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11편 살붙이들>
③전쟁과 운명-8
모두들 식욕이 왕성한지, 밥그릇 반찬그릇 죄다 비우고, 술병마저 비우자, 전등불이 대청마루 부엌까지 환히 맑히어진 가운데, 쪽머리가 밥상을 뚝딱 치우고는 방으로 들어온 거였다.
벽시계는 벌써 밤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문과 미닫이를 열어젖뜨리었는데, 대청마루에서 솔솔 불어 드는 바람결이 제법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거였다.
천복은 이 시원한 바람기가 밤이라, 뒷산정상에서 하향하는 바람이라고, 알아차리었다. 낮에는 바람이 산기슭에서 산정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밤에는 바람이 산정에서 불어 내리어온다는 걸, 경산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때 상승하는 바람은 생기풍이고, 하향하는 바람은 사기풍이라고 하였다.
청구동 뒷산은 경사도가 급하고, 거의 암벽으로 이루어지어 있었다. 그런데 판자촌은 그러한 암벽위의 가파르고, 좁다란 땅에 판자때기를 얽어 세워서 방과 부엌을 들이었으니, 옹색하나마 의지하고, 살아가는 빈민들 판자촌이 큰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덥고, 지루했어요.”
쪽머리가 아랫목에 앉은 천복의 옆에 붙어 앉더니, 다리를 쭉 뻗는 거였다.
그녀는 1950년 여름을 말하고 있었다.
“저희는 그해 여름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이브자리며, 가재도구를 머리에 인 데다 어린 남자동생 들을 하나씩 업고, 보름 동안이나, 불볕이 이글거리는 신작로를 걸어서 시골로 갔었어요.”
천복은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섬뜩한 악몽 같은 이야기를 선뜻 내뱉고 있었다.
“그러니, 얼마나 고생이야! 당신은 그때 몇 살이었어요?”
쪽머리는 천연스레 치맛자락을 무르팍으로 걷어 올리더니, 보얀 살결의 다리를 스스로 주무르고 있었다.
“아홉 살이었는데요. 저도 옷가지가 들어있는 봇짐을 지고 갔어요.”
“봇짐이야 무겁지 않게 지워줬겠지만, 아홉 살에 보름 동안 걸었으면, 발병이 안 났겠어요?”
그때 성희의 무릎에 앉았던 수영이 일어서더니, 엄마한테 조르르 가서는 벽에 몸을 기대고, 옆에 앉는 거였다. 그러자 성희는 수영이랑 남자의 얼굴을 견주어보자니, 이목구비와 윤곽이 빼다 박은 거처럼 닮았던 거였다.
그녀는 이제껏 수영이 아버지의 딸인 줄로만 알았으나, 남자의 딸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그녀는 남자랑 쪽머리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네들 앞으로 다가가 마주앉는 거였다.
“다리만 아픈가요? 풀 먹인 뻣뻣한 바지가 걸을 적마다 가랑이 사타구니를 마구 긁어대는데 허벅지에 땀띠가 나고, 짓물러서 쓰리고 아팠어요.”
“어머나, 지금은 괜찮아요?”
쪽머리가 싱긋 웃으면서 묻는데, 성희가 영락없이 끼어들어 초를 달았다.
“엄만, 그때가 언젠데요?”
“난, 놀랐지. 혹시나...”
쪽머리는 성희의 참견에 놀랐다면서 혹시나 지금도 그러는지 모른다는 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넌, 짓궂은 데가 있더라.”
“엄마, 왜?”
쪽머리는 마침 성희가 말초를 달자, 타깃이 된 듯이 꼬집는 거였다.
“남자를 망아지 몰듯 올라타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녀는 아까 잠에서 깨어나 스치어보았을 때에 여자가 벌거벗은 채로 남자위에 올라앉아 숫제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었던 모양이었다.
“재미나던데요. 엄마.”
성희는 누구 애산 받힐 일이 있는지, 배 채기로 재미나더라고 하였다.
그러자 쪽머리가 흘기죽죽하면서 말하였다.
“언제나 여잔 남자가 위에서 하는 대로 받아주기만 하는 거야. 너처럼 남자위에 올라가 말달리기는 음탕한 여자들 하는 짓이야. 매음녀들 하는 짓을 따라하면, 안 돼!”
쪽머리는 성희의 재미라는 말에 속으로 섬뜩하니 놀랐는지, 나무라고 있었다. 남녀 간의 동침은 어디까지나, 씨를 주고받으려는 행위이었다.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생리적인 희락이라든지, 성정은 씨를 주고받는데, 도우려는 흥분제일 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한 거였다.
“엄마, 다신 남자위에 안 올라갈 테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성희는 이후 다시는 벌거벗고, 남자위에 안 올라가겠다고 다짐하며, 잘못하였다고 비는 거였다.
“옳지! 우리 성희 어때요?”
첫댓글 모녀가 아니고 자매간의 대화같습니다
엄마라고 하지만 실지는 작은엄마인데 자매간처럼 되었지요.
예전에는 나이어린 숙모가 많았어요. 집집마다 시어머니랑 며느리가
함께 아이를 낳았으니까요. 그래서 촌수 항렬 따지기가 어려운 경우
많았지요. 성희와 족머리의 관계는 하나도 아상할게 없지요. 암튼지
우연히 이렇게 되었으니 쪽머리도 어쩔 수 없고, 성희는 응석바지가
되었네요. 이 소설의 특징은 인간 관게에 갈등을 최소화하여 화목한
분위기로 가는 스토리로 끌어가고 있군요. 그러다보니 천복의 덕성이
돋보이지요. 여기서도 얼마든지 갈등이 유발되고 서로 증오하겠지만
좋은 사이로 끌어가네요. 그것이 독자로 하여금 읽기가 편하겠지요.
고통 증오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