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열차가 출발할
시간이다.
갑자기
열차가‘꽥∼’흡사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른다. 마치‘상감마마
행차시다.
이놈들아, 당장 물렀거라!’라며 호통 치는 소리
같았다.
여수에서
올라온 그 기차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젊은이가 자그마한 수레를 끌고
다니며
“심심풀이 껌이
왔어요.
따끈한
찐빵,
만두, 군밤, 찐계란도 있고 맛좋은 울릉도
오징어도 있어요….”
라고 외치는 소리에 슬그머니 구미가
당겼다.
우리 가족은
군밤 두어 봉지를 사서 먹었는데 집에서 먹을 때보다 더욱 맛이 고소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과자를 손에 든
어린애가 엄마와 하는 기차여행이 마냥 즐거운지 연신 무어라고 쫑알대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흥겨운 술파티도 한창이다.
얼마 지난 후에 대전역에
도착했다.
경부선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타고 간 기차에서 내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철로 옆 매점에서는 우동을 먹는 사람들 너댓 명이 서
있었다.
우리도
출출하던 터라 우동 한 그릇씩을 선채로 후룩후룩 먹었다.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잠시 뒤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 객실엔 서울에서 오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배낭을 풀어놓은 채, 술을 마셨는지 얼근한 표정과
목소리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는‘고래사냥’이었다. 어찌나 힘차게 부르던지 대구에서
하차,
포항으로
달려가 어선을 타고 동해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고래를 몽땅 잡아오려는 듯한 결기가 보였다. 한쪽 구석에서는 서너 명의
중년남자들이 모여 앉아 화투판을 벌이고 있고, 젊은
부부이거나 연인사이인 듯한 남녀 한 쌍이 정답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얼마를 달리니 경상도 평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논에서 피를 뽑는지 허리를 구부리고
일하는 농부들도, 넓은 과수원도 몇 군데
보였다.
저쪽 멀리
보이는 어느 농가에서는 밥을 짓는지 연회색 연기가 평화롭게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구역에 정차했을 때는 승하차객들이
많았다.
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객실 안에 가득 찼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곳에서도 세상
모르고 오수(午睡)를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무려 아홉시간 가까이 달려간 끝에
이윽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길고 긴 여정의 고단함 때문인지 긴
하품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용처럼 기다랗고 육중한 몸집의 철마는 마침내 ‘덜커덕’하는 작은 굉음을 내며 멈춰 선 것이다. 오랜 시간 기차를 탔지만 그렇게
지루한 느낌은 없었다. 외삼촌 댁에 들러 회갑연에 참석하고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 날 다시 귀향열차에 올랐다.
객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돌려보니 한 떼의 아낙네들이 각각 보따리를 손에 들고 또 머리에 이거나 짊어진 채 열차에
올라왔다.
생선
비린내가 확 풍겼다. 조개, 바지락, 명태, 갈치, 오징어, 고등어 등을 보따리에 싸들고
끙끙대며 오른 것이다. 이들은 자갈치시장 등 부산의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도매금에 사 가지고 대구나 김천에 가서 팔려는 잡상인들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생선 많이
있어예.
싸게 줄
테니 사가이소.”
라며 미소 띤 상냥한 말씨로
권했다.
“명태 세
마리,
갈치 두
마리,
고등어 세
마리만 싸 주이소.”
우리도 경상도 말씨로
화답했다.
이렇게 나는
외삼촌 회갑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경한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은 바뀌어
갔다.
오랜 세월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던 완행열차는 없어진 지 오래고 무궁화열차, 새마을호열차까지도 하나둘씩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은 초스피드
시대다.
KTX를
타면 전국
어디나
반나절 생활권으로‘더 빠르게, 더 쾌적하게, 더 조용하게’를
강조한다.
그 열차를
타는 순간 승객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참선하는 승려, 기도하는 목사, 재판정의 법관 얼굴처럼 근엄한
표정이 된다. 말문도 닫아
버린다.
객실 안에는
적막감마저 흐른다. 진동으로 전환해 놓은 휴대폰마저도
받을라치면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기어가는 목소리로, 주변사람 눈치도 살펴야
한다.
무심한 세월은 물처럼 바람처럼
흘렀다.
어언간 내
나이도 고희 고개를 훌쩍 넘겼다. 나는 엉뚱하게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생을 열차로 친다면 내가 탄
열차는 지금쯤 어디까지나 왔을까? 한 70% 아니면 80%? 하여튼 온 거리보다 남은 거리가
짧은 것만은 분명할 것 같다. 이젠 내 인생의 열차도 이쯤에서
옛날의 완행으로 갈아타고 싶을 때가 있다. 천천히 가고
싶다.
한 번 가면
다시는 못올 그런 길이 아니던가! 무엇이 바빠서 그리도 빨리만 가려고
서두른단 말인가!
간이역에도 쉬면서 역사 주변의
코스모스나 해바라기 얼굴도 바라보고, 열차 안의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며
지방사람들의 정겨운 토속어로 말하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역시 완행열차는 달리는 내 마음의
고향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도 그 옛날의 완행열차
기관실 바로 뒤의 화덕에 검은 색의 작업모에 작업복을 입은 2∼3명의 건장한 화부들이 커다란 삽으로
연신 조개탄을 집어넣어 기차를 운행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힘겹게
달리는 그 완행열차의 가냘픈 기적소리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자리하고 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의
소리로….
(2020.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