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가의 손길이 닿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진다. 나 자신이 경험한 바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내 경험이 아니면 그 어떤 경전도 인용하지 않는다. 지난 30, 40년 동안 나는 전에 없이 음식을 즐겨왔다. 깨달음 이후로 나는 모든 것을 깊게 만끽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류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도 음식을 먹지만 입으로는 음식을 씹으면서도 마음속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데 어떻게 맛을 음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는다. 그리고 부유한 나라들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나 몸매를 가꾸려고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한다. 뚱뚱한 사람은 자신이 음식으로 공허함을 채우고 있다는 걸 비만을 통해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도달하고 나면, 그대가 먹을 때 그저 먹기만 한다. 그대는 거기에 없고 오직 먹는 과정만 존재한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 화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춤을 출 때 그 춤 속에서 춤꾼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나는 화가나 춤꾼이나 가수들만 삶을 만끽할 특권을 가진 게 아니라는 점을 그대에게 가르쳐주고자 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갖고 태어난 권리이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음식을 조리하거나 집안을 청소하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대가 뭘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행위자가 그 행위 속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대가 행위와 분리된 채로 머물러선 안 된다. 그대가 분리되면 지루함이 생길 것이다. 매일 아침 집안을 청소할 때... 모든 주부들이 완전히 지루함에 빠진다. 모든 남자들은 똑같은 일, 똑같은 멍청한 고객들에게 지루함을 느끼고, 주부도 집에서 지루해한다.
명상가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는 삶을 풍요롭게 살아간다.
나는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바이다. 그가 주변에 온갖 사치품을 갖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의 비전, 그의 태도, 그의 접근방식은 평범한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
오쇼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첫댓글 오쇼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신하지만 석가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남으로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였다. 오쇼의 깨달음과 석가의 깨달음이 다른지는 몰라도 그 깨달음의 가치는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느냐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으로 오쇼처럼 자만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깨달음으로 내려놓음을 실천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