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화요일>(2023. 6. 13. 화)(마태 5,13-16)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3-16).”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당신의 제자들(신앙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신 설교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군중을) 대상으로
하신 설교입니다(마태 7,28).
<제자(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는 말씀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신앙인들에게는
“신앙인답게 살아라.” 라는 명령이고,
아직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서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라.” 라는 ‘부르심’, 또는 권고입니다.
<이 말씀은, “신앙인들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다.”
라는 뜻의 말씀이 아닙니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이라는 말씀은, 신앙인들에게는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이라는 뜻이 되고,
아직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이라는 뜻이 됩니다.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표현만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라는 말씀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니고,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또는 “복음을 거부한 채로 구원받을 수는 없다.”로 해석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루카 1,37).
따라서 하느님은 ‘제 맛을 잃은 소금’도
다시 짜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인간 쪽에서도 믿고, 회개하고,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쓸모가 없다.’ 라는 말은, “구원받을 자격을 얻지 못한다.”
라는 뜻이고, ‘밖에 버려진다.’ 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무 쓸모가 없으니” 라는 말씀과
“밖에 버려져” 라는 말씀은, 사실상 ‘뜻이 같은’ 말씀입니다.
쓸모없으니까 밖에 버려지는 것이고,
밖에 버려지니까 쓸모없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구원받을 자격을 얻지 못하니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고,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 또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버려질 것이라는 경고 말씀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신앙인답게 제대로 살면, 이 세상에서도,
또 하느님 나라에서도 대단히 쓸모 있는
‘귀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격려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씀은,
신앙인들에게는 “세상의 등불이 되어라.” 라는 명령이고,
아직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주는 빛을 받아라.” 라고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라는 말씀은,
신앙인들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감추지 마라.” 라는 명령이고,
아직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주는 ‘구원의 빛’을
외면하지 마라.” 라고 타이르시는 말씀입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전쟁 때 피난처로 삼을 수 있는 고을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영원한 안식처’인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빛’은
‘영원한 안식처’로 우리를 인도하는 빛입니다.
그 빛만 잘 따라가면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와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일은,
바로 그 ‘영원한 안식처’를 알려 주고, 안내해 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안식과 평화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다음에나 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서 그곳에서 완성됩니다.
교회와 신앙인 공동체도 지금 여기에서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이사 56,7).
<누구든지, 신앙인이 아닌 사람이라도,
교회에서 참된 안식과 평화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라는 말씀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비추어서 인도하여라.” 라는 뜻인데,
가장 먼저 비추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이 먼저 올바른 길을 잘 걸어가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루카 6,39).
<‘아리마태아 요셉’과 ‘니코데모’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요한 19,38-39).”
요셉과 니코데모는 유대인들의 박해가 무서워서 신앙인이라는
것을 숨기고(자신의 등불을 감추고) 살았지만, 예수님의 죽음
때에는 오히려 신앙을 드러내면서 예수님의 장례를 행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등불로 세상 사람들 앞을 비춘 것과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할 사도들마저도 모두 달아나서 숨어 있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 두 사람의 행동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행동입니다.>
[출처]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