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카테고리 이동
kimkwangsooblo
검색 MY메뉴 열기
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7)
프로필
별명없음
2016. 4. 26. 9:06
통계본문 기타 기능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7)
꿈에도 그리던 해방을 맞이하였다. 자력은 아니지만 일제의 압제를 벗어났다는데 대하여 온 국민들은 삼천리 방방곡곡에 만세! 만세! 만세! 소리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두둥실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중국 땅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 요인들도 1945년 8월 16일 해방소식을 전해 듣고 환국을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한반도의 남부에 진주한 미군정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개인자격으로의 귀국과 민군정의 질서 확립에 협력한다는 조건하에 환국을 허용하였다. 이에 따리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개인자격으로 환국하면서 임시정부는 독립단체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임시정부의 법통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존재했다. 1945년 말 임시정부 환국 직전 조선공산당은 임시정부의 공헌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일제하에서 악전고투하며 구사일생 해 온 것은 노동 대중이며, 이들이 민족해방의 주체라고 주장하였다. 즉 국내 혁명세력을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에 두고 인공이 그것을 이어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임정을 추대하는데 반대하였다. 임시정부 내에서도 임정의 유지문제를 놓고 우파와 좌파 간에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좌파는 국내외 단체와 민중의 기초위에 임시정부를 다시 세우자는 취지에서 임시정부의 총사직을 요구한 반면, 한독당 측은 임시정부를 가지고 귀국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1945년 8월 30일 충칭의 임정 대표들은 미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미국식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기독교신자가 많은 자신들이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입국 때문에 희망을 잃고 있으며, 미국의 도움으로 입국한다면 미 점령군이나 혹은 국무성의 의사에 반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망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1945년 9월 3일 김구는 임정국무회의의 명의로 발표된 “당면정책 14개조”를 발표하였다. 이 당면과제에 의하면 “임정환국->각계각층 대표자회의 소집->과도정부 수립->전국적 보통선거 실시->정식 정부 수립”등 임시정부에서 정규 정부수립 방안을 제시하였다. 김구는 정부 자격으로 귀국을 원하였으나 미군정의 존 하지 사령관은 이를 거부하고 개인 자격으로의 귀국을 요구하였다.
귀국하기 전 중국 공산당의 저우언라이(周恩來), 둥비우(董必武)가 임정 국무위원을 초청해 송별연을 하였고, 김구 일행이 충칭을 떠나기 하루 전인 11월 14일 중화민국 정부에서는 장제스(蔣介石)와 그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이 임정 국무위원과 한국독립당 간부와 각계 요인 200여명을 초청하여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장제스는 격려연설을 하는 가운데 “조선이 독립하지 못하면 중국의 독립도 완성하지 못하게 되고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도 확보하지 못할 것이므로.... 국민당은 조선 독립에 전력을 다해 원조하겠다.”고 말해 한국 독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장제스의 이러한 한국 독립 지지태도는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이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 지위의 회복을 바라고 있다는 판단을 갖게 함으로써 후일 미군정이 임시정부를 철저히 냉대하게 만든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45년 11월 3일 상하이 비행장에 도착한 뒤 임시정부 환국 제1진과 함께 개인자격으로 중국을 출국했다. 당시 임시정부는 귀국을 놓고 서로 먼저 가겠다고 하였으나 민족혁명당계 김원봉의 양보로 김구와 한국독립당 계열이 먼저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시 민족혁명당의 당수였던 김규식도 한국독립당계와 함께 귀국하였다. 귀국 직후 김구 일행은 미군의 보호를 받았으며 김구의 경호원들도 무기를 소지하도록 허용되었다.
12월 1일 임시정부 봉영식이 서울에서 열렸다. 서울 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영식이 시작되었으며,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영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영문은 권동진, 김성수, 이인을 통해 주석 김구에게 전달되었다. 한편 미군정으로부터 1백만원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이중 일부는 임정요인들의 유흥비로 쓰였는데, 장준하는 자신의 저서 돌베개에 귀국 후 임정요인들이 명월관, 국일관 등에서 주지육림 속에서 놀아나며 허송세월을 보낸다며 지적하였다. 11월 4일 김구는 광산 재벌 최창학이 제공한 경교장(京橋莊)에 머무르며 경교장을 김구 자신의 사저 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활용하였다.
임시정부의 수립에서 부터 파란만장한 타국에서의 임정활동을 마감하고 해방과 더불어 대망을 갖고 귀국하였다. 내나라 내 조국에 환국하는데도 개인자격이라는 올가미가 씌워져서 귀국함으로써 또 다른 난제들이 첩첩히 쌓여있음을 예고하고 있다.=>8호로 계속됩니다.
2016년 04월 26일(화요일)
夢室에서 김광수
※위키백과 참조
#일상·생각
댓글 0공유하기
별명없음
별명없음
나만의 공간을 갖고싶은 사람입니다. 평소의 생각들을 기고하여 친구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프로필 편집
이 블로그
사진
카테고리 글
[공유] 춘당지 원앙새
2016. 4. 26.
댓글 0
[공유] 내쇼날 지오 그래픽. 나미비아
2016. 4. 26.
댓글 0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7)
2016. 4. 26.
댓글 0
[공유] [넷향기] 이병준 대표의 "가지치기는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남기는 것입니다"
2016. 4. 25.
댓글 0
[공유] [넷향기] 이동환 교수의 "행복한 사람이 왜 더 성공한까?"
2016. 4. 25.
댓글 0
이전
다음
이 블로그 인기글
중요한 내용이니 꼭 끝까지 읽고 기억해 두셔요
2022. 4. 18.
공감해요 1
댓글 0
💥한국공산당의 거두 백낙청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2. 4. 16.
공감해요 2
댓글 0
나는 더 이상은 정의를 외면한 사랑을 신뢰할 수 없다(이인선 수녀님의 글)
2021. 4. 21.
공감해요 1
댓글 0
《어르신께 드리는 당부의 말씀》
2022. 4. 22.
공감해요 2
댓글 0
지금 더불당의 검수완박법은 바로 중국의 공안제도이다.
2022. 4. 18.
공감해요 1
댓글 0
누가 정리했는지 수고 많았네요
2021. 4. 18.
공감해요 2
댓글 1
♥ 박정희 전 대통령 ♥
2022. 4. 23.
공감해요 1
댓글 0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는 분은 정말 행복하실 겁니다.
2022. 4. 22.
공감해요 4
댓글 1
자중지란(自中之亂)
2021. 4. 23.
공감해요 1
댓글 0
★몸이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2021. 4. 22.
공감해요 1
댓글 0
이전
다음
맨 위로
PC버전으로 보기
댓글 0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