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신학자로 불리는 본회퍼는 당시 나치즘에 무기력했던 독일 개신교계를 향해 신랄한 비판을 거침없이 퍼부었던 신학자였고, 나치의 박해가 시작될 무렵 미국으로의 망명을 거부하고 도리어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하기까지 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43년에 체포되었고, 나치 정권이 패망하기 직전 1945년 4월 9일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던 것으로 그의 일생이 전해진다. 그래서 오늘날 개신교계는 본회퍼가 행동하는 신학자, 반 나치운동가, 기독교적 평화의 선구자였다고 평한다. 실제로 본회퍼의 이 같은 행보는 당시 사회를 비추어 볼 때 용기 있고 대담한 항거자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쓴 책들을 번역해서 기념할 만큼 성경적 진리에 밝았던 신학자는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평화에 대해 오해를 하여 하나님의 일과 무관한 쓸데없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한 본회퍼
먼저 본회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로 사신 교회들을 향해 이 땅에 실제적인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사명을 주신 것으로 착각했던 무지한 신학자였다. 또한 그의 무지가 성경적인 것인 양 그를 기념하는 한국본회퍼학회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진정으로 우리 주님께서 본회퍼처럼 교회들이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라고 명령하셨단 말인가? 그래서 이 땅에 만일 고통을 안겨다 줄 것 같은 독재자가 있으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자를 암살하는 모임을 조직하기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니라, 오히려 분쟁케 하러 왔노라』(눅 12:51). 실제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셨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전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서로 간에 분열을 일으키곤 했었다(요 7:43).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인하여 유대인들 중에 다시 분열이 생기더라』(요 10:19). 유석성 학회장은 본 행사의 강연자로 나와서 본회퍼의 관점에 따라 예수님은 평화주의자(peacemaker)였다는 오류를 뿜어냈지만, 주님은 성경에 따르면 오히려 “분쟁을 일으키는 분(troublemaker)”이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세상이 악하다고 증거하셔셨기 때문이다(요 7:7). 따라서 그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처럼 세상의 죄들을 성경 말씀을 통해 책망하기에 세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로 세우신 교회들을 죽도록 미워하는 것이다(요 15:18,19; 17:14).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그리스도인들
실제로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이 회심했던 간증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을 때, 유대인들은 “저런 자는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라. 그는 살 자격이 없다.”고 분개했다(행 22:22). 사도 바울이 평화를 추구(?)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무지해서 유대인들에게 저런 악평을 들어야 했던가? 본회퍼와 사도 바울 중 누가 진리의 길에서 곁길로 빠져 버린 것일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로부터 교회시대의 향상된 계시를 받은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였으며(엡 3:1-10, 갈 1:12), 신약의 대부분을 기록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바로 화해의 직분이라고 전했다(고후 5:18-2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를 그분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화해하시기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다(롬 3:25; 5:1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고, 이제 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해서 잃어버린 혼들을 하나님께로 이겨와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화해를 이루는 소위 그리스도의 대사들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화평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을 바로 오늘날 신약교회가 감당해야 되는데,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엡 6:15).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화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남겨 두나니 나의 화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겠다고 고백한 사람들에게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내적인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인간들이 평화를 만들겠다고 온갖 유난을 떤다 하더라도 인간의 내면에 온전한 평안을 줄 수 없다.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내적 화평을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화평을 지니고 살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들은 누구나 이 땅에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인간들의 노력으로는 이러한 평화를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진리이다. 오직 주님께서 정의와 공의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고 다스리실 때, 이 세상은 정의와 공의가 우뚝 서고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다. 『그의 정부와 화평의 증가함이 다윗의 보좌와 그의 왕국 위에 바르게 세워지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는 데 끝이 없으리라. 만군의 주의 열성이 이것을 실행하시리라』(사 9: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시면 그때서야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사 2:4; 35:5,6; 11:6-8).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천년왕국이 수립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해야 한다(시 122:6).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신 명령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복된 소망이다(딛 2:13). 성도가 복된 소망이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주님이 가져오실 미래의 화평한 세상을 바라야 한다는 사실에 무지한 본회퍼의 저서들을 기념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을 따름이다. 사도 바울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려고 암살모의를 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본 회퍼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를 기념하는 자들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BIBLE POWER]
첫댓글 저는 사실 이 본 회퍼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꽤 어린 나이에 사형을 당했군요.
그 마음에 정열이 있는 듯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을 쓴 사람이 그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쳐 보입니다.
아직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하나님말씀을 정확히 못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가 10년정도를 더 살았더라면 그의 믿음이 어떻게 바뀌고 성장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도 회심전에는 교회를 말살하는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런 그가 회심한 것이지요. 사람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네가 사람을 판단하는 판단으로 너를
판단하신다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본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이런 말은 함부로 하지 않았을텐데....
제가 보기에는 이 글을 쓴 양반이 더 편협한 시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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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훼퍼에 대한 시각은 너무나 다양하지요..
본훼퍼 시대에 가질수 밖에 없었던 평화에 대한 열망이 결국 잘못된 [성서관]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그러나 결국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은 "주님"께 맡기고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에서 참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will)(엡1:9)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분을 섬기는 것이 유익할 것 같습니다.
바이블파워(Bible Power)는 잘 아시다시피...[말씀보존학회]에서 발행하는 인터넷잡지 제목으로 알고 있는데...
일견...좀 편협한 시각일수 있으나, 또한 한국사회에 성경에 대한 시각을 일깨운 긍정적 측면도 있지요..
예수 좋아님의 온유하고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예수님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런 칭찬?에 익숙하지 않아...숙쓰럽네요...ㅎㅎ
저는 인터넷에서는 항상 [안티]여서...말입니다..
최근에도 어느 [카페]에서는 거의 도망치듯? 나왔거든요?
너무 무서워서...말입니다....
여하튼...참으로 [예수 더 알기] 원합니다.
아이디...참 곱습니다...
아멘..
바이블 파워에는 종종 좋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는 들러본지 1-2년 된 것같습니다만 시간이 허락되시는 분들은 유익한 자료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이 글을 쓰신 분과 대체로 같은 평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제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우선 본회퍼 당시의 독일 교회는 히틀러 정권에 적극 가담하거나 옹호하고 있었습니다. 본 회퍼는 히틀러 집권 첫날부터 끝까지 반대하고 저항하였습니다. 그는 방송으로 히틀러 정권을 호되게 비판하였는데 그 생방송 도중 끊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제 독일 나치스가 수천만을 죽이고 있는데 그냥 현실 참여는 해서는 안된다 하여
그냥 묵인하고 있던 사람들은 결국 나치스에 협력하는 것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독일 교회는 일종의 국가 교회로 당시에 독일의 모든 교회는 그 우두머리로 히틀러를 추대하였습니다. 이때 본회퍼의 스승이라 할 수 있던 칼바르트와 본회퍼는 독일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반박하였습니다. 본회퍼의 쌍둥이 여동생 남편은 유대인이었으며 그는 인종차별에 반대하였고 수많은 살육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런 양심에 어긋나게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은 구원받았는지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값싼 은혜를 받은자로 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당시에 에큐메니칼 운동에도 참여하였는데 당시로서는 히틀러의 국가교회에
반대하는 방법이 그것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움직임의 결국이 바티칸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잘 못 깨달은 것같습니다.
본회퍼의 아버지는 유명한 뇌신경 의학자요 정신과 학자였으며 어머니는 음악가 집안과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단한 집안이었고, 그는 피아니스트요, 테니스 선수였으며 목사였고 실존주의 신학자로서 실천신학을 강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이 사람에 대해 알기 시작한 것은 고교시절 40여년전이었는데 당시 칼바르트, 라인홀트 니버, 폴 틸리히의 책들이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실천신학으로는 유명할지 몰라도 순수 복음에는
눈을 감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칼 바르트의 경우는 상당히 생각해볼 점이 많다고 생각되고 그는 모라비아 형제단의 공동체 운영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독재자가 수백만을 학살하는데도 정치 참여는 해서는 안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같습니다.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성령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암살이나 폭력적 방법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본회퍼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란 결국 히틀러를 지지하던 기독교인들이 되었을 뿐입니다. 카톨릭과 루터파는 그 중심에 있어서 모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히틀러에 충성하게 하였습니다.
본회퍼는 미국이나 영국으로 망명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는 조국을 사랑하여 조국에 돌아갔었고 나중에 체포되어 미군이 그 캠프를 해방시키기 2주전 철사줄에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수백만의 양민이 죽어가도 세상정치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하여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입니다. 그때에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참여를 한다면 세속인들과는 달라야 할 것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은 분명할 것입니다.
본회퍼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사회혁명가 개혁가로 살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부모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신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며 종교 사회의 개혁을 원했습니다. 그가 참 구원을 얻었는지 여부는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문제라 생각됩니다.
머리가 마니 무거우시겠습니다. 이 많은 지식들을 넣어 놓고 계시니....
그저 소인은 부러울 따름입니다. ^^
본회퍼에 대해 잘 공부할 기회여서 좋습니다.
그리고 바른 판단과 고민을 제시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달 전, 서점에 들렸을 때, 일부러 '본 회퍼'를 검색하여 책들을 훑어 보았으나 별로 복음적인 것을 느끼지 못해서 그냥 나왔습니다.
본회퍼는 사실 제가 고교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가장 좋아하던 기독교인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었는지 여부는 당시에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때로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었었지요. 물론 저는 우찌무라 간조도 좋아했습니다. 그가 거듭난 다음 일찌기 복음을 떠나서 사회의 비참하고도 충격적인 현실과 싸우게 되었는지, 구원 거듭남은 조반먹기 전에 일찍 끝내고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할 것은 그 당시 히틀러의 국가 교회 수장에 대해 찬동한 자들은 카톨릭과 루터파들이었고 그들이 절대 다수였을 때 독일 교회의 수장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당당히
싸운 사람은 칼바르트와 본회퍼였다는 것입니다. 암살이나 모살을 기독교는 지지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사기 3장에 에훗이 에글론을 찾아가 몰래 죽인 이후로 이스라엘은 80년동안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만일 본회퍼의 압베어 공작이 성공했다면 수천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카톨릭 세력과 싸울때에도 남는 문제일 것입니다만 특별히 신약시대로 들어와서는 베드로의 칼을 뽑는 것을 금하시고 칼로 싸우는 자는 칼로 죽임을 당한다는 진리가 통할 것으로 보입니다(계13:10) 본회퍼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을 때 조선 천주교는 그를 출교조치했습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 목사들은 위에 있는 권세에 순종하라며 그것을 권장했습니다만 윤봉길 이봉창 열사는 폭탄 투척등을 했고 그때 조선일보등은 천하 대역부도 사건 발생이라고 맹비난 햇습니다. 윤동주시인이 기독교인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생체실험대상으로 죽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미련하고 잘못된 것이었다고 비난하기에 앞서서 저는 그냥 일제나 독재정권, 신사참배에 반대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동정하고 싶습니다. 마카베의 난으로 성전 정결절이 생겼고 예수님은 그 명절에 거니셨습니다(요 10:22-23)
침례자 요한은 헤롯왕의 결혼문제에 관여함으로 옥에 갇혔다가 끝내 참수되었습니다. 그가 공연한 현실 참여를 했으므로 행위구원론자이고 구원얻지 못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운 사람들이 비록 현실참여문제에 많이 관여했더라도 명백한 구원이 아닌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일단은 주님의 심판때까지 묻어둘 문제로 보입니다.
다만 현실참여주의자들 중에는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처럼 거듭남은 없고 사회참여만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분별이 쉽지 않은 사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