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해서는 안 된다. 너무나 당연하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꼽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이 너무나 자주 벌어진다. 꼽으라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에서부터 실수에 의한 사고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자연재해 앞에서 생명이 스러지기도 하지만, 분노나 충동에 의해서 다른 사람의 귀한 생명을 해치기도 한다.
풍요로움에 주체를 못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아사하는 어린이들이 무수하다. 한 해 수천만 명의 어린이들이 먹지 못해서, 기초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서 속절없이 목숨을 잃는다. 이를 두고 “목숨을 잃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우리 인류가 가장 약한 어린이들의 무수한 목숨을 빼앗는 것은 아닌가?
집단과 집단 사이에 첨단 살상무기를 동원한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을까! 언젠가 어느 주교님이 ‘평화’를 주제로 한 강론 중에 20~21세기에 인류가 벌인 전쟁들과 그 사상자를 열거하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자료를 찾아볼 생각이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절망할 것 같아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쏟아부으며 무기를 개발 · 보유하면서,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에게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람의 부조리함에 절망할 것 같아서…….
형제를 향해 성 내는 일마저 안 된다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성을 내서도 안 되고, “바보”라고 해서도 안 되고, “멍청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고 당신 제자들을 가르친다(마태 5,20-26 참조). 그렇지만 살면서 성 안 내고 남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천성이 착해서, 혹은 높은 수준의 인격을 갖춰서,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까지 성을 내지 않고, 속으로 ‘바보’, ‘멍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그런 일은 무수히 많다. 어쩌면 가까운 사이, 서로 좋은 사이였기에 성을 내고 “바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아예 나와 무관한 사람, 관심 밖에 있는 사람에게 성을 낼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성을 내거나 “바보”, “멍청이”라고 해 놓고 미안해서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이 평범한 우리 아닌가? 사람 모두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쳤네” 할 수 있고, “아니, 내가 과했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집단의 의식 차원으로 넘어가면 관계가 그렇게 간단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예를 들어보자. 그리스도교가 자리를 잡고 이방 세계로 확장된 다음, 서구사회에서 유대인은 하느님을 죽인 죄(deicide)에 시달려야 했다. 이는 직접 · 간접으로 아주 오랫동안 반유대주의를 형성했다.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 유대인을 향해 “바보”, “멍청이”라 불렀으며, 성을 냈고,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의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 곧 “살인”까지 벌어졌다. 서구 사회에서 이 같은 터무니없는 짓을 멈춘 것은 불과 몇 십 년이 되지 않는다. 그것도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나서야……. 교회가 공식적으로 유대인 전체에 가한 ‘하느님을 죽인 죄’가 부당하다고 밝힌 것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였다(비그리스도교 선언 4항 참조).
상대 집단을 ‘악마’로 여기는 일의 효과
언론의 외신면에, 때로는 1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건, 테러리즘의 배경을 놓고도 견해가 분분하다. 어떤 경우에도 테러리즘은 용납할 수 없다는 대의는 차치하고, 왜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가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 말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문명 및 종교의 갈등이 있다. 곧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오늘까지 계속되는 그리스도교를 배경으로 하는 서구 문명과 이슬람을 배경으로 하는 아랍 문명의 충돌이 테러리즘의 근본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의 시대를 흔히 ‘동서 냉전시대’라고 한다. 경쟁이라 했지만, 그 경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리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서로에게 성을 내고, “바보”, “멍청이”라고 비난했다. 그것은 점잖은 편이다. 서로를 궤멸시켜야 할 악마로 만들었으니까. 역사의 교훈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특정 집단 혹은 세력의 의도적 작업일까?
상대 집단을 그렇게 싸잡아서 비난하고 적으로 만들면, 이중, 삼중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첫째, 집단 구성원을 결속시킬 수 있다. 이때 자기 집단 내의 동질감과 상대 집단에 대한 이질감은 곧잘 선과 악으로 둔갑한다. 자기 집단은 선하고 상대 집단은 악하다고 믿으려 한다.
둘째, 자연스럽게 악한 상대 집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데, 이때는 증오심이 큰 몫을 한다. 상대 집단을 무너뜨리는 것은 부당한 증오심의 발로가 아니라,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며 정당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셋째 효과는 아마도 집단 내 특정 세력의 야욕을 감추는 데 있다. 집단 안을 향한 성찰의 노력보다는 관심을 밖으로, 곧 상대 집단에 대한 경계나 비난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시대’의 동서 사이의 관계, 곧 남의 일만이 아닐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 · 북은 서로를 “괴뢰(꼭두각시)”라고 손가락질했다. 서로를 향해 소련의 괴뢰라고, 미국의 괴뢰라고 했다. 서로를 “꼭두각시”라고, 서로를 “바보”, “멍청이”라고 불렀고, 성을 냈고, 죽이기까지 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의 제자들만이라도 북을 향해 성을 내지 말고,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지 말자. 정전(停戰) 60년이 되었는데, 그쯤 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박동호 신부님 (안드레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신정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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