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월 20일 묵상 본문 : 요한복음 6장 22절 - 40절 - 주와 교제함으로 영적무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을 통해 영생을 누리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을 시작합니다.
한 주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반복되는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이 생각나지만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도 게으름을 느낍니다.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눈앞의 현실에 매이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어진 상황에서 주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되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바다 건너편의 무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던 벳세다에 있던 사람들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이동했고 예수님은 그곳에 남았다고 사람들은 생각했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벳세다 지역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준다.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그러나는 오역이며 그 뜻은 다른 배들로 번역해야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다른 작은 배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벳새다로 들어오게 된 당시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다.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무리들은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음을 깨닫고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기 위해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이동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사람들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언제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왔는지를 묻는다.
예수님이 배를 타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가버나움에 계신 예수님을 신기하게 느낀 것이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찾은 목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떡을 먹고 배부른 이유 때문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러한 선언은 자기들의 현실적 필요를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의미하고 있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은 육신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비교하시면서 자신은 영의 양식을 주는 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이 인치신 자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음을 의미하는 말로써 하나님의 권세를 힘입어 영적 양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영의 양식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는 예수님을 알고 믿음을 가지는 일은 영생을 얻는 것과 같음을 의미했다.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사람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보여주신 표적을 보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표적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님의 지적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현실의 문제 해결에만 관심을 둔 그들의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다.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먹게 한 것처럼 모세와 같은 선지자도 오면 만나를 먹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일을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예수님은 만나를 주신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하늘의 참 떡을 주신다고 선언하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선언은 모세는 육신의 만나조차도 줄 수 없는 인생에 불과함을 드러내시고 반면 영의 양식을 주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능력은 모세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본절의 의미는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온 분, 곧 예수님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임을 말하며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얻고 누리는 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의미는 존경의 대상으로 부른 호칭에 불과 했으며 그들이 요구한 떡은 사마리아 여인이 생수를 요구한 것처럼 물질적 떡을 의미했다.
결국 자신들의 육체적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떡을 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선포하시고 예수님을 찾는 자들은 주리지 않으며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신다. 이는 육신적인 양식이나 물이 아닌 영적 양식과 생수가 되어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삶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요 생수임을 드러내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하고 생명을 주는 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신다.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자신에게 나아올 것이고 그들은 자신이 결코 쫓아내지 않을 것을 선언하신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함께 예수님의 절대적 순종의 모습을 보여준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오셨음을 선포하기고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임을 드러내신다. 이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다시 드러내신 것이다.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은 자신에게 주신 자를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임을 선언하심으로써 구원자와 심판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신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를 사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됨을 보여주며 영생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 벳새다로 몰려들게 되었고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버나움으로 보내신 후 홀로 갈릴리 호수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신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벳새다에서 예수님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이에 벳새다로 온 작은 배들을 타고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함이었으며 자신들이 필요를 채워줄 대상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시면서 육의 양식을 위해 자신을 찾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위해 자신을 찾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적 지식에 무지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를 위해 예수님은 대화를 통해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시고 영적 양식에 대해 바르게 가르쳐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의 관심은 오직 땅에서 얻는 양식, 그리고 자신들을 로마에서 구원해 줄 대상만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자로 선언하시고 그것을 증거 하시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나사렛 출신의 선지자 정도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모세가 만나를 먹인 것처럼 예수님도 자신들에게 만나 같은 양식을 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선언하시고 자신은 육신의 만나보다 더 신령한 영의 양식, 생명을 주는 자임을 선언하신다.
이러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깨닫는 자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 자신도 수없이 요한복음을 읽고 성경 전체를 통독하는 일도 많았지만 이러한 영적 양식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 그리고 하늘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인생의 무지는 성령의 감동하심과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생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얼마나 소중한 은혜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자를 찾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게 되는 것이다.
작금의 대통령이 그러한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갈등과 분열, 그리고 자멸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성도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눈앞의 현실과 그것을 해결해주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들이 꺼리고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라고 선포한다.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1~24)
하나님의 지혜는 영생의 양식이요 생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알고 찾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복음에 연합되어 사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눈앞의 문제와 현실의 상황에 매이는 자가 되며 이는 궁극적으로 무지함으로 나아가 멸망에 이르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현실 문제의 해결사로 여기고 살아가는 태도는 마음의 부패를 막을 수 없으며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으로 향하게 만든다.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우상처럼 여기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가버나움으로 향하셨으며 자신을 찾아온 자들에게 표적이 아닌 배부름 때문에 자신을 찾았음을 드러내셨던 것이다.
오늘날 나의 삶, 그리고 성도라고 일컫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런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대상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태도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 믿음을 따라 순종하는 삶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자세하게 기록한 요한 사도의 기록을 통해 인생의 무지와 그 무지를 일깨우시는 예수님의 지혜가 얼마나 대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지혜요 능력이요 영생의 열매임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도 인생의 무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복음에 연합되어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사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인생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영생의 삶을 사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무지를 드러내시고 영생의 지혜를 전해주시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그 모습이 저의 모습이며 눈에 보이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육신의 삶에 매이지 않고 주의 지혜를 따라 영생을 누리는 자로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땅의 현실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힘입어 날마다 생명을 누리게 하옵소서.
세상은 갈수록 눈앞의 현실에 매이게 하고 무지함 가운데 교만과 허무함으로 살게 만듭니다.
날마다 주와 교제함으로 이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지혜를 따라 영생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