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리노베이션을 마친 건축가 서승모의 작은 한옥. 영화, 음악, 요리, 책을 즐기는 그의 취향이 집 안에 빼곡히 정돈돼 있다. 앉아 있는 그의 뒤로 보이는 책장에는 DVD가 정리돼 있다. 최근 영화도 여럿 보인다.2 기와지붕 옆으로 올린 가파른 경사 지붕은 높은 주변 건물에서 들어오는 시야를 차단하기 위한 기능을 갖는다. 대신 천창을 만들어 빛은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방식.보를 받쳐주는 기둥이 있고 박공지붕을 만드는 서까래와 잿빛 기와가 얹어져 있지만, 이 ‘ㅁ’자 한옥은 정통 한옥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방수를 해결하기 위해 깐 돌바닥과 툇마루 자리를 끌어들인 내부 공간, 한옥의 삶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인 화장실도 실내로 들였다. 이 과정에서 약 79㎡(24평)였던 ‘ㄷ’자 한옥은 ‘ㅁ’자로 변했다. 건축가 서승모가 이 공간에 살기 시작한 것은 그가 일본에서 건축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6년 전부터다. 원맨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그는 이곳을 스튜디오 겸 집으로 사용했었고 재작년 겨울쯤 집에서 가까운 옥인동에 건축사 사무소 ‘사무소 효자동’을 열면서 이 한옥은 온전한 집이 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1 ‘ㅁ’자 한옥의 거실 부분. 바퀴가 달린 테이블은 이탈리아 건축가 가이 아우렌티의 디자인. TV 선반은 공사 단계부터 염두하고 제작한 가구가 아닌 구조다. 서까래를 강조하기 위해 이 집에서 유일하게 천장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거실 공간.2 요리를 좋아하는 건축가 서승모는 사람들을 초대해 이곳에서 음식을 나누기도 한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테이블은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 이지 체어는 모두 찰스&레이 임스 디자인. 이탤리언 푸드 레시피는 제법 괜찮은 것들이 많다는 그는 언젠가 ‘밥집’을 해보고 싶은 꿈도 갖고 있다.3 깔끔하게 네모난 현관. 왼쪽으로는 다이닝 테이블이 놓이고 오른쪽으로는 부엌이 자리한다. 현관과 부엌은 바닥의 단을 낮춰 분리된 공간감을 만들었다.건축학과 졸업 이후 일본에서 5년여간의 생활을 보내고 온 그가 한옥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 “동네 여기저기를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삼청동에서 집을 찾았죠. 비싸기도 했지만 상업적인 공간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서촌으로 왔어요. 당시 갖고 있던 돈으로 구할 수 있던 몇 안 되는 대안 중 하나가 이 작은 한옥이었고 결국 이 집을 선택했습니다. 집보다는 동네가 좋아서 이곳을 선택한 거죠.” 게다가 그가 원하는 밝은 집이었다. 이 공간을 집으로 리노베이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기본이 되는 대지와 빛, 그리고 단열이었다. 또 일본에서 살던 시절부터 하나, 둘 모아오던 디자이너의 가구와 조명 컬렉션을 염두하고 완성한 인테리어 구조 덕분에 이 집엔 쓸모 없는 공간도 모자란 공간도 없다. 바퀴 위에 유리 상판을 올린 가이 아우렌티의 테이블,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미니멀한 식탁, 찰스&레이 임스의 사이드 체어와 조지 넬슨의 책상,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이사무 노구치의 조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확고한 취향의 디자인 마니아다. 어느 용도의 물건이건 적합한 걸 고르지 못하면 사지 않는다. 요리하는 건축가로 소문난 그답게 요즘엔 주방용품이나 그릇에도 관심이 많다. 덕분에 그의 건축은 그만큼 섬세하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감각으로 공간을 느끼기를 강조한다.
1 이사무 노구치의 조명이 놓여 있는 침대 곁. 넓은 프레임이 유용한 침대는 건축가 서승모가 직접 디자인한 것.2 한옥의 기존 틀인 보와 기둥은 그대로 두고 바닥과 창, 벽 등을 보완해 살기 편한 집으로 각색했다. 마당을 조금 좁혀 실내 가용 면적을 늘렸고 중정과 기와, 나무 구조 등 한옥의 체취는 유지한 채 삶의 방식을 감안한 유용함을 더해 서승모식 한옥을 만들었다.3 이 집에서 기와를 배경 삼아 마당 안에 담긴 하늘을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자리는 여기다.그의 이미지 혹은 이력 때문인지 클라이언트 역시 미니멀한 스타일을 선호하거나 작은 공간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의뢰를 한다. 물론 어느 정도 빗나간 기대는 아니지만 그는 거기에 더해 조금은 보수적이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디자인 그리고 건축을 좋아한다. 미국에 이어 차선책으로 정했던 일본 유학이 성공적이었던 점도 건축적인 큰 틀 안에서 무리하지 않는 그들의 합리적인 마인드가 그와 맞았기 때문이다. ‘빨리’ 그리고 ‘싸게’를 공통적으로 원하는 건축주의 기대에 부흥하자면 가장 핵심이 디자인을 결정하는 시간을 줄여 나가는 것이란 걸 일을 할수록 절감한다는 그. 그리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퀄리티 컨트롤이란 것이 그의 확신이다. “예전에는 건축에 앞서 개념, 다이어그램, 내용에 더 치중했다면 지금은 스케일, 빛, 디테일처럼 더 실질적인 것에 집중합니다. 이제는 후자에 따라 개념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무한한 이 젊은 건축가는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단단한 고집과 꾸준한 노력을 주춧돌 삼아 감각을 설득시키는 진솔한 건축 표현법을 연마 중이다.
1 요리하는 건축가로도 알려진 그의 주방은 다양한 식재료며 그릇, 요리 도구가 제법 잘 정돈돼 있다. 언젠가 이뤄질 또 하나의 꿈 역시 그가 음식을 내는 ‘밥집’이라고.2 건축가 서승모와 김용섭이 함께 꾸려가는 건축사 사무소 ‘사무소 효자동’의 창가, 인왕산 자락이 오롯이 담긴다. 3 강북의 고즈넉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무소 효자동’. 4 프랑스에서 건축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용섭 소장과 일본에서 건축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서승모 소장은 대학 동기다. 다른 이력처럼 다른 캐릭터를 지닌 두 사람의 차이는 오히려 보완이자 새로움이라고. 함께 호흡을 맞춘 1년 남짓 네 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5 크지 않은 그들의 사무실에는 현재 작업 중인 다양한 프로젝트가 벽과 테이블, 선반할 것 없이 가득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