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휴전
1914 년 제 1 차 세계대전 이 발발하고 5개월이 지난 플랑드르 지역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과 독일군이 전선을 형성한 채 대치하고 있는 전선에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왔습니다.
참호속에 움크리고 언제 있을지 모를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던 영국군들의 귀에 독일어로 부르는 낯익은 노래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영국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독일의 심리전으로 처음에는 생각한 영국군은 저격수를 병사들을 배치하는등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공격은 없었고 그 익숙한 성가와 캐롤이 한곡 끝날때 마다 독일군 병사들은 연합군진영에 대고 '크리스마스'라고 소리 높여 외쳐댔습니다. 연합의 병사들은 상부에 사실 여부를 확인했지만 그 누구도 진위를 파악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합창으로 변해가는 그 노래소리가 전선에 퍼져나갔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 연주되자 영국군에서도 영어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독일군은 이에 용기를 얻어 방호벽 위로 몸을 일으켜 촛불을 그들의 참호 주변에 꽂기 시작했고 캐롤이 끝나자 이번엔 한 독일군 장교가 스코틀랜드 민요인 ‘애니 로리’를 영어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포격이 반복되던 전선이 순식간에 크리스마스 캐롤 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밤새 캐롤이 울려 퍼지고 노래를 다 부르자 한 독일군 장교가 일어나 “나는 장교다. 쏘지 마라. 이제 참호 밖으로 걸어 나가겠다. 영국군 여러분들 중에서도 장교가 한사람 나와 달라”고 외치고 참호 밖으로 나와 영국군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방아쇠에 손을 댄 영국의 병사들은 독일군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총에서 손을 놓았습니다.
독일군 장교의 손에 들려있는건 크리스마스트리였습니다.
곧 영국군 하사가 일어나 독일군 장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고 이어 지휘관들의 만류에도 불과하고 양측 병사들이 그뒤를 따랐습니다.
병사들은 참호중간지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크리스 마스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땅에 잠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참호 밖으로 나온 병사들은 그제서야 그들 사이에 무수히 널려있는 양측병사들의 시체를 보게 되었고 영국과 독일 지휘관들은 시체수습을 위한 잠시 동안의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벨기에 뉴포오트 항구 부근에서 이프레 마을까지 약 40km에 달하는 전선에 배치된 양측 군인들이 ‘크리스마스 휴전’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곧 양측간 전사자들의 시체를 모아 합동장례식을 치뤘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영국군에게 독일군이 독일군에게 영국군이 ...
그리고 시체가 치워지자 들판에서 양측 병사들 영국군이 제공한 가죽 축구공으로 축구경기를 벌였습니다.
피탄공이 가득찬 진흙벌판에서 공을 차고 쫓는 병사들의 함성소리로 가득찼습니다.
독일 군이 이 경기에서 3:2로 이겼다고 합니다.
경기 후에는 병사들끼리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지급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여서 음식과 담배를 교환하고 가족 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양측 병사들이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쥐를 없애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영국군 이발사는 독일군을 이발해 주었고 독일군 의무병은 영국군 부상자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 자발적인 ‘크리스마스 휴전’ 소식을 접한 양측 군사령부는 경악하며 당장 참호로 복귀할 것을 명령합니다.
또 누구든지 크리스마스 휴전에 다시 참여하면 군사재판에 회부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적군 병사와 어떤 형태의 접촉도 금한다는 강력한 명령이 내려옵니다. 일선의 지휘관들에게는 참호를 벗어나 적군 병사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는 현장에서 총살해도 좋다는 지침이 하달됩니다. 포탄이 머리위로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고 병사들에 의하여 멈춰졌던 전쟁은 명령에 의해서 다시 시작 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이 평화를 이듬해 2월까지 허공을 향해 총을 쏴가며 화해 분위기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상부의 강력한 경고에 이기지 못한 영국군이 참호를 넘어 그들에게 다가오는 독일군을 향해 총을 발사하였고 그렇게 평화는 깨어졌습니다. 옳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