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최치언
우울한 날에는 당나귀처럼 설탕을 씹으세요
찬장을 뒤져서라고 설탕을 찾으세요
빠른 길은 동네 슈퍼에 가면 돼요
젖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은 주인에게도 설탕을 권하세요
보건청에서 나온 사람처럼 잔뜩 뒷집을 지고
아! 하면 아! 하세요 그럼 희망을 넣어드리지요 하세요
시든 장미꽃에게도 설탕물을 주세요
썩은 이빨 사이에 설탕을 솜처럼 끼고 웃으세요
자 저를 따라 해보세요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간혹, 불행이 불행을 치료할 수 없듯
설탕은 설탕의 중독을 치료할 수 없답니다―하는 이들이 있는데
꿀벌이 침도 가지고 있다고만 생각하세요
그것으로 인하여 퉁퉁 부르튼 날엔
또 설탕을 먹으세요
설탕이 없는 날엔 당나귀에게 조금 빌려보세요
당나귀 나라의 말로 정중하게 한 발 물러서서
먹다 남은 설탕 있습니까 아랫입술을 세차게 가로로 저어보세요
장미꽃에 얼굴을 묻고 문을 두드리세요
슈퍼 주인에게 어제의 희망의 값을 지불해달라고 위협하세요
당신은 그 동네에서 가장 유쾌한 사람이 될 거예요
누군가 당신에게 설탕을 빌려달라며
이렇게 말하세요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설탕은 달콤 사르르하게 이내 녹아버리지요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걷는사람
<시 읽기>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최치언
스트레스가 마음을 휘감은 때나 배터리가 방전된 듯 피로감을 견딜 수 없을 때 설탕은 그 어떤 보약보다 좋은 약이 되어 줍니다. 달달구리한 맛은 초등학교 과학 시간, 단골 준비물이던 꼬마전구에 불이 켜지듯 자그마한 빛으로 몸과 마음을 환하게 피어나게 합니다. 씁쓸한 인생, 달콤한 설탕으로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시인의 말에 ‘동감!’을 외칩니다.
생각해보면, 달콤함은 늘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달콤함이 인생을 망칠 거라는 어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했고 인내를 강요받으며 자랐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책상 앞에서 아름다운 십 대를 흘려보냅니다. 그렇게 기대했던 이십 대에도 취업이라는 달콤함을 위해 씁쓸한 인내를 삼키고 있습니다. 달콤한 미래를 위해 쓰디쓴 인내로 현재를 견디고 있다면, 당장 당나귀를 찾아가서 설탕을 빌려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되어줄 나만의 설탕을 맛보세요.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 만나는 설탕,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만나는 설탕, 낯선 도시를 걸으며 만나는 설탕, 맘 맞는 친구와의 폭풍 수다 중에 만나는 설탕, 그 어떤 설탕으로든 행복하다면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거예요.
―정진아 엮음, 『맛있는 시』, 나무생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