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규법사님 영전에
김해 정토원 원장 선진규법사께서 먼 길을 떠나셨다, 선진규법사와는 조계종의 포교원,대한불교청년회,동국대학교불교교학과,만해사상선양회 등과의 인연이 있다.
선진규 법사를 만난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다. 나는 중앙대학교 기계공학과 3학년 생으로 대학생불교연합회 서울지부 지부장과 중앙대학교 불교학생회회장을 겸임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대학생불교연합회본부에서는 부처님오신 날 봉축 행사를 거부한 상태였다. 본부에서는 조계종 총무원이 데모나 하는 대학생들에게 참여를 거부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서울지부에 해당하는 시내 38개 대학 학생회 회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결론은 조계종 거부하면 대학생만 따로 모여서 봉축 법회를 봉행 하자는 거였다. 장소는 동국대학교운동장, 대학생과 그 가족만 모이기로 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생회의 회장 겸 서울지부 부지부장 박상관 법우를 통해 동국대학교 운동장 사용승인신청서와 서울 중부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조계종 총무원에 들어가서 대학생들의 참여를 거부한다 하니 대학생들만 따로 봉행하겠다고 통첩을 하였다. 그때 있었던 이가 선진규법사였다. 선진규법사는 다른 스님과 포교사들의 표정을 살피며 ‘불교 조계종 종단에서는 대학생들의 참여를 거부한 적이 없다. 그러니 부디 참여해 다오. 대학생들이 참여를 하면 그동안은 뒷정리를 위해서 행진 끝 순서에 행진에 참여해 왔는데 이번에는 제일 앞에서여 하도록 하겠다.’하였다. 그 자리의 스님들과 합의된 것으로 알고 서울지부 지회장 회의를 다시 소집했다. 본부회장과 임원도 함께 했다. 그래서 상황을 설명하고 본부 회장과 간부들도 함께 한 자리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 대다수가 봉축법회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진규법사가 정확히 알려주고 참여를 호소해서 나를 중심으로 대학회장들의 뜻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물론, 본부에서는 크게 반발하였다. 본부에서는 봉축행사를 어용행사로 규정해서 그리 한 것이었다. 전두환시절이니 그런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것은 1988년에 시행된 ‘제 1회 부처님오신날 봉축 설법 대회’ 장소에서였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분위기를 띄우며, 포교 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포교법사들에게 설법 자질을 향상하기 위한 기회로써 설법 대회를 열른 것이었다. 나는 무진장스님 김어수 법사, 향봉스님 이런 분들도 대회에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참여했다. 유치찬란한 생각이었지만 그분들과 함께 겨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참석을 해서 보니 그분들은 심사위원장, 심사위원이었고 막내 심사위원 쯤 되는 분이 선진규 법사였다. 그날 설법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해서 우수상패와 상금을 받았었다. 1등은 조계종 스님이었다.
세 번째로 만난 것은 대한 불교 청년회 지방지 부인 거제도 지부 행사에 초청 법사로 참여했을 때였다. 거제도는 대우조선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고 활발했다. 지금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당시 대한불교청년회 지도법사였다. 김규범씨가 회장을 맡으며 지도법사로 위촉해서 게속 참여하였다. 설법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초창기 대한불교청년회 회장이기도 했던 청년회 원로인 선진규 법사가 다른 분과 함께 참석한 것이었다. ‘대법사님께서 오실 줄 알았으면 제가 생각을 해 봤을 텐데 이렇게 와서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했더니 ‘스님께서 당연히 설법 하셔야지요 .그리고 스님께서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여기서 가깝지도 않지만 또 그리 멀지도 않은 김해에서 우정 온 것입니다. 우리 거제지부가 비록 지방에 있어도 아주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부처님 말씀을 설 해주고 가십시오.’라고는 몇 마디 임원들에게 이야기 하고 돌아갔다.
네 번째는 내가 있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열린선원 개원기념 법회를 할 때였다. 아무 연락도 없이 선진규법사가 찾아와 대중 속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대법사님 앞으로 오십시오.’ 그랬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저는 그냥이 자리에 있겠습니다.’ 하였다. 축사 시간에 선진규 법사께도 말씀하실 기회를 드렸더니 앞으로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저잣거리에서 힘들게 전법교화 하시는 스님의 이야기를 언론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오기 때문에 궁금해서 찾아 왔습니다. 정말 어려운 곳에서 열심히 잘 하는 모습이 고맙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하는 간단한 축하의 말을 하고 고개를 돌린 사이도 나가 버렸다. 다섯 번째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살았던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 에서였다. 스님의 탄생 기념행사와 글짓기 행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자리에서 ‘우리 한국의 모든 이들이, 더구나 불자들은 깊이 새겨서 만해정신으로 뭉쳐야 한다.’는 굳은 이야기 할 때 찌르르 마음의 울림이 왔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동문회 자리에서도 가끔 뵈었다.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불교 발전을 위해서는 법사들이 전법 교화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요즘 100세 시대인데 얼마 전에도 페이스북에서 뵈었는데 80 남짓한 연세에 가셔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부디 극락왕생 하시기를 축원한다. 또 살짝 드는 걱정 궁금증은 그 뒤를 이어서 정토원 운영과 김해, 경상도 지역의 전법교화는 누가 할 것인지 궁금하다. 선진규법사의 왕생극락과 함께 유일하게 호미 든 관음상을 모신 아직 한 번도 직접 가보지 못한 정토원의 전법교화가 잘 되기를 축원한다.
https://story.kakao.com/_iRCrL/j9JnS14SUSA