길을 놓고 ‘이거 할래, 이거 할래?’ 묻는다면 저는 다시 한 번 이 길을 택할 것 같아요.
남녀노소 겨냥한 김국진식 코미디 여~보세요?
‘오 마이 갓’, ‘여보세요?’, ‘밤새지 말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유난히 유행어 많은 개그맨이 있다면 바로 김국진이다. 특유의 혀 짧은 소리로 던지는 그의 유행어는 특별한 의미를 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재미있다. 이게 다 그의 코미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코미디를 오래 했으니 본인만의 코미디 철학 같은 게 있을 텐데요.
처 음 대학개그제 할 때는 하이코미디를 구사했어요. 남들이 영화 보고 TV 보며 개그 소재 짤 때 저는 나름대로 서점에 갔거든요. 가서 책 보며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그 구절을 인용해서 개그를 했어요. 근데 어느 날 어린 학생들이 녹화장에 왔는데, 묘하게 비튼 제 코미디에 낯설어 하더라고요. 여기서 툭 저기서 툭 하기만 해도 까르르 웃는 애들이 제 개그에는 ‘저분 뭐하나?’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 당시 제 개그를 굉장히 좋아하시던 한 연출가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네 개그가 참 좋다, 그런데 코미디는 어린 학생, 나이 든 분, 공부한 사람, 공부 안 한 사람, 운동한 사람, 운동 안 한 사람 가리지 않고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진짜 좋은 코미디라고요. 쉽게 말해 아이큐 두 자리도 세 자리도 즐거워하면 그게 좋은 코미디라고요. 그때부터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대를 가지는 코미디가 좋은 코미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여보세요?’ 하면 어린아이도 할머니도 박사도 웃어요.
코미디에도 난이도가 있나요?
굳이 난이도를 따지자면 남을 상대로 하는 코미디보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코미디가 난이도가 있죠. 남한테 너 뭐했냐? 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쫑크 주는’ 코미디요. 그래서 저도 시도해봤어요. 누군가 제 혀가 짧다고 하면 상대방을 트집 잡으며 받아치는 게 아니라, ‘내 혀로 미끄럼틀을 만들어주마’ 하면서 내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게 사람들한테 부담도 없어요. 남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소재로 한 코미디니까요.
웃기려면 치고 빠질 줄도 알아야 할 것 같은데요.
코 미디를 구사하는 건 선택의 과정이기도 해요. 이 얘기가 재밌는데 하면 흐름이 끊길 것 같다, 그럼 할지 말지 고민하죠. 가지가 있어요. 그 가지치기를 너무 많이 하면 재미가 없어요. 하지만 가지를 안 치면 배가 산으로 가죠. 그때는 제가 줄기가 되는 흐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요. 나무라는 줄기의 흐름을 잊고 가지치기에 몰두하면 방향을 잃어버릴 수 있거든요. 어쨌든 제 생각은 다 같이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코미디가 좋은 코미디가 아닐까 생각해요.
요즘엔 개그 소재를 얻기 위해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나요?
저 는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에요. 주로 혼자 있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해결하는 걸 남보단 많이 했죠.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잘 안 해요. 근데 요즘은 방송에서 사생활도 다 말하는 시대가 됐어요. 이 친구랑 어제 뭐했어, 이런 내용이 다 전파를 타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복귀했을 때 방송에서 사람들이 친구들과 어울린 얘기를 하면 저는 할 말이 없더라고요.(웃음) 물론 제가 방송하던 과거에는 사생활 얘기를 안 하던 시대였잖아요? 그게 방송의 기본 패턴이었거든요. 근데 복귀해보니 온통 개인적인 얘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방송하는 시대가 됐더라고요. ‘나는 누굴 만나서 뭐했나’ 생각해보니까 아무도 안 만났더라고요.(웃음) 물론 만나지 않았다고 얘깃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아직도 사생활 얘기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 아니고요.
유학은 왜 떠난 건가요?
개 그맨이 되고 나서, 적어도 코미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알고 안 하는 것과 모르고 안 하는 건 많이 다르거든요. 누구나 각자 코미디를 추구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내가 하지 않는 방식의 코미디라도 알기는 해야겠다 싶었어요. 노래에 발라드, 트로트, 댄스 등의 장르가 있듯이 코미디에도 여러 가지 장르가 있어요. 콩트 코미디, 연기 코미디, 슬랩스틱 코미디, 스탠드 업 코미디 등 다 달라요. 신인 때 코미디 공부는 남들보다 많이 했어요.
대중의 머릿속에 김국진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남길 바라나요?
특별히 어떻게 남길 바라진 않아요. 그냥 평소 걸어온 대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김국진이면 되지 않을까요. 남으면 뭐하고 안 남으면 뭐하겠어요.(웃음) 그냥 각자 살아가는 거죠.
나이에 비해선 젊은 편이죠? 주름은 좀 생겼을지 몰라도 전과 별로 다름없어 보여요.
저 는 스물, 서른에 하던 대로 똑같이 행동하고 생활하고 있는데 나이는 이렇게 됐어요. 방송을 하다보면 10대, 심지어 유치원생과 이야기할 일도 많은데 그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고 새삼 느껴지죠. 분명한 건 방송국에 가면 제가 선배가 된다는 거예요. 제가 인사할 사람이 별로 없어요. 예전에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만 100번쯤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지금은 100번 인사를 받고 와요.(웃음) 인사하던 때가 좋은 것 같아요. 그렇죠?(웃음)
치열함보다 여유를 갖고 사는 편이죠?
저 는 제가 어떤 상황에서 여유를 잃었을 때의 모습이 가장 싫어요. ‘겨우 이런 거에 여유를 잃을 정도면 너는 진짜 에이~ 좀팽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상황에 끌려다니고 싶진 않아요. 살다보면 온갖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 일들 하나하나에 깜짝깜짝 놀라면 더 큰 일은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큰 생방송 무대를 앞두고 떨릴 때 ‘이거보다 큰 무대에서는 어떡하려고 그래?’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간단히 얘기해서 골목에서 무서운 사람 만나면 도망가는 건 똑같아요. 저도 죽어라 뛰는 거죠. 그런 경우는 뛰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사람은 워낙 많이 흔들리잖아요. 조금만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이 흔들려서 갈피를 못 잡는데, 흔들리더라도 여유 있게 흔들리자 하는 생각이 있어요.
15년 전, 1인자의 위치를 지키려고 어떤 치열한 노력을 했나요?
저 는 1위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1위를 지킬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피크 시절에 방송을 접고 골프 프로 선수에 도전했던 것도….(상이나 1위 유지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1위를 지키려고 애쓰면 더 지키기가 어려워요. 운동선수는 1위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이쪽(대중문화예술)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어떤 가수가 1위를 지키려고 발버둥 쳐도 사람들이 다른 노래 좋다고 하면 끝이거든요. 최선을 다해서 음악을 내놓는 건 가수들의 몫이지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대중의 몫이니까요. 본인이 1위를 지키려고 애쓴다 해서 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요즘은 골프 얼마나 칩니까?
지 금은 프로 테스트를 하지 않아서 골프에 대한 목표 의식이 사라졌어요. 테스트를 안 하니까 골프가 전만큼 절실하지는 않은 거잖아요. 예전에는 (공이 똑바로 안 가고) 오른쪽으로 가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오른쪽으로 가면 가서 다시 왼쪽으로 치면 되거든요. 그렇게 적당히 즐기면서 치고 있어요.
외롭지만, 혼자도 나쁘지 않아
이혼이 ‘돌싱’으로 불리는 시대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삼남 중 막내 김국진은 여전히 세탁기 돌리는 법을 모르는 ‘싱글남’이다. 여전히 사생활 얘기는 별로라기에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 시원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김국진답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거나 희열을 느낀 경험이 있나요? 예를 들어 홀인원을 했다던가요.(웃음)
홀 인원을 해서는 희열을 안 느낄 것 같고요.(웃음) 제가 한 세 번 해봤거든요. 그렇게 희열을 느낄 정도는 아니고 ‘와, 어떻게 저게 들어갔네?’ 정도. 행복은… 제가 그냥 행복합니다.(웃음) 혼자 있으니까 ‘저 친구는 외로울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진짜 많더라고요. 저랑 같이 프로그램을 하는 분들도 혼자 뭐할까, 혼자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세요.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 꼭 그렇진 않아요. 사실 그분들은 같이 모여서 술 한잔하기도 하는데, 제가 그걸 안 즐기니까 더 외롭고 심심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굉장히 바쁩니다.(좌중 웃음) 마음도 편안하고요. 저는 요즘 참 편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한 일 중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요?
후 회하기 시작하면 저는 뭐….(웃음) 그래서 후회를 안 합니다. 제가 했던 거니까요. 물론 안 좋은 것도 있지만 거기서 배운 것도 있어요. 사람이 후회하려고 하면 끝이 없죠, 뭐. 저는 지나간 것을 뒤돌아보고 내가 저랬었지, 저랬었어 하고 연연해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어차피 과거 얘기니까. 물론 방송에서 재미 삼아서 ‘나 옛날에 이랬어’ 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예전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쉬는 시간에 골프 말고 다른 건 뭘 합니까?
그 냥 운동해요. 저 혼자 많이 있는 편이에요. 그 외에는… 지인 중에 국적은 대만 분인데 한국에서 생활하는 화교분이 있어요. 저와 성향이 잘 맞아서 만나면 대부분 운동을 같이하지만 어쩌다 한두 마디 정도 의견을 묻기도 해요. 이런 상황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고요. 내가 이 길을 가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하고요.
멘토 비슷한 건가요?
그분도 저에게 똑같이 (갈등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물어요. 1년에 한두 번, 그래봤자 5분 정도요. 둘 다 오래 말하는 건 안 좋아해서요.
여성분은 아니죠?
남자분이시고, 결혼하셨고, 슬하에 자녀가 둘 있어요.(좌중 웃음) 저보다 나이는 두 살 많아요.
방송 보면 주변에서 소개팅을 많이 시켜주던데 그게 진짠가요, 아니면 설정인가요?
진짜 그렇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주변에서 더 적극적인 것 같아요.
제가 가만히 있으니까요.
얘기 나온 김에, 결혼해야 하잖아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고, 꼭 결혼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있는데, 장담은 못하죠. 가장 우매한 게 장담하는 거니까요.
특별히 노력하진 않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그 부분에는 특별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요.
물론 기회가 되면 하겠죠? 필이 꽂히면.
(침묵 후 웃음) 사실 지금 다시 결혼해도 좀 애매하고, 가만히 있기도 애매하고 그렇잖아요.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웃음)
결혼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니까요.(웃음)
그렇죠. 아니, 좋고 나쁘고가 없죠. 그게 정해져 있으면 사람들이 다 좋은 쪽으로 갈 텐데 그게 아니니까요.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소개시켜주면 만나긴 하나요?
제가 소개를 안 받죠. 주변에서 소개시켜준다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잘 안 받아요.
혼자 있으면 주로 뭘 합니까?
책도 보고요. 아, 물론 제가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웃음) 운동을 좋아해서 스포츠 경기도 많이 봅니다. 여러 가지 운동을 구사하는 걸 좋아하고요. 모든 스포츠를 다 좋아해요.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하긴 프리미어 리그 경기만 챙겨 봐도 시간이 모자라죠.
그 럼요. 바쁘다니까요.(웃음) 저녁 9시 정도부터 새벽까지 경기하고, 리그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분데스리가, 스페인 리그…. 그것만 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밥 먹고, 사람도 만나고요. 술 마시고 와~ 떠들고 이런 걸 안 해서 그렇지, 가끔 후배 만나서 밥 먹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드문드문 다 해요.
혼자 살고 있나요?
아니요. 어머니 모시고요.
낮에 일하고 저녁때 집에 들어가 방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면 외로움이 밀려올 때도 있겠죠?
혼 자 있으면 그래요. 혼자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든, 어떤 위치에 있든 혼자잖아요. 똑같아요. 누구든 혼자 있으면 (외로운 건) 똑같죠. 제가 듣기로는 직업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든 무인도에 데려다 놓으면 하는 행동이 다 똑같다고 합니다.
특별히 몸매를 관리하는 건 없나요? 워낙 운동을 많이 해서 살도 안 찌는 것 같고요.
살이 안 찌는 건 밥을 적당히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밥을 많이 먹어야 찌는데 항상 적당히 먹어요. 적당히 먹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그 정도면 딱 배가 불러요.
어머니가 구박 안 하세요? 언제까지 내가 밥상 차려야 하니, 이런 얘기요.(웃음)
지 금 말씀하신 그대로 합니다.(웃음) 이제 어머니 연세가 있으시니까, 만에 하나 너 혼자 있게 되면 세탁기라도 돌려야 되지 않겠니, 하고 말씀하세요. 그럼 저는 그런 말 마시라고 하죠. 그래도 세탁기 돌릴 줄은 알아야 된다, 밥통에 밥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된다, 너 그러다 만날 찬밥 먹는다 하는 말은 늘 하세요.(웃음)
그래서 배우고 있나요?
아니요.(웃음)
일 상의 온갖 이야기를 때론 과대포장까지 해서 내던지며 튀기 위한 경쟁을 벌이는 게 요즘 예능인지라 뜨는 스타도 많고 반대로 소리 없이 사라진 이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이런 시대에 여전히 자기중심을 잃지 않은 김국진이 더욱 소중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