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에 관한 경고라 - `애굽'의 히브리어 음역 `미츠라임'은 본래 그들의 조상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말은 하애굽의 명칭이었으나, 여기서는 애굽 전체를 대표하는 뜻으로 쓰였다. `경고'에 대하여는 13:1을 참조하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 여호와께서 임하심은 애굽을 재판하시기 위함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임하심은 그의 재판이 신속히 이루어질 것을 가리키는 것이요,
동시에 그의 주권이 온 자연에 미침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하늘 구름과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신 33:26; 삼하 22:11).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녹으리로다 - 하나님의 신속하고 거룩한 임재 앞에서 애굽의 우상들은 두려움으로 떨 수밖에 없으니, 출애굽사건에서 그들은 이미 결정적으로 심판을 받았으며,
그때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아무것도 아님'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맛본 저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앞에서 떠는 것은 우상들만이 아니다. 용감 무쌍하던 애굽인들의 마음조차 절로 녹아내린다고 선지자는 말한다,고대의 전쟁에서는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그 자체가 곧 승리의 선취라고 여겨졌다.
[사 19:2]"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 히브리어 원문에는 주어가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으로 되어 있다. 여호와의 말씀은 4절까지 이어진다. 애굽에 내려진 심판의 형태는 내란이다.. `격동하다'는 말은 `무장하다',`공격하다'는 뜻이다. 그들이 각기 형제를...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 동족 상간의 비극은`형제'에서 `이읏'으로, `성읍'에서 `나라' 로 그 범위와 강도를 더해간다.
여기서 `나라'는 수십 개로 나뉘어진 고대애굽의 지방들을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애굽의 역사는 끝없는 자기 소모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처음 여섯 왕조 B.C. 3,000 - 2,200년경 가 변하는 동안 강력한 연합을 유지하였던 애굽은 그 뒤 약 42개의 노메스 지방정부로 갈리어 난립하는 혼란기틀 맞게 된다.
이 같은 혼란은 제12왕조하(B.C. 1990-1785년경)에서 잠시 주춤거렸을 뿐, 이후 애굽은 거듭되는 분열과 내란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에디오피아 왕조 제25왕조, B.C. 715-664년 가 들어서기 직전과 직후B.C. 715년경. 그리고 삼메티쿠스에 의한 애굽 왕조의 회복B.C. 664년경을 전후하여 혼란은 극에 달한 둣하다.
[사 19:3]"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 도모는 그의 파하신 바가 되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 극심한 혼란 가운데서 애굽인의 `정신이 쇠약해질 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병행하는 뒷구절에서 알 수있듯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처리해나가는 `지혜' 혹은 `분별력'을 의미한다. '쇠약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베카'는 `바카크'동사의 나팔형으로서, `공허하게 되다', `쏟아버림을 당하다'는 뜻이다. 애굽인들의 절망 상태는 어쩌다 그들이 입안한 계획들조차 하나님에 의해 못쓰게 된다는 말에서 더욱 심화된다.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녹고(1절) 지역마다 분열되어 골육 상쟁(骨肉相爭)하며(2절) 판단력마저 고갈된(3a절), 이런 상황에서 애굽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된 우상들과 죽은 자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비참함은 점강법으로 서술된 `우상-마술사-신접한 자-요술객'의 어순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즉 그들이 가장 신뢰하던 우상에게 도음을 구하나 불만족한 고로 그보다 낮은 마술사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래도 안 되자 신접한자, 요술객들에게까지 미래를 의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추론할 수 있다. (1) 사회가 불안할수록 허탄한 미신이 판치고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 활개친다. (2)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그 어느것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없다.
[사 19:4]"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 본문을 직역하면 `내가 애굽인들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가둘 것이니...'이다. 새로운 군주에 의한 이 압제의 과중함이 두 개의 형용사, 즉 `카쉐'단단하고 무겁다와 `아즈'강하고 견고하다로 강조되어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잔인한 군주'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그가 애굽의 삼페티쿠스라 하기도 하고, 혹은 앗수르의 사르곤 혹은 에살핫돈, 혹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페르시아의 캄비세스라고도 한다. 그러나 본문에는 잔인한 군주가 애굽 본토인인지 아니면 외국인인지 조차도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것을 역사상의 특정한 인물과 결부시키기보다는 `군주들'이란 복수 명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애굽의 여러 군주들에게 지속적으로 압제를 당할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