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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병역의혹, 결정적 단서 포착
이명박이 병역면제 받은 시기는 1965년 3월입니다. 그런데 한국군은 1964년 하반기부터 월남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많은 군인들이 위험스러운 월남전에 차출되었고 그래서 1965년 당시는 군대에 가는 것이 무척 두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얌체족들은 기를 쓰고 병역면제를 받을려고 했습니다.
간장 마시고 결핵으로 위장해 면제 받기, 손가락 자르고 면제 받기, 가슴에 쇳가루 바르고 엑스레이 사진 찍기, 물에 석회가루 타서 마시고 엑스레이 사진 찍기, 엑스레이 필름 바꿔치기 등 수법이 많았습니다.
다음 신문기사를 보십시오. 과거의 병역면제 요지경 세태를 알수 있습니다. 지금 보면 우스워 보이지만 그 시절에는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펌)
병역면제수법 요지경 변천사
[스포츠조선] 2004-09-10 12:30
일부 프로야구선수들과 연예인들의 병역비리가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과거에도 병역을 회피하려던 '어설픈 수법'의 사례들이 있어 그 변천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50년대 : 간장으로 결핵 위장 - 손가락 자르기도
▶60년대 : 촛불 응시해 사시로 - '석회가루 마시기'
▶70년대 : 쇳가루 발라 X레이 사진에 구멍 '숭숭'
▶80~90년대 : 부유층 무릎 연골 제거 적발되기도
▶2000년대 : 온 몸 문신으로 면제받으려다 철퇴
50년대 가장 흔한 방법은 항간에 나돌던 '간장 마시기'. 간장을 마시고 신체검사를 받으면 결핵에 걸린 것처럼 X-레이 사진에 하얗게 찍혀 면제를 받는다는 것.
60년대는 '촛불 쳐다보기'와 '석회가루 마시기'가 유행했다. 신체검사 전날 밤 전등을 끄고 촛불을 밤이 새도록 계속 응시하면 일시적으로 사시가 되거나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병역 면제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석회가루를 물에 타 마시는 것도 한때 유행했다. 폐병환자처럼 X-레이 사진이 하얗게 나와 병역 기피자들이 많이 시도.
70년대의 일명 '쇳가루 바르기'는 신검을 앞두고 가슴 부위에 쇳가루를 바르면 X-레이 사진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으로 나타나 면제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병무청 관계자는 "체계가 덜 잡혀 신체검사가 완벽히 이뤄지지 않았던 옛날의 일"이라고...
-하략-
이와 같이 과거에는 면제받는 방법이 많았습니다. 이명박은 2006년 11월 27일 자신의 병역의혹에 대해 일부 설명을 하였지만 많은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기관지확장증과 활동성 폐결핵으로 1965년 3월 병역을 면제받고 1965년 7월 즉 3개월만에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술을 마신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이 "현대건설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술마신 사건"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같은 사실은 2006년 1월18일 브레이크뉴스 대구 경북판에 나온 내용입니다. 전 울진신문사 대표인 조영환씨의 글 중에...
이명박은 1965년 7월 그의 나이 만 24세에 현대건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 그리고 강릉에서 열린 신입사원 환영모임에서 그는 입사동기 누구보다도 주량이 쎈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동기들이 모두 술에 취해 나가 떨어질 때 그는 멀쩡했다고 한다. 폐결핵 환자에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네가티브와 검증은 무엇이 다른가? 네가티브는 거짓으로 의혹을 만들고 그것을 침소봉대하여 상대방을 흠집내는 것이고 검증은 사실에 기초하여 애국심,인격,정직성,용기,도덕성 등을 검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검증은 합법적인 것이고 또 필요한 것입니다.
이명박은 1965년 3월 기관지확장증과 활동성폐결핵으로 병역면제를 받고 그해 7월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술을 매우 잘 마셨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병역 부정면제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면제를 확신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비활동성 폐결핵과 달리 활동성폐결핵은 결핵균이 폐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상태로서 전염의 우려가 있는 질병으로서 급히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 위독한 폐결핵입니다. 이러한 폐결핵을 고칠려면 현재에도 6~9개월 동안 약물치료를 해야 합니다.
더우기 60년대에 폐결핵은 거의 불치병이었고 고친다 해도 1년6개월 이상의 치료기간이 필요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만일 이명박이 병역면제를 받고 약 2년동안 폐결핵치료를 한후 1968년쯤에 회사에 입사를 했다면 의혹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60년대 폐결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명박씨가 활동성폐결핵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시기인 60년대 시절의 폐결핵에 대해 알수 있는 중요한 증언을 입수하였습니다.
다음 글은 50년대에 미군부대에서 활약하다 그후 미국에 가서 활약한 보컬그룹 김시스터즈가 쓴 글인데, 60년대 폐결핵은 요즘의 암처럼 불치병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1962년 당시 폐결핵과 싸우던 남인수씨 이야기임.) <퍼옴>
김시스터즈 자전적 풀 스토리(9)
-남인수의 병간호를 하고 있는 이난영씨-
-앞부분 생략-
원래 결핵은 전염성이 강해 가족과도 격리되어 치료를 받는 병이다. 그러나 이난영은 이런 것들에 전혀 아랑곳 않고 오로지 지극 정성으로 또 뜨거운 헌신과 사랑으로 남인수의 병을 낫게 하려고 노력했다. 집에서는 보약과 탕재를 끓여 정성껏 보살피고 공연을 나가서도 찬바람이나 맞을까 노심초사하며 남인수를 돌보는 것이었다. 이난영의 이런 천성은 타고 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남인수의 요절
그러나 남인수는 지병인 폐결핵이 점차 깊어갔다. 지금만 해도 병도 아닌 결핵이었지만 당시로는 요즘의 암과 같이 매우 치유가 힘들었다. 이난영은 남인수의 병석에 앉아 남인수가 좋아하는 「황성 옛터」를 불러주며 눈물로 치유를 기도하였지만 점차 기력은 쇠잔해 간 것이다.
때는 1962년 6월 26일. 그는 4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연예협회 주관으로 안국동 조계사에서 「애수의 소야곡」을 장송곡 대신 부르면서 거행되었고 이난영은 다시 홀로 남아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이난영의 일생은 「목포의 눈물」이 히트곡이 되어서인지 자신의 인생에 눈물이 너무 많았다.
-하략-
이와같이 60년대 당시에 폐결핵은 거의 불치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 당시에 폐결핵이 고질병이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좋은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현재 폐결핵 치료에 사용되는 1차 항결핵제는 4가지 정도인데 그것은 스트렙토마이신, 아이나(이소니아지드=나이드라지드), 에탐부톨, 리팜피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약이 리팜피신인데 리팜피신은 새로운 타입의 항결핵제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결핵치료제입니다.
그런데 1962년~1966년에는 세상에 리팜피신도 없었고 에탐부톨도 없었습니다. 그런 약들은 60년대말부터 70년대초에 개발된 약입니다. 따라서 60년대 초중반에는 폐결핵을 고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재수좋게 고친다 해도 결핵치료에 보통 1년6개월 이상 걸렸습니다. 리팜피신이 나오고부터 치료기간이 6개월로 단축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60년대에는 주로 스트렙토마이신과 이소니아지드로 치료를 했는데 스트렙토마이신은 결핵균이 이 약에 대해 쉽게 내성이 생겨 문제였습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약이 바로 에탐부톨이라는 약입니다. 다음 자료를 보십시오.
옥스퍼드 저널(oxfordjournals)에서 발췌한 리팜피신 관련 내용
Rifampicin, a broad-spectrum antibiotic discovered in 1963 and introduced for TB chemotherapy in 1971, is the most potent of current anti-TB drugs in rendering sputum cultures negative for M. tuberculosis during short-course chemotherapy.
리팜피신은 1963년에 발견된 광역항균제인데 화학요법용 결핵치료제로는 1971년부터 도입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리팜피신이 폐결핵환자에게 제공되기 시작한 것은 1971년이란 뜻임) 리팜피신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결핵치료제이다. 이하생략~
Isoniazid, which remains the most effective drug at killing actively dividing tubercle bacilli, was discovered and brought into clinical use in 1952. By combining all three drugs, treatment length could be reduced to 18 months. Over the next two decades further anti-tuberculosis drugs were discovered which could be added to the treatment regimen.
이소니아지드는 결핵균을 죽이는 매우 유력한 치료제인데 1952년 치료에 도입되었다. 세가지 약(스트렙토마이신,PAS,이소니아지드)을 조합해 사용함으로써 결핵치료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되게 되었다. 그 이후 20년동안 한층 더 많은 결핵치료제가 개발되었다.
In the late 1960s a new and perhaps the most important drug in the treatment of tuberculosis was discovered: Rifampicin. This drug was able to kill the very slowly dividing bacteria, the so-called "persisters" in a way that the other drugs could not. It was found that by combing this drug with at least two others initially, the length of treatment could be reduced to as little as six months. So the new standard of treatment of tuberculosis became isoniazid (H), rifampicin (R),and pyrazinamide (Z) for two months followed by isoniazid and rifampicin for four months. This is conveniently abbreviated to 2HRZ/4HR,
60년대 말에 새롭고도 가장 중요한 결핵치료제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리팜피신이었다. 리팜피신은 매우 느리게 분열하는 세균(끈질긴 결핵균)을 죽일수 있었는데 이러한 능력은 다른 약이 갖지 못한 능력이었다. 다른 치료제 2개와 이 약을 결합하여 사용함으로써 결핵치료의 기간은 6개월로 단축되게 되었다. 이하생략~
이상의 자료에서 알수 있듯이 60년대 특히 60년대 초중반에는 폐결핵이 매우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좋은 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폐결핵환자 근처에 가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지금의 폐결핵환자를 생각하며 폐결핵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큰 오산입니다.
그런데 더 경악할 사실은,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입사하기 전에도 다른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인천의료원 신경정신과 김종석 과장이 이명박에 대해 쓴 글인데 한번 봅시다.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입사하기 전에도 몇군데 다른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고 면접시험을 보는 등 건강하게 활동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펌)
대선후보 검증시리즈
이명박 서울시장
김종석 인천의료원 신경정신과장 mdjskim@naver.com
대학시절 6·3한일회담반대운동을 주도한 이명박은 졸업 후 ‘내란선동죄’ 경력 때문에 취직할 수가 없었다. 몇 군데 입사시험을 치렀지만 2차 서류전형이나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 한구석에서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할 역군 모집’이라는 작은 광고를 보았다. (참고: 뒷부분 이것이 현대건설 모집광고)
건설회사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말에 감전된 듯 이끌렸다. 현대건설에 입사원서를 낸 뒤 1차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문제는 면접이었다. ‘인사부장 면담요(要)’라는 불길한 전보가 날아들더니, 이어 만난 인사부장은 아니나다를까 학생운동 전력(前歷)을 걱정했다. 이명박은 정면으로 부딪쳐 보기로 작정했다.
-이하생략-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명박은 병역면제 받자마자 거의 곧바로 신나게 활동했다는 것 아닌가요? 놀라 자빠질 일입니다. 60년대 당시에는 폐인이나 다름이 없었던 활동성 폐결핵환자가 병역면제 받자 마자 회사에 입사를 하려 했다니...
그리고 1965년 현대건설 사원모집 광고를 보면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할 역군 모집"이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이명박은 이 문구를 보고 이끌렸다고 합니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요? 폐결핵환자가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싶었다는 뜻 아닌가요?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60년대에 보통의 폐결핵환자는 폐결핵이 발견되면 즉시 휴직하거나 사직하고 요양치료에 들어갔습니다. 보통 1년6개월 넘게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치료를 해야 했기 때문이죠. 폐결핵을 고칠려면 2006년 현재에도 매일 약을 한움큼씩 6개월이상 먹어야 합니다.
그는 정말 폐결핵 환자였을까요? 아니면 폐결핵환자 흉내를 내서 부정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사람이었을까요? 판단은 여러분이 하십시오.
이명박씨는 2006년 11월27일 자신의 병역문제를 설명하면서 자신에게 폐결핵흉터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폐결핵을 앓지 않은 사람도 폐에 폐결핵 비슷한 흉터가 남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주셨습니다. 일단 다음 글을 보십시오.
퍼옴(편의상 문단으로 구성)
"폐결핵에 걸렸던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폐에 흉터가 남을 수 있나요?"
평점 : + 1 (1 명) 나도 평가하기 ro##### 조회 :611 답변 : 2
답변이 완료된 질문입니다. (2003-12-03 21:48 작성) 신고
저는 몇주전에 ######병원에서 호주 비자를 얻기 위한 신체검사를 했습니다. 어제 오전에 비자를 신청했는데, 그게 좀 문제가 있나 봅니다. 다름이 아니라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 없다고 나왔는데, 대사관에서는 폐에 흉터가 있고 혹시 폐결핵을 앓았던 적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엄마한테 아무리 물어봐도 폐결핵을 앓은 적이 없다고 했거든요.. 몇년적에 엑스레이를 찍었을때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는데,,사실 제가 감기에 안걸렸어도 평소 기침을 좀 심하게 하고 가끔 오바이토 같은것을 하기도 합니다.. (먹은 것이 가끔 올라오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하는 기침이 폐에 이상을 가져온 것인가요? 이러면 폐에 흉터를 입힐 수도 있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정확한 답변을 요구합니다. 부탁해요-.
(인용 끝)
이외에도 제보자가 또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씨는 "개인적으로 진단서를 제출해 면제를 받은 것이 아니고 병무청 지정병원인 포항 영남병원에서 직접 검진을 받아 면제를 받았으므로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 고 주장했지만 박노항원사 사건 때도 보았듯이 그동안 병무청 지정병원이 병역비리의 온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이명박씨는 "병무청에서 이틀간 실시한 공식적인 신체검사 절차 내에서 징집면제사유에 해당되는 질병이 발견되어 면제 판정을 받았으므로 사적인 요소나 부정이 개입될 소지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병무청의 공식적인 신검절차를 거쳤다 해도 부정으로 면제받은 사람들이 그동안 다수 발각되었습니다. 특히 60년대에는 병무청의 신체검사 체계가 덜 잡혀 있던 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명박씨는 자신의 병역의혹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해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특히 1965년 3월에 병역면제를 받고 1965년 7월 현대건설에 들어가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술마신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앞의 자료에서 보았듯이 60년대에 폐결핵은 거의 불치병이었고 고친다 해도 1년 6개월의 이상의 고통스런 치료기간이 필요했습니다. 65년 당시에는 리팜피신이나 에탐부톨 같은 좋은 약이 없었기 때문에 이소니아지드와 스트렙토마이신으로 주로 치료를 했는데 매일 엄청나게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남인수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60년대 폐결핵환자들은 약을 먹으면서도 항상 죽음의 문턱에서 오락가락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폐결핵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60년대에 활동성폐결핵 환자가 항결핵제를 복용하며 술을 먹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이제 거의 결론이 도출된 것 같습니다.판단은 여러분이 하십시오.
다음은 어느 결핵환자의 최근 상담내용
질문
직장을 다니는 23세 여자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폐결핵을 앓았는데 그때는 제가 철이 없고 약을 먹는데 너무 힘들어서 3개월 정도 먹고 치료를 중단하였습니다. 요사이 신체검사에서 폐결핵이 재발했다고 해서 결핵약을 다시 먹기 시작하였는데 얼마나 약을 먹으면 되나요?
의사의 답변
과거에는 결핵 치료에 좋은 약이 없었기 때문에 치료 기간이 1년 이상 몇년씩 걸리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최근 결핵 치료에는 아이나, 리팜피신, 에탐부톨, 피라진아마이드 같은 효과적인 결핵약이 있어서 옛날처럼 치료 기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대체로 처음 치료하는 경우에는 4가지 약을 처음 2개월 동안 쓰고, 3개월째부터는 피라진아마이드를 빼고 나머지 3가지 약으로 나머지 4개월 더 치료하는 방법을 씁니다. 그러나 재치료의 경우 만약 아이나와 리팜피신 같은 약을 사용할 수 없다면 치료 기간을 더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어느 폐결핵환자의 경험담(펌)
제가 10년전인 96년에 폐결핵 판정을 받아서 1년간을 약물 치료한 경험을 미루어볼 때 위의 글이 사실이라면 이명박씨는 부정으로 군면제를 한 것이 확실합니다.
당시에 전문의 말을 빌리자면, 예전에는 약이 없어서.. 좋지 않아서.. 그러나 지금은(당시) 꾸준하게 약물치료하면... 이랬습니다. 우리 모친께서도 기억하시길 젊으셨을 때 50~70년대에 폐결핵은 죽는 병이라 그랬답니다.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때 스스로가 폐결핵이란 사실을 안 것도 늦었지만(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일단 발병하면 정상적인 활동 불가능합니다.
마음 먹으면 가능하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왕성한 사회활동이 아닌 조용하게´ 라고 말씀하실 분도 있겠지만 힘듭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계속해서 마른 기침이 나고 사람 매우 괴롭습니다. 자다가 깨기를 수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좋아져서 갯수가 줄었다던 그 약을 하루에도 수십알을 시간 지켜 먹어야 했습니다. 물론 고통이죠... 식욕 떨어지고... 머리 빠지고... 기운 없어지고... 살 빠지는 건 기본입니다... 호흡이 불편하기 때문에 말 하는 것도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65년, 66년에 "활동성 폐결핵"이라면... 전 부당 군면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판정을 받기 무려 30년전... 지금이야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유경험자로서 봤을땐 저런 사회생활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본인이야 무슨 거짓을 또 말할지 모르죠...
완치하는데 1년 걸렸습니다... 직장 사직하고 약물 치료하고.. 금연은 필수죠... 스트레스... 치료의 적입니다.. 전문의의 조언입니다... 이명박씨를 나쁘게 보려는 것이 아니라 폐결핵으로 당시 상황에서 군면제까지 받았다기에 몇 자 끄적거려 봤습니다.
-끝-
첫댓글 거짓말도 잘해야 사는건지.... 명바기는 검증이 않되어서 나가리다
병역을 저렇게 속이고서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