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68]다산茶山다운 글을 발견한 기쁨
등화가친燈火可親, 독서의 계절이 왔건만, 웬일인지 두세 달 전부터 그 어떤 책도 읽혀지지 않는, 읽고 싶지도 않은 ‘무기력증’으로 은근히 걱정이 됐다. 그런 가운데, 오늘 새벽, 마음 먹고 고른 책이 <다산어록청상茶山語錄淸賞>(정민 지음, 2015년 16쇄, 273쪽, 한영문화사)이다. ‘淸賞’은 맑게 감상한다는 의미. 책의 부제가 ‘옛사람 맑은 생각, 정신을 맑게 하는 청정한 울림’이어서 펴든 것이다. 사람은 하루를 산대도 ‘정신이 맑아야 하는 법’이거늘, 근 100일 멍허니 있다보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이때의 ‘멍하니 바보’란 내가 잘 즐기는 툇마루에서 툭 트인 들판을 바라보는 ‘들멍’(아무 생각없이 들판을 건너 산중턱의 완주-순천고소도로와 전라선 철도 그리고 일반국도 17번을 오고가는 차량을 바라보는)과는 성격이 다른 '멍'이다.
이 책이 재밌는 것은 우리 삶의 자세 전반에 대한 성찰과 충고를 담고 있는데, 다산의 시대와 21세기 정보화시대가 결국은 같기에 곧바로 통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이다. 다산이 귀양 가기 전 금정찰방으로 좌천됐을 때 우연히 <퇴계록> 한 권을 얻었는데, 그 책에 실린 퇴계의 편지를 날마다 한 편씩 ‘야금야금’ 맛있게 읽으며 자신의 단상斷想을 써놓았다. 그 단상을 묶은 책이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그런데, 한양대 정민 교수가 <다산시문선>을 감상하면서, 키워드별로 적어놓은 감상을 10가지 주제로 각각 12항목씩을 배치하여 묶은 책이, 바로 정민의 <다산사숙록>인 셈이다. 다산의 <도산사숙록>과 정민의 <다산사숙록(책명은 다산어록청상이지만)>, 참 재밌지 않은가. 이런 것이 고금古今과 시공時空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10가지 주제는 ▲경세警世 ▲수신修身 ▲처사處事 ▲치학治學 ▲독서讀書 ▲문예文藝 ▲학문學問 ▲거가居家 ▲치산治産 ▲경제經濟이다. 각각의 주제에는 12개 다산의 글이 원문과 함께 번역과 정민 특유의 감상문이 짧게 짧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읽기에 너무 편하다.
완독을 기약하며, 내가 가장 흥미로운 키워드 ‘문예’편에 실린 ‘시의 마음’을 먼저 읽었다. 평생 처음 본 한자투성이여서 옥편을 여러 번 찾아볼 정도로 어려웠다. <奏樂者始作金聲之 及終上振之(음악을 연주하는 자는 금속악기로 시작해서 마칠 때는 소리를 올려 떨친다). 純如繹如翕如也 於是乎章成(순수하게 나가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마침내 화합을 이룬다. 이렇게 해서 한 樂章이 이루어진다). 天以一歲爲一章(하늘은 일년을 한 악장으로 삼는다). 其始也 敷蕃姸豔 百華芬郁(처음에는 싹트고 번성하며 곱고도 어여뻐 온갖 꽃이 향기롭다). 及其終也 縇染糚塗爲之朱黃紫綠(마칠 때가 되면 곱게 물들이고 단장하듯 색칠하여 붉은 색과 노란 색, 자줏빛과 초록빛을 띤다). 洋洋之亂 照耀人目而後 收而藏之(너울너울 어지러운 빛이 사람의 눈에 환하게 비친다. 그러고 나서는 거둬들여 이를 간직한다). 所以顯其能而光其妙也(그 능함을 드러내고 그 묘함을 빛내려는 까닭이다). 若使商飇一動 蕭然不復振發 一朝廓然隕落 其尙曰成章云乎哉(만약 가을바람이 한 차례 불어오자 쓸쓸해져서 다시 떨쳐 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텅 비어 떨어진다면 그래도 이것을 악장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余山居數年 每遇紅樹之時 輒具酒爲詩 以歡一日 誠亦有感於曲終之奏也(내가 산에 산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매번 단풍철을 만나면 문득 술을 갖추고 시를 지으며 하루를 즐겼다. 진실로 또한 한 곡이 끝나는 연주에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金聲은 금속악기. 繹(역)은 풀어내다 이어지다. 翕(흡)은 모으다, 합하다. 장(章)은 악장(樂章). 一歲(일세)는 1년. 敷(부)는 (싹이) 퍼지다. 蕃(번)은 우거지다. 姸(연)은 곱다. 豔(염)은 艶(염)과 같고 곱다의 뜻. 芬(분)은 향기롭다. 郁(욱)은 향기롭다, 무성하다. 縇染(선염)은 곱게 물들이다. 糚塗(장도)는 단장하듯 색칠하다. 洋洋之亂(양양지란)은 (파도처럼) 너울너울 어지럽다. 商(상)은 헤아리다. 飇(표)은 회오리바람. 蕭然(소연)은 쓸쓸하다. 不復振發(불복진발)은 다시 떨쳐 피지 못하다. 廓然隕落(확연운락)은 텅 비어 떨어지다. 尙(상)은 오히려. 余(여)는 나 자신. 每遇紅樹之時 (매우홍수지시)는 매번 단풍들 때를 마주하다. 輒(첩)은 문득.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석학으로 큰 학자(great scholar)이기 전에 위대한 철학자(philosoper)였으리. 그러기에 18년의 유배생활을 유유자적 견디며, 물경 500만자의 저작을 남겼으리라. 아무렴.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저서가 있다는 게 믿어지시는가.
모처럼 한자와 한문공부를 해서인지 글을 읽어도 뿌듯하다. 정민교수의 해설은 쉬워 이해가 잘 된다. 무슨 군말이 필요하랴. 그대로 옮기는 까닭이다.
“한 곡의 음악에도 시작이 있고, 절정이 있고, 대단원이 있다. 처음엔 느직히 해맑은 가락으로 시작하여, 중간에 호흡이 거칠어지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여러 악기가 일제히 제 소리를 내며 밀고 당기는 드잡이질을 한다. 마침내 최고조에 달하여 듣는 숨이 가빠질 때면 슬며시 여운을 남기며 소리를 거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도 조물주가 내려운 4악장의 교향악이다. 꽁꽁 언 대지를 녹이며 꽃들이 피어난다. 세상은 경이驚異로 가득 차서 믿지 못할 눈앞의 기적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꽃 진 자리에 새잎이 나고, 연두색이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면서 사물이 자란다. 그 따가운 볕에 열매는 익어 고개를 숙인다. 단풍은 대지 위에 온통 알록다록한 비단을 펼쳐 놓았다. 어느 틈에 나무들은 두 팔을 높이 쳐들고 빈손으로 예배를 드린다. 다시 찬 바람이 낙엽을 쓸어간다. 정결한 대지 위에 흰 눈이 덮여 편안한 안식의 자리를 마련하다. 시의 눈, 문학의 마음은 이런 대지의 노래, 조물주가 들려주는 악장樂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감사와 찬미의 눈길로 고마움에 화답하고, 그것을 노래하여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자연예찬自然禮讚의 명수필이다. 소리내어 읽다보니 ‘할렐루야’가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