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이 새벽, 주님을 구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오니 이 시간 주의 얼굴 빛을 비추소서.
내 어둔 심령에 밝히 비추사 주의 빛으로 가득 채우소서.
주님의 보혈은 능력이 있사오니 나의 온 몸을 덮으사 나의 오염된 세포 하나하나, 핏방울 한 방울 한 방울까지 씻어 정결케 하옵소서.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산 제물이 되기 원합니다.
죄를 향하여 달려가고자 하는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자기주장의지도 함께 죽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영광의 광채가 나를 둘러 비치게 하시고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1:18-25
제목 : 창세전부터 복음이셨던 주님께서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복음의 도구로 쓰시다.
18.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결혼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리아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20. 요셉이 이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을 때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말하기를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에게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된 잉태되었다.
21. 아기를 낳을 것인데 이름은 예수라고 지어라. 그 뜻은 가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
22. 이렇게 해서 주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나 천사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 왔습니다.
25. 그리고 아들을 낳기까지는 동침하지 않았고 아들을 낳아서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 나의 묵상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다.
그러나 그는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 즉 부정모혈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다.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한 사실이 없는데 마리아가 임신을 했으므로 요셉은 주변에 소문을 내지 않고 조용히 파혼을 하려고 하였다.
이 일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을 때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요셉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그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아기를 낳거든 예수라고 이름을 지어라. 그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
이 모든 일은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7:14절)에서 이미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자 천사의 지시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다.
그리고 동침하지 않다가 아들을 낳고서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은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말씀으로 태어나셨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으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품속에서 아버지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셨다(요 1:18).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말씀이신 아들보다 크시기에 또한 아들은 아버지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존재이셨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런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 안에서 사셨던 아들과 아버지께서는 창세전에 서로 언약을 맺으셨다.
그것은 사람을 지어 그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 약속을 하신 삼위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셨다.
만들어진 생명, 즉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성자이신 아들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과 완전한 언약적 교제의 관계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는 영생을 받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주기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창세전부터 이 땅에 오시기로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언약적 교제의 존재로 지음받은 아담이 아들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먼저 범죄하여 언약을 깨트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담은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은 불의하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 없기에 그에게 복음을 주셔서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3:15절과 21절의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 즉 존재로써의 복음과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메시야적 행위로써의 복음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했던 그 계명은 그대로 지켜졌다.
그것은 당장 죽는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적 교제의 존재로써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의 아주 긴밀한 관계성이 단절되었고 결국 그의 육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 육신도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한 아담도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제시된 여인의 후손인 그리스도와 그의 메시야적 행위인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
이렇게 복음으로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은 유다 왕 아하스 시대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오실 것이 예언 된다.
아하스 왕 때 아람 왕과 북 이스라엘 왕이 연합하여 남 유다를 공격한다.
그로 인하여 아하스 왕은 크게 두려워한다.
그때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가서 아람과 북 이스라엘 두 왕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께 한 징조를 구하라고 한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징조를 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불신앙으로 인함이다.
결국 이사야는 그에게 한 징조를 선포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그리스도의 탄생 예언’이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과 같이 때가 되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요셉과 마리아의 가문에 태어나게 된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본문 1:21-23)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처럼 임마누엘되신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오시기로 약속되었다가 때가 되어 오셨는데 그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다.
둘째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아담 안에 있는 생명으로 태어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것은 창세전의 일이지만, 죄사함의 문제는 아담의 범죄 이후에 약속된 일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복음의 약속을 창 3:15절과 21절에서 확증하신 것이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의 등에 업혀 교회에 나갔으며 교회가 나의 놀이터요 운동장이며 학교요 집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거의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할 정도로 교회에 충실하였다.
나의 인생은 교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영생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아는 영생은 관념에 불과하였다.
죽어서 가는 천국을 영생으로 알았기에, 항상 불안하였다.
‘내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나를 짓누르기도 했다.
그래서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했고, 죄를 지으면 당장 회개하기도 했다.
그런 나의 생각과 삶은 항상 만물 안에서 이루어졌다.
나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나의 죄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불안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나는 철저히 만물 안에 갇혀서 살았으며, 내가 믿는 하나님도 만물 안에 갇힌 신이었다.
내가 만물 안에 가둔다고 해서 갇혀 계실 하나님은 아니지만, 나의 사고의 범위 안에서 나는 믿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철저히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지만, 나의 믿음의 지경이 크게 넓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어려서부터 율법적인 신앙교육과 주입식 교육은 혼자 독립하면서 나도 모르게 분출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내 안에 눌려 있던 신앙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그 결과 겉으로는 교회에 잘 나가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지만, 속으로는 썩어 문드러진 영적 문둥병자였다.
나는 속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한 자요, 부모님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죄인 중의 괴수였다.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함부로 굴렸고 내 맘과 육신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였다.
그러면서도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항상 내 영적 상태는 우울모드였다.
이런 나를 주님은 심판하셨고 그 심판 앞에서 나는 몸부림쳤다.
왜 하필 나냐고,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신앙이 너무 관념적이었고 이중적이었기 때문에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것은 복음을 잘 알지도 못했으며 무엇보다 영생의 실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는데, 나는 청년 때까지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 이후에 복음을 들었지만, 그것은 십자가 복음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통합복음을 들었을 때, 나는 그날 천국을 보았다.
나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자유를 누렸고 영생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창세전부터 오시기로 작정되었다는 것이 관념이 아니라 실체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때가 되어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셨고 나는 그를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
나는 육신의 눈은 떠 있었으나 영적 소경으로 살아왔다.
복음은 그런 나의 눈을 뜨게 했으며 참 복음으로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오늘도 영생을 누린다.
죄인으로 살아왔던 지난 날의 나의 모습은 주의 보혈로 다 덮어 주시고 이제 나의 육신이 아니라 오직 주의 가죽옷, 즉 그리스도의 옷으로 나를 입혀 주셨다.
그리고 나는 이제 예수님과 같이 살아간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감당케 하신다.
부족한 입술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내 몸을 쳐서 날마다 말씀 앞에 복종케 하시고, 그 말씀이 내 일용할 양식이 되어 세상에서는 가난하나 예수로 부요한 자로 살아간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처럼 나는 오늘도 천국을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이 모든 것이 날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이다.
영광을 다시금 주님께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던 나를 죽음에서 건지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게 하시니 이것이 웬 은혜요 웬 사랑입니까?
도무지 자격 없는 이 죄인을 살려주시고 영생을 주셨으니 이제 이 몸은 주님의 것이요,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이 종을 통하여 마음껏 일하시옵소서.
이 종은 오직 주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받아 먹겠나이다.
나의 남은 인생을 주를 위해 살되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겠나이다.
날 위하여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이곳에 오신 주님은 나의 전부이오니 영광을 받으소서.
지금도 부활의 주가 되어 모든 권세와 통치권을 가지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 재림의 날 그리스도로 오셔서 심판하실 그 주님 앞에 경배를 드립니다.
나의 주님, 나의 전부이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