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마을
박경임
아들이 제 아이들을 데리고 땅끝마을에 간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두 아들을 데리고 어린이날 기념으로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아들이 딱 그 나이일 때 그곳에 갔는데 아들이 제 아이들을 데리고 30년 만에 다시 간다니 왠지 울컥했다. 아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아빠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좋은 아빠네>하는 내 문자에 <엄마 아빠도 해주셨는데요 뭐>하는 답문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가족여행을 끝으로 아빠와의 여행은 다시 없었다. 이듬해부터 남편은 아프기 시작했고 나는 생활과 싸워야 했다.
90년 초에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밤길을 달려 땅끝마을에 갔었다. 새해를 시작하는 종소리를 새기고 땅끝마을에서부터 새로운 해의 시작을 하자는 계획이었다. 그해에 발간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 첫 책인 해남 편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며 그 책을 사게 되었다. 지금처럼 인터넷 정보가 없던 시절에 그 책은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맛집 기행이나 여행지를 알려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 책에 쓰인 행로대로 따라가 보기로 하고 땅끝마을에서부터 새해를 시작했다.
보신각에서 출발해 완도에 도착하니 일출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어서 뒷좌석에서 잠든 아이들을 더 재우고 우리도 잠시 눈을 감았다. 잔잔하게 파문이 이는 바다를 안고 새해의 태양이 떠오르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이 북적이지는 않아서 완도 바닷길을 달리다 까만 바윗돌에 앉아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때 남편도 나도 앞으로 닥칠 인생의 파도는 알지 못했다. 다만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기를 염원했다. 책에 쓰여진 음식을 찾아 먹었는데 그중에 떡갈비가 기억에 남는다. 볏짚에 구워주던 떡갈비는 약간 심심해서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다. 책에 소개된 식당을 찾아가고 명승지 역사를 읽으며 나름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책을 뒤지며 다음 행선지를 찾는 우리를 보며 아이들도 찾아보겠다며 재미있어했다.
아들의 기억에 어떤 조각들이 남아있을까 생각했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 어버이날이라고 다들 부산하다.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상점 앞에 진열되고 제과점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오늘 같은 날 식당에 가서 부모님이랑 밥 먹는 것은 촌스럽다고 집에서 먹었던 생각도 난다. 예약이 어렵기도 했다. 아버지는 외식을 좋아했고 엄마는 집밥을 좋아해서 결국은 집에서 먹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큰마음 내서 “내가 살 테니 밖에 가서 맛있는 것 먹자”라고 했다가 엄마가
“네가 그따위로 돈을 쓰니 가난하다.” 라고 해서 울면서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것도 모두 지난 일이되어 이제 두 분 다 곁에 안 계시니 싸울 일도 없다. 납골당 유리창에 붙일 수 있는 흰색 비닐로 만든 조화를 들고 현충원으로 부모님을 뵈러갔다. 가는동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목이 메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난 확실히 못된 자식인가보다. 부모님이 그립지 않으니 말이다. 그네들이 고단한 인생을 마무리하고 좋은 곳에 모셔져 있어서 안심될 뿐 다른 소회가 없다.
그래도 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던 카스텔라와 엄마가 좋아하던 팥빵을 두 분의 사진 앞에 내보이며 흔들었다. 물론 10여 년 환자복 하나로 버티며 예쁜 옷 한번 못 갈아입은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은 있다. 아버지 역시 60대에 실명하여 좋아하는 여행도 못 하고 동네 공원에서 한을 삭였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더 어떻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리움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땅끝마을에 갔던 날에 나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우리 부모보다 나은 부모가 되리란 자신감에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대로 되어주지 않았다. 맏딸과 맏며느리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부모의 기대에 주눅 들곤 했으니 말이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많았으니 좋은 딸도 못되었다.
좋은 부모라는 것이 현대에는 일단 경제적 풍요가 우선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아빠의 자리가 비어있게 했으니 그 또한 실패였다. 하지만 모자라는 부모 탓하지 않고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아들이 제 아이들을 데리고 땅끝마을에 간 마음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아들이 나보다는 나은 부모가 되리라는 생각에 현충원을 돌아 나오며 미소가 지어졌다.
2019.3서울문학 시등단 2021.6 한국산문등단 21.7 세명일보 시 우수상 한국산문회원 서울문학이사 한국문인협회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