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ATANIC[
1912 4월 14일 일요일 밤 빙산과 충돌 1912 4월 15일 월요일 새벽 완전 침몰
영화 타이타닉 1997년 개봉
1912 4월 14일 일요일 11:40 p.m. 망루에서 빙산을 발견함/타이타닉호는 빙산과 대 충돌! 11:50 p.m. 물이 차 들어오기 시작함.
1912 4월 15일 월요일 12:00 a.m. 타이타닉호 선장이 "배가 1~2시간 동안 밖에 물에 떠있지 못한다고" 함 그리고 긴급 요청을 시작함 12:05 a.m. 구명보트를 진수시킬 준비를 함. 12:25 a.m. 어린이와 여자가 구명보트에 먼저 탈것을 요구함. 58마일 이나 떨어저있는 카파시아가 타이타닉호의 긴급요청을 받아드리고 타이타닉이 있는 쪽으로 전속 항해함. 12:45 a.m. 첫번째 구명보트가 안전하게 진수 됨. 65명이나 태울수있지만 28명 박에 태우지않음. 첫번째 긴급 요청 불꽃놀이((DISTRESS ROCKET)우리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신호보내는 것)가 발쏴됨(총 8개가 발사됐을 것임) 1:15 a.m. 구명보트가 진수 되고 있음 1:40 a.m. 구명보트가 거의다 사라짐 승객들은 배 뒷쪽으로감. 2:05 a.m. 마지막 구명보트가 진수됨 그러나 아직도 타이타닉에는 1500명 이상의 승객이 있음 2:17 a.m. 마지막으로 긴급 요청을 함 2:18 a.m. 타이타닉의 3번째 굴뚝과 4반째 굴뚝사이가 갈라짐 몇 몇의 생존자들은 이 광경을 봄 2:20 a.m. 타이타닉호가 완전히 사라짐 3:30 a.m. 구조선 카파시아가 도착함 4:10 a.m. 첫번째 구명보트를 카파시아호가 구조시킴 8:50 a.m. 카파시아호가 뉴욕을 향하여 떠남
1912 4월 18일 9:00 p.m. 카파시아호가 뉴욕에 도착함
1912 4월 22/5월 15 일 타이타닉호 침몰된 장소에서 328명의 죽은 시체가 발견됨.

Edward John Smith(단서를 안고 사라진 장본인)
그는 1850년 영국 스텐포드쉬어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배에 익숙했다고 한다. 1880년 화이트 스타라인에 입사한 후 많은 신규 선박의 처녀 운항을 담당해온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호화 여객선의 선장을 도맡았었기 때문에 백만장자의 선장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그는 당시 최고로 많은 보수를 받는 고급 승무원으로 대서양 횡단항로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었다. 실제의 그는 자신만만하게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목청을 높이는 일도 없고, 유머감각이 있었으며 복종과 규율을 중시했다고 한다. 그는 타이타닉의 처녀항해 후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결국은 역사적인 이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스미스 선장의 최후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조종실에서 유유히 배와 함께 가라앉지는 안은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최후은 노선장답게 영웅적이었다. 그는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바다에 뛰어 들어, 주위에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보트에 올라타지 안고 배와 함께 최후를 마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Thomas Andrews(거대 선박 타이타닉을 디자인)
올림픽호는 1910년에 타이타닉호는 1911에 HARLAND & WOLFF란 회사에서 만들어졌다. 타이타닉의 디자인은 HARLAND & WOLFF 의 감독관인 토머스 앤드류가 했다. 첫번째 배 올림픽호는 1910년 10월 20일날 진수되었고, 그 뒤를 이어 타이타닉호는 1911년 5월 31일날 진수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 졌으므로 두 배의 크기는 똑같았다. 프로팰러는 3개, 굴뚝은 4개지만 그 중 하나는 배의 디자인을 멋지게 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구명보트는 14개 비상 보트 2개 접는 식의 보트가 4개가 있었다. 구명보트는 최대 65명, 비상 보트는 최대 40명, 접는 식의 보트는 최대47명을 태울수있었다. 그래서 총 1178 명을 태울수있다. 이렇게 타이타닉에는 20개의 구명보트가 있었는데 원래 16개의 보트를 더 놓을 수 있었으나 타이타닉의 주인인 토머스 앤드류씨가 외관상 보기 안좋아 그것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올림픽호의 1911년 6월의 처녀 항해는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타이타닉의 처녀 항해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타이타닉을 디자인을 한 토머스 앤드류는 마지막에 1등석 흡연실에서 홀로 서 있었다는 말이있다.

Bruce Ismay(타이타닉 최고의 부자, 선주)
화이트 스타 라인의 사장이었던 그가 실제로 선장에게 속력을 내라고 명령했는지는 모르지만, 생존자 중에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에 의해 이 장면이 만들어졌다고 하므로 거의 사실인 것 같다. 확실한 것은 그는 하인과 비서와 수많은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구명보트에 올라탔으며, 이 일로 인해 그는 생존 후에도 상류사회와 언론에 의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청문회에서 타이타닉 참사의 책임에 대한 법적 혐의는 벗어났지만, 1913년 화이트 스타사의 사장자리를 내놓은 후, 부인과 함께 아일랜드 서부에서 요양하다 1937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Frederick Fleet(빙하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
당시 그는 앞에 있는 빙산을 보고 브리지에 당장 충돌한다는 경고를 보냈다. 또한 그 전에 세번이나 거듭 보고했으나 그곳의 항해사들이 무시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청문회의 공식석상에서는 증언하지 않았는데, 이는 화이트 스타 라인사에서 뇌물을 받고 증언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William Murdoch(일등 항해사)
그는 영화속에서 구명보트로 달려드는 남자들을 쏜 뒤 자살해버리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풀리지 않는 구명보트를 풀어 사람들을 구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구명조끼마저 남에게 벗어주고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고 한다.

Hartley Mr.Wallace Henry(마지막 바이올린의 연주가)
타이타닉호와 관계된 모든 기록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바이올린니스트 하틀리가 이끄는 8인조의 음악이 연주된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1876년 영국 콜른에서 태어나 바이올린을 전공한 후 무려 70개의 호화 선박에서 연주를 맡아왔다.
당시 약혼자가 있던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나는 것이 싫어서 타이타닉의 탑승을 꺼려했지만 역사적인 선박에 탑승하겠다는 생각으로 배에 올랐다고 한다. 개인을 희생하며 마지막까지 음악을 연주한 그의 죽음은 영웅화되기에 충분했고, 고향인 콜른에는 3미터 높이의 동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구명보트에 탔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선율을 들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음악에 대해서는 논란도 많다. 영화에서는"Never My God to Thee"를 들려주었지만 실제는 "Autumn"이었다는 증인들도 있다. 그러나 곡명이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를 포함한 8인조 악단이 위기의 그 순간에도 음악을 연주했다는 자세, 그것이 인류의 심금을 울리며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Molly Brown A Margaret Brown
그녀는 가난했으나 남편이 금광을 발견하여 벼락부자가 되었다. 실제로도 상류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보트에서 리더쉽을 발휘하였으며 생존자가 있을지 모르니 보트를 돌리자고 주장하였다. 남편이 죽은 후 재산은 점차 줄었고, 뉴욕의 한 호텔에서 외롭게 사망하였다.

Benjamin Guggenheim(턱시도를 입고 브랜디를 마시며 신사답게 죽은 억만장자)
스위스에서 이민 온 그는 철강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현지처인 레오틴 오바와 함께 쉐브르그에서 타이타닉에 탑승하였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것으로 결정되자, 턱시로로 갈아입은 그는 구명조끼도 거부하였다. 현지처와 하인들이 구명보트로 탈출한 것을 확인한 뒤, "우리는 가장 어울이는 예복을 입고 신사로서 죽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영화에서 처럼 배에 남았다고 한다.

이시도와 스트라우스(같이 가기로 선택한 노부부) - 영화에선 편집
유명한 자선가이자 뉴욕의 맨하탄 한복판의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한 스트라우스부인은 구명보트에 타라는 권유를 두번이나 뿌리치고 남편과 마지막 순간을 같이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친척이나 가족들은 그들의 선택에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 부부는 생전에 생일잔치도 항상 같이 치루는가 하면, 헤어져 있을 때도 매일 편지를 교환할 정도로 극진한 사랑을 나눴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선원들이 마지막으로 보트에 타도록 권유했지만, 그녀는 대신 하인을 태우고 이제 이것도 필요없을 것이라며, 입고있던 모피코트마저 건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원들에 의해 두번째 보트에 강제로 태워진 그녀는 남편이 물러서자, 보트를 뿌리치고 나와 67세의 남편과 마지막으로 포옹하면서 최후를 맞았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생존자 '릴리언 거트루드 애스플런드'(1907~2006) 사고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생존자로 침몰당시 5살이었으며, 평생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5월 6일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지막 남자 생존자(2001년 사망)

좌 :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발견된 실제 다이아몬드 목걸이 우 : 영화 속 목걸이의 모델이 되었던 태양의 심장 호프다이아몬드

출항 전의 실제 타이타닉 호

출항하는 실제 타이타닉 호

실제 타이타닉의 거대 프로펠라
*당시 타이타닉 의 생존자 명단* 1등석, 남자=> 생존자-58 사망-115 여자=> 생존자-139 사망-5 어린이=> 생존자-5 사망-0 2등석, 남자=> 생존자-13 사망-147 여자=> 생존자-78 사망-15 어린이=> 생존자-24 사망-0 3등석, 남자=> 생존자-55 사망-399 여자=> 생존자-98 사망-81 어린이=> 생존자-23 사망-53 총승객, 남자=> 생존자-126 사망-661 여자=> 생존자-315 사망-101 어린이=> 생존자-52 사망-53 선원, 남자=> 생존자-189 사망-686 여자=> 생존자-21 사망-2 총 승객, 선원, 남자=> 생존자-315 사망-1348 여자=> 생존자-336 사망-103 어린이=> 생존자-52 사망-53
*총 2206명중 1503명 사망 703명 구조*

잭과 로즈는 허구의 인물
영화 메이킹 사진들




[타이타닉 명장면은 제 별명을 검색하세요ㅋㅋㅋㅋ
|
첫댓글 우와..거의 다 비슷하게 캐스팅했구나....그나저나 어린이랑 여자 먼저태운거 너무 멋있다 어린이들 그래도 많이 살았구나...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두...
머독? 일등항해사 진짜 멋졌음 어제 영화 봤는데 진차ㅠㅠㅠㅠㅠㅠㅠ질질 짜곸ㅋㅋㅋ
아 쓰리디로 못본게 진짜 한이다
내생의 첫 영화였고 최고의 영화로 남을거야....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도 아깝게 그걸 왜 버려.ㅠㅠ 손녀딸 주지.. 실제라면 안버렸을꺼야 라고생각함..ㅋ
타이타닉은 다시봐도 봐도 너무 감동이야 ㅜㅠㅠ
아진짜 최고의영화ㅠㅠ 아무리 다시봐도 질리지않아 다이아목걸이 진짜엿구나ㅋㅋㅋㅋ신기방기
뜬금없지만 내 눈 병신인가봐.. 타이타닉을 타이니팜으로 읽었어..
아마지막사진멋있다 진짜타이타닉은 내생에최고의영화
와걍영화랑똑같네
쓰리디는 별로였지만 내 생에 영화관 스크린으로 타이타닉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열번을 봐도 오열하게 만드는 명작이야 ㅠㅠ 타이타닉은 ㅠㅠㅠ
저 다큐 보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어ㅠㅠㅠㅠㅠ엉엉 대신 bbc에서 한 타이타닉 침몰 다큐 봤는데 무섭더라 정말
타이타닉 포에버ㅜㅜㅜㅜㅜㅜㅜㅜㅜ
진짜 만삼천원내고 스크린으로본거 돈하나도안아까운영화ㅠㅠㅠ이걸 언제 또 스크린으로보게될까 ㅠㅠ
생존자 사망자 명단에 1,2등석 어린이는 사망자가 0명인데....3등석 어린이들만 다 죽었어..
이번에 두번이나 봤는데 또 영화관 가서 보고싶당ㅠㅠ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
진짜 최고의 영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영화 또 보고 싶다 ㅠㅠ
로즈 약혼자가 나중에 구명보트 안타고 로즈구하러갔을때 진짜 울컥했음...쫘식....비열하긴해두 진짜사랑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