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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유람기, 알프스 산행기>
※ 분량이 200자 원고지 312장에 달하는 대작이므로 스크롤 압박이 심할 수 있습니다. 제목만 보고 관심 있는 대목만 선택적으로 읽으시는 게 정신 건강에 좋으실 듯합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프스 연봉. 체르마트에서 기차로 오르는 해발 3,100m 높이의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는 알프스 최고의 미봉 마터호르른을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음.>
제1부 중년 사내들의 작당 모의
1. 프롤로그 – “저더러 알프스 산행기를 쓰라고요?”
당초에는 스위스 알프스 일대를 여행하는 동안 돌아가서 산행기를 쓸까 말까 몇 차례 고민했다가 안 쓰기로 했습니다. 여건이 여의치 않아 스위스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약 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서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죠. 또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산악회 말고는 산행기 쓰라고 압력을 넣는 곳이 없고, 이번 여행은 성대 신방과 산악회와 무관하게 진행된 일이어서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도 정리해놓으면 추억을 되새기는 데도 보탬이 되고, 혹시 다른 사람이 알프스를 여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었으나 당분간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여겨 ‘일단 산행기 쓰는 건 제쳐두고 나중에 쓰고 싶으면 쓰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래서 6월 18일 그린란드형(장덕수)이 딸 시집보낸 날 꼬맹이(정은경)가 “희용형 여행기 부~탁해요∧∧”라고 깜찍한 카톡 메시지를 날렸을 때도 “짬 나면 써볼게”라고 무덤덤하게 대답하고 말았던 겁니다.
그러나 6월 20일 저녁 회장, 산행대장, 총무와 함께 만사지당 형님(안은섭)을 만난 자리에서 “알프스 산행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형님의 말을 듣고 산행기부터 먼저 쓰고 밀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산행기가 암과 싸우고 계신 그분께 희망과 용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도리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죠.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약 올리는 것 같아 산행기를 쓰기가 주저된다”고 말하자 피플러버 회장(남인복)께서 “이미 충분히 약 올릴 만큼 올렸잖아”라고 면박을 주시네요. 당신께서는 1년 동안 전 세계를 누벼놓고 불과 열흘 다녀온 저보고 약을 올렸다고 꼬집는 게 억울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제가 반박할 처지는 아니었지요. 글로나마 이렇게 쓰는 것도 회장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까 무척 걱정됩니다.
어쨌든 산행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노트북 자판을 두들깁니다. 분량이 얼마나 될지, 며칠이나 걸릴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손가락 가는 대로, 시간 나는 대로 한국의 중년 사내 7명(연인원 8명)의 요절복통 스위스 유람기와 좌충우돌 알프스 산행기를 끄적여 보겠습니다. 분량이 다소 많아질 듯합니다. 만사지당 형님께서 병상에서 심심해하실까 봐 가급적 상세하고도 길게 쓰려고 합니다. 지루하게 여겨지시는 분은 골라서 읽으십시오.
2. 모의 - 쭉쭉빵빵 금발이 가이드로 나온다는 말에 홀려
먼저 멤버 소개부터 해야겠습니다. 대학 동기들끼리 매달 산에 가는 모임이 있는데, 굳이 따지면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80학번 산악회입니다. 제가 3대 산행대장으로 4년째 모임을 이끌고 있고 매주 넷째 일요일에 산행을 하고 있지요. 초대 산행대장(박동규)이 경제학과 출신으로 뒤늦게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원을 운영하는 친구입니다. 그가 토요일에도 일을 하기 때문에 부득이 일요일에 산행을 합니다. 그래서 뒤풀이가 늦어지면 이튿날 무척 힘듭니다.
이밖에 경제학과 출신으로 보험연구원을 거쳐 로펌 김앤장에 근무하는 2대 산행대장 오영수, 조선일보에 조사부 기자로 입사해 현재 독자서비스센터 팀장을 맡고 있는 도서관학과 출신 김정형, 무역학과 출신으로 보험회사를 거친 김현근(아파트 관리소장)과 김태성(독서실 운영)이 저와 함께 10박 11일의 전 일정을 동행했습니다. 부천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사학과 출신 홍갑표는 대학 강의를 2주나 빠질 수 없어 6박7일 만에 패키지 팀과 함께 먼저 귀국했고, 경제학과 출신으로 튀니지에 사는 정상호(마포나루·이홍주 고교 동창)가 뒤늦게 합류해 4박5일을 함께 지냈습니다. 친소 관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저런 끈으로 다 연결돼 친분이 있고 잘 알고 지내던 사이입니다. 이념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았는데 이젠 세월이 흘러 약간의 차이가 생기기도 했지요.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태성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매달 가까운 산에 가고 1년에 한두 차례 남쪽 지방으로 원정 산행을 다니다 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도 해외 원장 한번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이 나왔지요. 그런데 태성이는 콕 짚어 “EBS의 알프스 몽블랑 트레킹 방송을 보니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거쳐 스위스로 가는데 경치가 끝내주더라. 그리고 현지 가이드가 금발에 쭉쭉빵빵 여인인데 정말 매력적이야. 우리 함께 가지 않겠니?”라고 제안했습니다. 다들 금발에 쭉쭉빵빵이란 말에 홀려 동의하고 말았지요. 뒤늦게 “방송이니까 그런 미인이 나온 것 아니겠느냐. 우리가 간다고 그 가이드가 나온다는 보장이 있느냐”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이미 알프스에 꽂힌 우리의 마음을 되돌리긴 역부족이었습니다.
태성의 계획은 생각보다 치밀했습니다. “우리가 5년 동안 매달 5만 원씩 적금을 붓는 거야. 지금 제로 금리 시대여서 대출을 내서 가나 적금 부어 가나 돈에는 큰 차이는 없겠지만 마음가짐이 다르지. 한꺼번에 목돈 마련하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혹시 아내가 반대하더라도 ”내가 안 가면 그동안 부어온 곗돈을 떼일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면 보내줄 거야.”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누가 끼어듭니다. “우리도 이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야. 5년은 너무 길지 않니? 10만 원씩 3년에 짧게 끝내자.” 그 말도 맞는 듯합니다. 제가 산행대장을 맡고 첫 산행을 나선 2014년 1월 무등산에서 희용, 태성, 동규, 정형, 현근, 영수 6명이 그달부터 10만 원씩 곗돈을 내기로 합의했습니다.
1년쯤 지난 뒤 갑표가 들어와 20만 원씩 내며 따라잡고 지난해 말에 이르러 계획이 구체화됐습니다. 각자의 바쁜 일정을 피하고, 성수기가 시작되는 대학교 여름방학 전에 떠나기 위해 6월 초로 합의했습니다. 패키지여행을 가더라도 우리끼리 별도의 팀 구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주위 친구들에게 더 권유했으나 몇 명이 입질을 하다가 고개를 젓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아 많이 걷기 힘들다는 친구도 있었고, 병환 중인 노모를 돌봐야 한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직장이나 사업 핑계를 대기도 했지요. 한 친구는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얘기를 꺼냈더니 “죽을래?”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놓더군요. 튀니지에 사는 상호가 “유럽은 거기서 얼마 안 되니 며칠간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멘리헨에서 왕관 전망대에 오른 뒤 로열 워크를 따라 내려오다가 알프스산맥을 배경으로 6명이 찍은 점프 컷. 왼쪽부터 박동규 정상호 김태성 김현근 이희용 김정형>
3, 계획 – 트레킹이냐 유람이냐, 패키지냐 자유여행이냐?
태성이가 EBS에서 본 프로그램은 몽블랑 트레킹이었습니다. 딱히 몽블랑은 아니더라도 알프스를 걷는 것이 당초 콘셉트였죠. 그런데 체력 문제 등을 들어 난색을 표시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1주일 이상 매일 7~8시간씩 걷는 것은 나머지 친구도 모두 부담스러워 했죠. 처음 유럽을 가보는 친구도 있는데 모든 일정을 산기슭에서만 보내는 게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죠. 전문 알프스 트레킹 여행사의 패키지 프로그램인 ‘투르 드 몽블랑 트레킹’이나 ‘3대 미봉(몽블랑·마터호른·융프라우) 트레킹’은 가격이 일반 스위스 패키지 프로그램보다 훨씬 비싼 것도 문제였습니다.
여행사에 알프스 트레킹 4~5일과 유럽 도시 4~5일 프로그램을 짜줄 수 있는지 묻자 “가능하긴 하지만 가격이 더 올라갈 뿐 아니라 7명이면 쉽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지요. 알자지라 대장(임병선)은 ”스위스에는 길 표지판도 잘돼 있어 형들 정도면 얼마든지 자유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열흘을 모두 자유여행으로만 채우는 것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유럽을 가장 많이 가봤다는 제가 리더라고 하니 제 영어 실력을 잘 아는 제 아내와 딸이 극구 말립니다.
그렇다고 멤버들이 이 도시 저 도시 옮겨다니며 주마간산식으로 ‘인증 샷’ 찍고 다니는 패키지로만 다니는 것은 반대합니다. 며칠이라도 우리끼리 함께 지내며 자유롭게 다니고 추억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알프스 잠깐 찍고 다른 도시-이를테면 로마나 파리나 비엔나-를 구경하는 방안도 떠올려봤으나 이왕 가는 거 스위스에 집중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처음 유럽에 가는 친구들도 ‘다른 유럽의 도시는 다른 기회에 보면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다행히 선택지가 하나 생겼습니다. 사실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문 트레킹 상품이 아니면 스위스만 도는 패키지 상품이 없었습니다. 유럽 4개국이나 유럽 5개국 여행 패키지에 융프라우 찍고 오는 1박2일 일정을 끼워넣는 방식이었죠. 지금도 한 달 이상 배낭여행을 하는 젊은 친구들도 스위스는 2~3일만 들렀다 갑니다. 그런데 2013년 tvN ‘꽃보다 할배-프랑스 스위스’ 편에서 루체른과 체르마트-마터호른 등이 인기를 끌자 스위스 관광객이 늘어나고 1주일짜리 스위스 일주 패키지가 생긴 거지요.
더욱이 올해 1~2월 JTBC ‘뭉쳐야 뜬다’ 스위스편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 프로그램의 스폰서인 하나투어 말고도 여러 여행사가 비슷한 상품을 앞다투어 내놓았던 겁니다. 그래서 6박7일짜리 스위스 패키지 상품에 4박5일 트레킹 자유여행을 결합하는 일정을 짜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비용은 모든 일정을 패키지로 하는 것보다 비싸지지만 둘의 장점을 다 살리기로 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생겼습니다. ‘뭉쳐야 뜬다’의 인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몰린 겁니다. 여러 여행사의 가격과 일정을 꼼꼼히 따져 비교적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자유투어의 패키지 상품을 예약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편을 기약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사는 비행기편을 왕복으로 확보해 숙소 및 다른 일정과 패키지로 만든 뒤 상품으로 판매하는데, 돌아오는 비행기편을 늦출 경우 좌석이 없으면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그것도 당장 확인되는 게 아니라 출발 한 달 전쯤에 대한항공에서 확인해준다고 하네요(그전까지는 최대한 표를 비싸게 팔겠다는 심산이겠지요).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고 어쨌든 무지무지 골치 아팠는데 다행히 취리히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 항공권 6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패키지 상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편을 연기하려면 대략 인당 300달러 정도의 추가요금을 내야 한답니다. 만일 그 비행기편이 없으면 왕복 비행기편을 따로 끊어 현지에서 합류해야 하죠.
대한항공 취리히 직항편으로 6월 1일 출발해 7일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패키지 상품을 7명 예약한 뒤 6명은 귀국 항공편을 4일 늦춰 11일 도착하기로 했습니다. 6일부터 10일까지는 우리끼리 융프라우를 여행하기로 했는데, 알대장의 조언도 듣고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융프라우 VIP 패스의 한국 총판을 맡고 있는 동신항운을 통해 취리히~인터라켄 왕복 열차편, 인터라켄 호텔 하루 숙박권, 융프라우 그린델발트 다운타운 롯지(게스트하우스) 3일 숙박권, 융프라우 VIP 패스를 일괄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유럽을 혼자 많이 돌아다닌 제 딸은 “따로따로 직접 끊으면 더 쌀 텐데“라고 말했지만 머리도 아프고 시간도 걸리니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딸은 ”이런저런 사이트 들어가 후기도 읽어보고 어디가 경치가 더 좋은지, 어느 숙소가 더 나은지 일일이 따져보지도 않고 대행사만 믿을 수 있느냐“며 혀를 끌끌 찼지만 저는 ”거기서 모범 답안을 제시한 대로 다니면 그게 우리에게도 정답일 것“이라고 넘겼지요. ”후기 등은 시간 날 때 나중에 훑어보며 연구하고 현지에 가서 가이드나 숙소 직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는 여행객 등에게 물어보며 융통성 있게 대처하겠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딸은 영 미덥지 않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동신항운을 통해 예약한 열차표와 바우처, 안내지도 등>
4. 준비 - “빨주노초파남보 색으로 단체 티셔츠 입고 갈까?”
이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섭니다. 일단 자유여행 기간에 맞춰 여행자보험을 가입했습니다. 스위스프랑 환전도 하고(스위스프랑 바꿔주는 은행 지점이 많지 않습니다. 현지에서는 유로화도 받긴 하는데 1대1로 쳐주기 때문에 유로화 쓰면 손해입니다).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는 전기냄비도 구입했습니다. 스위스 전기 플러그꽂이에 맞는 만능 어댑터도 구했지요(인천공항 휴대전화 로밍하는 데서 인당 3개까지 무료로 빌려줍니다). 신발(트레킹화), 스틱, 옷, 세면도구, 선글라스, 수영복, 숟가락, 여권 등을 각자 챙기고 오징어포와 믹스너츠, 햇반, 팩소주, 통조림, 고추장, 김, 볶음김치(그냥 김치는 부풀어 올라 터질 수도 있으니), 라면, 코펠, 고산병 약 등은 분담해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전체 비용은 자유투어 패키지 금액이 289만 원에 멤버십 쿠폰 2% 할인받아 283만2천 원, 가이드·운전기사 팁 130스위스프랑, 옵션관광(고르너그라트 열차) 100스위스프랑, 동신항운에 턴키로 예약한 자유여행 숙소 열차편 등이 인당 74만 원, 이밖에 인천공항 식사비, 양주(5병) 구입비, 자유여행 식사비, 슈퍼마켓 물품 구입비 등이 들었습니다. 모두 따져 곗돈 371만5천 원에 추가로 80만 원씩 냈으니 451만5천 원의 공통비용을 쓴 셈이지요. 여기에 소주나 라면 등을 각자 사 갖고 간 비용, 선물 구입비, 맥주 한 잔씩 사 마신 돈 등이 얼마씩 더 들었습니다.
이밖에도 각자 보이지 않는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약속을 미리 조정하고 기사도 몇 꼭지 써서 올려놓았습니다. 특히 매주 화요일 연재하는 칼럼 ‘이희용의 글로벌시대’는 거르기가 아쉬워 하나 미리 올려놓고, 돌아와서 쓸 것까지 준비해놓느라 바빴습니다. 정독도서관에서 스위스 여행 책도 빌려놓고 ‘먼 나라 이웃 나라’ 스위스편이나 스위스 관련 책도 정독했지요.
유럽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필수로 가입한다는 카페 유랑에도 들어가 후기 등을 읽어보았습니다. 170만 명이 넘게 가입했다는 유랑(http://cafe.naver.com/firenze)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여행 파트너나 숙박 파트너를 구하는 글이나 여행 일정이 적절한지 묻는 글을 올려 공유하는 건 물론 어디에 지금 비가 온다, 누가 소매치기를 당했다, 어떤 식당 음식이 맛이 없다, 어떤 박물관은 지금 수리 중이어서 휴관이다, 고르너그라트 올라가는 열차 탈 때는 왼쪽 창가에 앉는 게 좋다 등의 실시간 정보가 속속 올라옵니다.
알프스 원정대원들의 임무와 역할은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대원 중에 치과의사, 해외 거주자, 주택관리사가 있으니 도움이 되긴 하네요. ▲대장(리더) = 이희용 ▲총무(회계) = 김태성(침술 담당 겸임) ▲예약 확인 및 현지 통역 담당(숙소, 철도편) = 정상호 ▲식당 섭외 및 구글 검색 담당 = 오영수 ▲의무 및 주류 보급 담당 =박동규 ▲식사 및 영선(전기, 냉난방, 하수도 등) 담당 = 김현근 ▲식사 및 간식 담당 = 김정형
당초 대원 숫자를 짝수로 맞추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텔에서 잘 때 차질이 빚어졌지요. 자유투어에서는 2인 1실을 기본으로 하되 남는 한 명이 따로 방을 쓰려면 하루 10만 원씩의 싱글룸 차지를 내라고 합니다. 안 내면 보조침대를 놓고 한 방에 3명이 자야 하는데 그렇다고 돈을 깎아주지는 않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잘 때는 10인실을 우리 7명이 독차지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었고요. 세 명이 한 방을 쓰려면 욕실과 화장실에 체증이 생기고 보조침대에 자는 사람이 허리에 통증이 올 수도 있으니 1인용 방을 추가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대부분 “설마 내가 걸리겠느냐”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3인실을 이용하기로 정했습니다.
그래도 7명으로 대원 숫자가 정해진 게 깊은 뜻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처제는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가라고 합니다. 기왕이면 빨주노초파남보 각기 다른 색깔을 입으라고도 하네요. 금발에 쭉쭉빵빵 가이드를 만난다면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와 똑같은 숫자가 될 겁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랍 대령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온 수녀원 출신의 마리아는 일곱 남매에게 노래를 가르쳐줍니다. 저희도 7명이 알프스 초원에서 도레미송을 불러보는 상상도 해봅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문 의견을 위해 알 대장을 만났는데 이런 조언을 하더군요. “원로 농구인 김영기 씨가 친구들과 패키지여행을 다니다가 노인들은 화장실도 자주 가고 걸음도 늦다며 여행사가 박대를 하니 따로 다닌 지 꽤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패키지 때는 의견 다툼이 별로 없다가 자유여행을 하니 의견 충돌이 잦아 갈 때마다 각서를 쓴다고 합니다. 논의는 활발하게 하되 결정이 이뤄진 뒤에는 리더의 지시에 따르고 만일 이를 어기면 벌금을 낸다고 서약하는 것이죠. 형들도 꼭 그러는 게 좋을 거예요.”
수긍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친구들에게 각서를 쓰자고 제안하기도 민망한 노릇이었습니다. 다른 대원들도 “우리가 대장 말 잘 따르면 되지, 뭘 각서까지…”라며 쑥스러워 합니다. 저도 “혹시 문제가 생기면 다음 여행부터 각서를 쓰기로 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친구는 빼고 가면 되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논의는 민주적으로, 결정은 독재적으로’ 하겠다고 선언한 뒤 각서가 없어도 순명과 복종을 맹세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전 날, 성대민주동문회 80학번 회장 민병래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 회사 주소를 물어봅니다. 산에 올라가서 펼칠 플래카드를 만들어 보내주겠다는 겁니다. 그 친구가 하는 회사가 대형 플래카드 등을 만드는 일이어서 대형 건물에 내건 엄청나게 큰 태극기도 거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험한 산을 오르는 것도 아니고 유람하는 건데 쑥스럽고, 회사 분위기도 뒤숭숭한 터에 휴가를 떠나는 것도 조심스러워 플래카드를 펼치고 사진 찍을 일이 없다고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물론 다른 친구들의 의견도 물어봤는데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대신 민 회장은 고맙게도 해단식 날 무사귀환 플래카드를 만들어 왔습니다.
첫댓글 아이고. 기자 아니랄까봐 무쟈게 길게 쓰네!!! 다 읽으려면 시간 좀 걸리겠다. 암튼 말하듯이 잘도 쓴다. 천천히 심심할 때 하나씩 읽으면 좋겠다. 수고했어.
점심시간 이용해 1부 마스터! 잘 읽고 있습니다. 근데 단체사진이 예술이네요? 혹시 한 백번쯤 NG내고 찍은 사진?
연속으로 촬영한 뒤 한 장 고르면 되더군.
@희망과용기 아~~그런 방법이~~암튼 대단하십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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