註: 《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은 당나라 손사막(孫思邈)이 지은 의서(醫書)로서《천금방(千金方)》 또는 《천금요방(千金要方)》이라고도 약칭하는데, 세종때 편찬한 한방의학 대사전인 『의방유취(醫方類聚)』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의학 총론에서 시작하여 본초(本草), 제약(製藥)을 비롯하여 임상의 각 과를 망라하고 있는데 《황제내경(黃帝內經)》이래 중국 의학의 성과를 집대성한것으로서 후대 의서의 모범이 되었다.
장담(張湛.중국 동진의 醫人)이 말하였다.
“무릇 의서[經方]에 정통하기 어려운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지금 실체가 동일하지만 드러나는 증후(症候)는 다른 질병도 있고, 실체는 다르지만 드러나는 증후는 동일한 질병도 있다. 그런데 오장(五臟)과 육부(六腑)의 차고 비는 것과 혈맥(血脈)과 영위(榮衛)의 통하고 막히는 것은 분명히 귀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먼저 증상을 진단하여 살펴야 한다. 그리고 맥박[寸口關尺. 환자의 맥박을 진찰하기 위한 손목의 위치들]은 부맥(浮脈)ㆍ침맥(沈脈)ㆍ현맥(弦脈)ㆍ긴맥(緊脈) 등으로 어지럽게 나타나고, 수혈(兪穴)과 기혈(氣血) 움직임은 높낮이나 깊이가 다르며, 피부와 근골(筋骨)에는 두께와 강약[剛柔]의 차이가 있다. 오직 정밀하고 세밀하게 마음을 다하는 사람만 비로소 이것에 대해 논할 수가 있다.
지금은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세밀한 일을 지극히 거칠고 지극히 얕은 생각으로 해결하고자 하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 만약 가득한데도 들이붓고, 비었는데도 덜어내며, 통했는데도 뚫어버리고, 막혀 있는데도 차단하며, 차가운데도 춥게 하고, 뜨거운데도 덥게 하는 것, 이것은 그 질병을 악화시키면서도 환자(患者)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이니, 우리는 환자의 죽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술[醫方]과 점술[卜筮]은 정통하기가 어려운 기예[藝能]이다. 신(神)으로부터 재주를 부여받지 않았다면 어찌 그 심오한 정수를 얻을 수가 있으랴.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은 3년간 방서(方書)를 읽은 후에 곧바로 ‘천하에 힘써 치료할 만한 질병은 없다’ 라고 자신 있어 한다. 그리고 3년간 질병을 치료한 후에야 천하에 쓸 만한 처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학자(學者)가 반드시 의학의 근본 원리[醫源]를 널리 궁구하고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주워들은 대로 말을 내뱉지는[道聽塗說]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의도(醫道)를 이미 통달했다고 떠벌린다면 이것은 자기를 심하게 그르치는 일이다.”
무릇 대의(大醫)는 질병을 치료할 때에 반드시 자기의 정신[神]과 생각[志]을 안정시키고 원하거나 바라는 것도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자애롭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발휘하여 사람[含靈.영성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널리 구원하겠다고 서원(誓願)해야 한다. 만약 질병에 걸린 사람이 찾아와서 구원을 요청하면 그 사람의 귀천(貴賤)과 빈부(貧富), 나이와 추미(醜美), 원친(怨親)과 친소(親疎), 지역[華夷]과 지능[愚智]을 따질 겨를도 없이 마치 지친(至親.가장 가까운 친척)을 대하듯이 두루 동등하게 대우한다. 또한 대의는 앞뒤를 재보거나 스스로의 길흉(吉凶)을 헤아려 보면서 자기 목숨을 지킬 틈도 없다. 환자의 고통을 보면 마치 자기가 아픈 듯이 여기면서 진심으로 슬퍼하므로, 험한 지형ㆍ낮과 밤ㆍ추위와 더위ㆍ굶주림과 목마름ㆍ피로 따위를 피하지 않는다. 혼신을 다해 달려가 구원할 뿐,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백성들의 대의(大醫)가 될 수 있으며, 이와 반대로 한다면 사람들의 큰 적[巨賊]이 된다.
예로부터 명현(名賢)의 질병 치료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을 활용하여 위급한 상황을 구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가축은 비천하고 사람은 귀하다고 말하지만 생명의 소중함에 있어서는 사람이나 가축이나 똑같다. 다른 것에게 손해를 입혀서 자기를 이롭게 하는 일은 사람 마음에 한결같이 꺼려하는 것인데, 하물며 사람에게 손해를 입힐 수가 있겠는가(머리카락, 손발톱, 태반 등 사람의 신체 일부나 부산물로 치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 무릇 생명을 죽여 생명을 구하고 산 것을 없애서 죽어가는 것을 되살리는 셈이니, 내가 지금 이 방서(《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에서 생명 가진 것을 약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이 때문이다. 이미 죽어서 시장에서 판매되는 등에[蝱蟲]나 거머리 따위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달걀 같은 물건 하나에도 혼연일체의 세상[混沌未分]이 담겨 있다. 반드시 아주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부득이하게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만약 치료하는 데 달걀을 사용하지 않을 능력이 있다면 이 사람이 바로 대철(大哲)이 되니, 이 또한 일반 사람들이 닿지 못하는 경지이다.
부스럼[瘡痍]이나 설사[下痢]를 앓느라 쳐다볼 수 없이 더러워서 사람들이 피하는 경우에도 오직 미안해하고 슬퍼해 주고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치우치고 옹졸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나의 뜻이다. 무릇 대의(大醫)가 되는 요체는, 자신의 정신을 맑게 하여 내면을 응시하면서 밖으로는 의젓해 보이고, 아주 관대하면서도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는 것이다[不皎不昧]. 그리고 질병을 살펴 치료할 때에는 성심을 다하고, 증후를 상세히 관찰하여 아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며, 침술(鍼術)과 탕약(湯藥)을 결정할 때는 차질이 없어야 한다. 비록 ‘질병은 빨리 치료해야 한다’ 라고 말하더라도, 모름지기 치료 과정에서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자세히 살피고 여러모로 생각해야 하며, 다른 사람 목숨 위에 군림하여 마음껏 자기 편리한 대로 하면서 명예를 구하는 행위는 아주 어질지 못한 짓이다.
또한 환자 집에 갔을 때는 아름다운 명주들이 눈에 가득하더라도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좋은 음악이 귀를 채우더라도 짐짓 즐겁게 여기지 말며, 진수성찬이 계속 들어오더라도 맛없는 듯이 먹으며, 맛있는 술들이 펼쳐져 있더라도 못 본 듯이 여겨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저기 한 사람만 다투더라도 온 집안이 평화롭지 못한 법이다. 하물며 환자의 괴로움이 잠시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의인(醫人)이 편안하게 즐거워하면서 거만하게 자만하는 행위는, 사람과 신령[人神]이 모두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자 훌륭한 사람[至人]은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체로 의학[醫]의 본질이다. 무릇 의인[醫]이 되기 위해서는, 수다스럽고 헤프게 웃으면서 농담하고 왁자지껄하거나, 시비(是非)를 함부로 따지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타부타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명성을 자랑하기 위해 다른 의인들을 헐뜯고 자기의 은덕을 으스댄다면, 우연히 질병 하나를 고치자마자 머리를 쳐들고 얼굴을 내밀면서 교만한 모습으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라고 떠들어댈 것이다. 이것이 의인(醫人)의 단점(短點)이다.
노자(老子)는 “그가 드러나게 선행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보답해주고, 그가 남모르게 선행을 하면 귀신(鬼神)이 보답해준다. 그가 드러나게 악행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복수해주고, 그가 남모르게 악행을 하면 귀신이 그를 해친다.” 라고 하였다. 이 두 가지 길을 헤아려보면 남모르게 하거나 드러나게 하는 행동에 대한 보답이 어찌 터무니없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의인(醫人)은 자신의 장점에 의지하여 재물을 늘리려고 마음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어두운 길 가운데에서도 고통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 많은 복을 쌓아야 할 뿐이다. 또한 그 사람이 부귀(富貴)하다고 해서 진귀(珍貴)한 약물을 처방하여 구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자기 능력을 뽐내서는 안 되니, 이러한 행동은 진정 자신을 바쳐 다른 이를 위하는[忠恕] 방법이 아니다. 의학의 지향은 구제(救濟)하는 데 있으므로 곡진(曲盡)하게 논의한 것이니, 학자(學者)들은 이상의 말이 저속하다고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번역: 세종대왕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