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11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잠 21:2~6).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는 사람~~~~~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삶의 목표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두고 시간과 물질과 모든 노력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보다 하나님의 속성인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더 원하신다. 이는 단순히 율법의 원리를 엄격히 적용하는 외적 행위라기보다는 사랑의 원리에 입각한 공의로운 행동을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나 종교계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 바로 공의와 정의의 삶이다. 이와 같이 사랑에 입각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외식적인 제물만 드리는 제사보다 훨씬 더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신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물이나 권력 등으로 교만해지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에게 잠시 그 소유권이 맡겨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재물이나 권력이 자신의 교만한 도구가 아닌 마땅히 모든 권세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거짓이 없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을 모을 때도 오직 정직한 방법으로 행하기를 원하시고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만 풍부함의 복을 허락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히 행하는 자가 거짓말을 일삼으며, 자기를 기만하는 게으름에 빠질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재물의 축적을 위해서는 온갖 속임수를 쓰고 타인의 희생도 아랑곳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자들의 종말은 궁핍이요, 죽음뿐이다.
가끔 ‘나의 생활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일까?’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예배는 빠지지 않고 드린다고 하면서 삶 속에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어버리고 영향력을 상실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보다는 외적 성장에 치우쳐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고사하고,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해 오히려 지도자들이 거짓을 일삼고, 교만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목회자의 성추행, 물질 욕심으로 인한 온갖 부정직한 행위들, 마치 하나님인양 착각해서 돌봐야 할 양인 성도들을 영적으로 학대하고 정죄하는 모습 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행위들을 일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는 종교인이 아니라,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참 신앙인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기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는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의와 정의를 삶 속에서 실현하는 삶을 살게 도와 주시고, 보다 겸손하고 거짓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겸손함과 거짓이 없는 삶을 통해 전도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