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ENGINE 엔진 너머의 미래
필자 안병기는 서울공대 학-석사, 버지니아 공대 박사로 미국 에너지부 산하 ‘퍼시픽 노스웨스트’ 국립연구소에서 연료전지와 경량화 소재를 연구했다. 현대차에 입사하여 20년 수소연료차,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기여했다. 삼성SDI 부사장, 한국인 최초로 미국 완성차 빅3 ‘스텔란티스’에서 배터리 담당 국제 담당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 책 외에 4권의 저서가 더 있다. 그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이름 없는 영웅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전기차의 대중화는 아직 때가 이르다’는 것이다. 향후 10년은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더 쉬운 선택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는 자율주행이나 SDV(Software Defined Vehicle)를 구현하기 위해서 전기차가 더 적합하다는 데는 동의 한단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족한 인프라, 정부 보조금이 없이는 구입하기 망설여지는 높은 차량 가격. 심심찮게 들려오는 배터리 화재 소식 등을 감안하며 굳이 전기차를 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대중은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전기차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폭스바겐은 다시 600억 유로를 내연기관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차의 과거와 현재를 보자. 실제로 최초의 충전식 전기 자동차는 1881년에 ‘귀스타브 트루베’가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내연기관차 ‘벤츠 파텐트 모터바겐’보다 4년이나 앞선 시점이다. 한 번 충전으로 340킬로 미터까지 주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기차는 주행거리 외에 다른 약점이 있었다. 최고속도가 시속 20마일밖에 되지 않았다. 점차 내연기관에 비해 열세에 놓이게 됐다. 1910년대에 전기차는 절정기를 맞이하여 매년 1,200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엔진 차량이 득세하는 1920년대가 되면서 시들기 시작했다. 내연기관의 시동을 전기점화로 교체하면서 가솔린의 수요는 급증했다. 전기차보다 빠르고 주행거리에 대한 염려가 덜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도요타는 전기차 개발을 ‘안 한’ 것이다. 판매량 1위 도요타의 전략에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품었다. 도요타의 미래가 ‘노키아’나 ‘코탁’과 같아질 것이라 우려하면서 몰락을 예견했다. 사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라는 친환경 기술을 가지고 있어,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환경규제에 대처할만한 여건이 충분했다. 도요타는 전기차의 시장 확대는 2030년 이후가 될 것이라 믿고, 그 시기에 맞추어 전략을 수립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확신은 1997년 시작된 하이브리드의 신화와도 관련이 있다. 내부에서도 의심하던 하이브리드 기술이 지난 30년간 회사를 성장시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려놓았다는 자신감이다. 10년 이상 손해를 보면서도 하이브리드를 포기하지 않고 결국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이후 4년 만에 누적 손실을 모두 극복한 2000년대 당시의 경험이 있기에, 도요타는 구체적인 로드맵과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외부의 동향에 개의치 않고 움직인다.
전기차의 시대가 늦게 오리라는 믿음으로 하이브리드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도요타나, 모든 환경차 분야를 동시다발적으로 개발한 현대자동차그룹, 또 전기차에 모든 승부수를 던진 테슬라 중 누가 미래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서로 다른 전략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기차 캐즘이 가져온 긍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 준비되지 않은 기존 완성차 기업들에게 시간을 벌어주었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맛에 일부 소비자는 하이브리드라는 대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기 전의 ‘징검 다리’ 역할을 예상했으나, 이 기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kWh 미만의 작은 배터리를 장착했음에도 연비가 기존 동일 차종 대비 50%가량 증가한다는 사실은 전기차에 아직 우호적이지 않은 소비자의 시선을 돌리기에 충분하다. 별도의 충전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전기차의 특성을 지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소개되면서, 전기차 이전에 하이브리드 시대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왜 골짜기에 빠졌는가? 전기차에 낙관론으로 인한 부작용은 아직 모두 파악되지도 않았고, 해결책은 논할 단계는 더욱 아니다. 언론에서 찾을 수 없는 내부 진통과 고민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체감할 수 있게 다가온다. 미국 지역의 배터리 기업들은 수시로 인원을 감축하고, 다른 국내 기업들도 상당수의 주재원을 본국으로 복귀시키고 있다. 완성차 기업으로부터 받았던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일이 많아서이다. 사유는 배터리 가격을 둘러싼 압력들 때문이다. 전기차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배터리 셀의 가격을 내려야 한다. 특히 양극재의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가격을 낮추는 사양이 대부분 성능과 내구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려의 요소 최적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한때 낮은 가격과 높은 에너지 밀도 요구 조건을 만족하는 고니켈 사양이 해답이라고 생각했으나,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격 외의 또 다른 장벽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로 화재 안전성이다.
충전 불안증, 충전소를 만드는 데 한 기당 20~30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에 섣불리 뛰어들 기업이나 지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2025년 전기차 시대가 오면 충전소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길 거라고들 예상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은 가정마다 있는 차고에서 완속 충전기를 갖추고, 밤 시간을 이용해 충전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내연기관을 위한 주유소는 미국에 15만 개 정도다. 이 중 12만 개 이상이 주유와 편의점을 함께 운영하는 데, 사실 주유소의 수익은 60~70%가 이 편의점에서 나온다. 충전소 문제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충전할 전기는 충분한가? 국내 전기차는 68만 4천 대로 등록 차량의 2.6%다. 한 대가 연간 필요한 전력이 3~4,000kWh가량이다. 국내 총소요는 20.5억~27.4억kWh 정도다. 하지만 2030년 말 전기차 예측, 누적 대수가 420만 대였으니 향후 5년 후 추가로 필요한 전력량은 105억~140억kWh가 된다. 국내 전력 생산량으로 현재보다 화력발전소 4~5기, 원자력 발전소 2기 가량이 더 필요하다. 발전소 건설은 공기가 길다. 그러니 정책입안자의 발전소 건설을 단기간에 가능한지, 또 전기차를 위한 추가 발전 시설이 실제 얼마나 필요한지, 정확하고 치밀한 분석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전기차 충전을 ‘집 안에 있는 전기 소켓에 전깃줄을 연결해서 충전하면 되는 것’으로 아는 소비자가 많다. 그러나 전기차의 전력 수요는 이보다 훨씬 많고, 충전을 위한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가구당 여름철 월 평균 전력 사용량이 약 360kWh이니, 현대 코나 전기차를 한 달에 6회 충전하기 위해서는 한 가구가 한 달간 사용하는 전기가 필요하다. 120가구 아파트 단지에 평균 시간당 0.5kWh를 소모한다면 60kWh다. 즉 코나 한 대 충전하는 동안 다른 아파트의 전력은 모두 중단해야 한다. 변압기도 문제다 500가구 단지의 변압기 용량은 800~1,600kW로 알려졌다. 만약 100가구가 전기차를 가지고 있고 이 차량이 7kW의 완속 충전기를 이용해 동시에 충전한다면 700kW가 필요하다. 아파트 총 전력의 한계에 도달한다. 모든 가구의 냉장고와 가전제품과 엘리베이터는 어쩌라고! (뭐, 쉬야지! 그럼 냉장고 식품 변질, 그간 통신과 TV 시청은, 노인의 이동권은 누가 책임지려나! 이런 질문이 나온다.)
왜 골짜기에 빠졌는가-2, 비기술적 요인, 정부 보조금의 착시 효과. 하이브리드가 비쌌던 이유는 사용된 배터리의 높은 가격과 미미한 규모의 경제 때문이었다. 보조금을 줘도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 가격은 지나치게 높다. 문제는 보조금의 원천이 국민 세금이라는 점이다. 소수의 국민에게만 특혜를 주기는 어렵다. 실상 우리나라는 2.6%의 전기차 소유자들 위에, 미국은 1.4%를 위해 국민 전체의 세금이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표심’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에 민감하다. 몇 년 전으로 돌아가면, 글로벌 환경 이슈와 저감 등 전기차가 필요한 이유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었고, 많은 전문가는 수년 내에 전기차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보았다. 전기차와 관련된 정책을 시행하고 전기차 소유자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 미래의 표심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보였다. 종합하면, 20여 년 가량 지급되었던 정부 보조금이 당장 중단되지는 않겠지만 점점 더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도 2020년 이후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가 방침을 철회한 바 있다. 보조금 지급이 내키지는 않으나 이제 와서 당장 중단하여 전기차 시장을 위축시킬 수 없다는 고층이 단적으로 드러난 예다. 많은 국가들이 보조금을 줄이고 폐지하겠다고 공언하지만, 그 시점은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정부가 생각하는 시한까지 전기차의 가격이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전기차 캐즘은 훨씬 더 오래 갈 수도 있다. 보조금 없이도 내연기관과의 가격 격차가 10~20% 정도로 낮아지는 시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6.02.12.
엔진 너머의 미래
안병기 지음
흐름출판 간행
첫댓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