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위민정치(爲民政治)를 말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한 것은 여민정치(黎民政治)다.
五倫의 ‘倫’은 무리, 순서, 약속의 뜻이 있다. 즉 사람들 간의 다섯 가지 약속이 오륜이다.
다섯 가지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장유유서(長幼有序), 부부유별(夫婦有別), 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親’‘義’‘序’‘別’‘信’은 각 ‘공동체의 약속(倫)’의 종류다.
儒敎의 五倫은 종교가 아니다. 어지러웠던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삶의 지침서 이자 인문학이다.
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삼강의 ‘綱’은 그물의 세로 줄을 의미한다. 그물을 당기면 세로줄로 모아진다. ‘綱’은 종속의 의미다.
‘綱’은 왕과 신하, 아내와 남편, 아비와 자식간의 약속이다.
三綱은 유교가 아니다. 공자와 맹자의 五倫을 사마천과 동중서가 한나라의 建國理念으로 五倫을 변형 시킨 것이다.
따라서 三綱은 삶의 인문학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가진 수단일 뿐이다.
五倫에서의 왕은 黎民政治를 한다. ‘黎’의 뜻은 ‘많다’ ‘함께’ ‘백성들과 함께 모여있다’라는 뜻이다.
여민정치(黎民政治)는 백성과 함께 있다는 뜻이다.
類類相從 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friend가 together 한다는 것이다.
together는 친구와 함께 한다는 의미다.
三綱에서는 爲民政治를 한다. ‘爲’는 ‘베풀다’ ‘봉사한다’라는 뜻이다.
위민정치(爲民政治)는 백성을 위해 봉사한다는 뜻이다.
類類相從 하지 않고 백성을 위해서 정치 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for다.
爲民政治는 leadership를 사용한다. 백성의 從이라는 뜻이다. 즉 백성과 상하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백성의 從이 아니라, 백성을 ‘綱’으로 구속한다. 그것은 ‘군위신강(君爲臣綱)’의 ‘綱’ 말해주고 있다.
독재자 김일성의 거실에 ‘爲民政治’ 의 한자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최악의 독재자 였다.
요즘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치인이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리당략 뿐이다.
겉으로는 ‘爲民’과 ‘for the people’이지만, 실제로는 君爲臣綱인 것이다.
국민과 같이 있는 정치, 국민과 친구가 되는 정치가 黎民政治인 것이다.
leadership을 보다 friendship이 어울린다.
국민을 위하지 말고, 국민과 함께 있어야 한다.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명연설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위민정치(爲民政治)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나 동물은 기본적인 품성이 利己的이다. 이타심[利他心]은 억지로 만들어 낸, 爲民과 같은 의미다.
인간이나 동물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거쳐서 현재의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다.
이기적인 품성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치가가 국민을 위한다는 말, 국민이나라를 위한다는 애국심, 아내가 남편을 위하고, 남편이 아내를 위하고, 부모가 자식을 위하고, 자식이 부모를 위하고......등, 전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런 말이다.
정치가는 국민과 같이 가고, 국민은 국가와 같이 살고, 아내와 남편은 같이 살아가고, 부모 자식 간 역시 같이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웃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사이좋게 살아나가는 것이다.
국가를 위한다는 말,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의 말은, 국가주의의 증거다.
아나키스트는 국민과 정치가는 같이 가는 진정한 자발적인 공동체를 주장한다.
남편이 아내를 위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한다는 말은, 자칫하면, 집착과 구속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고 자식이 부모를 위한다는 말은 종속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역사를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