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31세 여성이 수술을 받던 중 대량 출혈로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남편에게 필자의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였으나 부인이 운명하게 되셨습니다"며 고개를 숙이셨다. 혹시나 그에게 멱살이라도 잡힐까 불안했으나 설명을 들은 남편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속절없이 흐느끼던 남편의 어깨를 감싸고 위로하며 슬픔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또, 장폐색(腸閉塞) 수술 후 결국 회복하지 못해 추운 겨울 하늘나라로 아기를 보내야 했던 같은 또래의 아빠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함께 엉엉 울던 장면도 눈에 선하다.
젊은 외과 레지던트의사 시절의 기억이다. 의사생활 30년. 숨이 차도록 긴장해 탈진했던 수술현장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 옆에서 새우잠으로 밤을 꼬박 샌 날이 숱하게 많았다. 중견 의사가 된 지금도 야밤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도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는 버릇은 여전하다. 오랜 외과의사 생활을 한 탓에 절로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간혹 예상을 뛰어넘는 환자의 경과에 속수무책인 경우도 있었다. 허무하게 환자가 세상을 뜨는 장면에서 나의 판단 착오로 환자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혹여 실수는 없었는지 깊은 슬픔에 넋없이 울어본 적도 있다. 수많은 환자의 구구절절한 사연들로 가슴속을 꽉꽉 채우고서야, 질병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치는 환자의 불안한 마음과 그들과 이별해야 하는 가족의 슬픔을 뼛속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직원들이 친절하지 않다고, 오래 기다리게 했다고, 설명이 미흡하다고 진료 중인 문을 박차고 들어와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소한 불만이라도 인터넷 악성댓글로 연결되는 세상이다. 심각한 분쟁 상황이 아님에도 환자 측에서 진정서라도 넣게 되면 의사는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 소비자단체 또한 가만있지 않는다. 의료를 서비스나 상품으로 여기는 탓이다. 국가는 정한 매뉴얼에서 벗어나면 진료비를 깎아버리기 부지기수다. 이 사회 구성원, 그 어느 누구도 의사의 작은 티끌에 관대하지 않다.
그래서 요즈음, 더더욱 실수가 두렵다. 의사도 어쩌다가 진료과정에 실수할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나빠진 환자 앞에서는 영락없이 죄인이 된다. 의사가 적절히 해명하지 못하면 징벌적인 배상을 요구하는 사회적 현실에는 당혹감을 느끼기도 한다.
의학도들이 외과를 기피하는 경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의학도들이 의료인으로서 사명이나 보람에 대하여 고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 있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힘든 일에 대한 보상이 업무량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 선배 의사들로부터 좌절과 실망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뜻 외과의사로서의 발걸음을 내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힘든 수술이나 고된 치료과정에 탈진하면서도 드라마틱한 환자의 결과를 경험하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 그 희열에 빠져드는 것은 외과의 절대적 매력이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음에도 의사의 최선을 다한 모습에 공감하고 모든 것이 운명이겠거니 여기며 오히려 의사를 토닥이고 위로해 주시는 분들도 있어 더 고맙다.
외과는 이 나라 의료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필수 진료 과목이다. 응급수술을 받기 위해 외국행 비행기를 탈 수는 없지 않는가? 의료현장에서 원칙에 따라 자기가 맡은 역할과 임무에 최선을 다한 의사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칭찬과 사랑의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주위의 동료들로부터 외과의사의 삶을 지속하기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온다. 매 순간 외로움과 함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필자의 어깨는 어느새 한층 더 무거워져 있다.
부산항운병원 병원장
첫댓글 저도 의사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의 진정성을 충분히 감지합니다. 이 세상 어떤 일이든(교육자 포함) 쉬운 일은 없겠지만, 이 땅의 모든 선량한 의사님들에게 최대한의 격려와 사랑을 보냅니다. 힘내십시요!
외과가 꽃이였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의 회피 앞순위 科라더군요.
돈 잘 벌고
쉬운(쉽다는 표현은 좀 그렇습니다만) 과가 인기라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