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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6 : 5 - 6 검은 말
5. 셋째 인 : 검은 말 ( 6 : 5 – 6 )
6: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검은 말과 그 탄 자는 기근을 상징함이 분명하다. 손에 저울을 가진 것은 식량의 배급을 상징하며 그것은 식량이 부족할 것을 뜻한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고, 한 되는 보통 사람의 1일분 식량이라고 한다. 하루 품삯으로 한 되의 밀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식량값이 매우 비싼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식량의 큰 부족을 나타낸다. 보리는 밀보다 품질이 낮은 식량이다.
그러나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서민들의 기본적 식용품, 의약품, 음료수가 허용됨을 보이는 것 같다.
주의 재림 전에는 처절한 기근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 7,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기근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근래에 세계적으로 더욱 심해진 것 같다.
월드북 백과사전(The World Book Encyclopedia.)에 의하면, 1870년대에 남부 인도에서 약 5백만명이 기근으로 죽었고, 중국에서는 9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1929년과 30년에는 중국의 황허강의 홍수로 인한 기근으로 약 2백만 명이 죽었다. 1943년 동부 인도 벵갈에 대기근이 있었다.
제2차 대전 후 150만 명 이상이 기근으로 죽었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남부 사헬 지역과 남부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 등에 심각하여 수백만 명이 죽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19년 세계에 약 8억 2천만 명이 기아 상태에 있다고 보고하였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716/96495148/1.)
계 6 : 5 검은 말 -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
5-1) 검은 말의 출현 :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1) 출현
① 셋째 인을 떼실 때.
② 셋째 생물 말하되 - 오라.
(2) 의미
검은색은 슬픔과 기근을 나타내는 것으로 셋째 인의 재앙은 기근을 상징한다(Vincent, Bengel).
* 렘 4: 27-28 – 2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① 가뭄.
* 학 1: 10-11 – 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② 병충해
* 암 4: 9 -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욜 1: 4-5,16-20 – 4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16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17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18 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소란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③ 전쟁
* 사 1: 7 -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④ 하나님의 징계
* 신 11: 17 -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 사 3: 1 –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 렘 29: 17-18 –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18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⑤ 말씀의 기갈
* 암 8: 11-14 –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14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 애 5: 10 -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5-2) 검은 말의 역할 :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는 말은 전쟁 후에 식량을 저울에 달아 배급하는 절박한 기근의 상황을 묘사한다.
이러한 상황은 유혈 전쟁이 가져다주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 레 26: 26 - 내가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 겔 4: 10-11,16-17 – 10 너는 음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씩 때를 따라 먹고, 11 물도 육분의 일 힌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16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근심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두려워 떨며, 물을 되어 마시다가 17 떡과 물이 부족하여 피차에 두려워하여 떨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
* 왕하 6: 25 –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 애 4: 10 -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계 6 : 6 한 데나리온에 -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
6-1) 검은 말의 역할(2) :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1)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나는 듯하는 음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포넨'(*)은 어떤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접속사로 본서의 독특한 문체 중의 하나이다 (19: 1,6. Beckwith).
이 음성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 어린 양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 (Bousset).
Ⓑ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 (Morris).
Ⓒ 생물들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 (Alford, Swete).
세 견해 중 처음 두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 듯하다.
(2) 한 데나리온
'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나리우'(*)는 가격을 나타내는 소유격으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 마 20: 2 -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되'의 헬라어 '코이니케스'(*)는 건강한 남자의 하루 식량을 나타내는 고대 단위이다. 본문에 나타난 이러한 가격은 당시의 보통 시세의 12배 또는 최고 16배가 되는 가격으로(Cicero, Ver. iii. 81, Beckwith, Rist) 전쟁과 살육의 재앙이 있은 후 초래된 심각한 기근의 상태를 시사한다.
* 마 24: 7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3) 해치지 말라.
본문에 대한 해석은 네 가지이다.
Ⓐ 도미티안(Domitian) 황제 때에 내린 포도원 폐쇄 명령이다(Charles).
그러나 이 명령은 곧 강력한 반대로 인해 취소되었다.
Ⓑ 감람유와 포도주는 사치품으로 가난한 자는 굶주림의 고난을 당하나 부자들은 여전히 사치를 즐긴다는 의미다 (Hendriksen).
Ⓒ 감람유와 포도주를 성찬과 관련지어 이를 믿는 자들에 대한 기근의 면제를 약속한 것이다 (Lilje).
Ⓓ 감람유와 포도주를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보아 본문은 기근의 한계성을 나타낸다 (Mounce, Ladd, Johnson, Morris).
네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본문은 기근의 피해가 심각하게 증대되고 있긴 하나 본격적인 재앙은 아님을 나타낸다.
* 신 7: 13 -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 신 11: 14 -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에서 풍성한 소산을 약속하셨다.
* 호 2: 8,22 –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우상 앞에 섬길 때 그들이 사는 땅에 기근과 굶주림을 내어 그들로 회개하기를 원하셨다.
① 감람유
성령의 감화를 받은 자
* 출 27: 20 -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 사 1: 6 -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사 61: 1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약 5: 14 -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② 포도주
남을 위하여 자기를 버려 희생할 수 있는 자
* 시 104: 15 -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 창 27: 28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 막 14: 24 –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검은 말과 그 탄 자 ( 박 조준 목사 )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인봉한 책을 펴는데 첫째 말, 흰 말을 탄 기만자에 대해서, 그리고 둘째 말, 붉은 말을 탄 자 그러니까 전쟁을 일으키는 자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어린양은 조심스럽게 셋째 인을 떼십니다. 두루마리가 부드럽게 펼쳐집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네 생물 가운데 셋째 생물이 요한이 보는 환상의 중심 무대로 걸어 올라가더니 “오라!”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어린양과 이십사 장로들, 그리고 수 많은 천사들의 증인 앞으로 또 다시 한 마리의 말과 말탄 자가 달려옵니다. 이 검은 말과 말탄 자는 우리 인간에게 셋째 경고, 즉 엄청난 기근에 대한 경고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계 6: 5~6).
예레미야애가 4장 8절과 9절에 보면 기근이 얼마나 심한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같이 말랐으니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검은 말은 숨을 헐떡거리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말탄 자는 손에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요한은 네 생물 가운데에서 들리는 소리를 받아 적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요한이 사는 당시에는 일꾼의 평균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콩을 여섯 되 정도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제 불황으로 소득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습니다. 보통 노동자들에게 할당된 소량의 곡물을 달아보기 위해 저울을 손에 들고 있는 그 검은 말을 탄 자는 앞서 두 말을 타고 지나간 이후의 세계적인 극심한 기근을 상징합니다.
이 세 번째 말탄 자가 나타나는 것을 통해 예수님은 기만과 거짓 종교가 전쟁을 초래하고 그 전쟁이 기근과 질병을 초래하리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흰 말과 붉은 말에 이어 검은 말을 탄 자가 나타나 세계에는 기아 현상이 극심해질 것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검은 말을 타고 심판의 저울을 들고 있는 세 번째 말탄 자에게 또 다시 명령합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이것은 기아와 사치가 병존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공관복음서에 보면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그리고 요한에게 기근이 세상을 뒤덮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7; 막 13:8; 눅 21:11). 그러나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배불리 먹고 마실 것이며, 그러한 불균형은 같은 나라 안에서도 공존할 수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노아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리라”(마 24:37~38). 그와 같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요한은 바벨론과 흡사한 사치에 젖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한편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편에서는 배가 터져 죽을 지경으로 먹는 것을 즐기며 사치를 일삼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먹지 못해 영양실조가 되고 피골이 상접해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너무 먹어 군살 때문에 고민을 합니다. 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그것은 멸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사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검을 말을 탄 자의 메시지는 바로 그것으로서 이 지구의 인류 역사상 가장 극렬한 악행의 현상을 예고한 것입니다. 검은 말을 탄 자는 노동자가 하루 종일 일하고도 겨우 자신의 목숨을 연명할 정도의 품삯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나눠 먹을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식들이 굶주려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그러한 비극을 당하느니 부모는 차라리 자기가 죽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계시록 기자는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덧붙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굶어 죽어 가는 가난한 사람들 옆에 배고픈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부자들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소위 빈익빈 부익부 현상입니다. 앞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풍요 속에 빈곤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회의 불의입니다.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바로 살지 아니하면 검은 말을 탄 자는 더욱 접근해 올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세계 공동체가 씨름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식량 부족입니다. 그것은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입니다. 세계에서 오직 세 나라, 그러니까 미국, 캐나다, 그리고 호주만이 그들의 소비량 이상의 충분한 곡물을 생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식량문제는 전세계적인 심각한 문제입니다. 검은 말과 그 탄 자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네 명의 말탄 자들이 우리를 깨우치려고 나타날 것이며, 회개하고 그들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기에는 너무 시기가 늦을 때가 올 것이라고 예고하였습니다.
역사의 시초부터 지구상에는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구 폭발과 현대 사회의 복잡성으로 인해서 기아의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매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많은 저개발국에서는 아직도 어린애들의 사망에 관한 통계를 거의 내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까지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기아 상태뿐만 아니라 영양 결핍 때문에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는 개발도상국에서만 매년 2백만 명의 갓난아이들이 영양실조의 결과로 죽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세계은행의 보고에 의하면 “남부 아시아 특히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국민들 과반수가 극빈의 상태에서 살고 있고, 동남아시아의 극빈자는 인구의 6분의 1이고,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도 인구의 6분의 1이 극빈 상태”라고 합니다. 국제연합에서도 지금도 최소한 백만 명의 어린이가 저녁을 굶은 채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배가 고픈 것도 심각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인간의 영혼의 기근 상태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위대한 상인 존 워너메이커, 앤드류 카네기, 에이브라함 링컨, 콜롬부스, 우리 주님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영적인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가난 중에도 자기의 상황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이 세상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난의 불리한 조건을 딛고 일어섰기에 다행이지 그들마저 역경에 좌절했다면 이 사회에 얼마나 더 큰 비극이 있었겠습니까?
더구나 기근과 질병은 말의 잔등 위에 함께 타고 있습니다. 영양 결핍은 정신적, 신체적 질환을 가져옵니다. 굶주리게 되면 자연히 몸이 쇠약해집니다. 면역체들이 붕괴됩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몸 안의 세균, 바이러스, 그리고 박테리아를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합니다.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기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훨씬 중요한 것은 질병의 예방입니다.
첫째로, 이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봅시다.
우선 영양 섭취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은 세 명에 한 명 꼴로 영양실조 때문에 건강 상태가 나쁩니다. 우리는 균형 잡힌 식사를 할 때마다 우리 앞에 놓은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따라서 평생을 이처럼 영양 많은 식사를 해본 적이 없는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우리가 돕고 있지 못한 사실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만 합니다.
또한 식수와 공중 위생의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상수도 시설이 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나라는 오염된 강물을 끌어 마시는 것보다는 곳곳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샘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있는 샘물마저도 마실 수 없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큰 강물들은 모두가 병균으로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마실 물을 위해 십리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 제 3세계의 건강 보호 대책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몇 해 전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는 에르니에 스튜어리 발 선교사가 쓴 수기를 읽었습니다. 밀림에 사는 부인이 이틀 동안이나 진통이 계속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이 부인을 무당에게 데려갔지만 무당이 산모를 어떻게 돕겠습니까? 결국 위험을 느낀 가족들은 텐웨크에 있는 선교 병원으로 부인을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좁은 밀림의 오솔길을 몇 시간이나 걸어서야 대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신작로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버스가 오기까지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다음엔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야 했습니다. 그 부인이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실려 갈 즈음에는 이미 날이 저문 후였습니다. 간호원은 스튜어리 박사를 찾으러 갔습니다. 박사가 도착하여 부인을 검사했습니다. 부인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복도에서 초조하게 의사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튜어리 박사는 그에게 다가가서 때가 너무 늦었고 그의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 좀 어떻게 하실 수 없습니까?” 스튜어리 박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튜어리 박사는 “나를 서글프게 했던 것은 그 부인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녀가 한 번도 복음의 메시지를 듣지 못한 채 죽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매일 수천의 사람이 죽어가지만 그들은 예수에 대하여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계속 아프리카에서 의료 선교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저로 하여금 계속 여기에 남아 있게 만듭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는 일년에 8천명의 환자를 치료했는데 그 환자들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5천명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전할 수는 없지만 일부분에게는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복음 증거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지상 명령입니다. 그런데 세계에는 왜 이와 같은 심각한 굶주림이 있습니까? 왜 수백만 명이 굶고 영양실조의 결과로 죽어가고 있습니까?
둘째로, 굶주림의 원인을 살펴봅시다.
필요한 곳과 필요한 때에 식량이 올바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굶주린 사람이 사는 땅은 경작의 조건이 좋지 않습니다. 수송 기관이 문제되는 경우도 심각합니다. 분배 제도의 잘못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일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다음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는 자녀들의 영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복지를 위해서도 일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리고 아주 말로 할 수 없이 가난한 곳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극빈 상태에 살고 있는 사람이 8억에 달한다고 세계은행에서 보고했습니다. 부유한 나라의 국민소득과 가난한 나라의 국민소득을 비교해 볼 때 너무 극단화해가고 불평등한 것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 모순을 바로 잡는 일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날로 부유해지는 부자와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가 넓어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장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인구 폭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점점 높아가고 있어 지구의 총인구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1900년에 지구 위에는 약 16억의 인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약 45억이 살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추세로 나가게 되면 2000년에는 거의 60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인구 억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도덕적, 윤리적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는 아들 딸 낳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던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3남 1녀를 이상적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들이건 딸이건 간에 둘만 낳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고 합니다. 저는 관심을 가진 현명한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인구 조절을 어떻게 도모할 수 있을지 잘 모릅니다. 이 문제는 대단히 복잡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하며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전세계에 식량 공급이 원활치 못한 것도 굶주림의 한 이유입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기아의 원인들은 대개가 뚜렷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입니다. 왜 이 세상이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배가 터져 죽을 지경입니까?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이며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사회적 해결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영적, 육체적 고통에 관해서 진실로 책임을 지려면 먼저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우리의 삶을 바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때에만 필요에 처한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기꺼이 도와주게 될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구제 대상이 한 가정도 없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넉넉한 사람만 모였다는 말인데, 참된 교회의 모습은 되지 못합니다. 교회는 부한 사람만이 모이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난한 사람, 넉넉한 사람이 함께 모여 유무상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돕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훌륭한 교회당을 짓고 아름답게 꾸미고 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봉사할 때 여기에 참 교회의 모습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목표는 잃은 영혼을 찾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사람을 만났을 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먹이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을 만났을 때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낫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의 더 큰 사명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이끌려 나온 중풍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용서의 의미를 깨닫는 일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다음엔 그 사람의 육체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이 땅 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병을 고쳐주며 집을 지어주고 옷을 입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필요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실 때마다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각기 다른 재질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같은 몸의 다른 지체들입니다. 우리는 힘을 모두어 내게 받은 은사를 다해서 검은 말의 출현을 늦추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주어 나는 빈털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부자가 되는 것이 잘못된 것이며 비도덕적인 일이라는 말입니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많은 구제를 하고 큰 희생을 바치도록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는 하나님께 받은 청지기의 직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본으로 사업체를 세워 가난한 사람들의 일터가 되게 하는 것도 그리스도인 사업가의 큰 공헌입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재능과 기회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육체적, 영적 도움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세요. 기아와 질병은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날마다 검은 말과 그 탄 자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고 이웃의 육체적 그리고 영적 필요를 위해 일하도록 우리 주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배고픈 사람과 병든 자를 위하여 우리의 삶을 기꺼이 바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십자가로 달려가 용서와 강건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기억하세요.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자원들의 청지기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 전까지 우리는 모든 소유물을 움켜쥐고 이기적으로 사용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후하게 내어줄 수 있을 것이며, 검은 말의 발굽 소리도 그다지 크게 울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경외하는 자니라”(잠 14:31)고 하였습니다. 잠언 19장 17절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대로 살아 검은 말의 피해를 보지 않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우리 모두 이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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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