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우주
우리 집에는 화분이 달랑 세 개뿐이다. 이것도 서울 큰 녀석이 근래 취업하면서 그룹 차원에서 사장이 자기네 회사로 자제를 보내주었다고 부모 앞으로 보낸 화분이 하나 더해져서다. 전에는 야산에서 캐어 온 춘란도 키워보았으나 관리 부실로 연방 시들어 죽고 말았다. 지인이 보내준 모양이 잘 생긴 소나무도 수를 오래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화초에 지은 죄업이 있다.
우리 집 화분 세 개는 모두 수수한 것들이다. 이십년 가까이 되는 화월나무는 그간 분갈이를 여러 차례 해주어 큼직한 화분에 심겨졌다. 예전 어느 여고 근무할 때였다. 겨울 방학을 맞아 담임을 맡은 학급의 화분이 얼어 죽을까봐 염려되어 가장 작은 하나를 골라 집으로 옮겨 놓은 게 지금까지 왔다. 화월나무는 다육식물로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간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인삼고무나무다. 나와 같이 근무하다 학교를 달리 옮겨간 후배가 있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같은 학교에서 책상을 마주해 근무하는 사이가 되었다. 퇴근 후 아파트 상가에서 소주를 한 잔 나누고 우리 집을 기습 방문하면서 가져온 화분이었다. 처음엔 옹글어지고 비틀어진 뿌리가 드러나고 파릇한 잎사귀를 달아 모양이 그럴듯했다. 세월이 흐르자 고목의 연륜이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태 전 큰 녀석이 취업할 때 회사 임원이 택배로 부쳐온 돈나무다. 일명 금전수로 불리는 돈나무는 실내에서 공기정화용으로 키우는 화분이다. 개업할 때 축하 화분으로도 많이 보내는 화분인 것으로 안다. 앞서 소개한 화월나무와 인삼고무나무는 베란다에 두는데 돈나무는 거실 문갑 위에 두고 키운다. 돈나무 역시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여가시간 산천을 주유하듯 휘젓고 다닌다. 차를 몰아 나가지 않고 두 발로 직접 구석구석 찾아간다. 그러니 어느 동네 동구 밖엔 멋진 당산나무가 있고 어느 집안 선산엔 모양이 잘 생긴 도래솔이 있는지도 훤히 꿰차고 있다. 어느 산모롱이를 어디쯤 돌아가면 멋진 소사나무나 느릅나무가 자라는지도 잘 알고 있다. 지리산 장터목 철쭉이나 소백산 주목 군락지도 눈여겨 본 바 있다.
도심이나 근교의 화원이나 분재원도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동읍에서 분재 묘목을 키워 연간 매출액이 상당한 칠순 노인을 알고 있다. 젊은 날 공직에 몸담았다가 일찍 뛰쳐나와 분재 묘목을 기업으로 가꾸는 분이다. 평생 꽃과 나무를 같이한 심성만큼 문학에 대한 원숙미가 묻어나는 시인이기도 한다. 북면에는 아마추어지만 소나무 씨앗을 심어 분재까지 키우는 지인과도 교류가 깊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인지라 옮겨가는 곳마다 정원수를 예사로 보질 않는다. 학교는 역사가 오래될수록 나무 연륜도 오래됨은 당연했다. 창원에서 상징적인 관공서는 도청이다. 팔십 년대 초 부산에서 신도시로 이전해 온 도청은 세월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내 각 고을에서 개청을 기념한 헌수를 기증 받아 도청 정원에는 수령이 오래되고 수형이 아름다운 수목이 그득하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화초나 수목이 빈약하다해서 내가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은 아니다. 집 밖으로 훠이훠이 나서면 모두 내가 품을 수 있고 내가 완상하는 꽃이요 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좁은 집안에서 키우는 화분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고 무관심한 편이다. 정작 꽃이 궁금하면 봄이 오는 길목에 닷새마다 돌아오는 오일장으로 나가서라도 갖가지 꽃모종을 잘 구경하고 있다.
다시 우리 집안으로 돌아와 보자. 남향인지라 겨우내 햇살이 비친 베란다였다. 베란다에는 화월나무와 인삼고무나무 화분이 있다. 그 가운데 인삼고무나무 화분에서 파릇한 싹이 한 줄기 돋아나고 있었다. 예사로 보면 잡초인 듯했지만 자세히 보니 유채 새싹이었다. 어디선가 묻어온 유채씨앗이 화분에서 싹을 틔웠던 것이다. 엊그제 보니 그 유채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 작은 우주여. 1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