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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여자의 일생이란 어떤 것일까?
❏ 중동의 여걸들 ❏
다산하여 총애를 받은 여인들이 있다.
셰이카 훗사는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의 8번째 왕비로 1913년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국왕의 이복 형제와 재혼했으나, 그녀를 잊지 못한 압둘 아지즈 국왕과 1920년에 재결합하여 총애를 받으며 12 남매(아들 7, 딸 5)를 낳았다.
결혼과 재혼을 반복한 영화 같은 사연보다 그녀가 유명한 것은 압둘 아지즈 국왕의 부인들 중에 가장 많은 자녀를 출산하여 최다 파벌이 된 ‘수다이리 세븐(7명 왕자)’ 과 現 살만 국왕의 모친이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수다이리 세븐 중에는 장남 살만이 국왕에 올랐으며, 차남 술탄과 4남 나이프는
왕세제까지 올랐다가 기다리다 지쳐서
왕 보다 먼저 세상을 뜨고, 3남 압둘라 흐만과 5남 투르키, 막내 아흐메드는 왕위 계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UAE에는 셰이크 무함마드 왕세제와 영국 맨체스터 시티 FC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 (1970년생) 등 6형제를 낳아 총애를 받았던 셰이카 파티마가 있다.
▲ "한국 남성하고 재혼하고 싶어요!"
두바이는 자빌궁의 안주인과 대외활동을 전담하는 부인의 역할이 양분되어 있다.
셰이카 힌드는 무함마드의 9명의 아들 중 5명과 7명의 딸을 낳았다. 최근 합동결혼식 을 올렸던 왕세자 셰이크 함단 형제를 포함 하여 12남매의 어머니의 전형적인 내조형, 공식 석상에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유명세를 탄 둘째 부인 ‘프린세스 하야’는 1남 1녀를 낳았다. 공식 행사를 수행한 공로였을까? 2012년에 낳은 아들 이름을 UAE 국부 이름을 따서 ‘자이드’로 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샴사와 라티파의 두 공주 감금 문제로 어수선한 데, 프린세스 하야도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자발궁 시월드에서 벗어나 해외로 야반도주했다.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71)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겸 두바이
군주의 딸 셰이카 라티파 알 막툼 공주가 2018년 아버지의 손아귀를 벗어나려다
자유를 잃고 두바이의 빌라 감옥에서 지내고 있다고, 21년 前 언니 샴사 납치
재수사를 요청하며 언니의 현재 모습과 함께 영국 경찰에 호소하는 손 편지를
<영국 BBC>에 보냈었다.
언니 샴사는 2000년 8월 영국 케임브리지 에서 끌려와 좀비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집에서 개, 말, 오랑우탄, 호랑이까지 길렀던 라티파 공주가 최근 아이슬란드에서 건강한 모습을 나타냈다.
여성의 인권을 박탈하는 이슬람 율법을 이해할 수 없지만, 카타르는 다르다.
바로 셰이카 모자의 백성을 사랑하는 고운 마음과 지혜로운 지도력 때문이다.
카타르가 뉴스에 소개될 때마다 그 작은 나라의 위대한 셰이카 모자와 함께 한반도 역사 속의 인물들이 동시에 오버랩 된다.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밑거름이 되었던 소서노와, 590년 고구려 영양왕 때,
아단성전투에서 전사한 평원(평강)왕의 부마 온달 장군의 부인 평강공주와
태종(이방원)의 부인이자 세종대왕의 모친 원경왕후(1365~1420) 여흥(驪興) 민씨
가 떠오른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아버지의 뒤통수를 치고 무혈 쿠데타에 성공했다.
카타르의 태상왕 칼리파, 상왕 하마드, 현 국왕 타밈과 배후에서 그렇게 만들어간
셰이카 모자의 스토리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중동 버전이기 때문이다.
태조 이성계와 태상왕 칼리파, 상왕 하마드 와 태종 이방원, 타밈과 세종대왕... 닮았다.
남편 하마스를 착한 독재자로 보필한
중동의 힐러리 ‘셰이카 모자’는 하마드를
통하여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고, 세계 아동 교육에 헌신한 위대한 여성이다.
30년 세월을 아프리카 교육에 헌신해 온 ‘앤 코튼’이 세계 최초로 2011년 설립한 ‘와이즈 교육상’은 세계적인 교육 공로자를 엄선하여 상금 50만 달러와 특별 제작된 금메달을 함께 수여한다.
나는 ‘셰이카 모자’를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세상에 없는 ‘노벨 교육상’ 후보자로 한국의 교육 폭망에 기여한 MB와 유은혜 장관을 추천한다.
카타르 수도 도하 서쪽 지역에 ‘에듀케이션 시티’는 300만 평에 조지타운대, 코넬의대 같은 미국 명문대 분교가 있는 ‘교육특구’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개막 며칠 전에 이곳에서 성화점화식이 열렸다.
수 천 관중의 박수와 환호 속에 중년의 왕비 셰이카 모자가 성화불을 붙였다.
이곳은 그가 주도한 교육 개방. 개혁정책의 성과였다. 왕비는 “우리가 가진 것은 땅에 묻힌 자원만이 아니다. 이 작은 불꽃이 우리의 정신을 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국왕의 모후(母后)지만 왕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는 실력자로 수 백 억 달러의 자산을 지닌 ‘카타르재단’ 이사장 을 맡아 나라의 경제. 사회개발 프로젝트를 책임진다. 카타르에서 사업하는 각국의 기업가들에게는 밝고 당당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녀는 최고의 VIP로 꼽힌다.
실제 인구 28만 명의 남부 지방은 바위와 불모지의 사막이고 그나마 남은 북부 땅은
염분에 찌든 평지로 척박하고 진주를 채취 하여 근근이 먹고살던 가난한 나라였다.
유일하게 국명이 알파벳 Q로 시작하고, 이슬람 국가여서 금. 토요일이 휴일이며, 환장할 정도로 무더운 나라 카타르(Qatar)
오래 전부터 ‘세계 빈곤 퇴치와 교육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도국 어린이 5700만 명을 돕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교육 최우선 사업과 아동 교육’ 프로그램 이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내가 1000만 명을 책임질 테니 여러분이 나머지 아이들 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셰이카 모자.
●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석유 자원이 고갈되어 갈무렵 페르시아 만
에서 LNG 천연가스가 쏟아졌다.
카타르 국민들에게 사업 및 유학 지원, 전국민 무상주택 제공 등의 복지로 전폭
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사업이 망해 빚을 지면 국고에서 모두 갚아준다.
자원의 수출 소득을 전국민에게 분배하므로 자국민은 놀고 먹고 즐기면 된다.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보장되고, 비록 7명이 출마하여 비록 모두 낙선했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가 자유롭다.
오만과 더불어 중동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교회 건축을 허용하고 종교의 자유가 있다.
모든 전문직을 포함한 노동그노자는 외국인 (한국인도 상당수)이며, 대부분의 가정엔 외국인 메이드를 고용하고 있다.
▲ 절대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를 전격발표
하고, 왕세자를 3남에서 4남 타밈으로 교체
한 후, 생전에 양위를 하고 상왕이 됐다.
▲ 금수저 타밈은 중동의 3040 지도자로
각광 받고 있다.
● 카타르는 왕실의 부패 지수가 낮다.
세이카 모자는 “왕실은 국민의 권리와 행복 을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세계적인 행사 유치로 영향력을 키웠다.
2006년 12월 도하아시안 게임, 2011년 1월 AFC 아시안컵 축구대회,
2012년 기후변화당사국회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유치를 진두지휘한 사람도, 남편 하마드 배후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사람도 바로 셰이카 모자다.
셰이카 모자는 “살아있는 패션의 전설이자 여성 해방의 본보기”라는 유명 패션잡지 평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외신은 그녀를 ‘중동의 힐러리 클린턴’, ‘카타르는 왕비의 나라’라고 해도 그녀의 진짜 가치는 그런 겉치장이 아니라 가난한 어린이를 돕고 억눌린 여성을 일으켜 세워주는 ‘노블레스 오불리주’를 실천하는 진정성에 있다.
세계의 지성인들은 그녀가 또 어떤 지혜와 비전을 보여줄지 자못 궁금해 하면서
성원의 박수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셰이카 모자를 “세계 교육의 대모”라고도 부른다.
▲ 보잉사의 F-15QA 4세대 전투기
▲ 알 우데이드 미 공군기지
영국 타이푼, 프랑스 라팔, 미국 F-15QA 거듭 사들인 4세대 전투기를 세워둘 공항이
모자라서 터키 군사공항에 맡겨두고 있다.
미 공군기지 유치에 성공하여 주변 강대국 들에게 큰 소리 뻥뻥 치면서 스스로 20년째 왕따국을 자처하고 있다.
원경왕후 민씨처럼 남편 하마드를 태종 이방원으로 만들었고, 평강공주처럼 온달 장군으로 만들어 보필한 셰이카 모자가 없었다면 오늘날 카타르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활약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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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럽다........ㅋ
중동의 대단한 여인들 많네요.
처음 알게 되는 정보 입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