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스쿨 하안거 입재 특집 2 가장 오래된 전염병, 중생상을 극복하는 법
<금강경>은 후오백세의 시점, 성불의 길을 걷는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공개한 보살승 운동의 교과서입니다. 성불의 길을 걷는 이들은 스스로를 보살승이라고 명칭했고, 이는 보리심을 일으키고 훈련하는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금강경> 속 보리심은 광대심, 제일심, 상심, 부전도심의 사심으로 소개됩니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범부의 마음은 사상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입니다. 경전은 사상을 사심으로 전환시기는 수행을 할 때 불안에서 벗어나 안심에 이를 수 있음을 천명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사상은 모두 무섭습니다. 특히 중생상은 우리가 무한한 윤회의 감옥에 갇히도록 만든 주된 원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외부에 있다고 착각하지만,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지긋지긋하게 내 앞길을 막은 것은 바로 마음 속 중생상입니다. 중생상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중생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건 못해!'
서양의 학자들은 마인드셋이라는 태도를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마인드셋은 고정 마인드셋과 성장 마인드셋 둘로 구분된다고 하는데, 이 중 고정 마인드셋이 중생상과 유사합니다. 이 중생상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에 분명한 한계를 두는 것입니다. 이 고정 마인드셋을 지니고 있다면, 재능과 조건이 좋을 경우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스스로 못하겠다는 생각, 안 하겠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고 성장하지 못한다는 태도가 바로 중생상입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수행은 장시간이 소요됩니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중생상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이 장시간의 반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좋을 때는 열심히 하지만, 좋지 않은 순간 꼭 내면의 '안돼!,못해!'라는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막습니다. 이 장애물을 뛰어 넘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꼬꾸라져 일어서지 못하는 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고, 이것을 우리는 실패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성불의 길을 걷다가 실패하고, 걷다가 실패하는 것을 중생은 반복하고 있습니다. 중생상 때문에.
보리심 수행은 정진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수승한 원동력입니다. 붓다는 사여의족의 조건을 통해 정진이 지속가능함을 밝혔습니다. 사여의족이란 욕, 정진, 심, 사여의족으로 간단히 정의하면 욕구를 원동력으로 반복하는 것, 정진력과, 깨어있음 그리고 올바른 검증을 원동력으로 삼아 반복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반복이란 무엇입니까? 성불의 길에 대한 발걸음입니다. 이 발걸음을 축적하지 않고 성불에 도착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걸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여정에는 반드시 원동력이 필요합니다. 보살승이라는 탈 것 즉, 차를 타고 간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차는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주유를 해줘야 합니다. 기름이라는 원동력이 없으면 차가 멈추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불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주유할 수 있는 곳을 알아둬야겠죠? 그것이 바로 사여의족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중 욕구에 주목해야 합니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이들이 원인 분석을 위해 책을 고르면 흔히 '동기부여'라는 주제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 동기를 형성하는 기반이 바로 욕구입니다. 원하는 마음이 동기가 될 때 인간은 행위를 시작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으며,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원하는 모든 욕구 중 가장 수승한 욕구가 바로 보리심입니다. <입보살행론>에서는 보리심이 무한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다른 선업은 모두 파초와 같아서 열매를 맺고 나면 시들어 버리지만 보리심의 나무는 열매를 맺고 난 뒤에도 시들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열매를 맺나이다."
인간은 욕구를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모든 욕구는 끝이 있습니다. 취업을 하고 싶다면, 취업을 성취하는 순간 그 욕구는 시들어 버립니다. 애인을 만나고 싶은 것, 물건을 사고 싶은 것, 학위를 따고 싶은 것, 사업의 계약을 따고 싶은 것, 건강하고 싶은 것, 분노를 해결하고 싶은 것, 아라한이 되고 싶은 것까지 모두 다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파초와 같이 힘을 잃는 것입니다.
보리심은 요약하면 일체중생을 성불의 길로 이끌겠다는 욕구입니다. 첫째, 일체중생이 성불의 길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욕구입니다. 둘째, 보리심의 씨앗은 중생의 마음에 옮겨 퍼지기 때문에 그들도 이 보리심의 무한한 동력을 활용하게 됩니다. 보리심은 마치 세계수와 같이 무한히 깊고, 넓게 형성되는 다함 없는 정진의 원동력이 됩니다.
보리심이라는 정진의 주유소가 최고 좋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보리심 수행에 능숙해지기 전에는 보살 수행자에게 해결하지 못한 중생상의 슬럼프가 다가옵니다. 사실 이 슬럼프가 일찍 찾아오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작심삼일이라고 하니, 수행자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공통적 현상인 것 같습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메기야경>에는 흥미로운 붓다의 조언이 등장합니다. 이를 보기 전 스토리를 간략히 요약해여 소개하겠습니다.
붓다에게는 8명의 시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였던 메기야 존자는 어느 날 청정하고 아름다운 망고 나무 숲은 본 후 그곳에서 수행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는 스승에게 홀로 숲에서 수행하고 싶다는 요청을 했으나, 붓다는 두 번을 거절하십니다. 왜냐하면 붓다의 관점에서 메기야 존자는 아직 홀로 수행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요청에 붓다는 결국 허락합니다. 망고 나무 숲으로 홀로 들어간 존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존자는 일정 기간 수행을 한 후 깜짝 놀랍니다. 그는 붓다에게 본인이 관찰한 마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참으로 놀랍구나. 나는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그런데도 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과 악의에 대한 생각과 해코지에 대한 생각의 세 가지 나쁘고 해로운 생각에 빠져있다니!'
존자는 금방이라고 해탈할 수 있을 것 같은 욕구가 생겼고, 이를 위해 시자 소임을 저버리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앉아서 수행할 때 마음을 채우는 생각은 다름 아니라 탐진치였습니다. 이 번뇌가 반복되자 그는 스승에게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마음을 가득 채우는 탐진치를 발견하면, 이 번뇌에 사로잡히거나 이 번뇌를 혐오하여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수행에 자질이 없구나!'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까요? 어김없이 안해와 못해라는 중생상이 등장하고, 이것을 묻고 해결할 수 있는 스승이 없다면 슬럼프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홀로 수행할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의 조건을 갖춘 이들은 극소수이기 대다수의 수행자는 이처럼 중생상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메기야 존자는 행운아였습니다. 묻고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스승 붓다와 함께 했으니까요. 붓다는 성숙하지 않은 마음을 지닌 수행자가 이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5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하십니다.
"메기야여, 여기 비구는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벗을 가졌다. 메기야여, 이것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마음의 해탈을 성숙하게 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
첫 번째 조건은 도반입니다. 나머지 네 가지는 계율을 지니고 있는 조건, 법담을 나눌 수 있는 조건, 정진을 지속하는 조건, 통찰지를 지니고 있는 조건입니다. 붓다는 메기야 존자에게 이 다섯을 다시 도반 하나의 조건으로 설명하십니다. 왜냐하면 도반이 있다면 계율을 지키고, 법담을 나누며, 정진을 지속하고, 통찰지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결국 도반이 전부이고 도반이 으뜸가는 조건임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보리심 수행은 최소 3아승지겁 + 10대겁 동안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초장기간의 투자입니다. 더불어 이 기간 동안 끝 없이 중생상의 장애물에 빠지는 슬럼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라한의 근기를 지닌 메기야 존자가 그러할진대, 나머지 범부들은 당연히 중생상에 강력하게 물들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성숙하지 못한 마음으로 어떻게 성불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중생상이라는 유일한 적을 뿌리 뽑을 수 있을까요?
이는 보리심 수행자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최우선적 주제입니다. 시한 폭탄을 들고 있는 한 행복하기도 어렵고, 정진을 지속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폭탄은 반드시 터질 것이요, 그 순간 모든 노력이 무용지물로 변한다면 불안해서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붓다의 조언을 기억하세요.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셔야 합니다. 요약하여 하나로 줄인다면 좋은 도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물론 계율이 도반이고, 법을 듣는 성문의 조건도 도반입니다. 정진력과 통찰지는 가장 가까운 내면의 도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은 성숙하지 못한 마음에 부족합니다. 결국 외부적인 다른 인격으로써의 도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붓다가 아난 존자에게 수행의 길 속 도반의 중요성은 50%가 아니라 100%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붓다스쿨 온라인학교를 만들고 운영하는 이유는 보리심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좋은 도반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학교에는 좋은 도반 후보가 되는 동기들이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 지키는 공통의 계율이 있고, 보리심에 대한 법문을 잊지 않고 매일 접촉할 수 있는 성문의 조건이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정진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고, 개개인에게 부족한 통찰지를 보완할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붓다스쿨 그 자체가 좋은 도반이기도 하고, 인격으로써의 도반들도 모여 있는 수행의 장입니다.
짧게 가는 여행조차도 좋은 도반이 있다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하물며 3아승지겁 + 10대겁의 시간이 소요되는 성불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 좋은 도반은 정말 전부입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될 모든 중생상이라는 장애물, 슬럼프를 홀로 극복하며 완주를 노리실건가요? 자신 있으신가요? 강력하게 권선합니다. 도반에게 의지하세요. 검증된 좋은 도반들과 함께 하세요. 다른 이들의 좋은 도반이 되어주세요. 이것이 길고 긴 성불의 길을 여행하는 보살 수행자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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