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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행로
머빈 르로이(Mervyn LeRoy) 감독의 영화 <애수>(Waterloo Bridge,1940)를 보았다면, 기억 상실이 주제가 된 그의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 1942)라는 영화도 꼭 보았어야 할 영화이다.
이야기는 1차대전 이후 1918년 가을 영국 미즈랜드 멜비리지 카운티 정신병원에서 시작된다. 거기에 전쟁터에서 아들이 실종된 어떤 노부부가 방문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기억할 수 없는 존 스미스(로날드 콜맨)를 만난다. 스미스는 노부부가 아들이 아니라며 가버리자, 허탈한 마음으로 뜰을 산책한다. 그러다가 사이렌소리가 울리고 전쟁 끝났다는 소릴 듣고 철문을 열고 밖에 나간다. 스미스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 속에 어딘가로 몰려가고 있는 거리에서 인파를 따라가다가 한 가게에 들린다. 가게 주인 노파는 '뭘 드릴까요?' 묻고 스미스가 주춤거리자, '밤새 고를 거예요? 정신병원에서 나온 거 맞지요?' 확인하고 '천천히 고르세요. 금방 올게요' 하면서 안으로 사라진다. 이때 곁에 묘령의 여인이 나타난다. '방금 정신병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했다면 여기 이러고 있지 말아요. 바로 데리고 가라고 전화를 걸고 있을 거예요' 하고 일러준다. 스미스가 밖에 나오자 그 여인이 따라와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피곤해 보여요. 브랜디로 몸 좀 녹여요. 나도 한 잔 할 거예요' 하면서 술집으로 안내한다. 여인은 뮤지컬 가수 폴라(그리어 가슨)다. 잔을 비운 폴라는 극장에 가봐야 된다면서, '그냥 이렇게 헤어지니까 기분이 좋지 않네요. 당신은 어쩌죠?' 하고 묻는다. '난 괜찮을 거요' 스미스가 대답하자, '이럼 어때요? 쇼를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내 의상실에 있으면 아무도 귀찮게 안 할 거예요' 하고 제안한다. 이렇게 스미스는 폴라를 따라간다. 그런데 폴라가 무대에 나가서 군인들에게 춤과 만담을 선보이고 돌아오니, 스미스가 감기에 걸려 마룻바닥에 쓰러져 있다. 그래 폴라는 갈 곳 없는 그를 방에 데려와 간호하고, 샘에게 부탁하여 쇼단의 일자리를 얻어준다. 그후 폴라가 홀에 내려가 탈출한 환자를 찾는 병원에서 나온 사람을 보게된다. 방에 올라오니, 스미스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요?' 묻고, 폴라는 '말씀드릴 게 있어요. 샘은 당신을 안 쓸 거예요. 병원에서 온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다 말했어요. 당신은 진단할 의사가 필요하고 간호도 받아야 하니 병원에 다시 가는 게 좋겠어요. 당신을 위해서 이러니 무슨 말이나 해보세요' 하고 말한다. 그 말을 듣자 스미스는 낙담하여 말을 더듬으며 겨우 '난...' 이 한마디 밖에 못한다. 그걸 본 폴라는 생각을 바꾼다. 스미스의 모자와 외투를 챙겨가지고 나오며 '잠시 마음 흔들린 내가 창피해요. 당신은 조용한 데 가서 쉬면 금방 회복될 거예요' 하고 말하면서 스미스를 데리고 뒷문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다가 '잠시 버피를 만나야 해요. 밑에 골목으로 나가는 문이 있어요. 거기서 기다리면 금방 갈게요' 그러고 버피에게 숙박비를 정산하고 돌아오니 스미스 옆에 샘이 넘어져 있다. '못 가게 해서 밀었더니 넘어졌어요. 날 혼자 놔뒀어야 했어요' 스미스가 해명한다.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해요' 폴라는 스미스를 데리고 기차로 한적한 시골 마을로 도망간다. 거기 여관에서 샘에게 전화를 걸어, '금방 깨어났고, 머리에 커다란 혹만 남았다'라는 말을 듣고 안심한다.
두 사람은 여관 주인이 소개한 따뜻한 온수가 나오고 호수가 보이는 집을 얻고, 스미스는 리버풀 신문사에 투고를 한다. 폴라가 신문사에서 가져온 편지를 열자, 그 속에 머큐리 편집장이 보낸 2기니 소액 수표가 들어있다. 수표를 보자 스미스는, '내가 작가 기질이 있는지 몰랐소. 고정 수입원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한다. 폴라는 '당신이 자랑스럽다'며 타자를 배우기로 한다. 앞에 낚시할 수 있는 호수가 있고, 뒤에 스미스가 등을 기댄 커다란 고목나무가 있는 곳이다. 스미스는 2기니 수표를 앞에 두고 폴라에게 청혼을 하고, 폴라는 청혼을 받아들인다. 폴라는 'Smithy! 내가 모든 걸 먼저 해야 해요? 키스해 줘요' 키스를 청한다.
교회에서 결혼식 올린 두 사람은 돌다리 밑에 오리가 헤엄치고 지붕 위에 굴뚝이 있는 멋진 신혼집을 찾아간다. 스미스는 폴라의 팔짱을 끼고 허릴 굽혀 하얀 대문을 밀치고 들어간다. 낮게 드리운 꽃가지가 앞을 가리자, 스미스는 가지를 들어 올리며 '좀 쳐내야겠네' 말하고, 폴라는 '아니에요. 예쁜 걸요' 하고 대답한다.
이 집에서 아들을 낳자, 스미스는 아들에겐 고양이 인형을, 폴라에겐 '그렇게 비싼 건 아냐' 하면서 목걸이를 선물한다. 목사님은 전보를 가져오고 거기엔 스미스를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머큐리 편집장의 글이 적혀있다. 폴라는 트렁크에 스미스의 옷을 챙겨주고, 스미스는 열쇠를 포켙에 넣은 후, '언제 돌아와요?' 묻자, '내일 밤 8시' 하고 대답한다.
이렇게 리버풀에 간 스미스는 신문사를 찾아가다가 택시에 머리를 부딪쳐 길에 쓰러진다. 약방에서 곧 의식은 회복했지만, 기억이 바뀐다. 갑자기 머릿속에 총탄 쏟아지는 전쟁터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왜 민간복을 입고 있지?' 묻고, 자신은 현역 군인이라고 한다. 경찰관이 이름을 묻자, '찰스 레이니어'라고 대답하고, 직업은 웨식스 연대장, 주소는 아라스 참호라 한다. 기억의 한쪽이 닫히고 다른 한쪽이 열린 것이다. 날자를 물어보니, 1920년 11월 14일. 딱 3년이 지나갔다. '집에 가야지. 나중에 생각날지 몰라.' 스미스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그렇게 생각한다. 늦은 밤 저택에 도착하여 가족들에게 '자기가 왜 리버풀에 있었고, 거기서 뭘 했는지 모르겠다. 전선에 있었던 건 기억나는데, 그 후 3년간 어디서 뭘 했는지 기억이 없다'면서 주머니 속에 웬 이런 열쇠가 있었다며 보여준다. 가족들은 3년간 소식이 끊겼다가 하필이면 부친 장례식날 밤에 나타난 걸 의심하지만, 키티는 잘 생긴 삼촌의 귀환을 환영한다. 변호사가 유언장을 개봉하니 사업체는 형 몫이고, 집은 찰스 몫이다. 떠날 때 키티는 찰스에게 다가와 담밸 달래서 한 모금 빤 후 '나는 3년 있으면 18살이 된다. 큰집에서 외롭지 않으냐? 방학 때 여기 와서 당신을 돌보면 안 되냐?'하고 묻는다. 떠난 후는 답장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자 호칭도 '그리운 찰스'로 변한다. 졸업하자 책상 위에 놓아달라며 사각모 쓴 졸업 사진을 보낸다.
찰스는 캠브릿지에 가서 공부하거나 글을 써볼까 하다가 사업을 시작하고, 몇 년 후 신문은 그를 '영국 산업의 왕자'라고 표현한다. 키티는 찰스를 찾아와 '잘 생긴 당신 때문에 이젠 다른 남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키스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구한다. 키티가 간 후 사무실에 돌아온 찰스는 주머니에서 그 알 수 없는 열쇠를 꺼내어 만지작 거리다가 여비서를 부른다. 그때 나타난 여비서 핸슨이 바로 예전의 아내 폴라다. 폴라는 스미스가 떠난 후 아들을 잃고 병들어 무대에 설 수도 없어, 웨이트리스와 판매원을 거쳐 어떤 회사에서 비서로 일했다. 그러다가 몇 주 전 찰스의 신문 기사를 보고 찾아온 것이다. 폴라는 서류 중에서 둘이 살았던 데본의 멜브리지 공장 사진을 일부러 보여주지만, 찰스는 기억이 없다. 곧 결혼할 거라며 한 달 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상대가 누구예요. 키티?' 하고 묻자, '네 그래요, 괜히 날 따라서 핸슨 양도 결혼하지 말아요' 하고 대답한다. '면접 볼 때 결혼한 적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말하자, '아들이 있었지요?' 찰스가 묻고, '아들은 죽었어요' 폴라는 대답한다.
한편 키티는 피아노 반주로 결혼식장에서 부를 찬송가를 고르다가, 그 음악을 듣고 찰스가 허공에 멍하니 눈길을 보내며 뭔가 딴 세계를 헤매는 모습을 보자, 자신이 소용없는 존재란 걸 깨닫고 떠나버린다. 사무실에서는 찰스의 행방이 묘연해 난리가 나고, 폴라는 집사한테 찰스가 리버풀에 갔다는 말을 듣고 달려간다. 찰스는 '과거를 조금이라도 찾아볼까 해서 여길 찾아왔지만 실패했다'고 말하고, 폴라는 리버풀에 대해서 잘 안다면서 몇가지 질문을 던진다. '리버풀에 업무차 갔다면 사고가 났을 때 어디를 걷고 있었지요?' 찰스는 '메이플가 북쪽으로 걷고 있었소' 하고 대답한다. '거긴 호텔이 둘 있어요. 호텔에 당신 짐이 있겠군요.' 이렇게 두 사람이 호텔로 찾아가고, 거기서 존 스미스란 명찰이 붙은 트렁크를 개봉한다. 그러나 찰스는 '참으로 형편없는 누구였던 것 같군. 이 넝마조각들이 잘 설명해 주잖아요?' 자기 짐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자유당 집회에 참석하겠으니 런던행 아침 기차를 예약해 줘요' 하고 말한다. 다음 날 입당 환영 파티장에서 정치인들의 축하 인사를 받던 찰스는 폴라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왜 날 그렇게 바라보세요?' 묻자, '처음 사무실에 왔을 때부터 전에 알던 사람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하고 대답한다. 찰스는 폴라에게 '의회 활동에 당신 도움이 필요해요. 당신 없인 일을 할 수 없오. 신중히 생각했어요. 둘의 외로움을 한데 합치는 건 어떨까요?' 청혼을 하고 폴라는 승낙한다.
내각에 입각한 찰스는 수상이 초대한 파티에 참석하고 폴라는 수상과 춤을 춘다. 그날 밤 찰스는 결혼 3주년을 기념하여 폴라에게 루이 왕녀가 사용했던 목걸이를 선물한다. 폴라는 방에 돌아와 화장대에서 신혼 시절 스미스가 선물한 목걸이를 꺼내어 바라보며 '스미시, 오 스미시!' 하면서 울먹인다. 이때 노크하고 들어온 찰스는 폴라 손에 쥐어진 목걸이를 본다. '싸구려 목걸이예요' 해명하자, '그래도 당신에게 소중한 거겠지요' 위로한다. 폴라는 목걸이를 눈동자 근처로 가져가며 '그가 내 눈동자 색깔이라 했어요' 하고 말하지만, 찰스는 '죽은 사람이 당신의 영혼마져 가져간 건가요?' 섭섭해 할 뿐이다. 폴라는 '그녀가 당신 곁을 스쳐갔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만나고도 못 알아 본거예요, 찰스! 그가 나일수도 있어요' 하고 말하지만 찰스는 깨닫지 못한다.
폴라는 기분전환도 할 겸 신혼 시절에 살았던 데본에 가서 이틀 머문 후, 남미의 리오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찰스는 폴라를 역까지 배웅하고, 멜브리지 케이블 회사의 파업 현장에 내려간다. 일을 처리하고 기차역으로 걸어가던 중이다. '담배 있나?' 수행원에게 묻고, 수행원이 없다고 하자, '저 코너만 돌면 담배가게가 있네' 하고 말한다. 과연 코너를 돌자 담배가게가 나온다. '뭘 드릴까요?' 가게 주인은 옛날 그 노파다. 찰스가 밖에 나와 담뱃불을 붙이자, '혹시 전에 멜브리지에 온 적 있습니까?' 수행원이 묻고, 찰스가 없다고 하자, '저 코너만 돌면 담배가게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하고 일깨워준다. '내가 그랬나?' 찰스가 묻고, '담배가게는 코너에 있어 역에서 보이지도 않았어요' 수행원이 말하자, '맞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 가게. 그 노파를' 하고 말한다. 택시가 오자 찰스는 기사에게 병원이 어디 있는지 묻고, '새 병원이요? 구 병원이요?' 묻자, '구 병원 일거요. 언덕 위에 있어요. 높은 담에 둘러싼 거대한 철문이 있고'라고 말한다. 정신병원을 찾아가자 찰스는 '거리는 흥분한 사람들로 가득했어. 난 뭔가로부터 쫓겨가고 있었고 두려웠어. 거기에 한 여자가 있었지'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한편 남미로 떠나기 전 데본에 들른 폴라는 짐을 기차역에 보내고 역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몇 년 전에 여기 살았어요. 다벤트 부인이 살아계셨을 때요' 하고 호텔 여사장에게 말하자, 여사장은 '부인은 3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방금 어떤 신사분도 디벤트 부인과 목사님, 그리고 몇년 전에 살았던 교회 근처 작은 집을 찾고 계셨어요' 하고 말한다. 그 말을 듣자 폴라는 '실례해요' 하는 말을 남기고 급히 옛날 집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호숫가 다리 옆의 그 집 앞을 서성거리는 찰스를 발견한다. 찰스는 옛날처럼 삐꺽거리는 하얀 나무문을 밀치고 들어가 늘어진 꽃가지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에 대자 문은 스르르 열린다. 그때 뒤에서 폴라가, '스미시. 오! 스미시! 찰스 이름을 부르고, 그 소리에 돌아선 찰스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진다.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폴라!' 찰스는 달려가 폴라를 품에 안는다.
원작 <Random Harvest>의 저자는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인데, 그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으로 알려진 작가이다. 그리어 가슨은 런던대학과 프랑스 그로노블 대학에서 수학한 재원이다. 지적이며 정제된 연기로 영화에서 구원의 여성상을 제시했다. 1942년 <미니버 부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오만과 편견>, <퀴리부인> 등에 출연했다. 로널드 콜맨은 1920년대 초반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활동한 배우로, 실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폭탄가스로 신경증을 앓고 몇 달 후 훈장을 받고 제대했다.
(지구문학 2023년 가을 호)
첫댓글 몸 컨디션도 그렇고 머리도 점점 티미해져서 이번 호로 연재 끝냈다. 영화수필을 4년간 실어준 <지구문학>에 감사했단 인사 말씀 보냈다. 아쉽기도 하지만, 앞으로 갈수록 글이 더 무디어질 것이니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글쓰기 보다 그림을 그려볼 작정이다.
김교수!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이젠 쉬실 나이도 되었고 ...그림 참 좋습니다.
생각 대로 하시길 바랍니다.응원 합니다.
창구기 성님 항상 고맙다. 추석 잘 쇠시소.
항시 고맙게 생각 하고 있습니다,성님도 추석 명절 잘보내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